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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소년 현실판 서상복 목사 감동 성장스토리와 상담 이야기

요약

## 늑대소년에서 상담 대가로! 웃음과 눈물의 서상복 목사 감동 인생썰

웃음과 눈물, 감동으로 물든 인생 이야기: 가수 선미 선생님, 서상복 목사의 파란만장 성장 스토리

오늘 여러분께서는 특별한 감동과 울림을 선사할 한 편의 인생 드라마를 만나보시게 될 텐데요. 바로 가수 선미 씨의 은사이자, 수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안겨준 서상복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해피가정사역연구소 소장이신 서상복 목사님은, 단순히 유명 가수의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지금부터, 서상복 목사님의 파란만장했던 어린 시절부터, 교사, 상담가,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삶까지, 그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늑대소년, 현실이 되다: 야생에서 늑대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

서상복 목사님의 어린 시절은 마치 영화 "늑대소년"의 현실판과 같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무려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늑대와 함께 산에서 뛰어놀며 성장했다고 합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산골, 첫 이웃집까지 88km나 떨어져 있는 외딴 곳에서 그는 늑대들을 친구 삼아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당시 늑대가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에 서 목사님은 솔직하게 "무서웠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어린 서 목사에게는 늑대가 늑대인지, 자신은 사람인지 제대로 인지조차 못했다고 합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어린 서 목사와, 사람을 처음 본 늑대들은 서로를 그저 "닮은 존재"로 여기며 함께 지냈던 것입니다. 버려진 듯 외로웠던 소년과 야생 늑대, 그들의 특별한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서 목사님은 왜 그토록 깊은 산골에서 늑대와 함께 살게 된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그의 가정사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한센병을 앓고 계셨고, 아버지는 일찍 가출하셨습니다. 보통 청소년기에 가출을 한다고 하지만, 서 목사님은 가출 시기를 놓치고 아버지에게 먼저 버려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결국 그는 한센병으로 격리된 할아버지와 함께 깊은 산골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인적 드문 산 속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늑대가 내려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외톨이였던 어린 서 목사에게 늑대는 유일한 친구이자, 놀이 상대였던 셈입니다. 늑대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먹을 것을 나눠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늑대들과 특별한 소통을 했던 것입니다.

최근 영화 "늑대소년"을 보면서 서 목사님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고 합니다. 영화 속 늑대소년과 자신의 어린 시절이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외로움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갔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다고 합니다. 영화관에서 늑대소년을 보며 혼자 엎드려 펑펑 울었다는 서 목사님의 고백은, 그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고립된 생활 속 피어난 학교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려

깊은 산골, 늑대들과 함께하는 생활은 서 목사님에게 외로움과 고립감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학교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심어주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먼 길을 걸어 학교에 갈 때면,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배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일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어린 서 목사를 학교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입학 통지서도 받지 못한 채 무작정 학교를 찾아갔지만, 선생님은 서 목사님에게 "말을 할 줄 모르니 1년 후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서 목사님은 초등학교 1학년을 '재수'하게 되었습니다. 말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던 어린 서 목사에게 학교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과 같았습니다. 학교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산길을 두 개나 넘어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농사일과 할아버지 간호까지 해야 했던 서 목사님에게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서 목사님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선생님들은 놀라운 결정을 내립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회의를 통해 서 목사님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기로 합니다. 학교에 나올 수 있는 날을 '결석' 처리하지 않고, 소풍이나 운동회처럼 학교 행사가 있는 날을 '출석'으로 인정해 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지게에 건빵 한 가마니를 지고 서 목사님의 산골 집을 방문했습니다. "상보가, 이거 먹고 힘내라"는 따뜻한 격려와 함께 건빵을 마당에 내려놓고 가셨습니다. 결석 처리를 하지 않고, 건빵을 챙겨주셨던 선생님들의 따뜻한 마음은 어린 서 목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땠을까요? 뜻밖에도 서 목사님은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고 합니다. 산골 집에는 또래 친구가 없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9km나 떨어진 마을로 '출장'을 갔습니다. 마을에는 아이들이 많았고, 서 목사님은 그곳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했습니다. 운동도 잘하고, 덩치도 컸던 서 목사님은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 속에서 그는 또래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아나갔습니다. 외롭고 고립된 산골 생활 속에서도, 서 목사님은 긍정적인 마음과 밝은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했던 것입니다.

