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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쫓던 무당 박에녹, 예수 만나 목사가 된 감동 실화

요약

귀신 쫓던 무당, 예수 만나 귀신 쫓는 목사 되다: 박에녹의 파란만장 인생

귀신 쫓는 이야기: 박에녹 목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오늘 모신 특별한 손님은 바로 박에녹 목사님이신데요,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귀신을 먼저 만나 십수 년 동안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신다고 하는데요,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탄, 마귀, 귀신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재미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는데요, 박에녹 목사님을 직접 모시고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사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신과의 첫 만남: 어머니의 환영

목사님께서는 귀신을 만나셨다고 소개되었는데요, 어떤 귀신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오늘 해야 할 이야기가 참 많은데요, 제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 또한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착실하게 공부하고 명문대학에 진학했으며,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했고, 대기업에도 근무했었습니다. 정말 사랑했던 어머니께서 어느 날 갑자기 피를 토하시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지만, 배를 열어보니 이미 암이 너무 많이 퍼져서 한 달에서 한 달 반밖에 살 수 없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수술을 포기하고 퇴원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당시에는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나름대로 여러 가지 종교적인 방법을 시도해보았습니다. 불교적인 방법, 기독교적인 방법, 심지어 굿까지 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당시 저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어머니 병간호는 물론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죄책감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 싶은 마음은 날마다 저를 짓눌렀습니다. 매일 술을 마시는 것으로 슬픔을 달래려 했지만, 오히려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저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빨리 죽어서 어머니를 만나야겠다’는 어리석은 결심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죽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 않습니까? 맨정신으로는 감히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술을 잔뜩 마시고 철길가에 앉아 죽을 용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맞은편에서 큰 트럭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순간이다 싶어 트럭에 뛰어들었지만, 술에 너무 취했던 탓인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트럭은 급브레이크를 밟아 간신히 멈춰 섰고, 저는 차에 치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트럭 운전사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죽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신경안정제, 기침약, 감기약 등 각종 약들을 잔뜩 사서 삼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막내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15살이었던 막내 여동생, 내가 죽으면 이 어린 동생은 얼마나 더 슬퍼할까 하는 생각에 차마 죽을 수 없었습니다. ‘죽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어, 스무 살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죽는 것을 참아보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자살을 포기했습니다. 그 후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하여 코오롱이라는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코오롱 입사 후 4주간의 연수 훈련을 받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피곤했던 저는 잠시 몸을 기대어 쉬고 있었는데, 분명히 돌아가신 어머니가 제 눈앞에 나타나 걸어 들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라 몸을 일으키며 “엄마!”하고 외쳤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먹고 싶은 것 아껴가며, 입고 싶은 것 참아가며 자식 새끼 길러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내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내 생일을 잊어버리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께 달려가려 했지만, 어머니는 눈앞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깜짝 놀라 달력을 확인해보니, 정말 그날은 음력 6월 12일, 어머니의 생신이었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원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죽은 사람의 첫 번째 생일에 환영이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스스로 효자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 생신조차 잊고 있었던 불효자였던 것입니다. 죄책감과 슬픔에 밖으로 뛰쳐나가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켜놓고, 숟가락을 밥그릇에 거꾸로 꽂아두고 젓가락을 반찬 위에 아무렇게나 옮겨놓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음식점 주인은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쫓아내려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렇게 어머니 생신을 챙겨드렸고, 연수원에서 무사히 연수를 마치고 본사로 배치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제가 봤던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만났던 귀신이었던 것입니다. 사탄 마귀 귀신은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속이고 들어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당시 저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귀신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 저를 속였던 것입니다.

무당과의 만남, 그리고 내림굿

본사에서 근무하면서도 어머니 생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착하셨던 우리 어머니가 왜 그렇게 몹쓸 병에 걸려야만 했을까?’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편안하게 잘 계셔야 할 텐데...’ 어머니의 영혼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나 알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방법을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이었기 때문에, 점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미아리, 정릉, 신촌, 연세대학교 근처에는 유명한 무당들이 많았습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대학교 근처 무당이 조금 더 똑똑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연세대학교 앞으로 갔습니다. 대학교 근처 무당은 왠지 모르게 더 똑똑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막상 찾아간 무당은 아프리카 토인처럼 머리를 부글부글하게 부풀리고, 주먹만한 귀걸이를 하고 있는 아줌마였습니다. 무당 아줌마는 저를 보자마자 첫 마디를 던졌습니다. “다 알면서 뭘 물어보러 왔어? 죽은 네 엄마한테 물어봐라, 이놈아!”

