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 목사의 기적과 달꿈예술학교, '한 사람'의 힘
## 내 곁의 '한 사람'이 만든 기적: 류한승 목사의 삶과 달꿈예술학교 이야기
류한승 목사의 삶과 달꿈예술학교 이야기: 당신 곁의 '한 사람'의 소중함에 대하여
오늘 우리는 류한승 목사님의 감동적인 삶의 여정과, 그가 설립한 특별한 학교인 달꿈예술학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번 영상은 단순한 인터뷰를 넘어,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합니다. 류 목사님의 이야기는 고경희 수어통역사와 함께 전달되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류한승 목사님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한 사람' 덕분에 지금의 삶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매 순간 만났던 귀한 '한 사람'들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제는 그 '한 사람'을 위한 학교, 바로 달꿈예술학교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생명샘교회의 담임 목사이자 달꿈예술학교의 교장 선생님인 류한승 목사님은,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겉모습만 봐서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어 보이시는데요, 오히려 학생 같다는 인상마저 줍니다.
류 목사님은 현재 생명샘교회 담임 목사로서 목회 활동을 하고 계시며, 동시에 달꿈예술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달꿈예술학교는 일반적인 학교와는 다르게 학생 수가 매우 적은데요, 류 목사님은 현재 학교에 학생이 단 한 명이라고 밝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류 목사님은 "한 명, 한 명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자 했고, 이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마치 성경 속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처럼, 달꿈예술학교는 '하나를 위한 모두'라는 슬로건 아래 한 명의 학생에게 집중하는 특별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달콤'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달의 꿈'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12살 소녀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소녀는 죽었다고 여겨졌지만,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외치셨고, 소녀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류 목사님은 이 '달리다굼'이라는 말씀을 통해, 세상이 죽었다고 판단하는 아이들에게도 예수님과 같은 따뜻한 시선과 희망을 전하고자 '달콤'이라는 이름을 학교에 붙였다고 설명합니다. 달은 때로는 반달, 때로는 초승달로 모양이 변하지만, 끊임없이 어둠을 밝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예수님을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달꿈예술학교 역시, 세상의 편견 속에서 빛을 잃어가는 아이들에게 빛이 되어주는 통로가 되고자 합니다.
류 목사님에게 '한 사람'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오프닝에서 소개된 것처럼, 류 목사님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여러 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류 목사님은 우리를 그의 다섯 살 시절로 데려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주셨던 첫 번째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류 목사님은 다섯 살 이전과 이후의 삶이 확연히 달랐다고 회상합니다. 다섯 살 이전에는 단순히 누나들을 따라 교회에 다니는 아이였지만, 다섯 살 때 겪은 교통사고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사촌 누나 집에서 놀다가 누나를 따라 나갔지만, 누나를 놓치고 길을 잃었던 어린 류한승은 멀리서 손짓하는 누나를 발견하고 쫓아가다 연탄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상황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연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었기에, 다섯 살 어린아이의 장기는 심하게 손상되었고, 의식까지 잃은 위중한 상태였습니다.
사고 후 류 목사님은 경희대학교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시 경희대학교병원에는 류 목사님의 삼촌이 근무하고 있었고, 덕분에 수술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수술실에는 여러 과의 의사들이 함께 투입되었지만, 복강 내 출혈이 심각하여 수술은 난항을 겪었습니다. 결국, 의료진은 손상된 장기 일부를 절제하고, 나머지 장기들은 항생액에 담가두는 응급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술 중 류 목사님의 심장 박동이 멈추는 위기가 찾아왔고, 의료진은 부모님께 사망선고를 내릴 상황까지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술실에 있던 한 의료진이 류 목사님의 심장이 멈춘 순간,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의료진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시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고, 의료진은 다시 수술을 재개했습니다. 천으로 덮였던 류 목사님의 몸은 다시 수술대 위에서 생명을 되찾기 위한 간절한 노력 속에 놓였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류 목사님은 기적적으로 다시 깨어났습니다. 깨어난 후 류 목사님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당시 회복실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류 목사님이 눈을 뜨자마자 처음으로 한 말은 놀랍게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다섯 살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고백은, 회복실에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눈물을 선사했습니다. 이 순간 이후, 류 목사님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다섯 살 아이가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정말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류 목사님은 당시 상황에 대한 명확한 기억은 없지만, 수술대 위 혹은 그 이후의 어느 순간, 매우 따뜻한 빛과 함께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미세한 음성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 음성이 수술 중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깨어난 후 계속해서 들려온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경험은 류 목사님의 삶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그 이후 류 목사님은 병원에서 다른 환자들을 찾아가 함께 기도하는 등,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기쁨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류 목사님의 어린 시절 전도 열정은 매우 뜨거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당연했기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류 목사님에게는 큰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섯 살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예수 안 믿으면 죽는다"는 직설적인 전도는 때로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류 목사님의 진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실제로 류 목사님의 전도를 받은 한 어머니는 감동하여 혈서를 쓰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또한, 레미콘 트럭 사고로 말을 못 하게 된 친구를 보면서는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 