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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왕 전도사 김준영, 빚 갚는 헌신과 더함교회 감동 실화

요약

알바왕 전도사, 빚 대신 갚는 헌신 목회: 옥천 더함교회 감동 실화

"우리 교회 전도사님은 알바왕" 김준영 전도사님의 특별한 이야기: 예배와 삶이 함께하는 가족 공동체를 꿈꾸다

오늘, 새롭게하소서 김학중 목사님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 사람들과 교회가 진정한 가족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며 헌신하는 젊은 목회자, 김준영 전도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김 전도사님은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마을 주민들과 가족처럼 살아가며, 목회 3년 차에 "알바왕"이라는 특별한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그는 가난한 성도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김 전도사님이 보여준 진심 어린 사랑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예배와 삶이 하나 되는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그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옥천 시골 마을에 젊음의 활력을 불어넣다

시골 마을에 젊은 목회자가 정착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요, 김준영 전도사님은 충북 옥천의 작은 마을, 안내면 인포리에 자리 잡았습니다. 김 전도사님은 젊은 목회자로서 시골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농촌 마을에 젊은 세대가 유입되는 것은 지역 사회에 큰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 전도사님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교회 설립에 대한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마을 주민들이 교회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김 전도사님의 진심과 헌신이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보통 젊은 목회자들은 도시에서의 사역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 전도사님이 옥천의 시골 마을을 개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김 전도사님은 학부 시절 학생부 사역을 하며 청소년 사역에 대한 비전을 품었고, 미국에서의 청소년 사역 제의와 대형 교회 청빙 등 다양한 진로를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곳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옥천이었습니다. 옥천은 김 전도사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는데요, 그는 옥천에서 바르게 살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고, 몇몇 가정이 교회를 세워달라는 요청과 함께 담임 목사로 초빙하며 옥천 개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30세 젊은 나이에 농사를 시작하다

시골 교회 목회는 도시 교회와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텐데요, 특히 김 전도사님은 30세의 젊은 나이에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김 전도사님은 성도들과 함께 땀 흘리며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는 콩, 깨, 깻잎, 쌈채소, 옥수수, 복숭아 등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며, 농촌 생활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농사를 보며 "왜 이렇게 못 하실까" 생각했던 김 전도사님은 막상 농사 현장에 뛰어들어 보니, 농사가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농촌 봉사 활동 경험이 있던 김 전도사님도 농사의 어려움을 실감했을 정도인데요, 실제로 농사일은 굉장한 체력을 요구합니다. 콩 수확 후 콩 털기 작업을 하던 날, 김 전도사님은 35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칠칠맞게 일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묵묵히 농사일을 이어가셨고, 그들의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농사일을 통해 김 전도사님은 성도들의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의 헌신적인 믿음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농사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매일 철야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의 모습은 김 전도사님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매일 밤 철야 예배를 드리는 교회 공동체

보통 교회들은 금요 철야 예배를 드리지만, 더함 교회는 매일 밤 철야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요, 매일 밤 철야 예배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 전도사님은 개척 전부터 함께 사역했던 신만 전도사님과 함께 매일 밤 철야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과거 교육 전도사 시절, 영적으로 힘든 환경 속에서 매일 철야 예배를 통해 영적 힘을 얻었던 경험이 매일 철야 예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 전도사님은 목회에 있어 영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육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매일 철야 예배를 통해 성도들의 영적 건강을 돌보고 있습니다.

더함 교회는 어른 29명, 유치부와 아동부를 포함한 학생 6명으로 구성된 작은 교회이지만, 시골 교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특히 50대 이상의 성도들이 많고, 젊은 부부들도 꾸준히 교회에 출석하며, 시골 교회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 전도사님은 젊은 목회자로서 활력과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으며,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방황했던 학창 시절, 탕자와 같은 삶을 살다

지금은 누구보다 건실하고 믿음이 굳건한 청년 목회자이지만, 김준영 전도사님에게도 방황했던 학창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뜻밖에도 김 전도사님은 학창 시절 소위 "문제아"였다고 고백하며, 과거 자신의 방황했던 시절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중학교 시절까지는 모범생이었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방황하기 시작했고, 그 배경에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군 제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김 전도사님의 아버지는 특공대, 특수부대 창설 멤버이자 교관이었으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던 엘리트 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만나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신앙생활과 군 생활의 갈등을 느껴 갑작스럽게 제대를 결심했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제대 후,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고, 사업 실패가 이어지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김 전도사님은 어려운 가정 환경과 왜소한 체격,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방황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 제대로 출석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김 전도사님은 소위 "싸움꾼"으로 불릴 정도로 거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요, 어떻게 방황하는 청소년 시기를 보내게 되었을까요? 원래 내성적이고 착한 성격이었던 김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군인 기질을 물려받아, 내면에 강한 분노와 반항심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관악부에 들어가면서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했고, 학교 수업을 빼먹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싸움을 일삼았습니다. 그는 3년 동안 150일도 채 학교에 출석하지 못할 정도로 방황했으며,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저는 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모습이 저에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검도 유단자에서 신학생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다

그렇게 방황하던 김준영 전도사님이 어떻게 신학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김 전도사님은 신학 대학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고, 검도 유단자로서 검도 특기생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검도 관장님의 추천으로 검도 관련 학과 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누나의 권유로 성악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단 3개월 속성으로 성악 레슨을 받은 후, 침례 신학 대학 교회 음악과에 합격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학 대학에 진학하게 된 김 전도사님은 당시 상황에 대해 "마지못해 신학교에 가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침례 신학 대학 교회 음악과에 원치 않게 진학했지만, 1학년을 마치고 바로 휴학 후 택배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김 전도사님은 군 입대를 앞두고 택배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택배 배달 일을 하면서 우연히 참석하게 된 CCC 채플에서 김용의 선교사님의 설교를 듣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김 선교사님의 설교를 통해 십자가 복음을 깊이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당시 경험에 대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뇌새적인 표현이 아니고, 거기서 완전히 원 없이 울고 회개하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간증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만나 변화된 삶, 알바왕 목회자로 헌신하다