황당했던 저는 “아줌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무당은 “네 엄마가 원이 많고 한이 많아서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아다니다가 네 몸에 와서 붙어 계시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더 이상 듣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에이, 엉터리 무당집에 잘못 들어왔네, 아프리카 토인 같은 게...’ 속으로 혀를 차며 무당집을 나왔습니다. 미아리, 정릉동의 다른 점집들도 가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 제가 귀신 들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왜 귀신이 들린다는 거야? 말도 안 돼!’ 저는 무당들의 말을 무시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세 군데 점집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속으로 조금씩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진짜인가? 정말 내가 귀신이 들린 건가?’ 찝찝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유명하다는 점집을 한 군데만 더 가보기로 했습니다. 국무총리 공관 앞에 파란 불을 켜놓는 무당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렵게 찾아갔습니다.

소문대로 그 무당 역시 제가 귀신 들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이죠. 무당은 제가 귀신 들린 것이 확실하며, 그 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저 대신에 아내나 어린 여동생이 대신 신을 받아야 한다는 끔찍한 예언까지 덧붙였습니다. 가족들에게 해가 미칠 수 있다는 말에 저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수없이 많은 밤을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고민했습니다. 결국 저는 무모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 누군가 무당이 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희생하자. 그래도 남자인 내가 하는 게 낫겠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저는 내림굿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림굿을 받는다고 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연기자 정호근 씨, 재벌 총수 등 유명 인사들도 비슷한 이유로 내림굿을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족, 특히 자식에게 해가 미칠까 두려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보이스피싱처럼, 가족을 볼모로 잡으면 누구라도 쉽게 무너지는 것이 인간의 나약한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저는 나쁜 무당에게 걸렸습니다. 처음에 어렵게 돈을 모아 무당에게 갖다 줬지만, 무당은 돈만 받고 굿은 제대로 해주지 않았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두 번째 무당에게 다시 돈을 모아 찾아갔더니, 이번에는 산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했습니다. 산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면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 준다고 감언이설로 저를 속였습니다. 산을 헤매며 기도하면 신령한 기운이 생겨 영빨이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귀신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는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당시에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사기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림굿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을 열심히 다녀봤지만,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었습니다. 분명히 귀신의 말소리가 들리고 느껴지긴 했지만, 어떨 때는 맞고 어떨 때는 틀렸습니다. 귀신 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사람 목소리와 똑같이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어린아이 목소리, 여자 목소리, 늙은 남자 목소리 등 다양한 귀신들이 번갈아 가며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머니 귀신이 붙었다고 했는데, 어머니 목소리도 들리냐고요? 아닙니다. 귀신도 종류가 워낙 많아서 어머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산에서 기도할 때 어린 여자아이 귀신이 나타나 “나 춥고 배고파, 쌀 줘, 옷 줘”라고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무섭지 않았냐고요? 귀신 자체보다는 사람이 더 무서웠습니다. 강도나 산짐승을 만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는 원래 겁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산에서 무릎 꿇고 눈을 감고 기도할 때, 누군가 뒤에서 머리를 내려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강아지를 데리고 산에 갔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데려가 제가 기도하는 자리 옆에 묶어놓고 기도했습니다. 강아지가 짖으면 누군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강아지는 귀신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강아지는 귀신을 보지 못하냐고요? 강아지가 귀신을 보는지 안 보이는지는 제가 강아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귀신을 봤을 때 강아지가 짖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당들마다 개에 대한 이야기가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무당은 개가 짖어서 귀신이 달아나기 때문에 개를 키우면 안 된다고 하고, 어떤 무당은 개는 귀신과 아무 상관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개가 아니기 때문에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귀신의 모습은 어떠냐고요? 제가 봤던 귀신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람과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영상이나 영화에서 흔히 묘사되는 피 흘리고 억울해하는 귀신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옷도 제대로 입고 있었고,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습니다. 무당마다 귀신을 감지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무당은 귀신의 모습이 보이고, 어떤 무당은 느낌으로만 알고, 어떤 무당은 귀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무당의 영적 수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죠. 제가 느끼기에는 귀신과 사람은 분명히 구별이 되었습니다.

