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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박샤론 간증 샤론의 꽃과 신앙 이야기

요약

샤론의 꽃처럼 피어난 박샤론 간증

미스코리아 박샤론 간증: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샤론의 꽃" 이야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롭게 하소서 김학중 목사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정환입니다. 정아 씨, 오늘은 제가 퀴즈로 오프닝을 해볼까 하는데요, 긴장을 좀 하시면서 우리나라 국화가 뭔지 아시죠? 에이, 목사님 너무 쉽잖아요, 무궁화! 무궁화, 그렇죠. 그런데 뭐 그거는 다 할 거고, 무궁화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어, 글쎄 생각을 안 해봤던 거 같긴 한데, 뭐 고유명사로 무궁화, 아까 무궁화 어, 어 발음이 좀 되는데요. 무궁화가 로즈 오브 샤론, 아 네네네, 그러니까 샤론의 꽃이라고 부르는데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몇 번이고 다시 피어나는 정말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꽃, 그래서 샤론의 꽃이라고 한다. 아, 되게 이쁜 이름이네요, 정말. 그래서 오늘 나오실 분이요, 바로 이 샤론의 꽃처럼 신앙의 꽃을 끊임없이 피우면서 그 향기를 전하고 계신 분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이실지 화면으로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참 52번 박샤론 양이 미스코리아 선이 되셨습니다. 여기 아주 특별한 미스코리아가 있습니다. 미인대회에서 수상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2006년 미스코리아 선, 박샤론! [박수]. 아름다움은 섬김과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섬김과 나눔을 꼭 실천하는 미스코리아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씌워주신 왕관만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쓰겠다고 다짐한 그녀는, 당선 후 화려한 방송인이 되기보다는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며 하늘나라의 공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완성은 외면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된다는 것을 믿는 그녀, 그녀의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이 [음악] 시작됩니다.

네, 우리나라의 국화가 무궁화라는 것, 우리나라의 미를 대표하는 국가 대표시, 미스코리아, 아름다운 미를 대표하는 박샤론 씨가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왜 그렇게 웃으세요? 민망해요. 아, 아니 우리 시청자분들이 깜짝 놀라실 거예요. 두 미녀가 지금 앞에 이렇게 화면에 왔다 갔다 하니까. 네, 감사합니다. 아, 아 우리 시청자분들께 인사 좀 한번 해 보시죠. 아네, 안녕하세요.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박샤론입니다. 사실 새롭게 하소서에는 지금 10년 만에 다시 초대해 주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두 번이나 초대받은 것도 너무 영광이고요, 감사하고요. 오늘도 또 귀한 이렇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한 거 같아요.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이렇게 늘씬늘씬 하시고 정말 아름다우세요. 역시 우리나라 국가대표급 미모십니다. 네, 어 그러면 그 미스코리아 대회가 언제 있었던 거였죠? 어 제가 나갔던 데는 2006년도고요, 그때 선에 당선이 됐었어요. 아니, 그 워낙 뭐 어릴 때부터 키도 크시고 미모가 출중해서 늘 들었을 것 같아요. 미스코리아에 한번 나가 봐라, 이 이야기 언제부터 들으셨어요? 씨, 그런 얘기를 한 번도 못 들어 보고요. 예, 나가 보라고 해서 나간 게 아니라 그냥 혼자 나갔습니다. 아니 그럼 어떻게, 정말 미용실의 원장님의 권유로 나가셨던 거 아니에요? 아, 원장님이 없으셨어요.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사실 뭐 뭔가 이제 잘하는 아이가 아니고 굉장히 평범한 아이였어요. 그래서 대학도 뭐 점수 맞춰서 똑같이 갔고요. 그 안에서도 뭘 해야 되지 늘 고민이 많은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이것저것 다 도전을 해보다가 다 떨어지고, 어 집 앞에 붙어 있는 전봇대 포스터 한 장을 보고, 어 이것도 한번 해 볼까, 여태까지 다 떨어졌는데 뭐 떨어져도 괜찮아 하면서 도전을 했던 게 미스 인천 선발 대회였어요. 그런데 보통은 언론사나 신문사에서 주최를 하는데, 그 미스 인천 선발대는 저희 동네에 있는 그 부평 종합사회 복지관이란 복지관에서 주체를 한 거예요. 그래서 너무 신기한 마음에 전화를 해봤죠. 어떻게 언론사에서 주체를 안 하고 복지관에서 주체를 하냐 미인대회를? 그랬더니, 음, 모든 비용을 다 공짜로 대주겠다, 신데렐라를 찾아라라는 제목이었다, 만들어 주겠다 이래서 아 과감하게 이제 도전을 일단 했고, 그래서 미용실 원장님이 없을 수 있었고, 거기에서 은혜롭게 인천 진이 돼서 이제 전국대회를 나갈 수 있는 그 계기가 된 거죠. 네, 너무 신기하고 은혜롭지 않아요? 아니 근데 저희가 알기로 이제 샤론 씨 아버님이 목회자시잖아요? 네, 맞습니다. 보통 이제 목회자분들이 어 자기 자녀가 미스코리아 대회 나간다 그러면, 뭐 찬성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것들을 쉽게 동의해 주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목사님 따님이 만약에 미스코리아, 저, 하라고 하죠, 열려 있으세요? 역시 아니, 어떠셨어요? 저희 아빠는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유독 딸에게는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저 여중여고 여대를 일부러 보내셨어요. 네, 그럴 만큼 굉장히 딸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셨네요, 정말. 네. 그래서 만약에 대회를 나간다고 허락을 구했다면 거절하셨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너는 외모와 상관없이 늘 존귀한 아이다, 이렇게 칭찬하시는 분이셨는데, 뭔가 제가 어 밖에서 외모로, 물론 외모만은 아니지만 평가를 받는다는 거 자체가 아버지는 싫으셨을 텐데, 감사하게도 아버지가 그때 대회를 나가는 동안에 성지 순례를 가셨어요. 