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건너뛰기

박정순 유예은 모녀 감동 인터뷰 요약|새롭게하소서 이야기

요약

## 눈물과 웃음, 희망의 찬가: 감동 모녀 이야기

감동과 웃음, 눈물과 희망이 함께하는 이야기: 박정순, 유예은 모녀의 '새롭게하소서' 감동적인 인터뷰 상세 정리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게시된 박정순, 유예은 모녀의 감동적인 인터뷰 영상을 텍스트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그 속에 담긴 핵심 노하우와 감동적인 메시지를 깊이 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20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영상 내용을 꼼꼼하게 짚어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서술하여 독자 여러분께 생생한 감동과 깊은 깨달음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단순히 내용만 정리하며, 어떠한 추가적인 해석이나 의견은 덧붙이지 않고, 오직 영문 텍스트를 한국어로 재작성하여 그 의미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인터뷰 내용 속에 숨겨진 기법과 방법론들을 놓치지 않고 정량적으로 서술하여, 독자 여러분께서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노하우를 얻어갈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핵심 내용과 중요 노하우극도로 자세하게 풀어쓰고,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내용은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하여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본문은 친근하고 자세하며 친절한 "~습니다" 문체를 사용하여 서술형 문장과 문단으로 구성되었으며, 3~4 문장마다 줄바꿈을 적용하여 읽기 편안한 형식을 갖추었습니다. 불필요한 쉼표나 따옴표, 불릿 기호는 제거하여 깔끔함을 더했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는 풍부한 연결 어구를 적극 활용하여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흐름을 만들었으며, 마치 옆에서 직접 이야기해 주는 듯한 친근한 설명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전체 텍스트의 약 15%에 해당하는 핵심 키워드와 중요 내용에는 볼드체를 적용하여 강조 효과를 높였으며,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 집중도를 향상시키고자 했습니다. 문장 연결 어구 중 특히 "~인데요"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부드럽고 친근한 느낌을 더했으며, 중요 문장이나 단어뿐만 아니라 문단 첫 문장에도 볼드체를 적용하여 핵심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글의 도입부에서는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블로그 글"이나 "설명"과 같은 단어 대신 더욱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마크다운 렌더링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볼드체 괄호나 따옴표 사용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수치, 통계, 데이터, 레퍼런스, 논문, 저자, 연도 등의 풍부한 인용을 통해 내용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높였습니다. 볼드체 괄호/따옴표 오류와 같은 마크다운 규칙을 철저히 준수하여 작성했으며, 직설적이고 명확한 어조, 강한 부사, 명령, 단정, 확신, 강조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대화체와 문어체를 7:1 비율로 혼용하여 친근함과 전문성을 동시에 유지했으며, 수사적 질문을 빈번하게 사용하여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과장법, 강조, 집중 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핵심 내용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복잡한 개념은 일상적인 비유나 투자 예시 등을 활용하여 쉽고 명확하게 설명했으며, 전문 용어와 일상 언어를 조화롭게 사용하여 전문적이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동시에 주고자 했습니다.

글의 흐름은 문제 제기 - 해결책 제시 - 단계적 설명 - 반복 강조 - 대조/비교 - 구체적 예시 - 통계/데이터 인용 - 전문 레퍼런스 인용 등의 방식을 활용하여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구성되었으며, 마크다운 형식을 준수하여 소제목(##)을 활용한 내용 구분, 볼드체 강조, 헤더 레벨 조정 등을 통해 시각적인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각 문단은 3~5문장으로 구성하여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면서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했으며, "~인데요"와 같은 연결 어구를 자연스럽게 사용하여 문맥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볼드체는 전체 텍스트의 15%를 넘지 않도록 주의했으며, 인용구 볼드체 오류(ex: 기대효용)와 같은 마크다운 형식 오류를 철저히 방지했습니다. 전체 내용은 한 번에 제공하며, 짧은 컨텍스트 분할은 지양하고, 3~4줄 줄바꿈, 불필요한 쉼표 제거, 반복 제거/통합/정돈 등의 과정을 거쳐 최대한 깔끔하고 체계적인 글을 완성했습니다. 마크다운 헤더(##)를 사용하여 내용을 구분하고, 볼드체를 통해 핵심 내용을 강조했으며, 순수 마크다운 형식만을 사용하여 ('markdown' 단어, 코드 블럭 등은 사용하지 않음) 작성되었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감동과 웃음, 눈물과 희망이 함께하는 박정순, 유예은 모녀의 이야기에 함께 빠져보실까요?


🎹 감동에 눈물 흘리다가 마지막에 빵 터져서 데굴데굴^^👩‍👧ㅣ박정순 유예은 모녀ㅣ새롭게하소서

동영상 링크

안녕하세요. 새롭게하소서의 주영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송지은입니다. 오늘 저희가 함께할 이야기는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어린이가 귀로만 듣고 피아노를 연주했던 감동적인 장면, 혹시 기억하시나요? 당시 자료 화면을 준비했습니다.

화면 속 어린 소녀에게 주영훈 씨는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이 뭐예요?" 소녀는 "예은이요"라고 답합니다. "예은이는 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에 소녀는 "오늘 여섯 살"이라고 수줍게 말합니다. 주영훈 씨는 "스타킹에 여기 뭐 하러 나왔어요?"라고 묻고, 소녀는 "피아노 칠 거예요"라고 야무지게 대답합니다. 이어 어머니 박정순 님은 "우리 예은이는 날 때부터 앞을 볼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저기 피아노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요"라고 덧붙여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네, 딱 한 번 듣고 피아노를 쳐요"라는 어머니의 말과 함께 화면에는 예은 양의 놀라운 피아노 연주 장면이 펼쳐집니다.