기도를 계속 하셨는데, 어떻게 되셨냐고요? 무당들은 예언, 즉 점을 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예언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습니다. 예언이 틀리면 무당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대로 다시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정식으로 내림굿을 받았습니다. 저는 정말 끈질기게 무속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무당을 찾아가 다시 내림굿을 받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나라 무당, 큰 무당 등 유명하다는 무당들을 찾아다니며 내림굿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서 초청 강연까지 했다는 우옥주 보살, 아들을 하버드 대학교에 보냈다는 창신동 탁 보살 등 소위 엘리트 무당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무속계에도 엘리트 코스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말문이 터지다: 무당의 삶 시작

결국 말문이 터졌습니다. 영적으로 귀신과 소통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무속 용어로 말문이 터졌다고 표현하는데요, 내림굿은 귀신을 몸에 받아들이는 의식이고, 말문이 터지는 것은 귀신과 영적으로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똑같이 귀신이 들렸어도 점을 못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를 ‘숨은 대신’이라고 부르는데, 몸에는 귀신이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멍텅구리 귀신이라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지 않습니까?

접신이라는 것을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할 수도 있냐고요? 접신은 내림굿을 통해 신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귀신이 24시간 몸에 붙어 있으면 사람이 죽는다고 합니다. 마치 전기처럼 직류와 교류가 있지 않습니까? 교류는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지 않습니까? 점을 볼 때만 귀신을 몸에 불러들였다가 다시 내보내는 방식으로 접신을 한다고 합니다. 제가 신내림을 여러 번 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정말 잘하는 무당을 찾아 헤맸던 것 같습니다. 일본 와세다 대학 초청 강연을 했다는 우옥주 보살, 하버드 대학 아들을 뒀다는 탁 보살 외에도 수많은 무당들을 만났습니다.

말문이 터지고 영적으로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때부터 새로운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예언을 하게 되는 것이죠. 당시 저는 코오롱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직장 동료가 출근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야, 너 오늘 오른쪽 눈 조심해”라고 말했습니다.

동료는 아침부터 재수 없게 무슨 무당 같은 소리냐며 짜증을 냈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습니다. 얼마 후, 그 동료가 떨어진 지우개를 줍다가 책상 모서리에 눈을 부딪혀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10%나 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다친 것입니다. 제가 했던 말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오른쪽 눈을 조심하라고 말할 때, 옆에서 누군가 ‘저 사람 곧 오른쪽 눈을 다칠 거야’라고 속삭여 주는 것 같았냐고요?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 때는 그냥 저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또 다른 경험도 있습니다. 같은 부서 여직원이 있었는데, 평소 날씬했던 그녀가 어느 날 배가 남산만큼 불러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의실로 불러 “혹시 임신했냐”고 물었더니, “다음 달에 결혼해요. 임신한 거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배가 불러 있는 것을 보고 임신 사실을 알아맞힌 것입니다.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원치 않게 사람들의 비밀을 알아채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말을 참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이러다 회사에서 쫓겨나겠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저를 이렇게 만든 무당들을 원망하며, 무당들이 이런 상황을 막을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무당들을 전국으로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정법사와의 만남: 다섯 가지 처방