제가 거짓말을 좀 못하는데, 거짓말을 못하는데 딱 그때 하나님께서 선수를 보내주시고, 돌아오시고 나서 이틀 뒤에 대회였어요, 미스 인천 대회가. 그때 이제 엄마한테만 살짝 이제 엄마 내일 모래 바로 대회야, 그런데 돈이 하나도 안 들어, 이렇게 얘기를 했더니 엄마가 그래 네가 결혼 전에 언제 드레스를 입어 보겠니, 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그러니까 될 줄 정말 모르셨던 거죠. 당연히 대회날 아무도 안 오셨고요. 경험 삼아 해 봐라, 이런 그, 잘 모르신 채로 그냥 무기 하셨던 거 같고, 엄마한테만 허락을 이제 살짝 받고, 옛날 아무도 못 오시고, 이제 저는 이제 미스 인천 진이 되고, 그다음에 이제 전국대회를 이제 나가게 된 거죠. 아니 사실 이렇게 정말 그냥 될 줄 모르고 나갔다, 정말 그 가벼운 마음으로 출전하셨는데 인천 출신도 미스 진이 되셨어요. 그리고 또 전국대회를 나갔단 말이에요. 아니, 생각보다 조금 일이 커지게 됐잖아요. 아마 아버님도 아시게 되시고 허락을 구해야 되고 부담도 좀 컸을 것 같은데, 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죠. 근데 일단 저는 심적으로 비용에 대한 부담이 일단 컸어요. 이제 복지관에서 주최를 했을 때는 비용이 전혀 안 들었는데, 전국 대회에는 모두 아시다시피 뭐 미용실도 있어야 되고 뭐 드레스도 있어야 되고, 한 달 동안 합숙하는 동안 입을 옷가지며 다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그게 굉장히 제 마음의 숙제였다, 길을 열어 주시려고 했는지, 그때가 50주년이라는 걸 공평하게 협찬을 해 주셨어요, 주최측에서. 그래서 드레스며 뭐 뭐 헤어 메이크업이며 뭐 단체 복이며 다 제공을 해 주셔서, 예, 준비할 필요 없이 정말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리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예. 그래서 아빠에게도 그걸 충분히 말씀을 드리고, 이제 그 시간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게 분명히 있을 거다, 그러면서 아빠는 정말 기도를 해 달라, 그 한 달 합숙하는 게 굉장히 힘들거든요. 왜냐하면 심리적으로, 음, 정말 너무 다 예쁜 아가씨들이 한 70명 모여 있는 거예요. 같이 한 달에 사는 거예요. 그렇죠. 그니까 그게 욕심없이 그냥 어 너무 좋아하고 들어갔어도, 그 안에서의 정말 많은 숙제들이 생겨요, 심리적으로. 내가 이 자리에 왜 있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 왜 보내셨을까부터 시작해서, 네. 아니 지금 말한 대로 이제 2006년으로 좀 거슬러 가서, 그렇게 이제 진인이 되고 한 달 합숙으로 하고, 한 70 몇 명 가운데 이제 순위가 매겨지나요? 예선에서 이렇게 걸러지고 딱 이제 마지막에 두 사람만 남잖아요. 그렇죠. 진과 선, 그래서 이제 한 사람한테 왕관을 씌워 주는데 그 자리에 주셨단 말이에요? 네, 맞아요. 그 굉장히 많은 생각이 그 안에 있었을 거고, 또 샤론 씨는 기도하는 딸이니까 그 순간에 솔직히 하나님 앞에 어떤 기도를 했을 것 같아요? 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 그 저는 진짜 한결같은 게 사실 그때 제 목표가 15등이었어요. 되게 소박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진선미는 생각도 못 했고요. 그런데 15등 안에 들고, 그다음에 이제 일곱 명 안에 먼저 들어요. 네, 일곱 명 일단 상을 받는 사람인데, 저는 그때만 해도 구름 위를 걷는 거 같았는데, 나중에 이제 두 명까지 갔을 때는 숨이 멎을 것 같은 거예요. 왜냐하면 이건 제가 바라고 기도했던 게 아닌 거예요, 이미 너무 크게 세워 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 순간에 하나님 이건 아니에요, 하나님 충분합니다, 하나님. 예, 저는 여기까지 너무 충분합니다, 저는 제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도를 했거든요. 그런데 아빠도 똑같은 기도를 하셨대요. 그게 저한테 충분히 선도 너무 과분한 거예요. 그니까 진이 안 돼서 서운하고 이런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을 만큼, 저한테는 선도 너무 버겁고 감사, 예, 과분하고, 예, 그런 상황이어서 지금 말씀드려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진짜 인도하셨던 것밖에. 몸속으로는 하나님 앞에 그 짧은 순간에 뭐 기도라도 어떤 소원이라도 아뢰는 게 있으세요? 기억나는 게 그 순간이 아니라 그 무대 위에서,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서서, 그 내내 하나님 제가 정말 미스코리아 되면 섬김과 나눔을 꼭 실천하는 미스코리아가 되겠다, 그런 고백을 했어요. 왜냐하면 다른 친구들은 다 10초 자기 멘트를 할 때 자기는 어떤 방법으로 세계 한국의 미를 알리겠다, 뭐 이런 자랑을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내세울 게 정말 없더라고요. 준비되어서 나간 것도 아니고.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게 엄마 아빠의 목회이다 보니, 하나님 제가 정말 이 자리에서 어떤 상이라도 주시든 아니면 그렇지 않더라도 섬김과 나눔을 꼭 실천하는 그런 딸이 되겠다, 그런 걸 제 입술로, 음, 고백을 하게 하셨는데, 그게 제 마음속에 늘 계속 남아 있었어요. 음, 그러면 그다음에 당시에 미스코리아 선이 되시고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셨을 거예요. 당선이 되고 나면 사실 미스코리아 분들 많은 방송도 나가시고 활동을 하시잖아요. 의무적으로 또 해야 되고. 그 평범했던 삶에서 사실 정말 180도 달라진 삶을 살게 되셨단 말이에요, 그때. 그렇죠? 어 사실 정말 아까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걸 시작해서 폼, 폼, 폼을 막 찾아다니고 다 떨어지고 하다가, 그 변화가 두 달 만에 이루어져서 갑자기 세계 대회까지 막 나갔다 와가지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미녀가 된 거예요. 그니까 정말 두 달 만에 나를 봤을 때 너무 많은 변화가 있다 보니까 스스로 약간 우울증 같은 게 찾아왔어요. 가장 예, 가장 반짝인다 싶을 때. 왜, 아니 저는 왜 그랬을까, 왜 그랬냐면, 이제 늘 외모로 평가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고, 너무 평범한 여대생이 늘 그냥 귀하다, 너무 예쁘다, 이렇게 부모님이 해주시던 딸이었는데, 이제 뭐 외모로 이제 점수를 받게 되고, 외모뿐만은 아니지만 이렇게 보여지는 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막 댓글도 막 달리 이게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비난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저는 똑같은데 집 앞에 나갈 때도 저의 옷차림 하나부터 모든 걸 다 수군거리는 거가 적응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평범한 아이였으니. 