따뜻한 할아버지의 사랑과 가르침: 척박한 환경 속 피어난 꿈

서상복 목사님의 어린 시절,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그가 긍정적인 마음과 밝은 성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과 가르침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센병으로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였지만, 서 목사님에게는 따뜻한 아버지이자, 든든한 스승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평생 단 한 번도 서 목사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늘 따뜻한 미소와 격려로 서 목사님을 대해주셨고, 천자문을 가르치며 학문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셨습니다.

"상보가, 이 할아버지 냄새나고 더럽지 않냐?"는 서 목사님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더럽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한센병으로 손과 발이 썩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서 목사님은 할아버지의 썩는 냄새가 "더럽지 않았다"고 회상하며, "그때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은혜를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서 목사님은 할아버지의 곁에서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낫이나 농기구를 할아버지 팔에 묶어드리고 함께 밭을 일구며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서 목사님은 농사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산에 나무를 베어 밭을 만들고, 농작물을 심고 가꾸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땀 흘리며 일하는 과정 속에서 그는 삶의 지혜와 긍정적인 마음을 배웠습니다.

할아버지는 서 목사님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며 학문의 즐거움을 알려주셨습니다. 한글을 배우기도 전에 천자문을 먼저 깨우친 서 목사님은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였습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서 목사님은 학문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배움의 기쁨을 알아갔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할아버지의 사랑과 가르침은 서 목사님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서 목사님은 할아버지와 이별하게 됩니다. 친아버지가 나타나 서 목사님을 데리고 강원도 탄광 지역으로 떠나면서, 할아버지는 안동의 한센인 정착촌으로 옮겨가게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헤어지던 날, 서 목사님은 슬픔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오히려 손자를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서 목사님은 안동 정착촌을 방문하여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만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손자 자랑을 하셨습니다. 중학생 손자가 찬양 인도와 설교를 하는 모습은 마을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상보가,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 할아버지 외롭지 않아. 네가 전한 예수를 믿고 새벽기도를 네 시간씩 한다. 새벽기도 끝나면 정신 먹고, 새벽기도 네 시간 중에 거의 세 시간은 너를 위해 기도한다. 할아버지 걱정하지 말고 잘 가라." 할아버지의 따뜻한 격려와 사랑은 서 목사님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서 목사님은 할아버지를 돌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할아버지에게 돌봄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할아버지는 나라에서 나오는 돈과, 서 목사님이 신문 배달로 번 돈을 모아 학용품과 참고서를 사주셨습니다.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말고, 이건 너 다 해라. 할아버지는 쓸 일도 없고, 네가 잘 되면 좋겠다."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서 목사님은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고,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상보가, 힘내라. 내가 너의 신랑이야. 그리고 너의 아빠야."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은 서 목사님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예수님은 할아버지를 통해 손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을 주셨던 것입니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과 밝은 성격을 잃지 않았던 서 목사님은, 할아버지의 사랑과 가르침 속에서 따뜻한 마음과 섬김의 자세를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라면땅, 그리고 눈물의 첫 찬양: 어린 시절 경험한 특별한 믿음

서상복 목사님의 삶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은 바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도 그는 마음속에 '분명히 신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며,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겨날 수는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마을로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교회를 방문하게 되면서 서 목사님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동네 할머니가 '라면땅 줄게'라며 교회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라면땅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교회에 간 서 목사님은 생애 처음으로 찬양을 듣게 됩니다. "울어도 못하네, 죄를 씻지 못하니..." 찬양 가사는 어린 서 목사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죄를 씻을 수도 없고, 힘써 노력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가사는, 어린 서 목사에게 깊은 슬픔과 절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때, 찬양의 후렴구가 서 목사님의 마음속에 빛처럼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예수, 예수, 오직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 죄를 씻어 주시네."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죄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어린 서 목사에게 강렬한 충격과 위로를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그날, 서 목사님은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믿음을 갖게 된 후, 서 목사님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면서 믿음이 점점 자라났습니다. 산골 집으로 돌아와서는 할아버지에게 교회에서 들은 설교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할아버지, 앉아보세요. 제가 설교해 드릴게요." 어린 손자의 서툰 설교였지만, 할아버지는 귀 기울여 들어주셨습니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가장 복되도다..." 찬양을 함께 부르고, 말씀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할아버지의 마음에도 서서히 믿음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서 목사님이 믿음을 갖게 된 지 1년 후, 할아버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손자가 전해주는 복음 말씀을 통해 할아버지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스스로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상보가,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 네가 전해준 예수님을 믿고 새벽기도를 네 시간씩 한다. 새벽기도 시간에 너를 위해 기도한다." 손자가 전해준 복음으로 할아버지는 구원을 얻었고, 손자를 위해 기도하는 헌신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산골 오두막에서 드려진 손자와 할아버지의 예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배였습니다. 늑대가 내려오는 깊은 산골,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에서 손자와 할아버지는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믿음은 서 목사님의 삶의 방향을 결정했고, 그를 목회자의 길로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귀환, 그리고 시작된 고통의 시간: 폭력과 상처 속에서 피어난 긍휼의 마음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서상복 목사님의 삶에 또 다른 폭풍이 몰아칩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났던 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 산골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6학년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아버지는 산길을 오르며 "상보가"를 외쳤습니다. 그렇게 재회한 아버지는 서 목사님에게 충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중학교는 돈이 많이 든다. 내가 너를 데리고 탄광에서 일해서 학비를 대주마."