그렇게 전국을 헤매다 정법사라는 스님 출신 무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법사는 무당 세계에서도 꽤 유명한 인물이었고, 법문도 잘하고 목소리도 좋고 점잖은 사람이었습니다. 일반 무당들과는 차원이 다른 지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무당들을 만나봤지만, 모두 똑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귀신을 이기냐, 헛고생하지 말고 신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상도 깔꾸리 보살, 전라도 쪽집게 보살, 충청도 멍 보살 등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무당 이름도 촌스러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정법사는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곱게 자란 사람이 그 험한 신의 길을 어떻게 가려고 하는가, 하지 말게. 사회생활, 직장생활 하면서 귀신을 막는 방법이 있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게 뭔데요?” 라고 물었습니다. 정법사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귀신들을 대우해주고 달래주는 진적굿을 1년에 한두 번 할 것. 둘째,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할 것. 셋째, 밤마다 귀신들에게 기도를 할 것. 넷째, 귀신들이 좋아하는 새소리나 신명나는 음악을 많이 들을 것. 다섯째, 직접 돈을 들여 굿을 하거나, 돈이 없을 때는 다른 무당들 굿할 때 신복을 입고 3분이라도 펄쩍펄쩍 뛰면서 신을 눌러줄 것. 마지막 방법은 동냥 굿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동냥 굿은 돈이 없는 무당들이 굿판에 참여하여 떡고물을 얻어먹는 구걸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방법을 따르면 몸에 귀신이 있더라도 직업 무당은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정법사의 설명이었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이 다섯 가지를 다 하는 것이 가능하겠냐고요? 직장 다니면서 받는 월급, 아내 몰래 퇴직금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까지 쏟아부어 굿을 했습니다. 산을 다니는 것은 회사 산악회에 가입하여 동료들과 함께 산에 갔습니다. 동료들은 등산을 즐길 때 저는 산속 신당에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며 혼자 기도했습니다. 밤에 몰래 산에 올라가 귀신에게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사물놀이, 새소리 등 귀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사물놀이 동호회에 가입하여 꽹과리, 징, 장구, 북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심적으로 얼마나 힘드셨겠냐고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귀신이 찾아와서, 왜 내가 신을 받아들여야 하고 굿을 해야 하는지, 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비참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는지, 내가 이렇게 되려고 명문대학 나오고 군 장교까지 지냈나 하는 생각에 억울하고 원통했습니다. 제 동료들은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전세금을 늘려가는데, 저는 오히려 가진 돈을 굿 비용으로 탕진해야 하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굿 비용이 꽤 비싸냐고요? 굿 종류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내림굿 같은 큰 굿은 예전에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이나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더 비싸겠지요. 내림굿을 할 때는 여러 악기가 동원됩니다. 징, 꽹과리, 장구, 대금, 피리, 해금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신을 부릅니다. ‘신장대’ 라는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먼지털이처럼 생긴 것으로 길이는 한 뼘 정도 됩니다. 종이 조각을 나풀나풀하게 붙여놓은 신장대를 책상에 붙잡고 있으면, 악기 연주 소리와 함께 신기하게도 힘이 저절로 들어갑니다. 저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힘을 주고 버티고 있는데, 신장대가 저절로 움직이고 팔이 저절로 들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귀신이 몸에 들어오는 순간인 것입니다.

신이 내리면 무당들은 “신령님 오셨다!” 하며 더욱 격렬하게 악기를 연주합니다. 다섯 시간, 여섯 시간 넘게 굿을 해도 몸으로는 신이 오는 것이 느껴지는데,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직 신과 제대로 교류가 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새벽 3시쯤, 큰 무당이 저에게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한겨울 영하 10도의 날씨에 찬물로 목욕을 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고작 1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옷을 벗고 찬물로 목욕하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려 다시 굿을 시작했습니다. 한참 굿을 하던 중, 드디어 저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불쌍한 내 자손아, 내가 왔다, 내가 네 애비다!” 라는 귀신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귀신의 목소리가 나올 때 제정신이었냐고요? 네, 제정신인 상태에서 귀신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그 후로 어릴 때 병으로 죽은 누나 귀신, 6.25 전쟁 때 북한군에 끌려가 돌아가신 외삼촌 귀신, 할아버지 귀신, 할머니 귀신 등 조상 귀신들이 줄줄이 제 입을 통해 말을 쏟아냈습니다. 한참 동안 귀신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더니,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내림굿은 끝났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귀신과의 결별

신내림을 받고 굿을 하는 동안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가족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장모님은 권사님, 처형은 신학대학을 졸업했고, 처제들도 모두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성가대 활동을 했습니다. 아내 역시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만약 제가 무당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족들이 저를 정신병자 취급할 것이 뻔했습니다. 인정해주기는커녕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몰래 굿을 했던 것입니다.

