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일 목사 간증: 고난 극복과 삶으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
## 밑바닥 인생 찬양 꾼, 삶으로 예배를…오동일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간증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 오동일 목사 간증 상세 정리: 역경을 딛고 일어선 찬양 꾼, 삶으로 예배를 드리다
오늘 우리는 “새롭게 하소서” 김학중 목사님과 함께 특별한 간증을 나눌 오동일 목사님의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동일 목사님은 20여 년간 예배 인도자로 활동해 오셨으며,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진솔한 찬양으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분인데요. 이번 간증에서는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여정과, 그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생하게 들려줄 예정입니다. 과연 오동일 목사님의 삶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요? 함께 그의 감동적인 간증 속으로 빠져보시죠.
오동일 목사님은 결코 순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무당이었던 부모님과 불교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랐으며, 가정 형편 또한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조차 포기해야 했습니다. 16살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반월 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해야 했고, 20살 무렵에는 허리 통증까지 겹쳐 육체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배움도, 가진 것도, 건강마저 잃어버린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를 찾게 됩니다. 당시 누군가 “교회에 가면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라고 했던 이야기가 그의 발걸음을 교회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교회 문턱을 넘은 오동일 목사님은 생전 처음 듣는 메시지에 깊은 충격을 받습니다. 낯선 교회, 차가운 의자에 앉아있던 그에게 들려온 것은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라는 따뜻한 음성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강력하게 와닿는 메시지였는데요.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찌질한 인생에게도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라는 선포였습니다. 어머니도, 선생님도 그 누구도 해준 적 없던 “사랑”과 “계획”이라는 단어는 16살 방황하던 소년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그분”이 너무나 궁금해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3개월 만에 성경 일독을 하며 성경의 진리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던 중, 예배 시간 찬양을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왕이시다, 이곳에 오소서, 보좌로 주여 임하소서”라는 찬양 가사는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울렸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예수님, 나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내 마음 중심에 오셔서 내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고백하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찬양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감격은 그를 찬양의 길로 이끌었고, 그때부터 찬양 꾼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거 노동자였던 그는 찬양 꾼 “노동일”이 되었고, 시간이 흘러 목사가 되어 “찬양 꾼 오동일 목사”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오동일 목사님은 찬양 사역에 헌신하며 열정적으로 사역했습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특별한 재능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오직 “삶을 던져 찬양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미성의 목소리였던 그는 삶을 던지는 찬양을 통해 허스키한 목소리로 변화되었고, 찬양 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예배마다 혼신을 다해 찬양했습니다. 20여 년간 찬양 사역자의 길을 걸으며 섬기던 교회에서 척추 수양회 담당 사역자로 활동하던 중,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교통사고는 오동일 목사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사건이었습니다. 답사를 다녀오던 길에 당한 교통사고는 그에게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까지 안겨주었습니다. 4개월 동안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했고, 사고 후유증으로 우울증까지 겪으며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됩니다. 20년간 열정적으로 찬양 사역을 해왔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경험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랜 고통의 시간 속에서 오동일 목사님은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특히 사고 후유증으로 찾아온 우울증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는데요. 재기할 수 있을까, 두 딸의 아빠로서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과 답답함에 정신과를 찾기도 했습니다.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지만, 그는 약 대신 말씀을 택했습니다. “내가 척추 수양회 담당 사역자인데, 약 먹고 일어설 수는 없다”라는 생각에 약을 버리고 말씀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매일 산책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의 근원을 찾고자 몸부림쳤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그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찬양이었습니다. 특히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양을 부르며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시면 내 마음은 하늘나라인데, 왜 내 마음은 이렇게 힘들까요?”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질문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라는 깨달음이 마음속에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마치 어두운 터널 끝에서 빛을 발견한 것처럼, 그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오동일 목사님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게 되면서 찬양은 더욱 진솔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멋있게 노래할까, 찬양할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아버지의 마음을 전달할까, 성도들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찬양은 더 이상 무대 위에서의 “노래”가 아닌, 삶 속에서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고백이 된 것입니다. 교회 권사님은 “목사님 찬양이 달라졌다, 전해지는 감동이 다르다”라고 이야기했고, 그는 고난을 통해 “기름 부으심”이 더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고 후 4개월 동안 꼼짝없이 누워 지내면서, 그는 깊은 절망과 고독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팔다리는 마비되었고, 골반은 부러져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 속에서 예수님을 더욱 깊이 바라보았고, 그 시간을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물론 우울증이라는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말씀과 찬양, 그리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극복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 오히려 성도들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게 되었고, 찬양 사역은 더욱 풍성해지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오동일 목사님은 20년간 대형 교회에서 찬양 사역자로 활동하며 화려한 무대 위에서 찬양했지만, 어느 순간 “내가 연예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기보다, 무대 위에서의 모습을 더 신경 쓰는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내가 이러려고 예수님을 믿었나, 이러려고 찬양 사역자가 되었나”라는 회의감을 느끼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내가 가야 할 길은 여기가 아니다, 처음 꿈꿨던 부르심대로 살아가야 한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대형 교회 사역을 내려놓기로 결심합니다.