그래서, 음, 이제 세계 대회를 갔다 오고 나서, 아 이제 조금 좀 스트레스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시선이 예,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러니까 그전에는 목사님 자녀로서의 시선만 받았다가, 이제 그거와 별개로 또 목사님 자녀이기 때문에 또 욕을 많이 먹었어요, 인터넷에서. 그니까 그런 게 다 같이 굉장히 심적으로 부담이 돼서 집밖에 좀 안 나오고 한 10kg 정도 살도 찌고 막 이랬던 적이 있었어요. 예, 그 몇 달 사이에. 그러면 그때 그 우울했을 그 당시에는 집에만 있으셨다고 하셨는데, 그때 어떤 생각들을 하셨어요? 그니까 그냥 나가기 싫었어요. 그냥 저는 제 존재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귀하게 그냥 그렇게 받았는데, 이렇게 나가면 이제 제 모든 것 하나하나가, 살이 찌면 살이 1kg 찌고 2kg 찌고 옷차림이 어떻고, 이런 게 다 평가가 되니까 그게 저는 굉장히, 미스코리아가 살쪘네, 미스코리아도 뚱뚱하네, 이런 얘기들으면 우, 지금, 그렇죠, 그 당시에는 굉장히, 왜냐하면 오래된 미스코리아 아니고 그 해에, 그렇죠, 그렇죠, 그 해에. 그래서 조금 힘들었죠, 오히려. 어, 그 그런 게 너무 부담이 되니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자기를 놔 버리는 순간이 오는 거군요. 그럼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이나 부모님이 보실 때는 속상하셨을 거예요. 너무 존귀한 딸이 오히려 저 대회를 나갔다가 저렇게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봤을 거 아니에요? 어떠셨어요? 그런 관계 속에서, 대화는 좀 많이 했었어요. 그때 이제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나, 그런 거에 대해서 또 의논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부탁드리고, 또 그때 기간에 또 새벽기도도 다니면서 붙들 곳이 그곳밖에 없잖아요, 하나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서 많이 치유가 되고 회복을 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제 삶의 의미를 찾았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방향성을 좀 잡게 된 거 같아요. 그게 이제 신앙의 힘이죠. 그게 방황할 때 기도할 수 있는, 또 그런 부모님 가족들이 계셨기 때문에 샤론 씨는 돌파구를 그렇게 찾아갈 수 있었는데, 만약 그때 기도하는 방법까지도 없었다면 샤론 씨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때 생각하면 여러 가지 감사할 것 같아요. 아, 내 인생에 있어서 외모적인 미스코리아만이 아니라 내 내면과 영성을 채우는 그런 시간이 그 시간이지 않았을까. 네, 맞아요. 그런 한번 이제 주춤하고 뭔가 이제 아픈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채우고 저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시간들을 통해서, 아 사실 그때 사실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화려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이렇게 제가 움츠러들었을 때, 다시 나와서 뭔가 방송을 하고 이런 거에 대한 두려움이 또 있었어요. 워낙 또 끼가 있고 막 이렇게 잘하지 않는 아이였고 너무 평범했으면 카메라 앞에 서고 이런 게 익숙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 이후에 다시 내가 뭔가 방송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이제 CBS 방송을 시작했어요, 리포터. 이제 이게 사랑 나눔이라는 이제 프로그램에서 이제 좋은, 어 선한 일을 이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리포터를 하게 됐거든요. 이제 그러면서 또 새롭게 하소서에 나오면서 최일도 목사님을 만나고, 그러면서 이제 봉사나 이런 것들 같이 하고, 그러면서 여러 단체들을 만나면서 이제 함께하게 되면서 제 비전에 대한 방향성을 조금 더 잘 잡아갈 수 있었어요. 그 그때 그 시간이 결국은 샤론 씨의 인생의 바로미터가 된 거네요. 맞습니다, 네. 그러니까 무대에 서셨을 때 그렇게 하겠다, 하나님 저 이렇게 할게요, 라고 했던 것들을 좀 힘든 시간을 겪고 또 하나님과 친밀해진 다음에 또 할 수 있게끔 또 됐네요. 맞, 정말 남들에게 인기만 얻는 그런 시간만 있는 줄 알았더니, 저런 또 품격과 내면을 다지는 시간이 있었다는 데 또 한번 어 놀랍게 되는데, 어, 어릴 시절 이야기를 우리가 안 들을 수 없어요. 유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어요? 목사님 딸로 보낸 거죠? 그렇죠. 유년 시절에는 사실 굉장히 가난했던 기억이 주로 많이 있어요.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이제 제가 태어날 때부터 이제 목회를 시작하셨는데, 천막 교회, 당시 제가 태어났고 부모님 말씀으로는 가장 어려울 때 제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겪었어요. 그러니까 천막 교회에서 뭐 지하 예배당 뭐 상가 거쳐서, 물로 이사를 하고, 이제 제가 중학교가 되기 전까지는 굉장히 어렵고 교회 안에 사택이 있었으니까요. 늘 이제 제 꿈은 어 내 방을 가져보는 게 소원인 거예요. 왜냐하면은 그 사택이라는 게, 음, 평일에는 내가 쓰는 내 방이지만 주일에는 아이들과 다 같이 쓰는 유아실이 되기도 하고, 이제 그런 공간에 대한 부분이 좀 부족하다 보니까. 가족이 어떻게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살았는데, 거의 이제 부모님께 저를 케어하, 못 하시고, 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의 키우셨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 이제 기억을 되돌아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키워진 것들이 대다수고. 그 어릴 적에는 이게 부모님의 빈자리 같은 것들이 많이 느껴졌을 것 같아요. 아빠 엄마는 이제 어떻게 보면 목회자, 성도들의 아버지가 되셔야 되고, 되시다 보니, 네, 아 마치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이렇게 심리적인 그런 것들을 이제 목회자 자녀들은 되게 느끼죠. 어, 그런 그렇지 않은 줄 알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런 좀 그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서 힘든 적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럼요, 굉장히. 