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진 작가 간증: 고난을 희망으로 바꾼 삶과 에세이 이야기
고난을 간증으로: 절망을 넘어 희망을 쓰는 전대진 작가
"고난은 간증의 재료": 전대진 작가의 삶과 희망 이야기
새롭게하소서 유튜브 채널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거하며, 구독과 알람 설정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고, 공유를 통해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새롭게하소서에서는 특별한 손님, 바로 전대진 작가님을 모시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전대진 작가님은 두 권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과 "실컷 울고 나니 배고파졌어요"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고 계신데요, 작가님의 삶은 고난 속에서 피어난 간증의 재료와 같습니다. 그 아픔과 고난이 오히려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전대진 작가님과 함께 그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우리 삶 속에서 고난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전대진 작가님은 밝은 미소로 스튜디오에 등장하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자는 작가님을 "청년 작가"라고 소개하며 젊은 나이에 두 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한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는데요, 작가님은 겸손하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특유의 유쾌함으로 분위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그의 책 제목,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과 "실컷 울고 나니 배고파졌어요"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작가님의 솔직하고 재치 있는 글쓰기 스타일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사회자는 이러한 독특한 제목의 책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드러냈는데요, 작가님은 첫 번째 에세이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이야기는 작가님이 군 전역 후 힘든 시기를 보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험 낙방 후 자존감이 극도로 낮아졌던 그는 2년 동안 편의점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공부에 매진했지만, 결국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힘겹게 준비했기에 낙방의 아픔은 더욱 컸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가게를 오픈하셨고, 새벽 시간 가게 앞에서 겪은 황당한 사건이 책 제목의 모티브가 되었는데요, 술에 취한 50대 남성 두 명이 비틀거리며 다가와 작가님을 빤히 쳐다보더니, 손가락으로 가슴을 쿡쿡 찌르며 폭언을 쏟아냈습니다. “이 새끼야, 살 빼!” 초면인 손님에게 그것도 부모님 가게 앞에서 모욕적인 말을 듣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자존감이 극도로 낮아진 상태였기에 그 사건은 작가님에게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당시 상황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었는데요, 술 취한 남성은 계속해서 작가님에게 막말을 퍼부었고, 심지어 어머니에게까지 무례한 행동을 하려 했습니다. 어머니는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아들에게 참으라고 했지만, 작가님은 속으로 분노와 억울함에 휩싸였습니다. 그 남성은 다름 아닌 옆집 국밥집 사장이었고, 동네 장사 특성상 좋게 넘어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만류에 작가님은 더욱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인간적인 복수심이 끓어올랐지만, 작가님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분노를 다스렸습니다. "하나님, 언젠가 저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세요." 그러나 곧 그는 복수 대신 용서를 택했고, 억울한 마음을 글로 쏟아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글이 바로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이었는데요, 어렸을 적에는 착하게 사는 것이 좋은 줄 알았지만, 어른이 되어보니 마냥 착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당시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을 손글씨로 적어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놀랍게도 작가님의 글은 페이스북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좋아요 13만 개, 조회수 400만 뷰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는데요, 수많은 댓글이 쏟아지며 사람들은 작가님의 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작가님은 단순히 속상한 마음에 올린 글이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통해 위로와 공감을 얻었고, 작가님은 뜻밖의 반응에 놀라면서도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작가님은 국밥집 사장님과의 훈훈한 화해 스토리를 공개하며 감동을 더했는데요, 6월 6일 현충일에 이사를 가던 중 우연히 국밥집 앞을 지나게 되었고, 문득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망설임 끝에 홍삼 선물세트를 들고 국밥집을 찾아갔고, 사장님께 정중히 인사를 건넸습니다.