오동일 목사님의 처음 꿈은 20대 시절 크리스천 카페에서 찬양 사역을 시작했을 때부터 품어왔던 것입니다. 바로 “문화 쉼터”를 만들고, 더 나아가 “공동체 마을”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의 찬양보다, 성도들과 삶을 나누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꿈꿔왔던 것입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찬양이 삶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복음이 실제가 되지 못한다면, 예배가 삶이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찬양 사역자가 아닌, 삶으로 찬양하는 “진짜 찬양 꾼”이 되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갑니다.
대형 교회 사역을 내려놓은 오동일 목사님은 동탄 신도시에 교회를 개척합니다. 개척에 대한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가던 길을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성도 한 명 없이, 재정적인 지원도 없이 맨손으로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평일에는 카페를 운영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는 “카페 교회”를 구상했던 그는, 뜻을 같이하는 몇 가정을 만나 함께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카페를 통해 자연스럽게 성도들이 모여들었고, 1~2년 만에 50여 명 규모의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공동체”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었고, 도시 교회 개척은 그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오동일 목사님은 제주도로 향합니다. 강릉 혹은 제주도를 놓고 기도하던 중, “도시를 섬기기 좋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제주도”가 공동체 쉼터를 세우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모두가 꿈꾸는 제주도에서, 그는 “애월의 언덕”이라는 이름의 신앙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그는 제주도에서 “더불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공동체 사역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부부, 가족 간에도 갈등이 생기는데, 낯선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더욱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오동일 목사님은 공동체 내 갈등 해결 원칙으로 “손해 보는 선택”을 강조합니다. “더불어 화평케 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리라”는 성경 말씀과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공동체의 핵심 가치로 삼고, 갈등 상황에서 “내가 손해 보는 선택”을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지혜를 터득했습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 “내가 손해 봤다”고 생각하는 결정을 내리면, 오히려 공동체가 더욱 화평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기려고 하거나 이득을 취하려고 하면 “더불어”라는 가치는 깨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힘든 공동체 사역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오동일 목사님 곁에는 든든한 가족, 특히 아내 사모님이 있습니다. 동탄 개척 당시 건물 건축으로 빚에 허덕일 때도, 제주도로 사역지를 옮길 때도, 아내는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는 영상 편지를 통해 아내와 두 딸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진심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소리꾼 장사익과 비견될 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처럼, 그의 진심은 짧지만 강렬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오동일 목사님의 제주도 사역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애월의 언덕” 공동체뿐만 아니라, 노형동에 연어 전문점 “해냄” 오픈을 준비하며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전이 현실화되려면 자립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제주도 곳곳을 누비며 “거리 찬양”, “버스킹 찬양”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제주도를 “찬양 선교의 섬”으로 만들어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의 찬양과 삶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선사하며, “진정한 예배”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오동일 목사님의 간증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닌, 고난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신앙 고백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찬양을 통해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진정한 찬양 꾼”이 된 그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오동일 목사님의 삶을 통해 “고난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삶 자체가 예배가 되는 축복”에 대해 깊이 묵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당신의 삶에도 깊은 울림과 도전을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