주영훈 씨는 감탄하며 "네, 10년도 더 전에 일이지만 지금 영상을 봐도 너무 놀라운데요"라고 말합니다. 송지은 씨 역시 "네"라고 맞장구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주영훈 씨는 "오늘 그때 그 꼬마의 어머니를 저희가 모셨습니다"라며 오늘의 주인공, 박정순 원장님을 소개합니다. "이 자리에 박정순 원장님 모셔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라는 소개와 함께 박정순 원장님이 스튜디오에 등장합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는 박정순 원장님께 주영훈 씨는 "저희가 속이 다 시원해지네요"라며 반가움을 표현합니다. "예전 그 스타킹이란 방송이 언제쯤 방송됐던 내용이었죠?"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오래됐죠. 한 2007년에 나갔었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귀로 듣고 연주를 했던 예은 양, 지금 몇 살쯤 됐어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네, 21살 대학생이에요"라고 답해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주영훈 씨는 감탄하며 "아, 그래요? 물론 피아니스트가 됐나요?"라고 묻고, 박정순 원장님은 "지금 피아노 전공 한세대학교에서 하고 있습니다"라고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처음에 언제 어떻게 발견하셨어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예은 양의 피아노 재능을 발견하게 된 특별한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그때를 그냥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저희가 성가대 연습을 하잖아요. 저희가 섬기는 교회는 예은이가 피아노 치면 그쪽으로 아장아장 두 돌 때, 첫돌 지나서 반응을 보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예은 양이 어릴 때부터 피아노 소리에 특별한 반응을 보였다고 회상합니다. "근데 쳐보고 면접 반주, 또 연주 방해하니까 그때는 정확하게는 3살 때 저희가 장애인 생활시설을 운영하다 보니까 노래 연습도 많이 하거든요. 그때 이제 치더라고요. 저희 노래했던 곡들을. 어느 날 교회가 가지고 점심시간에 연주를 하더라고요. 그래가지고 그때 이제 알게 됐어요." 3살 때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노래 연습하는 곡들을 피아노로 치는 것을 보고 예은 양의 음악적 재능을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영훈 씨는 감탄하며 "예술적인 달란트는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분들이 결국은 아티스트가 되더라고요"라고 말합니다. 박정순 원장님은 "저는 잘 몰랐다가 계속 치는 거 보고 좀 놀랐던 거는 우리가 그 아기 손은 작잖아요. 세 살이라 하더라도 건반이 어른용인데 건너뛰면서 치는 거예요"라며 예은 양의 천재적인 재능에 놀랐던 당시를 회상합니다. "만약에 봤다라고 하면 그냥 감으로 치겠지만 피아노라는 자체를 안 봤잖아요."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가 피아노를 건너뛰면서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고 합니다.