저희 저는 이제 늘 숙제도 할아버지가 봐 주시고, 이제 학교 다녀오면 챙겨 주시는 것도 할머니가 해 주시고 이러니까 부모님에 대한 이제 어려움이 있었어요. 아빠는 늘 목사님의 모습이 더 많았고, 엄마도 어떤 이야기를 하면 사모님으로 저를 대해줄 때가 많으셨고. 그니까 그게 좀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그때 좀 마음에 남는 게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아빠한테 제가 처음으로 울면서 아빠는 목회를 꼭 해야 되냐고, 그니까 나에게는 부모님이 없는 거 같은 마음에 아빠는 목회가 더 중요해, 내가 더 중요해, 이렇게 얘기를 정말 공격적으로 처음 했던 거예요, 초등학교 때. 네, 네. 아, 아빠가 대답을 못 하시더라고요. 근데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되시는 말이었을까. 선택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아빠 입장에서는 정말 마음으로, 그래도 그런 것들을 고백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왜 딸이 귀하지 않았겠어요, 얼마나 같이 있고 싶고 놀아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겠어요. 그때 현실과 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러면 아빠 목회를 그만둬야지, 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 이법인 얘기를 했죠. 아니, 잘, 또 어린 마음에 불평도 하고 또 속상하기도 했겠지만, 또 아빠와 엄마는 나의 가장 큰 후원자, 나의 기도에 든든한 정말 아빠 엄마잖아요. 그래서 참 감사하고 고마운 부분들도 많이 있으실 것 같아요. 지금은 사실 감사밖에 없어요. 부모님은 지금도 저를 보시면 늘 미안해하세요. 그니까 그게 너무 죄송해요. 왜냐하면 어릴 때 못 해 준 게 너무 많다, 이런 얘기로 늘 시작하시거나.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은 게 그때는 그게 서운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저에게 못 해 준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심으신 거잖아요. 그거를 제가 고스란히 이제 축복으로 받는 거를 제가 이제 이제 지나보니까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음, 다 그 부모님 덕분이죠, 부모님이 심으신 덕분이고. 그래서 이제 저는 제 숙제는 또 그거예요. 저의 아이들에게는 또 제가 심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부모님이 하신 걸 본, 배워서, 또 그만큼 제가 또 하나님 앞에서 심어야 되는 게 또 제 축복이니, 그런 걸 보면서 늘 감사하죠. 지금은 사실 부모님의 열렬한 제가 팬이고 응원자, 지금 누구보다 이해하고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그렇게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 하세요, 어머님. 그러니까 그게 또 되게 마음에는 짠하네요. 그렇죠. 그렇게 강할 것 같은, 또 되게 냉철하고 그럴 것 같은 부모님, 어 순간 확 무너지거든요, 미안하다, 내가 마음은 그게 아닌, 이렇게 말씀하실 때 보면 또 자녀들이 찡해지고, 네. 그런데 이제 그 아들이나 딸들은 자기 부모님을 보면서 가정에 대한 환상을 꿈꾸고 배우자에 대한 환상을 꿈꾼다고 하잖아요. 우리 샤론 씨가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가정에 대한 그 또 굉장히 동경이 있었던 거 같고, 그 증거가 뭐냐면 미스코리아 당선자 중에 최연소로 결혼을 하셨어, 아 그러셨구나. 그래서 굉장히, 아니 어 정말 저렇게 아름다운 한국 미를 대표하는 분이 좀 미를 좀 더 이렇게 드러내 주, 대중에서는 그랬으면 했을 텐데, 왜 저렇게 빨리 결혼을 하시나 그랬거든요. 도대체 어떤 남편분을 어떻게 만나셨을까, 그 좋은 타이틀을 뒤로 하고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하신 걸까. 남편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아 저희 남편이요, 제가 그 미스코리아 대회 이제 끝나고, 어 24살 때 이제 베트남으로 봉사를 갔었어요. 봉사를 갔는데 그 봉사를 같이 가셨던 전도사님이 계세요, 이제 인솔해 같이 가셨던 전도사님이, 그 봉사 과정을 지나고 돌아와서 저한테 공항에서 생각나는 총각이 있는데 소개를 시켜 주고 싶으시대요. 그런데 한국에 없대요, 세 달 있다가 온대요. 그래서 소개팅을 예약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때는 이제 제가 여중여고 여대 출신이다 보니까 남자는 많이 만나봐야 된다, 소개팅에 대한 거부가 없었어요. 어 네 그럼 그때 제가 남자 친구가 없으면 소개해 주세요, 이랬는데 정말로 3개월 있다가 연락이 오신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 전도사님과 뭐 사석에서 밥을 먹거나 깊이 아는 사이가 아니니까, 그 소개팅에 전혀 기대를 하나도 안 했죠. 그런데 나갔는데, 음, 남편분이 나와 있었고, 네, 한 번을 만났는데 아 정말 좋은 분이다 싶은 마음만 가졌는데, 이제 두 번째 만나고 나서 좋은 분인 거 같다라는 얘기는 별로 이성적으로 안 끌렸다 얘기네, 그죠? 한눈에 반한 건 전혀 아니었어요. 역시, 에이, 에이 리얼이야, 데죠, 이제 한 눈에 반한 건 아니었는데, 두 번째 만났을 때 아이 분이라면 일생을 같이 할 수도 있겠다라는 그런 마음의 신호 같은, 그래서 되게 자연스럽게 그래서 마음, 아니 솔직하게 처음에 만났는데 딱 느낌이 외모가 뭐 이렇게 딱 와닿지 않았다는 얘기는, 네, 그죠? 어 뭐가 어떻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예요? 아 외모가요, 사실 저희 아빠가 제 이상형이었어요. 그런데 저희 아빠는 조금 외소하고 훤칠하고, 그런데 저희 신랑은 약간 운동 선수같이 듬직해요, 되게 남자답고. 그래서 저는 저희 아빠와 오빠만 보다가 만나 보니까, 아 너무 남자답고 조금 부담스럽나 막 이랬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그 이상형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는데, 이제 두 번째 만나다 보니까 이제 말이 너무 잘 통하고 정말 하나님이 붙여준 사람 같고, 그니까 너무 자연스럽게 이제 흘러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듣자 하니까 100일 만에 결혼을 하셨대요. 그렇게 아 약간 부담스러운데 하셨던 그분이 100일 만에, 아니 어떤 매력으로, 어 정말 이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되겠다라는 마음을 가지시게 된 거예요? 