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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재 목사 큐티 간증: 가정 회복과 영혼 구원의 비밀

요약

## 나오미의 흉년 극복기: 큐티로 되찾은 가정 천국

[현실판 나오미] 척박한 삶 속에서 피어난 큐티의 꽃: 김양재 목사의 간증과 가정 회복의 지혜

오늘 우리는 마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인생 역전을 경험한 나오미와 같은 분의 이야기를 통해 깊은 은혜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교회의 김양재 목사님의 간증인데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큐티(QT, Quiet Time)를 통해 삶의 변화와 가정 회복을 이루었는지, 그 생생한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고난 극복 스토리를 넘어, 큐티라는 실제적인 방법론을 통해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핵심 노하우를 상세히 풀어낼 예정입니다. 지금부터 김양재 목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과, 그 속에서 발견한 큐티의 놀라운 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이름에 담긴 슬픈 예감: 딸로서 겪어야 했던 어린 시절의 흉년

김양재 목사님은 ‘양재’라는 이름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먼저 꺼내며 간증을 시작합니다. 예로부터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3대째 아들이 없던 집안의 4대째 딸로 태어난 김 목사님. 어머니는 북한에서 피난 내려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건축업으로 비교적 부유하게 살았지만, 아들을 낳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명한 목사에게 치성을 드리고, 온 교회를 먹여 살리다시피 하며 아들 낳기를 갈망했다고 하는데요, 그 정성에 감복한 목사가 지어준 이름이 바로 ‘양재’였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딸로 태어나 어머니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이후 어머니는 정신과 진료까지 받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실망은 곧 김 목사님에게 무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입학식, 졸업식은 물론, 학용품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고, 딸이라는 이유로 모든 면에서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회상합니다. 아버지는 따뜻하고 차별 없는 성품를 지녔지만, 어머니의 신앙적 열심은 딸에게 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머니는 남의 집 빨래를 해주고, 교회 변소 청소를 하는 등 몸으로 봉사하는 데 집중하면서도, 정작 딸에게는 무관심했다고 합니다. 9살 무렵, 김 목사님은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어린 나이에 서른 살의 정신 연령을 갖게 된 듯했다고 술회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어머니의 이타적인 삶은 훗날 김 목사님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지만, 김 목사님은 스스로 공부하며 학업에 매진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피아노를 향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레슨조차 받기 힘들었지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 반주를 하며 실력을 키워나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용돈을 벌기 위해 콜레슨까지 하며 입시를 준비했고, 결국 재수 없이 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 합격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주변에서는 ‘천재’라고 칭송했지만, 김 목사님은 여성 목사를 무시하는 교계 풍토 속에서 서울대 학벌이라도 있어야 덜 무시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고 고백합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시기 위한 만세 전부터 계획된 섭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덧붙입니다.

2. 화려한 대학 시절 뒤에 숨겨진 그림자: 만남과 결혼, 그리고 새로운 흉년의 시작

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 진학했지만, 김 목사님의 가정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집에 전화조차 없어 학교에서 연락을 받을 수 없었고, 미팅이나 데이트는 꿈꿀 수도 없었습니다. 가난은 곧 ‘변화가 없다’는 오해로 이어져 번번이 거절당하기 일쑤였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가난 덕분에 헛된 길로 빠지지 않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만약 가정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았다면, 화려한 대학 생활에 휩쓸려 방황했을지도 모른다고 회상하며, 당시의 어려움이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다고 간증합니다.

연애 경험 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을 일찍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반주를 10년 넘게 해온 김 목사님은 주변의 축복 속에 장로님, 권사님 댁 아들이자 의사인 남편과 선을 보게 됩니다. 남편은 무려 130번의 선을 본 베테랑이었지만, 김 목사님은 남편의 배경과 조건에 끌려 결혼을 선택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당시 큐티를 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못했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여 결혼을 결정한 것인데요, 이는 마치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가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떠난 것과 같았다고 비유합니다. 화려한 포드 자동차에 기사를 대동하고 선 자리에 나타난 남편의 모습은 김 목사님에게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김 목사님은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향하듯, 행복을 좇아 결혼이라는 새로운 챕터로 뛰어들었습니다.