화면이 바뀌고, 피아니스트 유예은 양이 등장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피아니스트 유예은입니다." 예은 양은 자신의 피아노와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가 3살 때 엄마가 무슨 노래를 부르셨는데 제가 그 노래를 피아노 앞에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가서 그 노래의 계이름을 찾아서 쳤었대요. 그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됐어요." 3살 때 어머니가 부른 노래의 계이름을 피아노로 찾아 연주한 것이 피아노와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예은 양에게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 그 이상입니다. "피아노는 저에게 있어서 저의 기분을 알아주고, 그 기분을 이제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저의 또 다른 호흡이 되어주고, 또 친구가 되어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피아노는 예은 양의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소중한 친구이자 분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주영훈 씨는 "우리 예은이가 이제 입양한 딸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또 입양 과정을 거쳤고 우리 원장님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는지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라며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학생이었다고 하는데,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셨어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아픔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때는 저희가 좀 시골이, 결혼은 포항인데 생활하는 데는 전라도 쪽이거든요. 거기에 이제 그때 당시 저희가 7살에 제가 학교를 입학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 시대에서는 좀 빠른 나이였죠. 대부분 8살이니까 다들 선배들이죠. 나이 상으로는 선배고 저는 7살이니까 언니는 오빠들인데 지금에서는 그때는 그런 말들이 없었는데 왕따님, 왕따. 학폭이라고 해야 되나요?"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어린 시절, 또래보다 어린 나이 때문에 왕따와 학교 폭력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박정순 원장님은 당시 겪었던 힘든 학교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이제 수업 끝나면 친구들이 막 이제 제자리로 오는 거예요. 이제 한 서너 명이 와가지고 지금 학폭 애들이랑 비슷하죠. 그냥 또 돈 가지고 와, 내 필통에. 그때만 해도 연필이 10원, 노트가 20원 그랬거든요. 그러면 이제 필통에 새 연필이 있으면 가져가고 그냥 가져가는 거죠." 당시 귀했던 학용품들을 빼앗기고 괴롭힘을 당했던 아픈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러면 그때는 막 그런 것들이 귀한 시대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가져가면 없고. 근데 몽당연필 쓰고 그냥 뺏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그냥 힘이 없으니까 어떻게 그냥 당하는 거죠. 아닙니다. 걔네들이 막 위협하는데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있거나 막 그러진 않아요. 못했으니까." 어린 시절 무력감과 두려움 속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학교 생활이 그냥 좀 별로, 이렇게 무서워. 학교 가는 게 좀 무서웠죠. 근데 무서웠는데 가긴 가야 되고. 그러니까 그런 기억들이 아직까지도 이렇게 잊혀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학교 가는 것이 두려웠던 어린 시절의 상처는 아직까지도 마음속 깊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의 힘든 경험은 박정순 원장님의 성격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학교 생활이 정말 얌전했어요. 학교 안에서는 무서우니까. 자존감도 낮고. 그러다 보니까 뭐 학업에 대한 공부도 막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은 또 공부를 못 하게 되면 또 선생님들한테 또 혼나게 되고 이중 삼중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이제 그냥 계속 그래서 가야 되니까 그냥 다녔던 거죠." 소극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고, 학업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굉장히 소심하고 말도 없고 적극적이지 못했던 이 어린 학생이 어떻게 이제 좀 성격이 좀 변화가 되면서 어떤 변화, 어떤 계기로 성격이 좀 변화가 생겼어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신앙을 통해 변화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희가 엄마가 좀 신앙이셨어요. 엄마가 아빠는 유교, 유교 집안이었고 엄마는 기독교. 그러니까 엄마의 영향이 좀 있었던 거죠. 근데 그냥 그 뭐랄까, 우리 그때는 좀 어렸을 때는 막 교회에서 그러면서 한 번쯤은 막 성경학교다, 막 크리스마스 때 관심 얻어먹으려고 그랬었던 시기랑 그때 잠깐 잠깐 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쯤 그냥 교회는 가고 싶었던 거예요. 그냥 뭐에 이끌리지 않고 그냥 교회는 가고 싶은데." 어머니의 신앙적인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진정으로 교회에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박정순 원장님에게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뭔가 널뛰고 친절하고 또 아무래도 분위기가 또 좋지 않았을까요, 그죠? 학교랑은 다르게 그냥 예배가 좋았어요. 그냥 그냥 이유 없이 그냥 예배가 좋았고, 또 그 예배드리고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학교와는 달리 따뜻하고 긍정적인 교회 분위기 속에서 예배와 교회 활동에 큰 기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냥 그러다가 이제 어느 날 그냥 수요 예배 때니까 부흥회도 부흥회도 할 때도 그런 건 없었던 거 같은데 수요 예배 때 예배 시간에 그 뭐라고 할까요, 인격적으로 좀 만난 거죠, 성령님을. 가슴에 확 꽂히는 거죠." 수요 예배 시간,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 체험은 박정순 원장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평상시에는 내가 우리가 기본 그냥 아 뭐랄까,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냥 그렇게는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정말 사랑한다고 할 때는 그 표현이 좀 다른 거잖아요. 그러니까 예배도 형식적으로 아 나는 죄인이야, 나는 뭐 구원받은 예수님이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는 그래 나는 죄인이야 꼭 말씀을 그랬으니까 예수님이 나 우리를 위해서 오셨어. 근데 그랬던 게 그날은 확 꽂힌 거예요. 고등학생이 확 꽂혔어. 아 내가 나도 아 나는 착한가? 학교 다닐 때 나쁜 짓은 안 했으니까 나는 선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 이제 그 성령이 딱 체험하면서부터는 나도 누구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존재. 그리고 그래서 내가 죄인이구나." 성령 체험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진정한 회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그냥 성경에서 보여지는 그 죄인이 아니라 그냥 아 그거를 나를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해 주셨다라는 게. 그래서 쓸모없었던가, 힘이 없고 보잘것없고 그랬던 내 존재가 막 갑자기 있잖아, 세상이 바뀌었어요." 자존감을 회복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어떤 체험을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예배 시간에 겪었던 특별한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 예배 시간에 뭐라고 해야 되나, 그냥 그냥 평상시에 예배하고 똑같았어요. 예배드리고 싶어서 그날은 조금 우리가 항상 앞에 앉았는데 뒤에 앉았어요. 뒤에 앉아서 늦게 좀 하다가 뒤에 앉았는데 그냥 가만히 있는데 몸이 떨려요. 옆에 앉아 계신 분이 의자가 흔들릴 정도로. 그럼 방해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가지고 나와서 밖에서 이제 한숨 돌리고 다시 앉았어요. 또 그러는 거예요. 안 되겠다고 또 나왔어요. 사모님이 왜 그러냐, 왜 집중하는 모르겠다고 그냥 괜히 떨, 몸이 떨리고 뭐 어떻게 설명할 수 없고 눈물이 계속 그냥 난다고 그랬더니 아 그러면 내가 성령님이 오신 것 같다고 성령님께 하니까 그냥 아멘하고 받아들이라고 그런 말씀하시고 다시 들어와서 그냥 아멘 하고 받아들였어요." 몸이 떨리고 눈물이 멈추지 않는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 성령의 임재를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니까는 그 떨림 증상은 없어졌는데 회개가 되는 거야, 진짜로. 아 내가 정말 죄인이었구나." 진정한 회개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 체험 이후, 박정순 원장님은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이게 말씀 중에 하나가 잡힌 게 하나의 밀알을 땅에 떨어져서 썩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라고 말씀이 있잖아요. 근데 그게 저는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농사도 지어요. 근데 씨앗이 썩어야지만 열매를 맨날 새싹 이건 몰랐어요. 그냥 뿌리면 나는 건 줄 알았지." 밀알의 비유를 통해 희생과 헌신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교회 교사님한테 선생 집사님한테 물어봤죠. 그 이 뜻이 뭐냐. 그러니까 이제 밀알이라는 거는 씨앗이잖아요. 땅에 붙였을 때 썩어야지만 자기 양분을 먹고 새싹이 나서 나중에. 근데 원래 원본 그 씨앗은 없어지지는 않아요. 그거." 밀알이 썩어야 새 생명이 싹트는 것처럼, 자신도 희생과 헌신을 통해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또한, 박정순 원장님은 소금과 빛의 비유를 통해 크리스천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 말씀하고 그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사람의 발에 아무 쓸모가 그 말이 그 말씀이 되게 되게 뭐랄까, 나는 크리스천이라면 소금인데 내 역할을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는 게 되게 무섭게 느껴졌어요. 두렵게.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있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면서 나는 밀알의 역할과 소금의 역할을 못한다라고 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너희는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했는데 미지근 뜨뜻미지근하면 내 입에 토하여 내친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확실하게 뜨겁게 사랑하든지 아니면은 아 그냥 차갑게 하든지 중간에 어설프게 이런 것들이 이제 저한테는 조금 강하게 막 말씀이 와닿았어요." 소금과 빛처럼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함을 깨닫고,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이제 선교도 하고 또 그렇게 꿈꾸셨지만 지금은 또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그 장애인 분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또 있으셨을까 궁금하거든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합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와서 그 교회를 다니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어떤 교회를 선정해서 너무 교회들은 많은데 그러다 보니까 그중에 이제 순복음교회를 다니게 됐죠. 이제 거기에서부터 이제 그 순복음교회 안에서 봉사를 하기 시작해서 장애인 교구에서 그때 그 장애인과 장애인들을 제가 처음 접한." 서울로 이사 온 후 순복음교회에서 장애인 교구를 통해 장애인들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됩니다. "무섭거나 어렵거나 이런 건 아니었어요. 어떻게 내가 봉사를 해야 될지 그런 걸 몰라서 그러지 우리와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을 편견 없이 똑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래가지고 그냥 가서 이제 거기서 그 저가 들어갔을 때 그 장애인 그 저희가 청년부가 없었는데 들어가면서 좀 활성화를 시켰죠. 열심히 해 가지고." 장애인 청년부를 활성화시키면서 본격적인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장애인 사역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박정순 원장님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그랬더니 이제 거기 그 교사 저랑 같이 하셨던 그 집사님이 계세요. 좀 나이가 오래 봉사하셨던 분이 저를 보시더만 자 좀 뭐라 그래야 되나, 좀 너무 하니까, 너무하니까 그러면서 이제 하시는 말씀이 우물 안에 있는 우물을 한꺼번에 다 푸게 되면 다시 물이 차오를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냐. 그러니까는 밥만 빼라. 너무 열정적으로 다 해버려도 내가 에너지가 쏟아지면 또 다시 내가 회복해서 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아예 포기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지나친 열정으로 인해 지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셨길래, 어떻게 혼신을 하셨길래?"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당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떠올립니다. "그러니까는 뭐랄까 좀 에피소드가 왔는데 그걸 이야기를 하려니까 그런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되는데 그때는 제가 이렇게 체구가 좀 이렇게 크진 않고 왜소했어요. 왜소했는데 장애인 분들 친구들은 이제 조금 그래도 남자들은 남자 장애인들 같은 경우는 좀 크죠. 내변명장애 같은 경우는 이제 빌라가 3층이에요. 그러면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그러면은 안고 가든지 없고 가든지 어떻게 구축해서 3층까지 올라가야 돼요. 그렇게 올라가도 가고." 엘리베이터 없는 3층 빌라에 사는 장애인을 업거나 안아서 데려다주는 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어떤 업고서 이렇게 올라가셨어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아요. 근데 어쨌든 남자분들은 그렇게 하는 게 20대 때예요. 그때가 25살 때인가 26살 째인가 그러고." 20대 젊은 시절, 힘든 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박정순 원장님은 장애인을 향한 깊은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제 한 친구는 집이 방화였어요. 근데 그때는 막 지금처럼 막 이렇게 시설이나 이런 게 좋은 건 아니었고 지하철도 이렇게 많이 전철로 생긴 게 아니었고. 그러니까는 그 친구 그 데려다 줘야 돼요. 근데 택시는 타려면 택시비가 그때 말해서 뭐 1, 2만 원 나오면 꽤 나왔던 식이죠. 90년대 그쪽이었으니까. 그래서 이제 방어니까 데려다 줘야 되잖아요. 그러면은 방화역은 어떨 때는 방화역에서 내려요. 그러면 방화역이 좀 계단이 많아요. 그러면 혼자 이게 못 해요. 그러면 이제 지나가는 분들은 어떨 때는 이제 김포까지 가요. 공항까지 거기는 이제 계단이었고 이게 있으니까 타고 온다는데 문제는 공항에서 방화까지 1시간을 지하철 타고 김포공항 역에 내려서 걸어온다고요. 계단을 올라가기 힘드니까. 그리고 이제 1시간을 밀고 가요. 그거는 중간에 길이 뭐 평지가 아니니까 어느 다리가 너무 힘든 거야. 엉덩이가 좀 빠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고 저 사람 웃긴다 그렇게 했어요." 먼 거리의 장애인 친구를 지하철과 도보로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힘든 일도 기꺼이 감수했다고 합니다. "정말 우물 바짝 날뛰니까요. 재밌었어요. 그 20대 청년인데." 20대 청춘을 오직 장애인 봉사에 헌신했던 박정순 원장님의 순수한 열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영훈 씨는 감탄하며 "그러니까 장애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거의 뭐 예수님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이어 "남편분도 장애인이라고 저희가 들었거든요. 자기 배우자를 또 장애가 있는 분을 만나고 이런 과정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라며 남편과의 만남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질문을 좀 받아요. 결혼은 어떻게 했고 가족들은 어떻게. 근데 저는 그게 그냥 숨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되나. 그 와중에 이제 그 교회에서 장애 부서에서 이제 활동하다 보니까 언니, 그 같은 곳에 장애를 가진 분이 신랑 친구를 소개를 시켜줬는데 너가 한번 이런 친구가 있는데 네가 한번 와서 볼래. 그러니까 이제 옷을 본 거예요. 와서 보고 신랑이 마음이 든 거예요, 제가. 근데 비장애에서 그러니까 그리고 비장애니까는 선뜻 선뜻 마음 표현을 못 하죠. 남자친구가 있다라고 막을 쳤죠." 교회 장애인 부서에서 봉사하면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남편 역시 장애인이었지만,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을 키워나갔다고 합니다.