김용의 선교사님의 설교 중 어떤 말씀이 김준영 전도사님에게 큰 울림을 주었을까요? 김 선교사님은 십자가 복음과 희생에 대해 설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인생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날 김 전도사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김 전도사님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고, 인생의 방향이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가장 먼저 변화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을 영접한 후, 김 전도사님은 세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전에는 막막하고 어둡게만 느껴졌던 현실이,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임을 깨닫게 되면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택배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기쁨으로 일할 수 있었고, 이후 신학 대학에 복학하여 학업에 열중하며, 헌신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군 복무 중에는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을 만나 십자가 복음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되었고, 군대 মাল년에는 복수 전공을 결심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김준영 전도사님은 개척을 꿈꾼 적은 없었지만, 김의중 목사님을 만나 교회론과 목회론을 배우면서 개척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김의중 목사님은 교회를 "하나님 안에서 참된 가족 공동체"라고 가르쳤고, 목회자는 성도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전도사님은 김의중 목사님의 가르침을 통해 아버지와 같은 목회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성도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목회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품다

김준영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품는 목회를 실천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목회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전도사님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어려움과 필요를 세심히 살피고 있습니다. 그는 성도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함께하며,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함께 누리는 목회를 지향합니다. 특히 성도들의 영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 가정 문제, 건강 문제 등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목회 방식과는 조금 다른 목회를 하다 보니,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김 전도사님이 섬기는 더함 교회에는 기존 교회에서 소외되었던 아웃사이더, 상처 입은 영혼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과거 화려했던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성도들이 대부분입니다. 도박, 알코올 중독, 전과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성도들을 김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습니다. 그는 성도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모두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돕고 있습니다.

더함 교회 성도들은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데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주시겠어요? 술에 취해 교회 밖에서 잠을 자거나, 갑자기 사라져 연락이 두절되는 성도들 때문에 김 전도사님은 겨울 추위 속에서 밤새도록 성도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술에 취해 교회에 들어오지 않는 성도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밤을 새우고,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에 처할까 염려되어 깨 잎 하우스 난방을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도박 빚 때문에 힘들어하는 성도를 위해 도박 현장에 찾아가 밤새도록 기다리기도 하고, 술집 앞에서 술 취한 성도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김 전도사님은 인내심과 사랑으로 성도들을 품었고, 그 결과 성도들은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김준영 전도사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인내심에 감동하여 극적으로 변화된 성도들의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요? 과거 예수님을 뜨겁게 믿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신앙을 떠났던 성도들이 김 전도사님의 사랑과 헌신에 감동하여 다시 첫사랑을 회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60년 동안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던 한 할아버지는 김 전도사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기도에 감동하여 변화되었고, 지금은 철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교회에 헌신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 사랑하심은" 찬양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5년 동안 굳게 닫혀있던 할아버지의 마음 문을 열기까지 김 전도사님의 끈기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알바왕" 전도사, 빚 때문에 고통받는 성도들을 돕다

김준영 전도사님은 "알바왕"이라는 특별한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알바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을까요? 김 전도사님은 미혼으로 교회에서 받는 사례금은 월 30만원(현재 40만원)으로, 본인 생활비도 빠듯한 상황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돕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야간 택배, 제초 작업, 세차장 아르바이트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성도들의 물질적인 어려움이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알바왕"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알바를 하는 이유가 본인 생활비나 교회 재정 때문이 아니라, 오직 성도들의 빚을 갚아주기 위함이라는 것이 놀라운데요, 성도들의 빚을 갚아주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전도사님은 목회의 시작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성도들을 자녀처럼 돌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성도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빚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시험에 드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로서 돕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도들의 빚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수 있지만, 당장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신앙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재정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아르바이트를 해서 성도들의 빚을 갚아주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의 빚을 갚아주는 헌신적인 사역에 대해 주변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일부에서는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곳이지, 빚을 갚아주는 곳이냐", "성도들의 자립심을 해치는 행동이다"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관계자들조차 "2년 안에 교회 문을 닫을 것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 전도사님은 이러한 비판에 개의치 않고, 성도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성도들의 자립심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따라 목회하고 있습니다.

꼴통 목사,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섬기다

주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알바왕" 목회를 이어가는 김준영 전도님, 때로는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육체적으로 힘든 아르바이트와 목회를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추운 겨울, 세차장에서 손이 얼어붙고, 깨진 유리에 손을 베이면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감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고 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목사는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들의 "알바왕" 목회를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목회를 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초짜 목회자", "과거 꼴통", "고집불통"이라고 표현하지만, 김준영 전도사님의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목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목회자가 되고 싶고, 어떤 사역을 하고 싶은지, 마지막으로 기도 제목과 함께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 전도사님은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삶이 제 모습입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직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연단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며,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를 꿈꿉니다. 개인적인 기도 제목으로는 해외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더함 교회가 자립하여 성장한 후, 해외 선교 사역에 헌신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김 전도사님은 더함 교회가 지역적으로는 작은 시골 교회이지만,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어느 교회보다 크게 축복하시고 사용하시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시청자들에게 더함 교회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오늘 김준영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은 무모해 보이는 헌신을 통해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김 전도사님의 목회는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헌신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우리 또한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세상을 거꾸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이기는 자"가 되기를 축복하며, 오늘 새롭게하소서는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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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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