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진 작가 스토리: 고난 극복과 희망 메시지, 네임 스토리의 힘
고난을 딛고, 이름으로 희망을 쓰다: 전대진 작가의 감동 스토리
“고난은 간증의 재료” - 전대진 작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야기
이번 글에서는 전대진 작가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와 그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전대진 작가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여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과 고난을 극복하고 작가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선사하며, 특히 어려움 속에서 꿈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큰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전대진 작가의 삶은 고난이 단순히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값진 간증과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인데요,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와 교훈을 얻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고통
전대진 작가는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이라는 깊은 상처를 안고 자랐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문 너머 들려오는 깨지는 소리와 비명 소리를 들어야 했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짓밟히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특히,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어머니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문을 닫으라고 했던 장면은 어린 전대진 작가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면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사랑해주고 지켜주는 그런 멋진 남편, 남자친구가 되어 줘야지. 내가 이 다음에 아버지가 되면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정말 존경받고 사랑받는 아버지 되어 줘야지” 라는 다짐은 어린 시절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전대진 작가의 가정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집은 피난 가는 곳이 되었고, 어머니는 늘 그를 보호하며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을 숨기려 애썼습니다. 어머니가 잠시 집을 나가셨을 때, 그는 아버지와 단둘이 남겨져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새벽 늦게 위험천만한 행동을 일삼았고, 어린 전대진 작자에게 상상하기 힘든 학대와 폭언을 가했습니다. 12층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서 철봉을 타는 아버지를 보며 공포에 질려야 했고, 심지어 아버지가 토사물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끔찍한 경험까지 해야 했습니다. 중학생 시절에는 잠을 자던 중 아버지에게 목 졸림을 당하는 위협적인 상황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막내 외삼촌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는 그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결국, 전대진 작가의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힘든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하며 생계를 꾸려나갔고, 전대진 작가는 어머니의 고생을 보며 학업에 더욱 매진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남고에서 체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진 친구들과 함께 복도에서 체벌을 받던 중, 선생님은 전대진 작가에게 “너는 이미 사람이 됐다” 며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건넸습니다. 성적이 좋지 않아 급식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그는 배식 당번을 자처하며 끼니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바닥을 친 자존감과 절망,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
고등학교 시절, 전대진 작가는 극심한 자존감 하락과 절망감을 경험했습니다. 교회에서는 “너는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축복했지만, 그는 자신을 “하나님이 실수로 만든 불량품”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했습니다. “나 같은 걸 왜 태어나게 하셨을까, 나 때문에 어머니도 힘들어하고…” 라는 생각은 그를 더욱 절망의 늪으로 빠뜨렸습니다. 견디기 힘든 현실 속에서 겨울 바다를 찾았던 그는 바닷가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들을 보며 자신의 무력하고 초라한 모습과 같다고 느꼈습니다. 친구들의 무시, 선생님들의 냉대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내 이름 아시죠” 라는 찬양을 수없이 반복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습니까? 저도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싶은데, 이런 나도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매달리며 간절한 마음을 쏟아냈습니다.
그때, 전대진 작가에게 이용규 선교사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쓰고자 하시면 그가 한 번도 겪지 못한 환경으로 그를 몰아 가신다.” 이 문장은 그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겪게 하시는 모든 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을 거야” 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견뎌낼 힘을 얻었습니다. 비록 당시에는 터널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빛을 발견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용기를 냈습니다.