왜 가족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했냐고요? 저도 처음에는 속았던 것입니다. 처음에 봤던 귀신이 정말 어머니라고 믿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이 바로 귀신의 교묘한 술책이었던 것입니다. 귀신은 저의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 저를 속였고, 저는 귀신의 덫에 걸려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무당으로 생활하면서, 귀신을 떼어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냐고요? 계기는 많았습니다. 귀신 세계는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매우 더럽고 추악한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무당을 ‘선생님’, ‘보살님’하며 존경하지만, 무당들끼리는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며 험담하기 바쁩니다. 무당 넷에서 열 명이 한 팀이 되어 굿을 하는데, 겉으로는 서로 칭찬하지만 뒤돌아서면 비난하고 헐뜯고 욕설을 퍼붓습니다. 이웃 사랑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한 세계였습니다. 기독교의 이웃 사랑, 중보 기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무당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합니다. 귀신들은 거짓말쟁이라고 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죽을 때 혀를 숨기 때문에 혀가 말려 들어가 죽는다고 하지만, 무당들은 죽을 때 혀를 내밀고 죽는다고 합니다. 혀로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무당들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죽을 때 혀를 내밀고 죽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무당들은 신경질도 잘 내고, 질투심도 엄청나게 강합니다. 사람을 보면 굿을 강요하고, 굿을 하지 않으면 온갖 저주를 퍼붓습니다. “굿을 하면 돈벼락을 맞게 해줄게, 집을 사게 해줄게” 등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암 환자나 백혈병 환자에게는 ‘대수대명굿’이라는 끔찍한 굿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환자 대신 다른 사람을 죽게 만드는 굿이라는 것입니다. ‘나만 살면 된다, 굿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귀신을 함부로 떼어냈다가 잘못될까 봐, 가족들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두려워 섣불리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주변에 끔찍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집안에 시집가 잘 살던 누나 집에 갑자기 부도가 난 것입니다. 110억 원이라는 엄청난 빚 때문에 남편은 도망가 버리고, 누나는 세 아이를 데리고 야반도주하여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귀신들은 누나를 당장 내쫓으라고 난리를 쳤습니다. “재수 없게 예수 믿는 여자를 집에 들이다니, 당장 내쫓아!” 귀신들은 사납게 날뛰었지만, 오갈 데 없는 누나를 내쫓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누나와 조카들을 저희 집에서 함께 살게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누나가 40일 작정 철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귀신들은 더욱 격렬하게 날뛰었습니다. “철야 기도 못 가게 막아라! 당장 쫓아내라!” 귀신들은 밤낮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누나에게 화를 냈습니다. “누나, 그렇게 능력 없는 예수가 뭐가 좋다고 계속 믿어? 부도 하나 막아주지도 못하는 예수를 왜 믿어? 내가 집주인인데 내가 싫어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세상 사는 법도 몰라? 그러니 당연히 부도가 나지!” 저는 누나를 몰아붙였습니다.

누나는 그저 눈을 감고 “주여” 한마디 할 뿐이었습니다. 영적인 싸움이라고 하는데, 누나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속상하면 그저 “주여” 하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어쨌든 누나는 날마다 철야 기도를 갔습니다. 처음에는 모른 척했지만, 어느 날부터 제가 누나를 교회까지 데려다주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앞에 누나를 내려주고, 저는 차 안에서 갓세븐의 ‘테이블’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염불을 외우고 목탁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불교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러니였습니다. 새벽 1시 반, 2시쯤 되면 누나가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누나는 늘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도망가 버리고, 아이는 셋이나 딸린 마흔 살의 누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누나가 방긋방긋 웃으며 교회에서 돌아왔습니다. “웬일이야?” 하고 물었더니, “나 오늘 진짜 은혜 많이 받았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나의 힘들고 어려운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시고, 반드시 극복하게 해주실 거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야!” 라고 활짝 웃었습니다. “좋기도 하겠다, 망한 주제에...”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지만, 누나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스님 출신 정법사에게 일어났습니다. 제가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정법사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병문안을 갔더니, 정법사는 죽기 직전의 모습이었습니다. 췌장암 말기로 온몸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황달을 넘어 흑달까지 온 상태였습니다. 정법사는 제 손을 잡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복의 동생,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 내가 평생을 법사 생활하면서 귀신들을 얼마나 잘 섬겼는데, 내 꼴이 이게 뭔가? 나 이제 다 죽게 되었네. 굿도 수없이 많이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더라. 그런데 병원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르더라. 돈 한 푼 달라는 소리도 안 하고, 와서 침대 시트도 갈아주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심지어는 몸도 씻겨주더라. 그래서 말인데, 나 이제부터라도 예수 믿기로 했다. 동생도 아무 소리 말고 예수 믿게.”