강원도 탄광 지역, 막장 인생의 대명사로 불리는 곳에서 서 목사님은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탄광 막장에서 일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갱도를 뚫고, 석탄을 캐내는 과정에서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탄광 노동자들은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술에 취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서 목사님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서 목사님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팔자야, 나는 죽어야 돼."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괴로워했습니다. 한센병 환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학대받았던 어린 시절의 상처는 아버지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과 닮은 아들을 보며 더욱 고통스러워했고, 그 고통을 폭력으로 표출했던 것입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아버지의 폭력이 이어졌습니다. 폭력의 80%는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다녀오면 아버지는 칼을 들고 서 목사님을 위협했습니다. 칼로 손목을 긋고, 식칼로 머리를 찍는 등 끔찍한 폭력이 계속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서 목사님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보다는 긍휼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고 5분만 지나면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은 여전히 고통스러웠지만, 그 속에서 아버지의 상처와 아픔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술에 취해 흐느끼는 아버지는 네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여겨졌습니다. "내가 네 살짜리 아버지를 돌봐야지." 서 목사님은 아버지의 이불을 덮어주고, 잠든 아버지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폭력에 지쳐 집을 나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치듯 집을 나갔고, 서 목사님은 아버지와 단 둘이 남겨졌습니다. 어머니는 공식적으로 서 목사님을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더욱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누나들은 이미 어린 나이에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고 있었고, 남동생들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잠자는 척을 하거나,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폭력에 맞서 싸우거나, 회피했지만 서 목사님은 묵묵히 아버지의 곁을 지켰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은 점점 심해져 어머니에게 쥐약을 먹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쥐약을 먹으라고 강요했고, 어머니는 격분하여 쥐약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두 번은 아버지가 쥐약을 먹었고, 두 번은 어머니가 쥐약을 먹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서 목사님은 어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위세척을 해야 했습니다. 아들로서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서 목사님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잠든 사이 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손목과 머리에 칼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에 실려 갔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자신의 피 위에 쓰러져 잠들어 있었습니다. 끔찍한 상황 속에서 서 목사님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이 아버지를 안고 계신 듯한 환상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 어떻게 저런 아버지를 사랑하실 수 있습니까?" 서 목사님의 질문에 예수님은 "너도 죽을 죄인이지만, 내가 너를 사랑한다. 오늘 밤에는 네 아비를 사랑한다. 네가 나를 사랑하거든, 내가 사랑하는 네 아비를 용서하고 사랑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서 목사님은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이 불쌍한 영혼을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중학생 아들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서 목사님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고 용서와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그 순간, 서 목사님의 마음속에 긍휼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용서는 쉽지 않았지만, 서 목사님은 새벽기도와 성경 읽기를 통해 믿음을 굳건히 지켜나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6년 동안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드렸습니다. 한문 성경, 한글 성경, 영어 성경을 1년에 한 번씩 통독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고,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폭력과 상처로 가득했던 시간 속에서, 서 목사님은 긍휼의 마음과 섬김의 자세를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웅변학원과 속독학원: 역경을 발판 삼아 성장한 학창 시절