결혼은 곧 또 다른 흉년의 시작이었습니다. 남편은 ‘눈에 눈물 한 방울 안 나게 해주겠다’, ‘1년에 한 번씩 독주회를 열어주겠다’는 감미로운 약속을 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집살이는 상상 이상으로 고되고 힘든 과정이었는데요, 고학력자인 친정 어머니와 달리 무학자인 시어머니는 철저하게 가사 노동만을 며느리의 본분으로 강요했습니다. 새벽 기도원 대신 새벽 청소를, 피아노 대신 걸레를 잡아야 했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집안일에 갇혀 인격적인 모독까지 감내해야 했습니다. 걸레질 하나 제대로 못 한다고, 멸치 똥이 붙었다고, 가을비에 피 묻었다는 황당한 이유로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은 김 목사님을 숨 막히게 했습니다. 학창 시절 화려한 삶을 누렸던 김 목사님에게 시집살이는 그야말로 ‘바벨론 포로 생활’과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남편 또한 가정일에 무관심했습니다. 집에 일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으니, 며느리가 집에서 노는 꼴을 못 봤던 것인데요, 시장조차 아줌마가 대신 보는 상황에서 김 목사님은 철저하게 집안에 갇힌 채 고립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교회는 주일 성수 외에는 출입조차 금지되었고, 부흥회, 새벽기도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여자는 50이 넘어서 봉사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며 며느리의 활동을 억압했습니다. 친정 어머니는 딸에게 간섭하지 않았지만, 시어머니는 24시간 며느리를 감시하며 조금이라도 쉬는 꼴을 못 봤습니다. 잠을 자도, 피아노를 쳐도, 책을 봐도 안 되고, 오직 걸레질만 해야 했던 억압적인 시집살이 속에서 김 목사님은 점점 영혼이 말라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3. 절망의 끝에서 만난 빛: 큐티, 삶의 나침반이 되다

견디다 못한 김 목사님은 친정 아버지에게 하소연했지만, 오히려 ‘밥만 먹여줘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교만해서 그렇다’는 냉담한 반응만 돌아왔습니다. 무학자인 시어머니와 고학력자인 며느리의 극명한 대비, 멸치 똥, 걸레, 가을비 등 사소한 일로 벌어지는 갈등, 갇힌 생활, 인격 모독… 도무지 해석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김 목사님은 점점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나는 착하고, 믿음 좋고, 공부도 잘했는데,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끊임없이 자문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것투성이일까?’, ‘대학교는 왜 나왔을까?’ 자괴감만 커져갔습니다. 10년 동안 시어머니의 구박을 듣다 보니, 스스로 대학교 졸업 여부조차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바벨론 포로와 같은 억압적인 시집살이, 해결책은 ‘이혼’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교양 때문에, 체면 때문에, 섣불리 이혼을 입에 담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왕따 경험, 교회 내에서의 소외감 등, 과거의 상처까지 떠오르며 김 목사님은 더욱 깊은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악한 존재인가?’,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가?’ 창세기 8장 21절 말씀을 떠올리며 인간의 근본적인 악함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겉으로는 김 목사님의 ‘복 받은 결혼’을 부러워했지만, 실상은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텅 빈 껍데기뿐이었습니다. 육체적인 가난보다 더 고통스러운 정신적인 가난 속에서 김 목사님은 인간적인 한계를 절감하며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김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가출이 아닌 기도원을 선택한 것은 만세 전부터 예정된 하나님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릅니다. 5년간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하듯, 친구의 독일행을 핑계로 집을 나선 김 목사님은 기도원에서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집으로 돌아오자 시어머니와 남편의 냉대는 더욱 심해졌고, 급기야 ‘감옥에 시집온 것도 아닌데 왜 마음대로 외출도 못 하느냐’ 격렬하게 항의하며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친정 역시 기댈 곳이 되지 못했고, 수중에 돈 한 푼 없던 김 목사님은 결국 기도원에 짐을 풀었습니다. 분방한 기도, 간절한 기도, 오직 기도만이 살길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원에 머물렀습니다.

기도원에서 김 목사님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숙소도 없이 성전에서 함께 먹고 자며 예배드리는 낯선 환경, 남편에게 맞은 사람, 폐암 환자, 벙어리 등 고통받는 사람들이 울부짖는 기도 소리… 미운 오리 새끼처럼 섞여 앉아있던 김 목사님은 처음으로 ‘내가 왜 이곳에 있는가?’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원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이 데리러 올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연락조차 없었습니다. 오히려 폐암 환자를 보며 ‘병이 옮을까 봐’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나는 착하다’고 믿었던 자만심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비로소 인간은 100% 죄인이며, 하나님만이 100% 옳으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죄를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왔구나’, ‘나는 정말 내 죄를 볼 수 있을까?’ 끊임없는 자기 성찰 속에서 김 목사님은 비로소 진정한 회개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중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평생토록 새벽 기도, 부흥회, 주일 예배, 심지어 수십 권의 설교 노트까지 남겼지만, 가난 때문에 이사하면서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떻게 자기 새끼를 내팽개치고 남들을 위해 평생을 살 수 있었을까?’ 어머니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 똥 냄새 풍기는 어머니를 창피하게 여겼던 자신의 못난 모습,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외면했던 죄, 돈을 좋아하고 세상적인 성공을 좇았던 욕망,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만 갈망했던 교만… 그 모든 죄악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김 목사님은 통곡했습니다. 평생 교회만 다녔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은 바로 그 순간, 5년 만에 처음으로 기도원에서 였습니다. 더 이상 세상적인 야망이 아닌, 진정한 사명을 깨닫고 비로소 ‘돈 좋아서 피아노 치고, 공부하고, 결혼했다’는 자기 고백과 함께 진정한 회개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셨듯이, 김 목사님 또한 악하고 음란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려 자신의 죄를 보는 순간, 비로소 김 목사님은 천국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4. 사랑으로 맺은 변화의 열매: 시어머니 구원과 가정 회복