국밥집 사장님은 당시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작가님의 진심 어린 사과와 감사 인사에 감동했습니다. 작가님은 그때 사장님 덕분에 자존심 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경험이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히려 작가님은 그 사건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장님 또한 작가님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는데요, 작가님은 당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그것이 책 출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꾸준히 SNS에 글을 올리며 독자들과 소통했고, 그의 글들은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카카오스토리에서는 친구 수가 0명에서 시작해 7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그의 글을 묶어 책으로 출간하자는 출판사의 제안이 이어졌고, 2017년 10월 20일, 마침내 첫 번째 에세이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정 폭력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는데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그는 깊은 상처를 안고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작가님의 눈앞에는 늘 굳게 닫힌 문이 있었고, 문 너머에서는 깨지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문틈 사이로 본 것은 아버지에게 짓밟히고 맞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는데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어머니는 소리 없이 문을 닫으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작가님은 언젠가 어른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멋진 남편,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는데요,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아버지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고, 술만 마시면 집은 피난처가 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늘 작가님을 보호하려 애썼고,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을 숨기려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한 달 정도 집을 떠나 홀로 지내게 되면서 작가님은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밤마다 공포스러운 존재로 돌변했고, 작가님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아버지는 만취한 상태로 아파트 12층 베란다 난간에 올라 위험한 행동을 했는데요, 어린 작가님은 아버지를 붙잡고 위험하다고 울며 말렸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양동이에 소변을 받아 마시라고 강요했습니다. "이것은 효도"라며 억압적인 태도를 보였고, 작가님은 아버지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중학생 시절에는 잠을 자던 중 숨이 막혀 눈을 떠보니, 술 취한 아버지가 또다시 폭력을 휘두르려 했는데요, 작가님은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밀쳐내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다행히 그때 마침 외삼촌이 집에 들르면서 더 큰 불행을 막을 수 있었지만, 작가님은 극심한 공포와 불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중학교 시절을 보내던 중, 작가님은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양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동시에 현실과의 괴리감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찬양 가사와 달리, 그의 현실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작가님은 어머니와 함께 힘겹게 살아가야 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두 가지 일을 하며 작가님을 키웠는데요, 새벽에는 우유 배달을 하고, 저녁에는 옷 공장에서 미싱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 작가님은 공부에 매진했지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모의고사 성적이 너무 낮아 선생님께 체벌을 받기도 했는데요, 엎드려뻗쳐 자세로 매를 맞던 중, 선생님은 작가님 앞에서 매를 멈추고 뜻밖의 말을 건넸습니다.
선생님은 “전대진, 너는 이미 사람이 됐어”라며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했는데요, 공부를 못해서 혼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본분인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를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오히려 자존심이 상했고, 밥 먹을 자격조차 없다는 생각에 급식 당번을 자처했습니다. 급식 당번을 하면 점심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기에, 그는 점심과 저녁 급식을 모두 챙겨 먹으며 힘든 시기를 버텼습니다. 자존감은 더욱 낮아졌고, 하나님께 울부짖을 힘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예배당에 홀로 남아 하염없이 울거나 찬송가를 듣는 것이 전부였는데요,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작가님은 극심한 자존감 하락과 함께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교회에서는 “너는 하나님의 손이 지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축복했지만, 작가님은 자신을 “하나님이 실수로 만든 불량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나 같은 걸 태어나게 하셔서 하나님도 욕먹고, 어머니도 힘들게 하실까” 자책하며 겨울 바다를 찾았고, 그곳에서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때 작가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찬송가 “내 이름 아시죠”였습니다.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바라볼 때 그가 들으시죠”라는 가사를 수없이 반복하며 들었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싶은데, 이런 나도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그때 문득 이용규 선교사의 저서 “내려놓음”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쓰고자 하시면, 그가 한 번도 겪지 못한 환경으로 그를 몰아 가신다.” 그 구절은 작가님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었고, 하나님께서 겪게 하시는 모든 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작가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버텼습니다.
군 제대 후, 작가님은 재수를 결심하고 다시 한번 입시에 도전했지만, 또다시 실패를 맛봐야 했습니다. 매일 카페 구석에서 하루 8시간씩 공부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그는 또다시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10대 때 극복하지 못했던 학력 콤플렉스가 다시 고개를 들었고, 군대에서 얻었던 자신감마저 꺾여 버렸습니다. “나는 역시 안 되는구나” 자책하며 유서를 쓰기도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는데요,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그때 이모의 권유로 교회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캠프에서 만난 지금의 담임 목사님(고광일 목사)을 통해 성령 하나님을 뜨겁게 체험하고,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캠프 둘째 날 밤, 꿈속에서 강사 목사님이 예수님으로 변하여 설교하는 것을 보았고, 예수님이 자신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무대 위에서 간증을 하고 있었는데요, “여러분, 제가 몇 년 전에 이곳에 여러분과 똑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자리에 왔는데, 하나님을 만나주셨고, 인생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제가 되는 것을 보니 여러분도 가능합니다!”라고 외치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은 2015년에 꾸었지만, 실제로 그 꿈이 현실이 된 것은 3년 후인 2018년 7월이었습니다.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간증을 하게 된 것인데요, 무대에 섰을 때 하나님은 꿈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셨고, 그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SNS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했고, 고민 상담을 통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자신의 간증을 듣고 연락해 온 한 학생이었는데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기초생활수급 가정에서 자란 그 학생은 작가님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언젠가 자신도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지만, 입시 원서 접수 비용 3만 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당시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그 학생의 안타까운 사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꿈을 꿀 자격이 있나요?” 