아니 신랑이 좀 진중하고 좀 성실하고 저보다 좀 인격이 더 나아요, 그릇이 큰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도 저를 많이 받아주고 또 잘 잡아 줄 거 같은 그런 좀 듬직한 분이거든요. 그래서 아 이런 사람이라면 일생을 함께 같은 방향을 보고 나아갈 수 있겠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그래서 이제 결심 아닌 결심을 혼자 하고, 이제 부모님 이게 데려갔어요. 제가 그런데 8월에 만났는데 9월에 추석이 있었거든요, 데려갔는데, 예, 제가 사실 부모님이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연애를 하면 결혼을 해야 된다는 주의에요. 그니까 연애를 신중하게 해라 이런 주셔서 소개팅은 많이 했지만 정작 사귀지는 못하는 스타일이 했어요. 그런데 남자 친구인 남편을 데려갔더니 아빠가 당연히 반대하시나요? 조금 거리를 두실 줄 알았는데, 어 마음에 드셨는지 어 교제를 하고 마음에 들고 정말 결혼을 할 것 같으면 오해를 넘기지 않는 게 좋겠다, 라고 하셔서 저는 내심 서운했어요. 그래서 8월에 8월 말에 만났는데 12월 초에 결혼을 했으니, 정말 어 아빠에게 다시 한번 놀라는 시간이었고. 그 친정집에서 그랬고, 시대, 시댁에서도요? 시댁에서는 정말 너무 신기한 게, 음 그 미스코리아 대회를 사실 실 막 찾아보지는 않잖아요, 요즘에 케이블에서 하기도 하고 이래서 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 대회 당시에 온 가족이 그걸 봤대요. 보면서 예, 시어머니와 이제 남편분과 이제 아가씨와 온 가족이 보면서 아 박샤론이 진이 될 거 같아라고 하시면서 저희 가족이니까 예, 그러시면서 이제 응원을 하셨다고. 그래서 그게 사실 인연이 또 닿아서 이제 남편분이 저를 소개받았다 했을 때 아씨가 소름이 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게요. 그 봤던 그분이 예, 그런데 보면서 신랑이 아가씨한테 아나 저 박시로는 언젠가 만날 거 같아라고 얘기를 했대요. 그러네요, 진짜. 그래서 이제 만난다고 했을 때 아가씨가 너무 이제 처음에 비웃었는데 만난다고 했을 때 너무 소름이 돋았다고 하시면서 이제 그래서 결혼이 오가고 하실 때도 이제 어머님께서도 너무 예쁘게 봐 주시고, 또 워낙 신앙이 있으신 분들이시다 보니까 또 싫어하지 않으시네 예쁘게 봐주셔서, 아 얼마나 예쁘겠어요, 그 영적으로 뭐가 통한 거예요. 이미 TV 그 멘트하는 거라든지 이름속에 하나님의 딸이구나라는 걸 딱 아시고, 기왕이면 하나님의 딸이 저렇게 잘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이제 우리 식구가 될 줄 몰랐던 거죠. 하면 지금 결혼한지 몇 년 되신 거죠? 지금 7년 됐어요. 7년. 그러면 솔직하게 어 지금도 그 처음 만났을 때만큼 남편이 좋고 변함이 없으십니까? 네, 감사하게, 이렇게 얘기하면 정말 카메라에서 돌을 맞을까 첫 회 때, 되지만, 그런데 감사한 거는 신랑이 되게 한결같아요. 그래서 뭐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존중해주고 예뻐해 줘서, 저는 참 그래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 샤론 씨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거군요? 네. 그러면 요거는 이제 남편한테 확인을 좀 곧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 우리 지금 그 샤론 씨의 말을 들어봤는데 남편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희가 전화 연결을 좀 해봤습니다. 남편분 얘기를 들어볼게요.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어 목소리가 너무 멋지시네요. 여기 CBS 새롭기 아수 서입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네, 아 아니 지금 샤론 씨가 남편분 자랑을 한참 하셨어요. 아, 네네. 아니 그 미스코리아 방송을 보시면서 아내를 처음 보셨다고 했는데, 네. 미도 끝도 없이 동생한테 어 저 여자 내가 언젠가 한번 만날 거 같아, 이렇게 얘기하셨다게 사실입니까? 아 예, 사실이고요. 그 네, 사실 이렇게 계속 프로를 앉아서 보는 상황도 아니었고, 네. 제가 이제 잠깐 조깅을 나가려고 지나가다가 TV 화면에 차치 모습 탁 치더라고요. 네. 그런데 제가 두 가지를 얘기했는데 첫째는 아 저 사람이 1등했으면 좋겠다에 예, 그 얘기했고. 그리고 아 근데 언젠가는 만날 거 같아 그러면서 나갔죠. 네, 아니 그 무슨 자신감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까? 미스코리아 진과 선이 될 사람인데 무슨 자신감이었습니다. 어 그렇다고 뭐 제가 그런 말을 난발하는 사람도 아니긴 한데, 네. 글쎄요 그냥 그런 생각이 그냥 번뜩 들었던 거 같습니다. 아 그러면 그 그렇게 아 내가 만날 거 같아라는 마음 그리고 진이 됐으면 좋겠어라고 참 좋게 봤던 그 미스코리아 선이 된 박샤론 씨를 직접 딱 딱 만났단 말이에요. 딱 만나셨을 때 어떠셨는지 처음 딱 만 만난 그 순간 어떠셨어요? 처음 만났을 때 일단 뭐 되게 자연스러웠던 거 같아요. 예, 낯설지 않으셨다 얘기군요? 네, 네, 네. 아니 샤론 씨는 이제 결혼 7년 차로서 남편을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설레 있는 마음으로 만난다, 이렇게 대답하셨고. 네, 네. 남편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야, 뭐 대답 잘해, 아 지금 제 한 3초 머뭇거리고 계시네요. 네, 일단 그렇게 생각해 주니까 되게 고맙고요. 네, 예. 그리고 뭐 사실 오늘 아침에도이 출근할 때 이렇게 모습 보는데 되게 예쁘더라고요. 네, 네, 뭐 아직 어 주위에서 사람들이 그런 질문 되게 많이 하는데 아직도 되게 연애하는 기분입니다. 아 참 예쁜 부부에요. 자 그러면 남편분께서 딱 보셨을 때 나의 아내 박샤론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해 주신다면 어떤 이야기 해 주실까요? 이 마음이 되게 선한 사람이에요. 예, 느껴져요. 네, 네. 그 항상 이렇게 어 생각하는게 되게 뭐 선하고 예쁘다고 얘기를 해야 되나, 네, 네. 그런데 그러면서도 사실 어 항상 재밌는 면도 많고, 어 네. 그래서 어쩌면 그 5년 6년 7년 지나도 계속 새롭게 느껴지는 게, 음, 속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거, 네, 네, 네, 네. 아니 우리 샤론 씨에게 어 평상시에 그 잘하지 못한 얘기라는 꼭 그 뭐 하고 싶은 이야기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 이런 얘기 있으시면 오늘 방송을 통해서 한번 하셔도 좋을 것 같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뭐 사실 점보다는 조금 모자랍니다. 정 인간이죠, 되게 멋있어요. 한 97 점 되는데, 또 그 나머지 3점 같이 맞춰 나가는게 또 인생의 묘미인 거 같아서, 네. 항상 고맙고, 네, 앞으로이 지금처럼 그냥 계속 쭉 예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네, 네, 우리 샤론 씨도 남편분에게 이따 집에 가서 뵐 거지만, 그래도 전화 왔는데 한 마디 해 주셔야지. 