김 목사님의 변화는 놀라운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가장 먼저 변화된 것은 시어머니와의 관계였습니다. 두려움과 굴종으로 점철되었던 과거와 달리, 진정한 사랑으로 시어머니를 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다’, ‘어머니는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했구나’ 깨달은 김 목사님은 시어머니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예배 드리십시다’ 용기 내어 말을 건넸고, 권사였던 시어머니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펴고 사랑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스스로 사랑이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는 솔직한 모습에 시어머니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너는 착하다’ 칭찬하며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털어놓는 시어머니의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그날 이후, 시어머니와 김 목사님은 시간만 나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관계로 발전했고, 김 목사님은 비로소 가정 안에서 주인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노예와 같았던 며느리에서 복음 전하는 동역자로, 관계가 역전된 것입니다.

물론 시어머니가 단번에 변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김 목사님 자신이 먼저 변화되니, 인내하며 시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끈기 있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영혼 구원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큐티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삶에 적용하며, 시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2~3년 후, 시어머니는 김 목사님에게 ‘내가 너만 시집살이 안 시켰지’ 농담을 건네며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도 중에는 ‘저희 집에 이렇게 훌륭한 주의 딸, 주의 종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로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집살이 동안 겪었던 고통과 아픔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가정 안에 따뜻한 사랑과 평화가 깃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큐티’임을 강조합니다. 서울대학교 합격보다, 그 어떤 세상적인 성공보다, 가정을 지킨 것에 더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13년간의 결혼 생활을 지켜낸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며, 이 간증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가정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목사가 된 것도, 사명을 받은 것도, 결국 가정을 지키는 숭고한 가치를 전하기 위함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포기하지 않고 큐티를 통해 변화와 회복을 이룬 김 목사님의 간증은, 가정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소망을 선사합니다.

5. 예상치 못한 남편의 변화와 영혼 구원: 극적인 화해와 천국 소망

남편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남편은 개업 후에도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교회 건축, 자동차, 골프 등 기독교계의 세속적인 모습들을 비판하며 끊임없이 날을 세웠고, 부잣집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돈에 인색하고 구두쇠 기질을 보였습니다. 술주사까지 있었던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지옥’과 같았다고 김 목사님은 회상합니다. 대화 단절, 술주사, 억압적인 시집 문화…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김 목사님은 오히려 ‘남편이 바람이라도 피웠으면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절망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은 김 목사님을 더욱 간절하게 주님을 찾게 만들었고, 이는 인생 최대의 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갑작스럽게 간암 말기 진단을 받습니다. 정기 검진을 꼬박꼬박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간암은 이미 말기까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김 목사님은 절망했지만,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합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에게 김 목사님은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당신 회개하고 예수 믿고 천국 가지 않으면 나는 살 소망이 없다!’ 죽음 앞에서 비로소 남편의 마음 문이 열렸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인데 왜 이렇게 울고 난리냐’ 담담하게 말하며, 놀랍게도 ‘예수 믿었어’ 고백하는 남편의 모습에 김 목사님은 감격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남편에게 경제권을 위임받고 유언을 듣는 순간,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밤을 새워 남편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남편, 구원을 갈망하는 아내, 그 간절함에 응답하듯 하나님께서는 어린 부목사님을 통해 남편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오늘 밤 천국 문 앞에 서 계십니다. 여기 어떻게 들어가시겠습니까?’ 부목사님의 질문에 남편은 숨을 헐떡이며 ‘예수 이름으로요’ 대답했고, 눈물로 지난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낙태 수술로 얼룩진 과거, 괴로움에 술에 의존했던 날들, 아내를 힘들게 했던 철없는 행동들…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김 목사님은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남편은 영접 기도 후 3시간 만에 뇌사 상태에 빠졌고, 다음 날 새벽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김 목사님에게는 슬픔보다 감사함이 더 컸습니다. 죽음 직전,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은 남편,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에게 병원 일과 입원비를 챙기라고 지시하는 세심함, 천국에 대한 소망… 그 모든 것이 기적과 같았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을 아파트 5층 집에서 치르면서, 30대 젊은 과부가 감당하기 힘든 슬픔 속에서도 김 목사님은 큐티 말씀을 통해 위로와 소망을 얻었습니다. 에스겔 33장 말씀을 묵상하며 ‘악인이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고, 남편의 구원을 확신하며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갔으니 기뻐해야 할 일임을 큐티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입니다.

