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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06명 기억한 416 독서대와 박인환 목사의 헌신 이야기

요약

세월호 306인을 기억하는 416 독서대

“세월호 희생자 306명을 기억합니다”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새롭게하소서 상세 내용 정리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세월호 침몰 사고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국가적 비극입니다. 당시 “반 아이들 잘 있겠지요”라며 간절히 기도했던 한 어머니의 음성은 여전히 우리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304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남아있는 미수습자 2명은 우리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세월호 참사 3년,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닦아주는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할 진실과 교훈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흔히 망각의 동물이라 불리는 인간이지만, 세월호 사건은 우리 가슴 깊이 새겨져 결코 잊혀지지 않는 슬픔입니다. 김학중 목사는 정애씨에게 잊혀지지 않는 슬픔의 기억을 묻고, 정애씨는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립니다. 이처럼 개인적인 슬픔뿐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겪은 세월호 참사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한 아픔으로 남아있는데요. 오늘 "새롭게 하소서"에서는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고 치유를 위해 헌신하는 박인환 목사님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님은 세월호 아픔을 껴안고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목회자입니다. 김학중 목사는 박인환 목사님을 귀한 분이라고 소개하며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박 목사님은 시청자들에게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며, 안산 화정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박 목사님은 세월호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김학중 목사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인환 목사님은 세월호 희생자 중 한 명인 유예은 학생이 교회 교인이었고, 예은 학생의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가 교회 전도사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교회 가족의 아픔이었기에, 박 목사님은 세월호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목사님께 “왜 세월호 일에 그렇게 열심이냐”고 질문하기도 하지만, 박 목사님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교인, 더 나아가 자녀와 같은 학생이 희생되었는데, 목사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박 목사님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미약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십니다.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 사건이었으며, 특히 박 목사님 교회 전도사님의 자녀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큰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참사 당일, 박 목사님은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하필 왜 저에게 이런 일이”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충격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당시 심정을 고백합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적극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앞에서는 무력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며칠간 깊은 고민 끝에, 박 목사님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가는 곳마다 서명 용지를 들고 다니며 서명을 독려했습니다. 교회 장로님들이 “왜 목사가 이런 일을 하느냐”며 항의하기도 했지만, 박 목사님은 “목사가 안 할 이유가 없다”며 맞섰습니다. 오히려 장로님들에게 서명을 권유하며 설득했고, 결국 1700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시골교회 목사로서 능력은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심이 느껴집니다.

세월호 참사는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되는 고통스러운 사건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박 목사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셨을까요? 성경 말씀처럼, 비는 악인과 선인에게 모두 내립니다. 세월호 참사를 억지로 하나님의 뜻으로 끼워 맞추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박 목사님은 세월호 참사를 ‘생명의 문제’로 인식하고, “왜 구조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진상 규명을 통해 구조하지 않은 이유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304명의 죽음에 대해 생명의 가치보다 돈이나 정치적인 문제가 우선시되는 현실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세월호 문제는 본질적으로 ‘생명’에 관한 문제이며, 정치적인 논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것이 세월호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박 목사님을 가장 아프게 하는 부분입니다.