어, 어 되게 수줍네요, 어, 어음 저도 이제 오빠가 한결같이 신랑이 한결같이 제 옆에 있어 주고, 제가 부족한 부분도 예뻐해 주고 감사해 줘서 늘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런 얘기를 늘상 해요. 그래서 사실 이렇게 방송해 하는 게 더 너무, 그러면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뭐 사랑한다지 뭐 여보 사랑해요, 사랑해 예. 네. 아유 오늘 이렇게 화 전화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두 분을 위해서 저희도 기도하고 어 행복한 가정 되시기를 축복하 있습니다. 네, 너무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네. 야, 야 아니 남편분이 목소리가 굉장히 차분하시고, 아까는 뭐 이렇게 굉장히 남성적이라 그래서 여보세요 뭐나 이렇지 알았는데 굉장히 차분하네요. 맞, 차분해요. 참 예쁜 부부, 딱 알콩달콩 참 아름답게 사는 부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금 또 샤론 씨가 다른 일을 또 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 일이 현재 NGO 단체 대표직을 또 맡고 계시다고. 네, 어떻게 이런 사역을 또 하시게 되셨는지? 아 너무 감사하고요. 사실, 음 제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미스코리아가 되겠다,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하고, 많은 이제 단체들과 같이 봉사의 현장에 있게 해 주시고, 또 사회복지를 또 제가 전공을 다시 했어요,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제가 크진 않아도 정말 봉사하면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막연하게. 그런데 작년에 이제 한 10년 정도 이제 인연을 가져온 선교사님께서 캄보디아에 거주하시는 분인데, 그분이 이제 캄보디아에 포파라 지역에 학교를 지으시는 비전을 갖고 계셨어요. 그런데 저와 비전이 맞아서 저도 같이 이제 중보하며 이제 교재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이제 그곳을 털을 닫고 학교를 지으신다 얘기에, 그 그 사역을 지원하기 위해서 이제 급하게나마 이제 재단을 만 만들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음 상황이 너무 제가 뜻한 것과 다르게 너무 급하게 흘러가서 제가 대표가 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이제 너무 미흡하고 이제 부족해서 지금 좀 민망한데, 단체 이름이 어떻게 되죠? 뷰티풀 그레이스예요. 네. 그래서 작년에 이제 시작하게 됐고, 지금 올해부터 이제 새롭게 열심히 이제 아이들 가르치고 먹이고 하는 사역 감당하고 있어요. 사단 법인인가요? 네, 사단법인입니다. 네, 뷰티풀 그레이스, 네. 어 대표님, 샤론 씨가 그런 일 잘 감당하길 기도해 드릴 건데, 아 감사합니다. 이 뷰티풀 그레이스 말고도 굉장히 이제 다양한 나눔과 섬김의 활동을 쭉 이어 오셨어요, 그동안. 네, 네, 미스코리아 당선되고 나서 계속 해오신 일들이 있으신데. 당선되고 나서 사실 하나님께서 이 사단 법인을 가는 길에 그 비전을 위해서 저에게 훈련시켰던, 훈련시켜 주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뭐, 네, 주로 홍보대사 일들을 많이 하면서 그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또 홍보하는 일들을 많이 감당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 아 아이 사역에서 내가 홍보하는 것도 너무 좋지만, 실질적으로 내 삶을 좀 떼어서 같이 하면 좋겠다라는 이제 작은 비전을 가졌거든요. 이제 크진 않아도 이제 내가, 음 평생을 두고 숙제처럼 내 삶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걸 하나님 앞에 이제 어떻게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뭘 하면 좋을지 하나님께 구하다가 이제 이런 부분에서 이제 사단 법인을 만들어서 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정말 미약하지만 지금 학교를 세운 그 포이펫 지역을 놓고 한 20년 정도 섬기다 보면 정말 하나님께서 또 아름답게 저를 통로로 사용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고 지금도 너무 믿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네, 참 지금까지도 참 많은 일들을 해오셨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하셨잖아요.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을 하시게 될지 또 어떤 기도 제목이 있으실지 궁금해요, 나눠주시면 저희 함께 기도할게요. 네,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제가 계획하고 제가 행동했던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말 많이 이끌어 주셨어요. 하나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조각조각 기적처럼 이루어주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 저도 제 인생이 너무 기대가 돼요. 그런데 지금 제가 기도 제목을 요청하고 싶은 거는, 지금 뷰티풀 그레이스가 시작한 지 정말 몇 달 되지 않아서 이제 시작하는 단계인데, 정말 하나님께서 저의 생각이나 제 어 제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하는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하시는 그런 정말 귀한 일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니까 저도 부족해서 아 이게 하면서도 늘 기도를 부탁하는 게, 제 생각만으로 하게 될까 봐 그게 제일 두렵더라고요. 그러니까 제 생각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이 일을 하시는데 있어서 정말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수 있으면 그게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그렇게 기도해 주세요. 오늘 샤론 씨를 만나면서 저희뿐 아니라 많은 시청자분들이 어 왜 이름을 샤론이라고 부모님이 지으셨는지, 그리고 생각지 않은 미스코리아에 당선을 시키셔서 이 자리에까지 오게 하셨는지, 그 많은 이유를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어요. 