학생의 질문은 작가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그 질문은 과거 작가가 겨울 바다에서 하나님께 했던 질문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예전의 자신을 보는 듯했고, 그 학생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지만, 당장 도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교회 새벽 기도에 가서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위해, 영혼들을 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혼들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다음 날, 작가를 부당하게 해고했던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하루만 일해달라는 요청이었고, 작가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하루 일당 5만 원을 받았고, 그 돈을 고스란히 그 학생에게 전달했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학생에게 돈을 전달했을 때, 작가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큰 기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때의 경험은 작가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작가는 자기 계발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웨이터 아르바이트, 택배 상하차 등 궂은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 자기 계발 훈련을 받았습니다. 200만 원이 넘는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팁까지 아껴 모았고, 서울에서 진행되는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13시간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차비를 마련했습니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새벽 첫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2~3시간씩 쪽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강남 교육장에 갈 때는 24시간 카페를 찾았지만, 문을 닫아 양재역 화장실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기 계발에 힘썼던 작가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어린 시절의 고난이 오히려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는 에세이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과 “실컷 울고 나니 배고파졌어요”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특히 “네임 스토리”는 그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네임 스토리”는 고민 상담을 하던 중, 자신의 몸은 하나인데 매년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에서 한계를 느끼고 고안한 콘텐츠입니다. 익명의 고민 상담 요청이 쇄도하고, 새벽 3~4시에도 “작가님, 혹시 주무세요?” 묻는 메시지가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작가는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교회를 떠나 세상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해, 그는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여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네임 스토리”인데요, 사람들의 이름으로 글을 써주는 콘텐츠입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한 남학생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보육원 출신인 그 학생은 작가에게 연락할 때마다 “작가님, 제 이름 기억하시죠?”라고 물었고, 작가는 그의 이름(예: 용환)을 불러주며 당연히 기억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름 하나 불러주는 것이 누군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작가는 본격적으로 “네임 스토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네임 스토리”는 입소문을 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연예인 팬들의 주문이 쇄도했습니다. 처음에는 무료로 진행했지만, 점차 유료로 전환되었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손흥민 선수, 박효신, 조용필 등 유명 인사들의 팬들도 “네임 스토리”를 주문했고, 작가는 그들의 이름으로 감동적인 글을 써주었습니다. 방송에서는 특별히 즉석에서 출연진의 “네임 스토리”를 써주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서주영 MC와 박요한 MC의 이름으로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달하며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특히 박요한 MC의 “네임 스토리”는 그의 삶을 깊이 꿰뚫는 듯한 메시지로 큰 울림을 주었고,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제 이름으로 에세이 작가 전대진, 탁하고 모진 세상을 살며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삶 속에 일어나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맘을 품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감사만이 남았습니다. 당신의 삶을 들어 쓰시고 요청하고 구하지 않아도 모든 걸 채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결국은 합력하여 선으로 바꿔주셨으니깐요. 당신 오늘을 보면 다가올 내일이 더 기대가 됩니다. 너무도 짧은 한번뿐인 인생을 주를 위해 살겠다고 결단하여 씀이 하나님 시선이 머무는 곳에 걸음을 움직이고 그곳에서 그 사랑을 노래하는 당신의 삶을 축복합니다. 이어 4점 라 하니 거야 제약 괴물 숫자가 물어봐요.” 진심이 담긴 “네임 스토리”는 듣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감동을 선사하며, 작가의 따뜻한 마음과 섬세한 감성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전대진 작가는 “네임 스토리”를 쓸 때,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습니다. 의뢰인의 이름과 사연을 접하면 새벽마다 기도하며 그 사람을 위한 메시지를 구하고, 틈틈이 간증 영상을 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합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떠오르는 영감을 글로 풀어내고, 진심을 담아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네임 스토리”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작가의 기도와 영혼을 향한 사랑이 담긴 특별한 콘텐츠인 것입니다. 작가는 “주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오랜 연단의 시간을 통해 배웠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주께서 날 일으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다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고난의 시간은 오히려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은혜를 더욱 깊이 경험하는 축복이었으며, 이제는 감사합니다. 오랜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인도하며 저를 훈련시키신 하나님 아버지, 이제는 제가 받은 그 큰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 하나님의 가슴을 시원케 해드리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필요로 하신 곳에 내가 서 있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시를 쓰던 다윗처럼 이 시대의 시편을 써내려 가길 원합니다.” 라며 간증했습니다.
방송 말미에 작가는 고난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며 마무리했는데요, “고난은 간증의 재료”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고난의 긍정적인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별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듯이, 고난은 인생을 빛나게 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부르셨고, 그 빛을 내기 위해서는 고난이라는 어둠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난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간증의 재료를 만드는 시간이며,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더욱 빛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습니다. 함께 출연한 우울증 씨 또한 전대진 작가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는데요, 세상적인 성공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 또한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대단하다는 말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전대진 작가님, 진짜 고맙다. 사랑한다, 아들아” 라는 영상 편지를 통해 감동을 더하며 방송을 마무리했습니다. 전대진 작가의 이야기는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역경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용기를 선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