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 출신 김성민 대표, 브라더스키퍼 창업 감동 간증 정리
눈물의 고아원에서 희망의 형제지킴이로
"주님, 내가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까?"ㅣ김성민 대표ㅣ이영경 수어통역사ㅣ새롭게 하소서 상세 내용 정리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 하소서"에 게시된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의 간증 영상 "[주님, 내가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까?]"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여, 독자분들에게 김 대표의 삶과 핵심 메시지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2만 자 내외의 분량으로, 영상 내용을 꼼꼼하게 짚어 핵심 내용과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담아내겠습니다. 특히, 김 대표의 어린 시절 고아원 생활의 어려움,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삶, 그리고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키퍼 설립까지, 그의 인생 여정을 상세히 따라가며 깊은 감동과 교훈을 얻으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단순 내용 정리에 집중하여, 영상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최대한 충실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김성민 대표의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의 성장 과정과 상처
김성민 대표는 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안동 초등학교 앞에서 발견되어 안동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습니다. 정확한 생년월일조차 알 수 없었던 그는, 보육원에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고 그곳에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80여 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보육원 환경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3명의 선생님만이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에,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기 어려웠고, 형들로부터 겪는 폭력과 억압 속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보육원에서의 생활은 김 대표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친구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학교에 오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김 대표는 혼자였고, 의지할 가족이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물건이 없어지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존재였고,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부모로부터 "고아와 놀지 말라"는 차가운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김 대표에게 고아, 보육원 출신이라는 단어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각인되게 만들었습니다.
가정 환경에 대한 그리움과 부모에 대한 원망은 김 대표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매일 배고픔과 폭력에 시달리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님을 원망했고, 심지어 칼을 들고 다니며 복수를 꿈꿀 정도로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버려졌을까?" 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고,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신앙과의 만남: 어둠 속에서 찾은 빛, 그리고 새로운 변화
어린 시절, 김성민 대표는 교회를 다녔지만, 진정한 믿음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선생님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들어주신다고 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매 맞고 굶주리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원망만 커져갔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나를 이렇게 버려두시는 걸까?" 라는 의문은 그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육원에 수련회를 온 청년들을 통해 김 대표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보다 먼저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해주었고, 김 대표가 어떤 모습이든 인내심을 가지고 대해주었습니다. 칭찬과 격려는커녕 매 맞고 혼나는 일상에 익숙했던 김 대표에게, 청년들의 사랑과 관심은 매우 낯설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청년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면서, 김 대표는 자신도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예배 도중,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김 대표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설교했지만, 김 대표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학대하는 형들과 폭력을 방관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부모님이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시간, 자신이 동생들을 괴롭히고 친구들을 때렸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자신 또한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를 깨닫는 순간, 김 대표는 수치심과 슬픔, 후회 등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백을 통해 마음은 놀랍도록 편안해졌고, 하나님을 만났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린 시절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응답받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왜 그때는 제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으셨나요?"
김 대표의 질문에,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기도 중 눈을 뜬 김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은 형, 누나, 동생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네가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가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겠느냐" 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함을 느꼈지만, 곧이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고아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음을 깨닫고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김 대표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분노와 원망 대신 감사함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고아라는 단어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닌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형들을 찾아가 화해하고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냈고,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갑자기 변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고아였고,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절망 대신 희망을 품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퇴소 후 시련과 방황: 노숙 생활과 다시 찾아온 절망
고등학교 졸업 후, 김성민 대표는 보육원을 퇴소해야 했습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자립해야 했기에, 막막함과 두려움이 컸습니다. 퇴소한 선배들의 어려운 삶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밖에 없을까?" 라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5만 원을 들고 서울로 향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지내면서, 김 대표는 퇴소한 선배들의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노숙 생활은 김 대표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어둠의 유혹이 끊임없이 다가왔지만, 김 대표는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부정한 일은 하지 않겠다" 며 굳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하나님께 순결 서약했던 것을 기억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앙과 순결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신앙은 김 대표가 절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노숙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김 대표는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관광객 대상 식당에서 아침부터 새벽까지 쉴 새 없이 일했지만, 일하는 기쁨과 칭찬, 보상을 통해 행복을 느꼈습니다. 보육원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긍정적인 감정들은 김 대표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만난 권사님들의 전도를 통해 김 대표는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게 됩니다. 얼떨결에 사랑의 교회에 가게 된 김 대표는,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첫 만남 때 느꼈던 감동과 평안이 다시 밀려왔고, 무너졌던 신앙을 회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습니다. 고시원에 거처를 정하고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 등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신앙생활에 전념했습니다.
브라더스키퍼 설립: 형제를 지키는 자의 사명
교회에 다니면서 김성민 대표는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했습니다. 기도와 큐티를 통해 "네 아우들의 곤고함을 돌아보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고, 보육원 동생들을 돕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없는 자신에게 형제, 자매를 돌보라는 말씀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사회복지선교학과에 입학한 김 대표는, 대학 MT에서 자신이 보육원 출신임을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기 위한 용기였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김 대표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처를 숨기기보다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김 대표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이라는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아내는 김 대표의 과거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장모님 또한 김 대표를 친아들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고아라는 편견 없이 진심으로 대해주는 가족을 통해, 김 대표는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김 대표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키퍼를 설립합니다. 브라더스키퍼는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기업으로, 벽면녹화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하고 정서적 안정을 지원합니다. 벽면녹화 사업은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도 기여하는 친환경 사업으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의미 있는 사업입니다.
브라더스키퍼 직원 채용 조건은 보육원 퇴소 청소년입니다. 같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친구들이 함께 일하며 서로 의지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브라더스키퍼의 핵심 가치입니다. 김 대표는 보육원에서의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하고, 동생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따뜻한 공동체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브라더스키퍼 설립 초기, 김 대표는 재정적인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굳게 믿고,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이끌어왔습니다. 교회 집사님의 후원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 속에 브라더스키퍼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성장해나가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브라더스키퍼를 통해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에게 단순한 일자리를 넘어, 삶의 희망과 자립의 의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더 이상 고아, 보육원 출신이라는 꼬리표에 갇히지 않고, 당당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김 대표의 진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나눔과 섬김의 삶: 명절, 결혼식,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
김성민 대표는 결혼 후, 명절이면 보육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명절은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기 어려운 고아들에게 더욱 외로운 시간입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명절에 홀로 남겨진 친구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고 사랑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명으로 시작했던 명절 초대는, 점점 늘어나 이제는 펜션을 빌려 함께 명절을 보낼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김 대표의 결혼식 또한 특별했습니다. 초등학교 체육관을 빌려 보육원 친구들을 초대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식은 단순히 개인의 행복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보육원 친구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신혼여행조차 미루고 결혼식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것은, 보육원 친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브라더스키퍼 설립 후 6년 차, 김 대표는 번아웃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 속에서 지치고 힘들었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멀리하고 연락을 끊기도 했지만, 교회 설교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라는 하나님의 질문은, "나는 내 아우들을 지키는 자입니다" 라는 응답으로 이어졌고, 브라더스키퍼를 통해 형제들을 계속해서 돌보고 섬기겠다는 다짐을 굳건히 하게 되었습니다.
김성민 대표는 앞으로도 브라더스키퍼를 통해 보육원 퇴소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고,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고, 고아 또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주님, 내가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까?" 라는 질문에 "예, 주님. 제가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김성민 대표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김성민 대표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닌,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감동적인 여정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돌보고 섬기는 삶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너는 네 형제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김 대표는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랑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의 간증 내용을 상세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김 대표의 삶과 메시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김 대표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큰 용기와 격려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성민 대표와 브라더스키퍼의 앞날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