근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샤론 씨가 정말 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마음 속에도 미스코리아로서 자격이 있는 대표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쭉 쭉 그 대표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멋진 딸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엄마가 되시고 좋은 아내가 되셔서 작은 곳에서부터 행복한 그런 샤론 씨가 되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저희가 네, 응원하고 축복하였습니다. 아멘입니다, 네. 씨 정말 오늘 행복했고요. 어 또 아름다운 모습으로 뵙도록 저희가 기도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꽃향기가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그윽한 사람의 향기에 비할 수 없겠죠.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답고 진한 믿음의 향기를 피어내고 계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요. 그 삶의 향기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네, 세상에 많은 꽃들 가운데 다 저마다 향기가 있지만요. 어떤 향기는 그냥 코끝에 살짝 스쳐 지나가는 향기도 있는가 하면, 아 돌아섰는데 오랜 시간 동안 여운이 남고 그윽한 향기로 남는 꽃도 있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인생은 스쳐 지나가는 향기로운 사람이 아니라, 그윽하게 오랫동안 베어지는 그런 향기를 드러내는 자극적이진 않지만 그런 그윽한 인생, 그런 사람 되기를 원하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향기를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주간 우리의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새롭게 하소서 오늘 여기서 인사 드리고요. 다음 시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미스코리아 박샤론, 그녀의 삶과 신앙 간증: 샤론의 꽃처럼 피어나는 그리스도의 향기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박샤론 씨가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여 10년 만에 다시 한번 깊이 있는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2006년 미스코리아 선 당선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고뇌와 신앙을 통한 극복, 그리고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요,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미스코리아의 성공담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마치 샤론의 꽃처럼, 어떤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신앙의 꽃을 피우고 향기를 전하는 박샤론 씨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뜻밖의 미스코리아 도전,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박샤론 씨는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오히려 평범한 대학생 시절 우연히 찾아온 기회였다고 회상합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미스코리아 출전을 권유받은 적이 없으며, 오히려 스스로를 "굉장히 평범한 아이"였다고 묘사하는데요, 대학교 1학년 때, 여러 도전에서 실패를 거듭하던 중 집 앞 전봇대에 붙은 '미스 인천 선발대회'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복지관에서 주최하는 이례적인 대회였기에 참가비가 무료라는 점도 그녀의 도전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미스 인천 '진' 당선은 그녀를 전국 대회로 이끌었고, 이는 곧 2006년 미스코리아 '선'이라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박샤론 씨는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며, 계획되지 않았던 길이 열리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꼈다고 전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기회를 통해 인생의 방향이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평범함 속에서도 특별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미스코리아 당선 후 찾아온 시련, 그리고 신앙의 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스코리아 당선 직후, 박샤론 씨는 갑작스러운 관심과 평가, 쏟아지는 댓글과 루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으며 우울증까지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늘 평범하게 살아왔던 그녀에게 외모에 대한 평가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인터넷 상의 비난과 악플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특히 목회자 자녀라는 배경은 더욱 큰 짐으로 느껴졌는데요, 그녀는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귀한 가치"를 잃어버릴 뻔 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 속에서 그녀는 신앙의 힘을 의지하며 극복해 나갔습니다.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매달리고, 가족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는데요, 기도와 믿음은 그녀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고, 삶의 방향성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샤론 씨의 경험은 화려함 뒤에 숨겨진 고통과, 시련을 통해 더욱 깊어지는 신앙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또한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신앙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달합니다.