오랜 시간 바다 속에 잠겨 있던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국민들은 다시 한번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특히 유가족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 목사님은 세월호 인양 과정을 더욱 특별한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국민들의 마음과 비슷했지만, 유가족들의 심정을 먼저 헤아렸습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인양에 대해 기쁨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만약 미수습자가 선체 안에 없을 경우, 또 다른 절망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박 목사님 또한 “왜 이렇게 쉽게 꺼낼 수 있는 것을 그동안 꺼내지 않았을까”라는 분노와 함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호 인양은 끝이 아니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더 큰 과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 미수습자 수습,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유가족들의 일상 회복까지,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세월호 사건이 마무리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박 목사님은 특별한 독서대를 제작했습니다.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416 기억 독서대”를 만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책상 앞에 희생자 304명의 명단을 적어 놓고, 그들을 묵상하며 독서대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독서대를 생각한 것은 단원고등학교 희생 학생들의 교실에서 받은 인상 때문입니다. 교실 책상 위에 놓인 꽃과 학용품들을 보며, 250개 책상 위에 예쁜 독서대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록 학생들이 실제로 독서대를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독서대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희생자는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도 있었기에, 306명(미수습자 포함)을 위한 독서대를 만들기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416 희망 목공방에서 재단과 톱질을 하고, 집에서 사포질, 조립, 칠 작업을 하는 등 수작업으로 독서대를 제작했습니다. 박은희 전도사님의 요청으로 교감선생님과 김관홍 잠수사를 위한 특별한 독서대도 제작했습니다. 김관홍 잠수사를 위한 독서대는 어깨가 넓었던 고인의 특징을 살려 책 두 권을 놓을 수 있는 큼직한 크기로 만들었습니다. 총 306개의 독서대는 세월호 희생자 단 한 명도 잊지 않겠다는 박 목사님의 깊은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각 독서대에는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위한 손편지도 함께 쓰여지고 있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에게는 약전을 참고하여 손편지를 썼습니다.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약전을 읽으며 손편지를 쓰는 과정은 박 목사님께 큰 슬픔과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방송 녹화 현장에는 박 목사님이 직접 만든 독서대 몇 개가 전시되었습니다. 306개 독서대가 모두 다른 모양으로 제작된 이유는 획일적인 방식이 아닌,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존중하기 위함입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나무를 사용하는 대신, 산에서 죽은 나무, 교회에서 죽은 나무, 안산시 가로수 가지치기 등으로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직접 구해서 사용했습니다. 12종류의 나무를 사용하여 306개의 각기 다른 독서대를 만들었습니다. 독서대를 만들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박 목사님은 고백합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만든 독서대 하나하나에 어떤 나무를 사용했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두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독서대에 담긴 정성과 의미 때문인지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희생자 306명 모두를 분명히 기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사야 49장 16절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지 강조합니다. 독서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희생자들을 향한 깊은 사랑과 기억의 상징입니다. 박 목사님이 손편지를 낭독하며 예은 학생에게 전하는 따뜻한 마음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예은 학생의 어린 시절 추억과 아름다운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합니다. 편지에 사용된 나무는 교회 앞에서 28년간 자라다 죽은 느티나무로, 예은 학생이 뛰어놀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나무입니다. 독서대와 손편지에 담긴 깊은 의미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않으려는 박 목사님의 진심을 보여줍니다.

박 목사님은 제작한 독서대를 전시하고, 판매 수익금을 기부할 계획입니다. 4월 10일 감리교 본부 마당, 4월 16일 안산 분향소, 4월 20일 꿈의 교회에서 세 번의 전시를 통해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4월 10일 감리교 본부 전시에서는 후원금을 받아 필요한 곳에 기부할 예정이며, 4월 16일과 20일 전시에서는 판매나 후원금 없이 전시만 진행합니다. 304개의 독서대가 전시된 모습을 통해 세월호 희생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합니다. 독서대 전시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박 목사님의 헌신적인 노력은 유가족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될 것입니다.

박 목사님이 목공을 시작하게 된 계기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예배 공간을 마련하면서부터입니다. 박은희 전도사님의 요청으로 예배실을 꾸미고, 유가족들을 위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장로회 통합 측 신학대학생 중심의 목요 기도회도 유가족 예배 공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어느 날, 유가족들이 목공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목요 기도회에 참여했던 안홍택 목사(목수)와 유가족들이 목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가족들이 목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박 목사님은 안홍택 목사님께 목공 강습을 부탁했고, 흔쾌히 승낙을 받았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님의 지원을 받아 목공 강습이 시작되었고, 20여 명의 유가족들이 참여했습니다. 416 희망 목공방은 단순한 목공 작업 공간이 아닌, 유가족들의 치유 공간이 되었습니다. 수현이 아빠는 목공을 시작한 후 1년 넘게 겪었던 불면증이 사라졌다고 고백했습니다. 목공 작업에 집중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힐링을 경험한 것입니다. 목공방유가족들에게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제공하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목공방에서 아빠들은 장부 맞춤 가구를 배우고, 엄마들은 DIY 목공을 배웠습니다. 박 목사님도 함께 목공을 배우며 목공지도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목공유가족과 박 목사님 모두에게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주는 의미 있는 활동입니다. 박 목사님의 헌신적인 섬김은 유가족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유가족들은 박 목사님께 기대고 의지하며, 슬픔을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박 목사님이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입니다. 월남 2세인 박 목사님은 평안도 출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며, 4대째 기독교 집안입니다. 어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본격적으로 목회자의 길을 생각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강원도 광산촌에서 자란 박 목사님은 광산 사고와 버스 추락 사고를 겪으며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람은 왜 죽는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사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이 어린 박 목사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친구들이 뛰어놀 때, 혼자 죽음과 삶의 의미를 고민하며 우울증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잘생긴 셋째 아들이 미쳤다”며 수군거렸습니다. 괴로워하는 박 목사님을 찾아온 교회 목사님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고, 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교회밖에 모르시는 어머니기도와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격려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잘 따르던 박 목사님은 1년쯤 지나면서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아픔을 통해 목회자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어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소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야구선수, 축구선수, 대통령 등 다양한 꿈을 꾸기도 했지만, 결국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진학하여 목회자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특별한 경험은 박 목사님을 남다른 목회자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신학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박 목사님은 구체적인 목회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1975년 신학교 입학 당시 한국 교회는 부흥기였고, 부흥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박 목사님도 철야기도와 금식기도에 참여하며 뜨거운 신앙을 경험했습니다. 큰 교회 목사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목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목회 방향에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하 부대에서 예배를 인도하던 중,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 병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재학 중 학원으로 강제 징집된 병사는 매일 같이 고문과 구타에 시달리다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습니다. 억울하게 고통받는 병사의 모습은 박 목사님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전방 부대에서 지뢰 사고4명의 병사가 억울하게 죽는 사건도 경험했습니다. 부당한 지시로 인해 발생한 사고였지만, 진실은 은폐되고 화목 작업 중 사고로 둔갑되었습니다. 군목으로서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억울한 죽음을 묵인해야 하는 현실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목사는 존재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군목 제대 후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목회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설교와 기도만 하는 목회가 아닌,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목회를 지향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 목사의 ‘봉사하는 영성’을 강조하며, 교회와 세상의 분리가 아닌, 통합된 사역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함께하는 목회는 박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 되었습니다.

