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들의 희망, 이효천 선교사의 위드맘 한부모가정 지원 이야기
벼랑 끝에서 피어난 희망, 미혼모들의 '친정 엄마' 이효천 선교사의 따뜻한 동행
벼랑 끝에서 피어난 희망, 미혼모들의 '친정 엄마' 이효천 선교사의 따뜻한 동행
이 땅 위에, 아직 꽃피우지 못한 채 3,500명의 청소년 미혼모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혹시 생각해 보셨나요? 학업은 중단되고, 가족과의 관계마저 단절된 채, 찜질방과 낡은 모텔을 전전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린 엄마들. 사회의 냉대와 편견 속에, 그들은 여전히 기댈 곳 없이 위태로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한 줄기 따뜻한 손길을 내민 사람이 있습니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 아이와 함께 힘겨운 겨울을 날 수 있는 따뜻한 복음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쉴 새 없이 발 벗고 뛰는 사람. 고아와 과부의 친구이자 아버지가 되어주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미혼모들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위드맘 한부모가정 지원센터의 이효천 선교사를 만나, 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새롭게하소서의 진행자 김중 목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 중, 미혼모 문제의 심각성을 먼저 언급하며 대담을 시작합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미혼모들, 그들을 향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은, 그들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짐입니다. 김 목사는, 미혼모야말로 우리 사회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존재임을 강조하며, 오늘 '미혼모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특별한 손님, 이효천 선교사를 소개합니다.
환한 미소로 스튜디오에 등장한 이효천 선교사는, 예상 밖의 젊은 모습으로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김 목사는, '미혼모의 아버지'라는 타이틀 때문에,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를 예상했던 솔직한 마음을 밝히며 웃음을 자아냅니다. 올해 29세라는 이 선교사의 나이에, 출연진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동시에 20대 청년으로서 미혼모들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에 깊은 존경심을 표합니다. 이 선교사는, 자신을 '아버지'보다는 '오빠', 심지어 '친정 엄마'라고 불러주는 아이들의 친근한 호칭을 소개하며, 스튜디오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이효천 선교사가 미혼모 사역에 헌신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밝혀집니다. 20대 초반, 우연히 소년원 출원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년원 출신 청소년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여자친구 중 상당수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특히 18세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는,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놓인 미혼모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절박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술집에서 일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소녀에게, "한 달에 30만 원만 있다면 술집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은, 그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소녀를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
이 선교사는, 당시 20살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미혼모를 돕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상세히 설명합니다. 당장 수중에 돈이 없었던 그는,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돈을 마련했고, 신학교 동기들과 주변 전도사들에게 십시일반 도움을 받아 소녀에게 매달 30만 원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소녀는 술집을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통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마침내 고등학교 졸업 학력까지 취득하며, 당당하게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선교사의 도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녀가 안정을 찾아갈 무렵,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녀가 주변에 이 선교사의 도움을 알리면서, 마치 도미노처럼, 어려움에 처한 미혼모들의 연락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장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안 될 위기의 순간에 놓인 미혼모들의 절박한 상황을 깨달은 그는, 본격적으로 미혼모 지원 사역에 뛰어들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어서, 김 목사는 사회적으로 만연한 미혼모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 질문하며, 이 선교사의 생각을 묻습니다. 사회 일각에서는 미혼모를 '위기 청소년'으로 단정짓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지만, 이 선교사는 직접 미혼모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10대, 20대 청소년들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지, 사랑하고 싶고, 연애하고 싶은 평범한 감정을 가진 청소년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임신과 가정 불화 등으로 인해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내몰린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선교사는, 미혼모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들이 많다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특히, 혼인신고를 했지만 남편이 가출한 경우, 법적으로 미혼모로 인정받지 못해 기존의 미혼모 지원 시설이나 쉼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합니다. 10대 소녀들이 복잡한 이혼 절차를 알지 못해, 법적인 보호 없이 방치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임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험난하고 어려운 미혼모 사역을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김 목사는, 이 선교사에게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순간에 대해 질문하며, 그의 신앙 여정을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이 선교사는, 모태신앙이 아닌, 오히려 기독교를 배척하는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뜻밖에도, 이 선교사의 첫 교회 방문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갔던 그는, 교회 누나들의 예쁜 모습과 맛있는 간식에 매료되어, 교회 문턱을 넘나들기 시작했습니다. 17, 18세 무렵, 교회 '놀이터'를 드나들던 그는, 20살이 되던 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연히 참석한 수련회에서, 그는 지금까지 막연하게만 느껴왔던 '하나님'의 존재를,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깨닫게 됩니다.