목회자 가정에서 자란 유년 시절,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 박샤론 씨는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가난과 부모님의 부재를 경험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천막 교회에서 시작하여 지하 예배당, 상가를 거쳐 이사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녀의 가족은 교회 사택에서 살았습니다. 넉넉지 못한 환경과 교회 일로 바쁜 부모님 때문에, 그녀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는 시간이 많았는데요, 어린 시절 그녀의 꿈은 "내 방을 가져보는 것"일 정도로,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갈망이 컸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서운함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는 목회를 꼭 해야 하냐"는 질문으로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박샤론 씨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을 깨닫게 되었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어려움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부모님의 신앙적인 가르침은 그녀의 삶의 중요한 ভিত্তি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목회자 자녀로서 겪는 고충과 함께,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이 자녀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보여줍니다.

100일 만의 결혼, 그리고 행복한 가정. 미스코리아 당선 이후 최연소로 결혼을 발표하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던 박샤론 씨는, 남편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100일 만의 초고속 결혼 스토리를 공개했습니다. 베트남 봉사활동에서 만난 전도사님의 소개로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요, 첫 만남에서는 외모적으로 끌리지 않았지만, 대화를 통해 깊은 신앙심과 따뜻한 인품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남편의 진중하고 성실한 모습, 그리고 넓은 마음에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고, 만난 지 100일 만에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미스코리아 대회 당시 박샤론 씨를 응원하며 "저 사람을 언젠가 만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인데요, 마치 운명처럼 이어진 인연은 결혼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결혼 7년 차, 박샤론 씨는 여전히 남편과 "연애하는 기분"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전하며, 변함없이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주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결혼 이야기는 운명적인 사랑과 함께, 신앙 안에서 맺어진 가정의 소중함을 보여줍니다.

NGO 단체 '뷰티풀 그레이스' 대표, 섬김과 나눔의 삶. 미스코리아 당선 당시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미스코리아가 되겠다"고 약속했던 박샤론 씨는, 방송 활동뿐 아니라 NGO 단체 '뷰티풀 그레이스' 대표로서 섬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봉사를 통해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비전을 품게 되었고, 10년간 인연을 맺어온 선교사님의 캄보디아 학교 설립 비전에 동참하면서 '뷰티풀 그레이스'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 포파라 지역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고 먹이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요, 그녀는 앞으로 20년간 이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홍보대사 활동을 통해 봉사 현장을 경험하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고, '뷰티풀 그레이스' 설립은 그녀의 오랜 비전을 실현하는 중요한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박샤론 씨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귀한 일들이 되기를" 기도하며, 개인의 생각과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사역을 감당하고 싶다는 겸손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미스코리아 이후의 삶이 단순히 화려한 방송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섬김과 나눔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꽃피워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약속을 지키고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삶. 박샤론 씨의 간증은 단순히 미스코리아의 성공 스토리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상치 못한 미스코리아 당선, 시련과 극복, 행복한 가정, 그리고 섬김과 나눔의 삶까지, 그녀의 인생 여정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샤론의 꽃처럼 어떤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신앙의 꽃을 피우는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용기를 줍니다. 박샤론 씨의 삶은 말로만이 아닌 삶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우리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전합니다. 앞으로 그녀가 '뷰티풀 그레이스' 대표로서, 그리고 방송인으로서 펼쳐나갈 더욱 아름다운 행보를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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