탄광 지역에서의 힘든 생활 속에서도 서상복 목사님은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중학교 입학 당시 꼴찌였던 그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은혜를 받으면서 학업 능력이 향상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상위 10% 안에 들기 시작했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교 1, 2등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서 목사님의 학업 성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학원 원장들은 서 목사님을 '두목'처럼 여겨 무료로 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웅변학원과 속독학원은 서 목사님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웅변학원을 통해 발음 교정과 스피치 능력을 키웠습니다. 속독학원을 통해서는 책을 세 배나 빨리 읽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웅변 대회에 참가하여 전국 대회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연사 외칩니다!" 웅변 대회에서 외쳤던 우렁찬 목소리는 늑대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 폭력에 시달렸던 학창 시절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서 목사님의 힘찬 외침과 같았습니다. 웅변학원은 서 목사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웅변 내용 중에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특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는 서 목사님에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억지로 외워야 했던 반공 웅변은 서 목사님에게 진정한 웅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속독 능력은 성경을 깊이 묵상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성경을 빨리 읽을 뿐만 아니라, 깊이 묵상하고 은혜를 받는 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그는 지혜와 통찰력을 얻었고,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웅변학원과 속독학원은 서 목사님을 역경을 딛고 일어선 '준비된 인재'로 성장시키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와 안아주기 당번: 교회 공동체의 따뜻한 사랑

탄광 지역 교회는 서상복 목사님에게 또 다른 안식처이자,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매일 새벽,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를 드리고, 전도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며 영적인 위로를 받았습니다. 특히 전도사님과 교인들의 '안아주기'는 서 목사님에게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탄광 지역 교회에 처음 나간 날, 전도사님은 서 목사님을 안아주며 기도해주셨습니다. "상보가, 하나님이 너를 위해 기도해 주란다. 너 안고 기도해 줘도 될까?" 낯선 전도사님의 따뜻한 품에 안겨 서 목사님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사람에게 처음 안겨본 따뜻함, 예수님의 품과 같은 따뜻함은 서 목사님의 닫힌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 후, 교회는 '안아주기 당번'을 정해 매일 새벽기도 시간에 서 목사님을 안아주고 기도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도사님, 장로님, 권사님들이 돌아가며 서 목사님을 안아주고 기도해주었습니다. 교인들의 따뜻한 사랑과 기도는 서 목사님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고,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6년 동안 이어진 '안아주기'는 서 목사님에게 불행하다는 느낌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늘 밝고 명랑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 공동체의 따뜻한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서 목사님의 어두운 과거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너는 우리 중에 제일 행복해 보였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사랑은 서 목사님에게 큰 힘이 되었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었습니다. 목회자의 꿈을 꾸게 된 것도 교회 공동체의 사랑을 경험하면서부터였습니다. '안아주기'를 통해 경험한 따뜻한 사랑은 서 목사님을 상담가, 가정 사역자, 그리고 목회자의 길로 이끄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교사 시절: 건빵 대신 짜장면, 똥침 사건과 천국의 아이들

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된 서상복 목사님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었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건빵 한 가마니를 지고 산골 집을 찾아왔던 선생님들처럼, 서 목사님도 학생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쏟았습니다.

건빵 대신 짜장면을 선택했습니다. 제자 60명을 집으로 초대해 짜장면 파티를 열었습니다. 택시 여러 대에 짜장면 배달부가 면을 싣고 아파트 단지로 몰려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짜장면 파티는 학생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물했고, 서 목사님과 제자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학생이 서 목사님에게 '똥침'을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에 교실은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서 목사님은 화를 내는 대신, 학생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을 읽었습니다. "한 번 더 해 줄래?" 서 목사님의 너그러운 반응에 학생은 안도했고, 교실 분위기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똥침 사건 이후, 교실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학생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선생님이 예수님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장애 학생을 차별하고 미워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고 회개하는 분위기가 교실에 가득 찼습니다. 그 해, 반 학생 80%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실은 '천국'으로 변했고, 서 목사님은 제자들과 함께 '천국의 아이들'이라는 문집을 발간했습니다.

ADHD 학생 치료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꺼려하는 ADHD 학생들을 자원해서 맡았습니다. 사회성이 좋은 학생과 짝을 맺어주고, 1시간에 한 번씩 칭찬하는 치료법을 개발했습니다. 칭찬은 ADHD 학생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세 달 만에 ADHD 학생들은 완치되었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위해서는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시베리아 벌판처럼 차가운 마음을 가진 학생들을 데리고 따뜻한 옹기가 있는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함께 탕에 몸을 담그고,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떡볶이를 사주고, 등을 밀어주며 따뜻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목욕탕에서 마음을 열고 소통한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게 되었고,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습니다.

원더걸스 선미, 그리고 고도비만 제자 다영이: 사랑으로 빚어낸 기적

서상복 목사님의 제자 중에는 유명 가수 선미 씨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선미 씨는 당시 정교 회장을 할 정도로 똑똑하고 야무진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전신마비 장애를 앓고 계셨고, 어머니는 가출한 상태였습니다. 소녀 가장처럼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선미 씨에게 서 목사님은 든든한 후원자이자, 따뜻한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정교 회장 선거 운동을 도왔고, 박진영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주었습니다. 계약서를 대신 써주고, 교회로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선미 씨는 서 목사님의 도움과 격려 덕분에 원더걸스 멤버로 데뷔하여 성공적인 가수가 되었습니다.