친구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당시 류 목사님은 육신의 고통은 있지만, 영원히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 류 목사님의 꾸준한 전도 끝에, 친구의 어머니는 마음을 열고 온 가족이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훗날 류 목사님 가족에게 "머리털을 다 뽑아서 신발끈을 만들어도 부족할 은혜"라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그 친구는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류 목사님과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류 목사님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발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류 목사님에게는 또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나, 그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류 목사님은 당시에는 그분이 '한 사람'인지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그 물리치료 선생님 역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존재였습니다. 류 목사님은 휠체어를 타고 전도 활동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하나님께서 걷게 해주시겠다는 꿈을 주셨다"고 이야기하며 걷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의사들은 류 목사님의 상태를 고려했을 때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경희의료원에 새로 부임한 물리치료 선생님이 류 목사님에게 "한번 걷는 훈련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물리치료 선생님의 제안은 류 목사님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선생님은 류 목사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함께 걷는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걷기 훈련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류 목사님은 허리부터 발끝까지 쇠로 된 보조기를 착용하고, 목발을 짚어야 했습니다. 갈비뼈 한쪽이 없고, 신장과 내장 기관 손상까지 있었기에, 코르셋으로 몸통을 강하게 압박해야만 했습니다. 힘든 훈련 과정이었지만, 류 목사님은 꿈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6~7시간씩 일어나는 훈련, 걷는 훈련, 계단 오르는 훈련을 묵묵히 해냈습니다. 힘들 법도 했지만, 류 목사님은 오히려 즐겁게 훈련에 임했습니다. 걷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훈련 과정은 고통이 아닌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류 목사님은 당시 걷기 훈련을 통해 성령님의 가장 큰 역할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성령님의 역할을 기적적인 치유나 능력으로 생각하지만, 류 목사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말씀을 통해 성령님의 진정한 역할은 '기쁨과 감사'를 유지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 바로 뒤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구절이 이어지는 것을 묵상하며, 류 목사님은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성령님의 가장 큰 역사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걷기 훈련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과정이었지만, 성령님께서 주시는 기쁨 덕분에 류 목사님은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노력과 재활 훈련 끝에, 류 목사님은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이 류 목사님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류 목사님은 현재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휠체어를 타는 것과 걷는 것 중 무엇이 더 낫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걷기 훈련을 통해 목발을 짚고 걷게 된 것은 분명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 류 목사님은 목발을 짚고 학교를 다녔고, 휠체어는 교실에서만 사용하는 정도로 생활했습니다. 여행을 갈 때도 목발을 이용해 걸어 다녔습니다. 류 목사님은 이러한 생활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특별하다거나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목발은 류 목사님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류 목사님은 초등학교를 일반 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일반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당시 현실을 고려했을 때,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류 목사님의 어머니는 일반 학교 진학을 강력하게 원했습니다. 의사는 특수학교 진학을 권유했지만, 어머니의 강한 의지 덕분에 류 목사님은 일반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생활은 행복했습니다. 1학년 때 한글을 제대로 몰랐고, 자연이나 세상에 대한 경험도 부족했지만,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습니다. 첫 시험에서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했을 때, 담임 선생님은 류 목사님을 나무라지 않고, 시험지를 다시 풀어보라고 기회를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류 목사님은 시험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이후 류 목사님은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선생님의 격려와 지지 속에서 학교생활을 즐겁게 해나갔습니다.
류 목사님은 초등학교 시절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고 회상합니다. 1학년 때 시험지를 다시 풀 기회를 주셨던 선생님, 2학년 때 공부 잘하는 학생 대신 류 목사님을 반장으로 추천했던 선생님 등, 류 목사님은 선생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 속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 없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2학년부터 6학년까지 반장을 맡으며,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고, 목발을 짚고 활동하는 것이 류 목사님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덕분에 류 목사님은 아동 시절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류 목사님 가족은 특별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램프 시설이 잘 갖춰진 신일중고등학교로 이사하기 위해 미아동으로 이사한 것입니다. 넓은 캠퍼스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신일중고등학교에서 류 목사님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는 14만 평이나 되는 넓은 땅에 자리 잡고 있었고, 류 목사님은 탁 트인 전경 속에서 공부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류 목사님은 학업에 열중하기보다는, 학교 설립자인 이봉수 이사장님의 교육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사장님은 학생들이 교과서에 갇힌 좁은 시야를 갖지 않도록, 학교 운동장 밖에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교실 창문을 통해 백운대를 바라보며, 더 넓은 세상을 꿈꾸도록 격려하신 것입니다. 이사장님의 교육 철학은 류 목사님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류 목사님은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이라는 교훈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습니다. 여기서 '자유'는 방종이 아닌 독립 정신을 의미하며, 자신의 자유뿐만 아니라 타인을 자유롭게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류 목사님은 해석합니다.