특히,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에 깊이 감명받은 그는, 그 순간 이후,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뜨거운 열망에 휩싸이게 됩니다. 20년 동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았던 그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품게 되었고, 신학대학교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신앙의 길을 걷게 됩니다.
신학대학교에서 말씀을 배우던 중, 이 선교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약한 자들의 친구"라는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곧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고아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우연히 소년원 사역자와 인연이 닿아 소년원 봉사까지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이러한 봉사활동을 통해, 그는 마침내 '미혼모'라는 사회적 약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곁에서 희망을 꽃피우는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특히, 미혼모들이 술집 등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경우, 이들을 돕는 과정은 더욱 험난했습니다. 유흥업소는 조직폭력배와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이들은 자신들의 '밥줄'을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고, 두려움은 앞섰습니다.
이 선교사는, 과거 술집에 미혼모를 데리러 갔다가 조직폭력배들에게 둘러싸였던 아찔한 순간을 회상합니다. 12명이 넘는 건장한 남자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그를 위협했고, 순간적인 공포감에 휩싸인 그는, 도망치듯 술집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여기서 잘못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인 그는, 결국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도저히 저들을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까요?" 절망적인 심정으로 기도하던 그에게, 문득 강렬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만약 네 딸이 저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면, 그래도 포기하고 돌아갈 것이냐?"는 질문은, 그의 심장을 송곳처럼 찔렀습니다.
"내 딸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죠. 깡패가 10명이 아니라 100명이라도 뛰어들 겁니다." 순간적으로 울컥 솟아오르는 감정에, 그는 반문했습니다. "하지만, 저 아이는 제 딸이 아니잖아요. 냉정하게 말하면, 저는 저 아이를 책임질 의무가 없습니다." 이기적인 마음과 정의감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에게,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 걔는 네 딸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내 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손가락질하고 외면해도, 나는 여전히 그 아이를 '내 딸'이라 부른다. 네가 그 아이에게 돌아가서, 딱 한 마디만 전해주지 않겠니? '너는 절대 네 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내 딸이다'라고." 이 음성을 듣는 순간, 이 선교사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놀랍게도, 술집에 다시 들어간 이 선교사에게, 폭력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술집 관계자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미성년자인 미혼모를 순순히 내보내 주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선교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고백하며, 당시의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진정한 어려움은, 미혼모를 술집에서 데리고 나온 이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전에는 한 명의 미혼모를 돕는 데 집중했지만, 술집 사건 이후, 그는 모든 미혼모들을 '하나님의 딸'로 인식하게 되면서, 책임감의 무게가 더욱 커졌습니다. 세상의 손가락질과 편견 속에서 고통받는 '하나님의 딸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미혼모들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게 됩니다.
이어서, 이 선교사는, 미혼모 사역을 통해 경험한 감동적인 열매를 소개합니다. 그 중 하나는, 그의 도움으로 예수를 믿게 된 한 미혼모의 이야기입니다. 새벽에 울면서 전화해 온 미혼모는, 다짜고짜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고백을 털어놓았습니다. 20살 때 그가 했던 고백과 똑같은 말을 하는 미혼모를 보면서, 그는,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니?" 그의 질문에, 미혼모는 "방법을 모르니 가르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중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였던 미혼모에게, 그는 먼저 학업을 마칠 것을 권유했고, 놀랍게도 미혼모는 검정고시를 통해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차례로 취득했습니다. 심지어, 대학 진학까지 결심한 미혼모는, 수능 시험에서 기대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고, 서울 소재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미혼모는, 과거 술집에서 일했던 어두운 과거를 고백하며, 아무도 자신에게 희망을 주지 않았을 때,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해주셨다고 간증했습니다. 이제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미혼모들을 돕고 싶다는 꿈을 밝히며, 이 선교사를 감동시켰습니다. 현재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 학생은, 졸업 후 위드맘 한부모가정 지원센터 직원으로 합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미혼모들을 지원해 온 이 선교사에게, 김 목사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본인은 월급도 없이 어떻게 생활해 왔으며, 결혼 후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계획인가?" 이 선교사는, 단체를 설립했던 20살 때부터, '투명한 회계'를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고 밝힙니다.
후원금이 100% 미혼모들에게 사용될 수 있도록, 그는 스스로 무보수로 일해 왔습니다. 외부 강연이나 설교를 통해 얻는 수입으로 생활해 왔지만, 쉽지 않은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결혼 후, 법인 이사들과 직원들의 권유로, 마침내 월급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넉넉한 금액은 아니지만, 위드맘 한부모가정 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월급을 받으면서, 앞으로도 미혼모 사역에 더욱 헌신할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이어서, 김 목사는, 이 선교사의 아내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냅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미혼모 사역에 헌신하는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아내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이 선교사는, 아내와 중학생 시절부터 친구였으며, 20살 때부터 연애를 시작했다고 밝힙니다. 놀랍게도, 아내는 10년 넘게 그의 곁을 지켜온 든든한 동역자였습니다.