"그분은 어떤 사고로?"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남편의 장애 원인을 설명합니다. "네, 그 만 19살 때쯤 교통사고로 가다가 택시에 차 갖고 떨어졌는데 경추 3, 4번을 다친 거예요. 사고로 3, 4번이니까 거의 못 밑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데 이제 재활 노력을 많이 해서 재활 그 훈련을 많이 해서 그래도 5, 6번 정도 쓸 수 있는 정도까지 이렇게 한 거예요." 남편은 19살 때 교통사고경추를 다쳐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지만, 끊임없는 재활 노력으로 일부 기능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우리 원장님은 그 남편분은 어떤 면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수줍게 웃으며 "저요? 몰라요"라고 답합니다.

이어 박정순 원장님은 남편에게 끌렸던 진솔한 이유를 밝힙니다. "그냥 그냥 처음으로 다니시게 되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것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돼서 저는 그게 남들이 보기에는 큰 건데 저한테는 그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 않아요. 너무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따뜻하게 한다든가 뭐 이런 게 있잖아요. 복지 쪽에서 그 사람도 이제 자기가 장애를 잃다 보니까 그쪽에서 이제 같이 이렇게 뜻을 합해서 복지 좀 장애 선교를 하고 싶다라는 걸 좀 내리니까 그런 거기에서부터 이제 대화가 되고 저도 앞으로도 이제 그쪽에 이제 문이 열리니까 이렇게 좋으니까. 근데 새로 대화가 되다 보니까 그러면은 혼자 하는 것보다는 같이 이렇게 하면 더 같이 일하다 보면 다 같은 뜻을 바라보니까 뭐 새끼손가락이 참 예쁘더라고요." 따뜻한 마음과 장애인 선교에 대한 공통된 비전에 이끌려 남편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그땐 제가 어렸어요. 그러니까 뭐 하나라도 이렇게 나올 만한데 상남자 스타일이었다던가 뭔가 좀 리더십니까?"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진취적이긴 했어요. 추진력이니까 되게 강해요. 내가 계획하고 준비하는 거는 밀어붙이는 게 되게 강하더라고요." 남편의 리더십과 추진력에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웃음] 뭘 하더라도 아 그냥 해보지 뭐, 해보지 뭐. 만들게 뭐 있어, 안 되면 그만이고. 할아버지도 않는데 주저앉는 거는 더 좀 그러니까 해보고 나서 그냥 그다음에 안 되는 그냥 깨끗이 버리고 다시 도전하고 이런 것들이 멋있어요. 그런 거는."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남편의 모습에 반했다고 합니다.