고등학교까지는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류 목사님에게, 대학교 진학 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류 목사님은 자립해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가 등하굣길을 함께하고, 학교생활을 도와주셨지만, 대학교에서는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캠퍼스는 류 목사님에게 큰 장벽이었습니다. 경희대학교 캠퍼스는 아름답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곳이 많았습니다. 강의실을 옮겨 다녀야 하는데,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계단은 너무 많았습니다. 게다가 IMF 외환위기 여파로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엘리베이터 운행이 제한되면서, 류 목사님의 어려움은 더욱 커졌습니다.
대학교 캠퍼스는 류 목사님에게 끊임없는 도전 과제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캠퍼스 내 이동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류 목사님은 가장 빠른 걸음으로 50분에서 1시간 거리를 이동해야 했고, 강의 시간마다 늦기 일쑤였습니다. 힘겹게 강의실에 도착하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류 목사님은 자존감이 점점 낮아졌습니다. '나는 남들과 다르구나, 장애가 정말 큰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이겨내고 싶었기에, 친구들이나 부모님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계단에서 휠체어가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어깨를 다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 사고 사실을 숨기고 학교에 가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학사경고를 받게 되었고, 학점은 F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대학교 시절은 류 목사님에게 자존감 바닥을 경험하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7년 만에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힘든 대학 생활이었지만, 류 목사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학교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걸을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던 선생님, 초중고등학교 시절 평범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친구들과 가족들의 응원, 그리고 무엇보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마음먹게 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류 목사님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고,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류 목사님은 평균 이상의 학점을 유지하며 졸업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류 목사님이 대학 생활에서 겪을 어려움을 미리 아시고, 어린 시절부터 걷기 훈련을 통해 필요한 근육들을 단련시키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용기를 북돋아 주셨던 것입니다. 류 목사님은 대학 시절의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난 속에 홀로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훈련 과정을 마치고 대학이라는 광야로 보내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성령님께서 함께 하셨던 것처럼, 류 목사님의 광야에도 늘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습니다.
목회 활동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일이지만, 류 목사님은 달꿈예술학교까지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교 설립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요, 류 목사님은 어떻게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류 목사님은 원래 교육 전문가도 아니었고, 학교 설립은 꿈꿔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달꿈예술학교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 류 목사님은 심리학과 신학 공부를 병행하면서, 교회 청년 중 작곡을 전공하는 친구와 함께 '달란트를 통한 영혼 구원'이라는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작곡이라는 달란트를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청년의 열정에 류 목사님은 깊이 공감했고, 사랑을 먼저 실천하는 방향으로 사역의 방향을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작곡 전공 청년 두 명, 미술 전공 누나, 상담 전문가인 류 목사님, 그리고 기타 연주 봉사자 등, 작은 팀을 꾸려 홍보를 시작했지만, 실제로 학교에 찾아온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류 목사님이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학교 부적응으로 자퇴를 고민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노력과 계획으로 홍보했던 학교에는 학생들이 오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한 명'의 학생이 달꿈예술학교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 학교를 운영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류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명의 학생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길게 학교를 운영할 계획은 없었지만, 당장 그 학생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학교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 그룹홈 아이들, 방과후 학교 아이들, 교회 센터 아이들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2년 정도 운영되던 중,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한 학생이 나타났습니다. 류 목사님은 뮤지컬 교육 전문 기관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학생은 달꿈예술학교에서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학생은 류 목사님과 선생님들에게 깊은 신뢰와 애정을 느꼈던 것입니다. 고민 끝에 류 목사님은 다른 학생들을 상담하여 다른 기관으로 연계하고, 교회 행사들을 축소하여 뮤지컬 입시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학생의 꿈을 위해 학교의 방향을 전환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류 목사님은 '한 영혼의 소중함'을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그 학생은 현재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달꿈예술학교는 한 명의 학생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시작된 학교입니다.