저는 속으로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헛소리를 한다더니, 정법사도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보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이 정법사를 만난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며칠 후 정법사는 세상을 떠났고, 죽기 직전에 극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법사의 죽음은 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법사가 천국에 갔지만, 저에게는 더욱 무서운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이 어느 날 저를 보자마자 반갑게 뛰어오며 “아빠, 무당이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너 그거 어디서 들었어?” 라고 물으니, 아들은 “우리 반 지혜라는 아이 엄마가 무당이래. 어른이 맨날 방울 흔들고 징 두들기고 펄쩍펄쩍 뛰고 춤추는데, 그게 뭐야?” 라고 되물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무당은 귀신하고 친하게 지내고, 귀신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야” 라고 설명해줬습니다. 아들은 “아빠, 그럼 무당은 나쁜 사람들이네? 아빠는 무당하고 친하게 지내면 안 돼, 알았지?” 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내 새끼에게 무당 아빠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할 수는 없다. 내 아이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 는 강렬한 열망이 솟아올랐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이 끔찍한 무당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울면서 밤새도록 고민했습니다. ‘그래, 죽든지 살든지, 내 몸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 보자. 귀신이 제일 싫어하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 드디어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려다 잘못되면 어떡하지? 귀신에게 보복당하면 어떡하지? 귀신 때문에 죽게 되면 어떡하지? 정말 괜찮을까?’

고민하던 중, 누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라면, 어쩌면 나를 귀신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한번 믿어보자!’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교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1992년 5월 6일, 제가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인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다