"결혼하셔서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게 되셨고, 예은이는 어떻게 유명하게 되셨어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예은 양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희가 결혼하면서부터 2세는 계획을 안 했어요. 원체 이제 장애도 심하고 또 장애 시설을 또 운영을 하고 또 신랑도 또 나름 또 협회 활동을 하다 보니까 저도 벅차서 이제는 이제 하지 말자 그랬는데 그냥 예은이를 누군가가 이렇게 이제 놓고 간 거죠. 보니까는 이제 생후 한 달 됐어요." 결혼 후 2세 계획이 없었던 부부에게 예은 양은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래서 그때는 저희가 준비가 안 됐던 거죠, 부모로서. 기간에 다른 거 혹시나 해서 전화를 해서 문의는 해봤어요. 거기에서 연락 오는 거는 아직 너무 어리고 신생하고 그 다음에 장애가 있으니까 태어날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안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는 이제 거절을." 안구가 없는 장애를 가진 갓난아기였기에 입양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예은 양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최소한 자기네들도 이렇게 하겠다라고 했는가 그래서 그냥 이렇게 했는데 그냥 이제 그래도 아이 애기니까는 또 해야 할 건 했잖아, 예방접종도 해야 되고 또 해야 되고. 그러다가 이제 예방접종 다니 마치 시기가 돼서 이제 다니면서 딱 순광자 이름을 불러야 돼요. 이름을 지어야 '이름이 뭐예요?' 그랬더니 [웃음]."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에 갔을 때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즉흥적으로 '예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제 아 그냥 문득 예은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어요. 그냥 진짜로 그냥 예은이, 예은이요. 그냥 이게 저기 안 바꾸실 거죠? 그냥 저희가 바로 했어요." '예은'이라는 이름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 합니다. "[음악] 고민은 너무 많이 하면은 안 될 거 같더라고요. 너무 많이 하면은 아무것도 못 하고. 그래서 짧고 굵게 했어요." 오랜 고민 없이 빠르게 입양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입양 결정을 크게 고민 안 하시고 그냥 고민 딱 하나 했던 건 어차피 이제 제가 장애인 시설을 선교를 하려고 작정을 했고 이렇게 가려고 했으니까 그거는 이제 별거 아니었는데 아 자녀로서는 다른 의미잖아요. 그거는 이제 가족이니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데 딸이잖아요. 그러니까는 그거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중에 후회하면 안 되잖아요. 또 굉장히 그 고민에서 이제 짧고 굵게 했어요." 입양 결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딸로서의 예은 양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짧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래야 그냥 하나님이 주신 거, 하나님이 하나님이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고 그래도 정확하시고 실수하지 않는다는 거."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입양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럼 예은이도 그 예수님의 은혜 뭐 이런 뜻이에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렇지."라고 답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우리 원장님이나 이렇게 부인한 게 아니라 주님이 주신 마음으로 저절로 찾아왔네요."라는 말에 박정순 원장님은 "그러니까 보스베이비라 만화 보면 툭 떨어져서 오거든요."라며 예은 양과의 만남은 마치 운명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냥 뭐랄까 이게 그냥 저는 자연스럽게 받았지만 그냥 있었어. 그냥 뭐 예은이로 했어. 돌아보면 너무 이게 하나님이 계획과 준비가 있었던 거 있었고 그게 개입이 있었고 간섭이 있었고 우리 신랑도 그렇고 예은이도 그렇고 또 장애인 우리 지금 재생하는 식구들도 다 이렇게 엮어 주시는 거 같아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것들이. 그래서 정말 이제 그래서 정말 감사해요." 예은 양과의 만남, 남편과의 만남, 장애인 사역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사실 그거 질문 한번 해보려고 했었거든요. 왜냐면은 입양이라는 것도 쉽지 않으셨을 텐데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입양하는 부분이 있다 보니까 두려움이나 어떤 걱정되는 부분이 있으셨을 것 같아서 한번 여쭤보고 싶었는데 이것도 없으셨다고?"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단호하게 "그냥 없었어요."라고 답합니다. "저한테는 장애는 그냥 불편한 그러니까 이분네들이 아 내가 좋아줘야 되는 한 부분인 거지 이 안에도 같이 사는 식구들도 마찬가지로 저 안에도 예수님이 있다라고 생각을 하니까. 좀 살면서 일상생활하면서 화도 내고 막 그러긴 하지만 소중한 존재라는 거." 장애는 단지 불편한 것일 뿐, 예은 양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제가 저는 그냥 하나님이 공평하시다는 것을 깨달은 게 뭐냐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공평하지 않아요.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유한 사람도 있고 또 못 이 사람이 있고 이쁜 사람이 있고 뭐 뭔가가 호화롭게 금수저가 있고 흙수저. 그러니까 불공평해요. 근데 하나님 앞에 제가 가장 공평하게 느낀 건 뭐냐면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본다는 거."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하나님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신다고 믿습니다. "다 똑같이 예배를 드려도 아무리 저 사람이 뭐 1억 100억 자산가가 예배를 드려도 저렇게 우리 시프트처럼 초라한 사람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중심이라, 내 마음이라는 거. 그거는 공평하다는 거 그거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는 거. 그거에 제가 저는 너무 감사해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구하는 특별한 사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만이 얻어지는 선물인 것 같아요." 구원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고 강조합니다.

"안구가 없는 아기를 봤을 때 좀 놀라지 않았을까 싶어요, 솔직히?"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아, 그래요? 없었기 때문에 그런 거는 무섭지 않고 그냥 그냥 저는 그냥 정말 귀한 존재, 생명의 귀한 존재인데 이제 내가 이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거예요." 안구가 없는 모습전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임신을 과정을 거쳐서 준비를 하고 뭐 어떻게 이런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는 엄마가 된다는 게 뭔지를 부모가 된다는 그런 부담감. 왜냐하면 결혼을 하면 당연히 근데 그거는 우리는 이미 약속을 해서 빼기로 했던 부분이니까 그런 부담감이 좀 컸던 거지 뭐 장애나 이런 거." 엄마가 된다는 책임감은 느꼈지만, 장애 자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 결혼도 안 했겠죠, 우리 너무 예뻤겠네요."라는 농담에 박정순 원장님은 웃으며 "아니 근데 그렇잖아요. 이미 원장님은 장애 시설을 운영하고 계셨고 예은이가 왔어도 그냥 장애 시설에서 케어를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인 거죠."라고 답합니다. "뭐가 제일 예쁘던가요? 그걸 어떻게 말해요. 그래도 말해 줘야 돼요. 오늘은 오늘은 마이크 하시려고 오신 거예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수줍게 "그냥 눈이 이뻤어요, 눈이 이뻤어요."라고 답합니다.

[웃음]

[음악]

[음악]

"저한테는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뜬 거라 좀 보여줄까 그래서." 박정순 원장님은 예은 양의 아름다운 눈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음악]

"그래도 이렇게 참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운 예은이를 키우다 보면 장애를 갖고 있으니까 그런 딸을 두고 좀 속상한 일도 있고 그러셨을 것 같아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많아요. 왜냐면 저도 다른 장애인들 케어하고 하다 보니까 많은데 그거를 일일이 다 설명하기는 너무 좀 어렵고 너무 너무 그런 아픔들은 가슴에 묻어둬야 되고."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가슴 아픈 순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예은이도 마찬가지로 기억나는 일들이 좀 있으세요? 일반학교에 이 친구 관자 저희는 특수학교를 이제 가라고 했는데 그냥 이 친구가 나중에 성인이 돼도 일반 사회 속에서 이제 같이 공유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일반학급을 원해서 일반 학교를 가게 됐어요. 보냈어요." 예은 양을 일반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에서 좀 안 좋은 일이 있었죠. 예은이가 전교사는 아니고 보조 교사님이 계세요. 실무사님이라고 그분자 예은이를 3년 동안 케어를 해서 같이 이제 계속 했는데 2학년 때인가 2학년 때 그랬을 거예요, 아마. 그때는 또 예은이도 막상 바로 이야기를 해준 게 아니라서 그냥 몰랐죠. 근데 이제 그랬대요. 이제 복도 위에 한가운데 세워 놓고 공을 굴리고 자버라고 안 보이는 거 다 아는데 소리를 듣고 잡으라고요." 학교에서 겪었던 차별적인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예은이가 원체 또 원수네요, 원수네요. 반항하거나 이제 그런 기가 없어요. 그래가지고 왜 이유도 모르는 거죠. 예은이는 세워놓고 그렇게 하니까 우연이가 잡아 올 수 있는 입장은 아니잖아요. 가만히 있던 자 이제 그 선생님이 자기도 한번 그렇게 눈 감고 해봤더니 못 잡으니까 예은이한테 사과는 했다고 하더라고요, 미안하다고. 근데 이제 같은 반에 못된 친구가 뭐 이렇게 한다는 것은 생각하면은 지금도 앞으로도 좀 그라기 그런 것들이 많은데 아프죠." 장애에 대한 몰이해와 차별로 인해 예은 양과 어머니 모두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안 아픈 게 있잖아. 기억나는 일을 몇 가지 얘기하셨지만 비루기도 했겠죠."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그런 세상에 차별 속에서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원에 있는 보시면서 느꼈겠지만 내 딸이기 때문에 더 가슴 아팠던 느끼셨겠죠."라고 답합니다. "근데 아파요, 그게 아프죠." 딸이 겪는 고통은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고 고백합니다.