달꿈예술학교는 또 다른 학생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성장하는 계기를 맞이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려는 한 학생과의 상담 과정에서, 류 목사님은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오히려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격려하며, 미워하는 마음 대신 하나님의 더 좋은 계획을 기대하며 학교를 떠나도록 도왔습니다. 학생이 학교를 떠난 후, 학교 지하 공간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장마철 누수로 인해 천장이 약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사고 당시 학생들은 없었지만, 만약 학생들이 있었다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 지하 공간을 찾아와 공부하고 밥을 해 먹으며 지냈습니다. 류 목사님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자신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류 목사님은 집 계단에서 넘어져 다치는 사고를 당했고, 아버지께서는 집을 리모델링하여 계단을 없애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류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리모델링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함께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생각. 리모델링을 준비하던 중, 같은 평수의 집이 리모델링 공사 중 무너지는 뉴스를 접한 아버지께서는 리모델링 대신 건물을 새로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지하부터 2층까지는 학교 공간, 3층은 가족 거주 공간, 5층은 임대 공간으로 사용하는 복합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1층에는 카페를 만들어 학생들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좁은 공간이지만, 카페를 통해 학생들이 세상과 연결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한 학생과의 만남과 사고, 그리고 아버지의 결심이 이어지면서 지금의 달꿈예술학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달꿈예술학교 운영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특히 운영비 마련은 늘 고민거리입니다. 류 목사님은 학교 운영 컨설팅을 받으러 다녔지만, 컨설턴트들은 운영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류 목사님은 처음부터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학생들에게 필요한 학교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사장님으로부터 배웠던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이라는 교훈을 떠올리며, 류 목사님은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건물 안에서 공부만 하는 학교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카페를 1층에 만든 이유도, 학생들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경험하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운영비 마련을 위해 1층 카페 수익의 80%를 학교 운영비로 사용하고,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학교 운영에 필요한 만큼의 재정이 채워지고 있다고 류 목사님은 이야기합니다. 류 목사님은 인생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늘 필요한 만큼,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광야와 같은 고난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늘 성령님과 함께 하셨고, 필요한 도움을 주셨습니다.
2018년 개발을 시작하여 2022년 현재까지, 달꿈예술학교는 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작은 학교이지만, 류 목사님의 헌신과 사랑으로 학생들은 꿈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류 목사님은 앞으로도 달꿈예술학교가 이름처럼 아름다운 꿈을 키워나가는 학교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류 목사님은 젊은 시절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을까?"라고 질문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비슷한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류 목사님 역시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 묻고 싶은 질문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 교통사고여야 했습니까?", "왜 이렇게 힘든 과정을 통해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까?" 와 같은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류 목사님은 이러한 질문들이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질문이 있어야 궁금증이 생기고, 궁금증이 있어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류 목사님은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직접 질문하고, 모든 것을 명확하게 확인하고 싶다고 합니다.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지만, 그날에는 모든 것을 깨끗이 알게 될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류 목사님은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의문을 풀고, 더 깊은 믿음으로 나아갈 것을 확신합니다. 류 목사님은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질문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라고 격려합니다.
류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 오히려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류 목사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하세요?"라고 질문합니다. 류 목사님은 자신이 특별히 잘해서 달꿈예술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합니다. 과거에는 류 목사님을 도와주었던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달꿈예술학교 학생들이 류 목사님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힘들 때마다 학생들이 해주는 이야기들이 류 목사님에게 큰 메시지가 됩니다. 학교 운영을 포기하고 싶을 때, 한 학생이 "목사님 기도하고 결정하셨어요?", "목사님 비전이라면서요?", "목사님 비전이면 끝까지 하세요" 라고 이야기하며 류 목사님을 격려했습니다. 학생들의 격려 덕분에 류 목사님은 지금까지 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류 목사님 자신이 아니었을까, 류 목사님은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떠나고 싶어하는 류 목사님을 찾아와 준 아이들이 오히려 목자였던 것은 아닐까. 수많은 좋은 학교들 대신, 좁고 열악한 달꿈예술학교를 선택해 준 아이들 덕분에 류 목사님은 힘을 얻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류 목사님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곁에 '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비록 눈에 잘 띄지 않더라도, 당신 곁에는 당신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한 사람'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을 찾아내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류 목사님은 강조합니다.
오늘 류한승 목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힘든 순간, 우리 곁을 지켜주고 손을 잡아주는 '한 사람'의 존재는,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류 목사님의 삶은 '한 사람'의 힘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거입니다. 또한, 류 목사님은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을 닮아 '한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류 목사님의 고백을 통해,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모든 분들이 다시 한번 주님의 음성을 듣고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좋은 한 사람'이 되어주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류 목사님의 앞으로의 사역을 응원하며, 오늘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