위드맘 한부모가정 지원센터 설립 초기부터, 아내는 이사로 등재되어 함께 사역에 동참해 왔습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공감 능력을 발휘하여, 남성인 그가 채울 수 없는 부분들을 채워주고 있다고 합니다. 미혼모들이 그에게는 '도와주세요'라고 SOS를 요청하는 반면, 아내에게는 '심심해요, 놀러와 주세요'라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선교사는, 위드맘 사역의 또 다른 열매, '프롬맘(From Mom)'이라는 특별한 모임을 소개합니다. 위드맘의 도움으로 자립에 성공한 미혼모들이, 이제는 다른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한 것입니다. 18세에 두 살 아이를 데리고 찜질방을 전전했던 한 미혼모는, 위드맘의 도움으로 안정적인 삶을 되찾은 후, "이제는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다"며, 매달 월급의 11%를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감동적인 사례들이 이어지면서, 자립에 성공한 미혼모 50여 명이 '프롬맘'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더욱 의미있는 활동들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탈북 과정에서 가족과 헤어지고 홀로 남한에 온 아기에게 분유와 기저귀 등 육아용품을 지원하고, 학대 피해 아동 보호시설에 트럭 3대 분량의 장난감을 기증하는 등, 사회 곳곳에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과거 도움을 받던 '약자'에서, 이제는 나눔을 실천하는 '선한 영향력'의 주체로 성장한 미혼모들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희망을 선사합니다.
비영리 사회복지법인 설립 후, 위드맘의 사역은 더욱 확장되고 체계화되었습니다. 중소기업 복지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비영리 단체 최초로 자체 복지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이제 위드맘은, 미혼모들에게 단순한 생계 지원뿐만 아니라, 부인과 진료, 건강검진, 가족사진 촬영, 영화 관람 등,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자립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달려온 이 선교사는, 최근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미혼모, 소년원 출원 청소년, 성소수자 등, 사회적 편견과 소외 속에 놓인 이들을 위한 '교회'를 설립하는 것입니다. 서정현 선교사(주청프로젝트 선교회)와 함께, '모든 민족 교회(콜트 처치)'라는 이름의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하며,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자 합니다. 현재 15명 정도의 소규모 인원이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쉼 없이 달려온 이 선교사에게도, 힘든 순간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외부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내면의 갈등과Burnout을 느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김 목사는, 이 선교사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그때마다 그에게 힘과 위로를 주었던 존재에 대해 질문합니다.
뜻밖에도, 이 선교사는, 미혼모들을 만나는 순간이 오히려 가장 큰 힘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미혼모들은 그에게 짐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를 주는 존재이며,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예배와 같은 거룩한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미혼모 사역은 힘들고 고된 일이 아니라, 그에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미혼모들을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미혼모들을 돕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구체적인 도움 방법을 묻습니다. 이 선교사는, 가장 필요한 도움은 '후원'이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기저귀, 물티슈 등, 미혼모 가정의 필수품이지만 부담이 큰 '소모품' 후원을 통해, 미혼모들의 경제적 자립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후원금은, 전액 미혼모들의 주거비 지원 등, '위기 상황'에 놓인 미혼모들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대담 말미에, 이 선교사는, 며칠 전 아기 엄마들과 짜장면을 먹다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깊은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아기 똥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을 망설이는 자신과 달리, 아기 엄마는 능숙하게 기저귀를 갈면서, "아기 똥이 뭐가 더러워요?"라고 반문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은 '똥'이라는 더러운 것에 시선을 고정한 반면, 아기 엄마는 '아기'라는 존재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시선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 더러움에 집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더러움을 닦아내어 깨끗하게 해주신다는 '구원의 은혜'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일상 속 작은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미혼모들과 함께 하나님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끝으로, 이 선교사는,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을 묻는 질문에, 거창한 계획보다는, '신앙'적인 갈망을 드러냅니다. "저는 미혼모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미혼모들을 향한 그의 헌신은, 인간적인 '사랑'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며, 미혼모 가정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김 목사는, 이 선교사의 굳건한 믿음과 헌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그의 앞날을 축복하고 응원했습니다. 또한, 오늘 방송을 통해, 미혼모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하며,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방송 말미에는, 출연진들과 함께 짜장면을 나누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대담을 마무리했습니다.
방송을 마무리하며, 김 목사는, 미혼모 문제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것을 당부합니다. 미혼모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며,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강조하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줄 것을 호소합니다. 새롭게하소서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따뜻한 희망을 선사하며, 다음 시간을 기약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