"근데 그 남편분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다는데, 좀 있으면 기일인데 딱 만 4년대에요." 박정순 원장님은 남편과 사별한 아픔을 이야기합니다. "장애로 전신마비를 한 30년 하고 저랑 결혼해서 이제 저랑은 한 18년 살았거든요. 아무래도 전신마비가 [음악] 교통사고 다니니까 후유증이 많은 거죠. 그러니까 이제 저가 결혼할 때 저랑 결혼할 때쯤에 뇌경색이 한번 왔었고 이게 뇌경색이 와도 이게 몸에는 어차피 밑에는 마비니까 그렇게 특별하게 움직이지 못하니까 잘 못하고. 그 다음에 이제 결혼하고 나서 신장이 하나가 망가져 버렸어요. 그래서 이제 하나 가지고 버티면 살아왔던 거죠." 남편은 오랜 기간 전신마비로 고생했고, 결혼 후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근데 이제 그때는 뭐 신혼초나 이럴 때는 좀 에너지가 있었는데 이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에너지도 소비되고 내년성도 떨어지고 그 과정에서 또 욕창 수술도 몇 번 하게 되고 어. 그래서 저는 욕창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어요. 그러니까 욕창 수술만 했는데 만약에 대부분 이제 마비 환자다 보니까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앉아 있으면 엉덩이에 많이 생기거든요. 엉덩이에 많이 생기면 앉아 있는 거를 못 해요. 거의 나을 때까지 누워 있던 엎드려야 되는데 그게 이제 너무 힘든 거죠. 이게 쉽게 낫지도 않아요." 남편의 간호육체적으로 지쳐갔던 시간들을 회상합니다.

남편의 임종준비해야 했던 힘든 시간을 이야기하며 박정순 원장님은 눈물을 글썽입니다. "죽기 전 2년 전이죠, 아파서 입원을 했어요. 근데 새벽에 이제 갑자기 딴짓 180도로 딴 사람이 되더라고요. 언제 그만하고 싶다고. 그때는 이제 저는 좀 너무 힘들죠. 왜냐면 저도 아무리 막 좋고 막 이게 막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육체는 점점 지쳐가는 거는 어쩔 수 막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몸도 막 몸도 많이 망가져가고 있고. 근데 갑자기 나 이제 그만할래 이게 이제 날벼락이야. 왜 그러냐니까 딴 사람이 됐어요. 그때는 저거 딱 그 신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새벽에 병실 4인실인 6인실인데 새벽 1시인가 2시인가부터 기도하자고 이게 떠들면서 막 기도를 못 하잖아요. 손잡고 막 기절했더니 옆에 침상에서 아들이 이제 보호하시는 간혹 아들이었나 봐요, 왜 그래 그런 거야 들리는 거야. 기도하면서도 기도하는 거 같다 아권자 1시간 정도 그냥 기조를 했더니 이게 좀 가라앉으면서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이제 다시 회복은 했긴 했는데 뭐랄까 힘들었죠." 남편의 갑작스러운 변화힘든 간호로 인해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저희가 막 가진 것인가 있어서 한게 아니라 그냥 진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냥 맨바닥에서 했어요. 그러니까 또 하나님도 좀 열심히 하면 이뻐서 좀 축복도 많이 있는게 아니라 딱 그만큼만 우리가 기도하면 그만큼만. 그래서 왜 항상 주변에선 그래요, 왜 우리는 우리만큼만 교만해지지 말라고. 그래서 또 기도하라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기도하며 어려움을 극복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저희가 할 때 할 때는 장애인 분들이 되게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뭔가를 하게 되면은 비가 온다고 했잖아요. 그럼 비가 우리를 피해가요. 비가 왔는데 우리가 가면 머리 갖고 우리는 안 오고 아니면 우리가 끝난 다음에 비가 오든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장애인분들이 여기 있는 가면 뭔가 뭔가가 있어,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장애인 사역을 하면서 기적 같은 경험들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가다가 18년 17년 17년 12월 달부터 이제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망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좀 힘들었어요. 막 예은이도 힘들고 잠도 못 잤어요. 그리고 마음 있는데 어 그냥 그 시기가 되면 저는 트라우마가 생긴 거 같아요. 그러니까 12월 달부터 되면은 그냥 기분이 이상해져요. 그래가지고 이제 병원에 입원하자고 했더니 거절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뭐랄까 그냥 아무래도 이제 안 하겠다 하는데 복수가 차기 시작하니까 그때는 병원에 가겠다고 했어요. 대화는 그게 마지막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응급실로 갔죠. 복수를 차고 오니까 응급실을 가니까 요거는 투석해야 된다 그래갖고 막발로 응급실로 가니까 가고 이제 그 호수를 끼우게 되니까 말은 못 하게 되고. 그러니까 그게." 남편의 건강 악화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고, 결국 남편과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작별이 인사 없이 그냥 갔어요. 중환자실에서 이제 집중치료 받다가 새벽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응급 상황이라고. 그때 또 생각이 나시죠." 남편의 임종 순간을 떠올리며 박정순 원장님은 다시 한번 눈물을 글썽입니다. "근데 그 심폐소생술도 하고 했을 거 아니에요. 나 줘야 되겠다는 생각 아 그냥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는 못했어요. 진짜 예은이도 인사 못했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지만, 결국 남편을 떠나보내야만 했다고 합니다. "[음악] 신변수술하고 다 끝나고 이제 블루 혼자 딱히 인공에게 다 띄고 이제 사망을 했으니까 다 뛰고 가서 보니까 웃고 있더라고요. 없으면서 가셨군요." 남편의 평안한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잘 가라는 말도 안 했고. 그래서 저는 우리 편히 쉬세요라고 그러잖아요.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편히 쉬세요'라는 작별 인사남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보내고 나니까 어떠시던가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남편을 잃은 후 겪었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러고 이제 결혼 생활 이게 이제 제 몸이 아까 말했듯이 힘들었고 지쳤고 저도 이제 좀 쉬고 싶었는데 이제 힘이 없었거든요. 거의 저희는 결혼해서 24시간 계속 같이 있었으니까 어디를 가도 같이 가고 무엇을 해도 같이 하고 뭔가 24시간이 있었고 24시니까 제가 결혼해서 예은이 때문에 딱 한번 외박한 적이 있어요, 예은이들 방송 때문에. 그 위에는 계속 붙어 있었으니까 다른 부부들보다 두세 배 더 함께 보낸 시간이 힘들잖아요. 그게 이제 하나가 떨어져 나갔잖아요. 그리고 그게 어떤 사람들은 그런 편하겠다 위로 차원에서 이야기인데 신랑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이 케어하는 부분이 살 안 해도 되니까 좀 낫지 않냐. 근데 그거 아니거든요. 오히려 그 그게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그 아픔은 공허함이라고 하기가 내 몸에 완전히 매미가 나무에 딱 맺혀서 울어야 되잖아요, 날면서 울지는 않잖아요. 근데 붙어 있을 나무가 없어. 그러니까 모든 초점이 이 사람한테 신랑한테 맞춰져 있었던 그 초점이 이제는 딱 없어지니까 내가 하나님을 향하면 그런 마음도 있었지만 일당에서 살아가면서는 또 이제 그런 대상이 없어져 버리니까 이게 나는 어떻게 해야 될지 이제 모르는 거죠. 오래서 한 이게 허공이 떠 있는 붕 떠 있었냐." 남편과의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삶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큰 상실감과 공허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도 생활은 해야 되고 이걸 운영도 해야 되고 예은이도 또 계속 케어를 해야 되는 거니까는 이제 붕 떠올라서 이제 최근에서야 제가 조금 찾아가고 있고 그전에는 뭘 했는지 이렇게 또 다행히 저한테는 다행인게 이제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서 모든 활동이 좀 중단되면서 스톱되고 하니까 그때서 조금 저는 쉼을 얻은 거죠. 아니면 계속 이거를 또 해야 되는 거니까 그랬던 거 같아요. 50 흰색 그러니까는 좀 일찍 그렇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겨우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은이가 많이 위로가 됐을 것 같아요. 예은이가 없었으면 더 힘들었을 텐데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뭔가가 또 다른 기대일 수 있는 뭔가가 있구나 이런 그런 존재 힘들어도 뭔가가 위로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뭐 하나가 있으니까 이제 거기에서도 이제 많이 소중한 거죠. 하나님이 안 주셨으면 어떡할 뻔했나요 이런 얘기가 이런 생각이 계속 더 좋겠어요."라고 답합니다. "당연하죠. 그걸 어떻게 말이라고 말 표현해요." 예은 양은 큰 위로와 힘이 되는 존재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예은이 건강하게 잘 컸죠? 너무 잘 컸어요, 이뻐요."라는 칭찬에 박정순 원장님은 "그때가 그 스타킹에 출했을 때가 몇 살이라 그랬죠? 그때 다섯 살."이라고 답합니다. "그때 연주만 보고 우리가 그 후에 이제 예은이 본 적이 없는데 오늘 같이 오셨잖아요. 우리 오늘 예은이의 연주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요."라는 제안에 박정순 원장님은 흔쾌히 "네"라고 답합니다.