안산 화정교회는 1904년에 설립된 안산 최초의 교회이자,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교회입니다. 3.1 만세 운동 당시 안산 지역 만세 운동을 주도했으며, 이로 인해 교회가 폐쇄되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 때는 미군의 오폭으로 교회 건물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두 번의 시련을 겪었지만, 재건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교회 이름 ‘화정(花井)’‘꽃우물’이라는 아름다운 순우리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꽃우물이라는 동네 이름처럼, 교인들의 심성이 곱고 순수하며, 서로를 아끼는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박 목사님은 화정교회에 28년간 재임하며 교회를 든든히 성장시켜왔습니다. 시골 교회 목회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헌신적인 노력으로 화정교회를 아름다운 교회로 변화시켰습니다. 처음 화정교회에 부임했을 당시,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습니다. 도시 교회로 옮겨갈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학수 권사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화정교회에 남아 헌신했습니다. “목사님들은 2~3년만 있다가 더 좋은 교회로 떠난다”권사님의 지적“나는 다르다”고 약속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장례를 치러달라”권사님의 부탁“약속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권사님과의 약속은 박 목사님을 화정교회에 28년간 헌신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3년만 머물려 했던 시골 교회28년의 헌신으로 삶의 터전이 되었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습니다. 시골 목사의 의리를 지킨 박 목사님에게 하나님은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화정교회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교인 수가 증가하고, 재정적으로도 안정되었습니다. 자녀 교육 문제로 도시로 나가고 싶었지만, 두 자녀 모두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딸은 서울대학교에 진학했고, 아들은 경안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화정교회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도시 속의 자연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 목사님의 부지런함농사 사랑은 유명합니다. 교회 텃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는 화정교회의 명물입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교회, 화정교회작은 교회이지만, 30개 교회를 후원하는 선교적인 교회입니다. 교회 재정의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선교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박 목사님의 농사 사랑교인들과 함께 땀 흘리며 소통하는 소중한 연결고리입니다. 과거에는 교인 대부분이 농민이었기 때문에, 농사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현재는 농기계 덕분에 농사가 수월해졌지만, 여전히 교회 텃밭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고구마 농사교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수익금은 교회 재정에 보탬이 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텃밭을 제공하여 함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고구마 밭교인들과 유가족들이 함께 땀 흘리며 위로와 격려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 됩니다. 화정교회는 크고 화려한 교회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교회를 지향하며,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박 목사님은 앞으로도 지역 주민과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헌신할 계획입니다. 은퇴 10년을 앞두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화정교회 교인들에게 존경받는 목회자로 남고 싶다고 합니다. 후배 목사들을 위한 지원에도 힘쓸 계획입니다. 어려운 시대에 목회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화정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로 더욱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성숙한 교회를 지향하며,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미수습자 수습을 위해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처벌받아야 유가족들이 치유받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박 목사님의 기도우리 모두의 기도이며,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마음입니다. 김학중 목사는 박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개교회의 성장뿐 아니라, 공교회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처럼,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하는 박 목사님의 사역을 응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합니다. 박 목사님의 건강사역을 위해 기도하며,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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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4.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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