남편의 죽음 이후, 김 목사님은 큐티 목회에 더욱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 진심이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고, 죽음 앞에서 비로소 예수님을 영접한 남편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변화 가능성과 구원의 소망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복음의 진리를 삶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믿음과 성품을 구별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깨달은 김 목사님은 큐티를 통해 얻은 은혜를 나누기 위해 큐티 사역에 매진했고, 이는 우리들교회 개척과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6. 큐티 목회, 가정 사역으로 확장되다: 우리들교회 부흥과 다음 세대 양육

남편 사후, 김 목사님은 큐티의 능력과 복음의 능력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을 지키고,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큐티의 힘을 직접 경험했기에, 큐티를 통한 말씀 묵상과 가정 사역에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젊은 과부로서 교회 안에서 설 자리가 없었지만, 낙심하지 않고 집에서 큐티 모임을 시작했고, 힘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의 성도들로 시작했지만, 큐티의 능력과 김 목사님의 진솔한 간증을 통해 큐티 모임은 빠르게 확장되었고, 마침내 우리들교회 개척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들교회는 큐티 중심의 목회 철학을 통해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화려한 강단도, 웅장한 건물도,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이, 오직 큐티와 말씀 묵상, 그리고 성도들의 자발적인 간증으로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김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큐티를 통해 말씀을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고, 간증으로 나누는 훈련을 시켰고, 성도들은 큐티를 통해 변화된 삶을 간증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딱딱한 교리나 추상적인 설교 대신, 삶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큐티의 실제적인 유익을 간증하는 방식은 성도들에게 큰 공감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특히 김 목사님은 자신의 고난과 아픔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큐티를 통해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간증하며 성도들에게 깊은 감동과 위로를 선사했습니다.

우리들교회 큐티 사역은 다음 세대 양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을 위한 맞춤형 큐티 교재를 개발하고, 가정에서 큐티를 통해 신앙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반짝반짝 말씀 읽기’, ‘조금 조금 말씀’ 등 어린이 큐티 교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말씀을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청소년, 청년 큐티 교재는 삶의 문제와 고민을 말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특히 온 가족이 함께 큐티 본문을 묵상하고 나누는 가족 예배를 통해 가정의 영적 기둥을 세우는 데 힘썼습니다. 그 결과, 우리들교회 청년들은 19년 동안 단 한 건의 이혼도 없을 정도로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다음 세대가 교회의 미래를 짊어질 든든한 믿음의 세대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큐티 사역의 핵심은 ‘적용’과 ‘간증’임을 강조합니다. 단순히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넘어,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적용한 결과를 간증으로 나누는 과정을 통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김 목사님은 큐티 간증집을 통해 성도들의 생생한 간증을 공유하고, 큐티의 실제적인 유익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의사, 학생, 주부, 직장인 등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성도들의 간증은 큐티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말씀 묵상법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청소년 큐티 간증집은 청소년들의 솔직하고 생생한 간증을 담아내, 청소년 사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7. 결혼과 가정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 가정 회복을 위한 김양재 목사의 조언

마지막으로 김양재 목사님은 가정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함께 실제적인 조언을 건넵니다. 결혼과 가정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임을 강조하며, 행복을 좇다 보면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가정 안에서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힘들지만, 가정을 지키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최고의 비결임을 역설합니다.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힘들다고 불평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큐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가정은 행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거룩을 이루어가는 훈련의 장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혼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이혼은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을 낳을 뿐이며, 가정을 파괴하는 가장 큰 적이라고 경고합니다. 자녀에게 새엄마, 새아빠가 아무리 좋아도 친부모를 대신할 수 없으며, 이혼은 자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고 강조합니다. ‘호적 물고 죽으라’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이혼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고 노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큐티를 통해 자신을 직면하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면 반드시 가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소망을 불어넣습니다. 가정은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이며, 큐티는 그 여정을 함께하는 가장 든든한 동반자임을 강조하며 간증을 마무리합니다.

결론적으로 김양재 목사님의 간증은 척박한 삶 속에서도 큐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가정 회복과 영혼 구원을 이루는 놀라운 역사를 보여줍니다. 개인의 고난 극복 스토리를 넘어, 큐티라는 실제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며, 가정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 그리고 회복의 지혜를 선사합니다. 오늘 김양재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우리 또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큐티를 실천하고, 말씀 안에서 참된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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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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