[음악]

피아니스트 유예은 양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가 시작됩니다. 잔잔하면서도 웅장한 선율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우고, 감동적인 찬양 가사가 더해져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대신하여 네게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동쪽에서부터 네 자손을 인도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되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너희는 나와 함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하나님이라 나는 영원부터 스스로 있는 자라 나는 여호와이니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는 영원부터 스스로 있는 자라 나는 여호와이니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는 영원부터 스스로 있는 자라 나는 여호와이니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는 영원부터 스스로 있는 자라 나는 여호와이니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박수]

연주가 끝나자 스튜디오에는 뜨거운 박수가 쏟아집니다. 송지은 씨는 감탄하며 "잘 들었습니다. 아이고 너무 좋아요. 반가워요. 우리 소개 좀 먼저 해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유예은 양은 밝게 웃으며 "네, 안녕하세요. 저는 한세대학교 재학 중인 피아노 전공 유예은이라고요"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거 무슨 곡이에요?"라는 질문에 유예은 양은 "아 이거 제가 작곡한 나의 하나님이라는 찬양인데요."라고 답합니다. "[음악] 제가 자꾸 캐서 찬양을 한번 불러보고 싶었어요. 저희 그 믿음의 고백을 고개 담아서 한번 불러보고 싶어서 작곡하게 됐어요." 자신이 직접 작곡한 찬양곡 '나의 하나님'을 연주했다고 설명합니다.

주영훈 씨는 칭찬하며 "너무 좋아요. 찬양 불렀었어요? 누구나 [웃음]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또 멜로디가 워낙 좋았어 코드를 너무 좋고 많은 분들이 찬양을 앞으로 볼 거 같은데 어떻게 앞으로 그런 비전을 갖고 있어요?"라고 묻습니다. 유예은 양은 "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렀으면 좋겠어요. 아 그래요? 그래서 이 곡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되게 두려워하지 않고 진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찬양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네 많이 만들고 싶어요."라고 찬양 사역에 대한 비전을 밝힙니다. "아 그래요? 정말 큰 달란트가 있네요, 그럼요. [웃음]"

"어릴 때 스타킹에 출연했던 거 아시죠? 기억나시죠?"라는 질문에 유예은 양은 "네, 기억나요."라고 답합니다. "그 어린이가 이렇게 대학생이 돼서 어떤 마음으로 연주해요?"라는 질문에 유예은 양은 "이제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너는 하나님의 귀한 딸이라고 계속 말씀해 주셨는데 저도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어요."라고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그때 스타킹 때 뭐 불렀었어요? 당신은 사랑받기 그냥 듣고 했던 거예요? 그때는 진짜 뭐 배울 수도 있는 것도 없어요. 한 번 들으면 다 칠 수 있는 거예요, 진짜. 너무 신기하잖아요. 불러보세요, 하나 모르는 거. 진짜 주님을 통해 계획하신 목사님이에요. [음악] 예수님 한 것만 말라 부르세요. [음악]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가니 주님 우리하고 [음악] 어떤 꿈을 갖고 있어요?" 어릴 때 스타킹에서 피아노 천재로 불렸던 유예은 양은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피아니스트를 꿈꾸고 있습니다.

유예은 양은 앞으로의 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제 앞으로 엄마랑 얘기했었는데요, 일단은 제가 평소에 교회에서 많이 반주도 하고 가끔 특성도 했을 때 되게 너무 좋았어요. 근데 이제 엄마가 순복음교회 영상을 많이 틀어 주시는데 중학교 때 유난히 잘 때 순복음교회에서 설교를 하기 전에 찬양을 부르는데 그 찬양 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나도 저렇게 찬양 연주를 멋있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그리고 이제 성가곡을 들으면서 성가곡도 작곡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그 성가곡 해서 천국에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고. 그래서 이제 엄마한테 엄마랑 같이 이야기한 게 있는데 음악 선교가 꿈이에요, 음악 선교. 엄마랑 같이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음악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아름다운 비전을 밝힙니다.

"원장님 이 자리를 빌어서 우리 사랑하는 예은이를 건강하게 잘 자라줬는데 어떤 격려의 말씀을 좀 해주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딸을 향한 사랑과 격려를 전합니다. "저희가 운영케 하면서 좀 구입을 할까 이제 많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일들을 하는데 이제 조금 살짝 이제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있어요. 저희가 아까 막 풍족해서 한 게 아니니까 하나님이 딱 그만큼 채워주신다고 했잖아요. 근데 뭔가가 딱 채워 놨는데 빠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그때 희한하게 또 여행을 통해서 그걸 또 채워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고맙다고 너무 예쁘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필요한 것을 채워주심에 감사하며, 딸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합니다. "저는 이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마음이 변하지 않고 계속 더 성장을 해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자녀가 됐으면 좋겠어요." 예은 양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언을 통한 후원이 또 많이 있군요?"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그러지는 않는데 딱 그때 필요할 때 그렇죠. 너무 아직까지는 막 넘치게 주면은 교만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기도를 좀 더 크게 해요. 하나님이 좀 내려 주시더라고. 그래서 100만 원 필요하면 1000이라고 대충 한 200선에 오시더라고요."라고 재치 있게 답합니다.