원더걸스 데뷔 후, 선미 씨에게서 메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아빠"라는 짧은 제목의 메일에는 "선생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서 목사님은 메일을 읽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자가 잘 자라줘서 고마웠고,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도비만으로 말수가 적었던 제자 다영이에게는 투포환 선수를 제안했습니다. 운동을 통해 건강을 되찾고 자신감을 얻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투포환 기술을 가르쳐주고, 매일 아침 함께 연습했습니다. 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후 살도 빼고 밝은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다영이에게 쓴 시는 서 목사님의 교육 철학을 보여줍니다. "다영아, 너는 너의 슬픔과 괴로움을 다 투포환에 던졌을 거야. 이제 네 가슴에는 슬픔도 어둠도 없을 거야. 이제 너는 충분히 희망을 던지고 살 수 있을 거야." 서 목사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참된 스승이었습니다.

상담가, 그리고 가정 사역자: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한 헌신

28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서상복 목사님은 상담가이자 가정 사역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랜 교직 생활을 통해 수많은 학생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해왔습니다. 이제는 가정과 개인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최근 상담 사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혼 상담'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혼 상담 문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들의 70%는 관계를 개선하고 가정을 지키는 데 성공합니다. 나머지 30%는 이혼을 선택하지만, 상처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혼 상담을 통해 서 목사님은 남녀의 차이를 발견합니다. 남편의 잘못으로 이혼 위기에 처한 경우가 많지만, 아내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총각 때부터 시원찮았던 남편을 왜 좋다고 착각하고 선택했느냐"며 여성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넵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모나 조건보다 인격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보는 기준으로 '밝은 여자'를 꼽습니다. 밝은 여자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남편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줍니다. 여자가 밝기 위해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았던 딸은 밝고 긍정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황혼 이혼이 증가하는 추세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50대, 60대 황혼 이혼은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 이제 그만해. 엄마 인생 살아." 자녀들의 격려에 힘입어 이혼을 결심하지만, 노년의 이혼은 남성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특히 은퇴 후, 사회적 역할과 존재감을 잃은 남성들은 이혼 후 극심한 외로움과 절망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살 상담 역시 중요한 상담 분야입니다. 이혼, 부도, 사업 실패 등 다양한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자는 주로 사업 실패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거나 배신당했을 때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담을 통해 자살 위기에 놓인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아주고 있습니다.

서상복 목사님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늑대와 함께 했던 경험, 폭력과 가난 속에서 자랐던 경험은 오히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었습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한 그의 헌신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할아버지와의 약속, 그리고 영원한 소망

서상복 목사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또 한 사람, 바로 할아버지입니다. 한센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손자에게 따뜻한 사랑과 가르침을 베풀어주었던 할아버지는 서 목사님의 삶의 멘토이자, 영적인 지주였습니다.

99세의 나이로 소록도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임종을 앞두고 서 목사님에게 특별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상보가, 할아버지 죽거든 천국에서 만나보자. 이 찬양 불러주고, 잔치를 해라. 장례식 하지 말고."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서 목사님은 소록도에서 화장 예배를 드렸습니다. 화장터에서 울려 퍼진 찬양 "천국에서 만나보자"는 슬픔 속에서도 천국 소망을 품게 했습니다.

화장 예배에는 150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손발이 잘려나간 몸으로 박수를 치며 찬양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는 모습 속에서 천국 소망을 발견했습니다. "천국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찬양 소리는 화장터를 가득 채웠고,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화장 예배에 함께 했던 아버지는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물은 흐르지 않았습니다. 오랜 상처와 아픔은 아버지의 감정 표현 능력마저 앗아간 듯했습니다. "아버지, 울어요." 서 목사님의 말에 아버지는 "나도 울고 싶다. 하지만 눈물이 안 난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고백은 서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희망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서 목사님은 소록도를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늘 그의 마음속에 살아있습니다. 손목 없는 팔로 흔드시던 할아버지의 모습, "상보가, 할아버지 외롭지 않아"라는 따뜻한 음성은 여전히 그의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의 약속,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은 서 목사님에게 영원한 위로이자, 삶의 원동력입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서상복 목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찬양 가사처럼, 그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가는 삶을 추구합니다.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과 긍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그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서상복 목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삶의 의미를 되묻습니다. 당신의 삶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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