두려운 마음으로 교회에 들어섰습니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때 늘 맨 앞자리에 앉았던 습관대로, 교회에서도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날따라 목사님은 에베소서 6장 말씀을 설교하시며 영적 전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복음의 신발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라는 뜻인 것 같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교회에 왔지만, 다행히 죽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교회에 갔습니다. 귀신은 여전히 저를 물고 꼬집고 할퀴고 때리고 협박했지만, 죽이기까지는 못했습니다. ‘인생만사 삼세판이라는데, 내일도 한번 더 가보자.’ 세 번째 날에도 교회에 갔지만, 역시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누나를 따라 날마다 철야 기도를 다니며 교회에 묻혀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귀신이 금방 사라지던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을 때는 귀신이 잠잠한 것 같다가도, 교회 문만 나서면 다시 귀신이 나타났습니다. 어떨 때는 교회 안에 앉아 있어도 귀신들이 속삭였습니다. “저 목사 설교 별로야, 왜 저 목사는 성경 안 읽어? 저 목사 성질 나빠, 듣지 마, 나가, 나가!” 귀신들은 끊임없이 저를 유혹했습니다. 당시 저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같은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속으로 “야, 안 꺼져? 확!” 하고 소리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세례를 받고 싶었습니다. 저도 천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호적에 이름을 올리듯이, 저도 하늘나라 호적에 이름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세례 교육을 받고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 문답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드디어 세례를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세례를 받는 순간, 몸속으로 엄청난 힘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전에 내림굿 할 때 귀신이 몸속으로 들어오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눈물이 쏟아지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 같은 죄인도 구원해주시다니... 만왕의 왕이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 진짜 맞네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바로 돌아온 탕자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감격적인 세례를 받고, 저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신앙생활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같은 신앙인들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편하게 입으려고 개량 한복을 입고 교회에 갔더니, 어떤 집사님이 “무당 세계가 그렇게 그리워요? 굿 하던 옷을 입고 교회에 오시다니...” 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제가 세례 간증 때 무당이었던 과거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를 무당 출신으로 낙인찍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개량 한복은 교회에서 입을 엄두도 못 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목줄에 작은 방울이 달려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또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습니다. 수의사들은 강아지 청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작은 방울 소리도 강아지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해서 떼어냈는데, 방울이 너무 예뻐서 가방에 달고 다녔습니다. 교회에 가방을 들고 갔더니, 또 어떤 사람이 “무당 방울이 그렇게 좋아요? 떼지도 않고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니...” 라며 수군거렸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밤에 철야 기도를 갔습니다. “주여, 저는 하나님만 믿습니다. 사람 믿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붙들어주세요. 사람들이 저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해주세요.” 밤마다 교회에 가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악수를 청하면 손사래를 치며 “내 몸에 손대지 마세요. 귀신 옮아요” 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제 몸에 귀신이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목사님들께 안수기도를 부탁하면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에게는 안수기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저는 안수기도 대신 저만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예배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일 1부 예배만 드리고는 왠지 부족해서 2부 예배, 3부 예배, 4부 예배, 5부 예배까지 연이어 드렸습니다. 집에 가서 쉬다가 다시 철야 예배, 수요 예배, 금요 구역 예배까지 꼬박꼬박 참석했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성경 공부 프로그램도 닥치는 대로 수강했습니다. 새벽 기도도 빠지지 않고 나갔습니다. 예배, 말씀, 기도에 매달린 결과, 어느 순간 제 몸에서 귀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귀신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사탄 마귀 귀신은 내 안에 말씀으로 채워야 쫓아낼 수 있구나. 예수님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워야 귀신이 발붙일 틈이 없구나!’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웅덩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웅덩이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웅덩이 물을 퍼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물을 퍼내도 바닥에 남은 찌꺼기와 먼지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바닥만 긁어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웅덩이에 끊임없이 깨끗한 샘물을 채워 넣으면, 더러운 물은 저절로 넘쳐 흘러나가고, 웅덩이 바닥에 있던 찌꺼기와 먼지까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갑니다. 말씀과 기도는 바로 깨끗한 샘물과 같습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면, 사탄 마귀 귀신은 저절로 떠나가고, 우리 마음은 맑고 깨끗하게 정화됩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충만해지면,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낸 후, 감사한 마음으로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신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평생 평신도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1대1 양육과 성경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축구 선수들을 좋아해서 이용표 선수를 비롯한 프로 축구 선수들을 7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전북 현대 선수들에게도 2주에 한 번씩 찾아가 3년 동안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명으로 시작했던 예배에 3년 후에는 35명 중 15명이 참석할 정도로 부흥했습니다. KTX를 타고 울산 현대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집사 신분으로 축구 선수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혹시 잘못된 성경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습니다. 혹시 내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분명히 선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잘못된 것을 가르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신학 공부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제가 단독 목회를 하게 되면, 옛날 무당이었다는 선입견 때문에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저 사람 옛날에 무당이었잖아, 역시 무당 출신은 안 돼” 라는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저처럼 다른 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겪는 영적인 외로움과 어려움을 돕고 싶었습니다. 