[웃음]

"알겠습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오늘 뒤에서 저 방송하는 내용 다 들으셨어요?"라는 질문에 유예은 양은 "네, 다들 엄마가 지금까지 우리 예은 자매 집 앞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을 가진 우리 딸을 만났을 때 여기서부터 다 해주셨거든요."라고 답합니다. "근데 이렇게 우리 예은이를 예쁘게 건강하게 잘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해주고 싶었던 얘기, 하고 싶었던 얘기 없을까요?"라는 질문에 유예은 양은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그러니까 이제 후원금이 많이 들어와서 엄마가 이제 그 필요한데 쓰는데 저도 그걸로 인해서 더욱 너무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이 문학탐방로 가고 여행도 가고. 그래서 저한테 되게 원망보다는 큰 행복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진심으로 감사하며, 후원금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자리는 없지만 아버지에게도 하고 싶은 얘기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유예은 양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씁니다. "천국에 가신 아버지를 위해서 앞으로 엄마랑 열심히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될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가끔 이제 지금은 안 가는데 초원낚시터나 테크노파크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갈 때면 아빠랑 같이 갔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때 같이 뭐 휠체어 타고 인라인도 아빠 휠체어에 자꾸 탔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때 되게 보고 싶었어요. 아 이분 어떻게 생기셨겠다라는 또 상상을 하게 되잖아요."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예은향이 생각하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또 있을까, 그런 것도 또 여쭤보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유예은 양은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칭찬합니다. "저는 엄마 목소리들을 때마다 엄마가 멋있고 그리고 엄마 얼굴을 항상 만지거든요. 그럼 제 항상 이쁜 엄마 이러거든요. [웃음] 엄마 얼굴 만지면 너무 좋아요." 어머니의 목소리와 얼굴가장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네, 우리 원장님은 마지막으로 뭐 기도 제목 있다면 좀 나눠주시죠."라는 질문에 박정순 원장님은 기도 제목을 나눕니다. "너무 많아요. 그런데 우선은 제일 가장 예은이 그렇게 하고 예은이가 하나님 앞에 정말 또 많은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쓸 수 있는 그 성경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잖아, 너희가 머리가 될지는 좀 꼬리가 되지 말라는 말. 이연희가 좀 뿌리가 되지 않고 항상 어디 가도 머리가 될 수 있는 자녀가 돼서 그런 걸 먹고 기도하고 있고." 예은 양이 세상의 머리가 되는 존재로 성장하기를 기도하며, "운영하고 있는 시설 그냥 순수하게 둘이 한 마음인데 그걸 이런 시설들이 잘 끝까지 운영되어지고 또 저희가 올해 3월부터 다시 이제 다시 그 열린 예배를 다시 제기를 하려고 하거든요. 신랑이 남편이 있을 때하고 좀 많이 조금 어렵겠지만 그래도 또 다시 장애인분들하고 모임을 갖고 또 그분들하고 예배를 통해서 전하려고 하니까 그런 것들이 좀 더 이제 구체적으로 활성화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시설 운영예배 재개를 위한 기도를 부탁합니다.

주영훈 씨는 "저는 오늘 원장님 그 말씀 중에 유독 그냥 그런 마음을 주셨어요, 이런 내용이 많았잖아요. 그냥 그런 마음을 주셨는데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그런 거 같아요. 그냥 정말 그냥 그런 마음을 주셨는데 저희는 그냥 때로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이거 정말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맞나요라고 의심하고 계속 순종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원장님의 순종을 통해서 남편분의 팔과 다리가 되어 주시고 우리 예은양의 눈이 되어 주셔서 이렇게 멋진 삶을 살아나가시는 원장님과 예은 씨의 삶이 너무 멋져 보였고요."라고 감동을 전합니다. "그리고 예은 씨 찬양 들으면서 정말 아름답지만 그 묵직한 진정성이 느껴져서 앞으로 찬양으로 크게 쓰임 받을 예현씨들을 위해서 또 늘 응원하겠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박정순 원장님과 유예은 양의 삶에 대한 존경과 응원을 표하며, "저도 이제 아니 정말 우리 마음속에 이 찬양이 계속 아시죠,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큽니다. 진짜 아까 쉬는 시간에 말씀을 아니 근데 진짜로 우리 원장님도 [웃음] 저도 더 많이 기도하고 아마 저뿐만 아니라 기도하시고 다들 더우신데 인재가 너무 그린다고 [음악] 아니 그 많은 분들이 이제 자녀들 저에게 이제 물어봐요, 우리 아이 음악 시키는데 소질이 있을까요? 뭐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요? 밀어 줄까요? 뭐 이런 얘기 하실 때마다 제가 어떻게 답을 드리냐면 못 본 척 하세요, 스스로 잃었을게 스스로 재능이 있다면 스스로 일어날 거니까 그냥 못 본 척 하세요라고 하는데 우리 원장님 그냥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주신 달란트로 우리 혜은이가 이렇게 멋진 연주자, 멋진 아티스트로 잘 자랐잖아요. 우리가 교회에서 부를 찬양 중에 제가 볼 때 90% 이상이 다 서양 찬양이에요. 우리 우리가 만든 찬양이 굉장히 드물고 그런데 우리 예은이라는 훌륭한 아티스트를 하나님께서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이 세상에 모든 더러운 것들 나쁜 것들 보지 않고 어찌 음악에만 집중해서 우리 차 좀 대대로 불려질 명찬송들 많이 만드시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은행에 훌륭한 달란트를 주신 거 같아요. 앞으로 그 달란트 더 열매를 많이 맺어서 정말 우리나라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울며 불며 기쁨으로 찬양하는 찬양들 많이 만들어 주시고 그렇게 쓰임 받는 예언량을 저희도 열심히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원장님, 감사합니다."라고 마무리합니다. 유예은 양의 찬양 사역응원하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음악]

[음악]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네가 오늘 가는 지 너와 함께하며 내 손을 놓지 않으리라 너는 너의 고치"


마무리하며, 박정순, 유예은 모녀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희망을 선사합니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녀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특히, 장애를 극복하고 피아니스트로서 아름다운 찬양을 연주하는 유예은 양의 모습은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사랑, 헌신, 믿음, 희망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이 모녀의 아름다운 행보를 응원하며 지켜볼 것입니다.

1. 한 고대 문서 이야기

2.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4.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ChatGPT,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구독료 80% 할인 받는 법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