단독 목회를 하면 한 교회만 섬겨야 하지만, 저는 교도소, 섬마을, 작은 교회 등 도움이 필요한 곳곳을 찾아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단독 목회는 하지 않고, 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목사 안수만 받았습니다. 5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부목사로 청빙해주는 교회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저는 제 갈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세퍼드는 세퍼드 대로 살고, 치와와는 치와와 대로 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방 집회를 다니다 보면 무속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시겠네요? 네, 무속인들을 자주 만납니다. 상담도 많이 하고요. 목사가 되어 무속인들을 만났을 때,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낍니다. 한번은 어떤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맨 앞자리에 어떤 여자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딱 봐도 무당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퇴보했나? 왜 무당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 의아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내려오니, 그분이 저에게 다가와 “현수막에 ‘전직 무속인 박에녹 목사 집회’라고 쓰여 있길래, 가짜인지 진짜인지 확인해보려고 왔어요. 만약 가짜면 뺨이라도 한 대 때려주려고 했는데, 들어보니 진짜 무속인 출신이 맞네요. 저도 이제 예수님 믿을게요” 라고 말했습니다. 무속인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무속을 그만두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무속인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네, 많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굿을 하면 웬만한 직장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점만 봐도 한 달에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벌 수 있으니,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무당 집안은 대부분 무당에게 기생하여 살아갑니다. 무당이 돈을 벌어오면 온 가족이 뜯어먹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은 직업도 없이 무당을 따라다니고, 친정 식구들, 시댁 식구들까지 모두 무당에게 빌붙어 살아갑니다. 돈 때문에 무속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면, 대부분 “나도 예수님 믿어야 천국 가는 줄은 안다. 하지만 교회 가면 돈 안 주잖아.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 라고 반문합니다. 무속은 그들에게 직업이자 생계 수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먹고 살게 해주실 것이다. 아무 걱정 말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설득해도, “일단 돈 벌어서 먹고 살고, 애들 다 키우고, 65세 되면 굿 그만두고 그때 예수님 믿겠다” 라고 말합니다. 그때 저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64살 12월 31일에 죽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 천국 못 가잖아요. 지금이라도 예수님 믿으세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산에 거미줄 치겠어요?” 하지만 눈앞의 돈 때문에 쉽게 무속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권력욕과 허영심 때문입니다. 무속인들은 대부분 학력이 낮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당이 되면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던 권력과 존경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 “보살님” 하며 굽실거리고, 무당은 마치 대단한 권력자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사람들은 무당 앞에서 굽신거리지만, 뒤돌아서면 손가락질합니다. 무당들은 겉으로는 존경받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외롭고 괴로울까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권력에 취해 무속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미신적인 두려움 때문입니다. ‘괜히 신령님 잘못 버렸다가 자식에게 해가 미칠까 봐, 끔찍한 사고라도 당할까 봐’ 두려워 무속을 떠나지 못합니다. 자식에게 해가 미칠까 봐, 자신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무당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무당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무당들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불쌍하고 딱한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무당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전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무당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까지 사랑과 정을 베풀어야 합니다. 무속인 중에도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귀신은 왜 그렇게 사람 몸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까요? 귀신들도 먹고살기 위해 사람 몸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귀신도 흠향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사 때 음식을 차려놓고 “흠향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귀신도 향이나 음식을 흠향한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이나 제사 때 대문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막걸리를 뿌리는 것을 ‘고시’라고 하는데, 떠돌아다니는 귀신들이 와서 먹고 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크리스천 중에도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네, 의외로 많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조상은 조상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부모님이 제사를 지내라고 하셨으니 어쩔 수 없이 제사를 지낸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라고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례와 제사는 분명히 잘못된 미신적인 풍습입니다. 차례와 제사부터 없애야 귀신에 대한 미신적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차례와 제사는 귀신을 불러들이는 행위와 같습니다.

제사 날에는 반드시 빨리 줄을 걷어야 하고 창문을 열어놔야 한다는 미신도 있지 않습니까? 빨래 줄에 귀신이 걸릴까 봐 빨리 줄을 걷고, 귀신이 집으로 들어오라고 창문을 열어놓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미신입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미신에 속고 넘어갑니다.

미용실 입구에 과자와 인형을 놓아두는 것도 미신적인 행위입니다. 미용실에 꼬마 귀신들이 있다고 해서, 어린이 귀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과자와 인형을 놓아둔다고 합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미신입니다.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미신적인 풍습이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부적을 붙이고, 팥을 뿌리고, 고사를 지내는 등 미신적인 행위들이 여전히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있습니다.

장명, 즉 이름을 짓는 것도 미신적인 풍습입니다. 장명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합니다. 장명은 대부분 무속인들이 해줍니다. 어떤 부모는 비싼 돈을 주고 유명한 작명가에게 이름을 지었는데, 아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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