재수 실패와 우울증, 캠프에서의 극적인 변화
군 제대 후, 전대진 작가는 4수까지 하며 대학 입시에 도전했지만, 연이은 실패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매일 카페 구석에서 하루 18시간씩 공부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항상 불합격이었습니다. 노력하면 될 것이라는 믿음은 무너지고, 그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10대 때 극복하지 못했던 학력 콤플렉스는 더욱 심해졌고, 군대에서 얻었던 자신감마저 사라졌습니다. 결국, 그는 유서를 쓰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할 정도로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절망의 끝에서 전대진 작가는 이모의 권유로 교회 캠프에 참여하게 됩니다. 보조교사 자리가 비어 있다는 말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보자는 심정으로 캠프에 따라나섰습니다. 캠프에서 그는 황 잃고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뜨겁게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정말 강력하게 만났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역사하고 계신 것 같다” 고 고백하며, 캠프에서의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캠프 둘째 날 저녁, 전대진 작가는 꿈 속에서 강사 목사님이 자신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꿈 속에서 그는 강단에 올라 자신의 간증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요, “여러분, 제가 몇 년 전에 이곳에 똑같이 여러분과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주셨고 인생을 바꿔주셨습니다. 제가 되는 여러분도 가능합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이 해몽이 되지 않는 꿈을 잊고 지냈지만, 3년 후 놀랍게도 꿈에서 보았던 장면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2018년 7월, 그는 실제로 캠프 강단에 서서 간증을 하게 되었고, 그때 꿈에서 보았던 환상이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SNS를 통한 소통과 “네임 스토리”의 탄생
전대진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SNS에 올리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에 공감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간증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기초생활수급 가정에서 자란 한 학생이 큰 위로를 받았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 학생은 입시 원서 접수 비용 3만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저 같은 사람도 꿈을 꿀 자격이 있나요?”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은 전대진 작가의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과거 자신 역시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나 같은 사람도 꿈을 꿀 자격이 있을까?” 라고 자문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거의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을 돕고 싶었지만, 당시 아르바이트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가난한 대학생이었기에 물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새벽 3시에 교회로 달려가 간절히 기도했던 그는 다음 날 쫓겨났던 아르바이트 사장님으로부터 하루만 일해달라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뜻밖의 연락에 하루 일하고 받은 5만원을 학생에게 전달했고, 얼굴도 모르는 학생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 경험은 그에게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구나” 라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전대진 작가는 웨이터 아르바이트와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자기 계발 훈련을 받았습니다. 팁과 아르바이트 급여를 모아 200만원이 넘는 교육 과정에 등록했고,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힘든 훈련 과정을 견뎌냈습니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새벽 시간에 10시간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고, 강남의 24시간 카페를 찾아 헤매다 양재역 화장실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이러한 고난의 시간들은 오히려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어린 시절의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습니다.
SNS를 통해 고민 상담을 하던 중, 전대진 작가는 자신의 몸은 하나인데 매년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새벽 3~4시까지 상담 요청이 쇄도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갔지만, 그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 상담 과정에서 한 남학생이 “작가님, 제 이름 기억하시죠?” 라고 묻는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보육원 출신인 자신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큰 의미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 하나 불러주는 것이 누군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받은 그는 “네임 스토리” 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구상하게 됩니다.
“네임 스토리”는 사람들의 이름에 담긴 의미와 스토리를 담아 글로 써주는 맞춤형 콘텐츠입니다. 전대진 작가는 조건 없이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무료로 네임 스토리를 선물했고, 연예인 팬들의 주문이 쇄도하면서 “네임 스토리”는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손흥민 선수, 박효신, 조용필 등 유명인들의 팬들도 네임 스토리를 주문했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는 “네임 스토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달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한 영감, 그리고 “고난은 간증의 재료”
전대진 작가의 “네임 스토리”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깊은 기도와 묵상을 통해 얻어진 영감의 산물입니다. 그는 의뢰인의 이름과 사연을 접한 후, 기도를 통해 그 사람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구하고, 떠오르는 영감을 바탕으로 네임 스토리를 작성합니다. 진행자 김지선 씨, 송지은 씨, 이영경 수어통역사를 위한 네임 스토리를 즉석에서 써 내려가는 장면은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주님, 제가 받은 그 큰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 하나님의 가슴을 시원케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필요로 하신 곳에 내가 서 있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시를 쓰던 다윗처럼 이 시대의 시편을 써내려가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는 그의 네임 스토리 창작의 근본적인 동기이자, 삶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전대진 작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고난은 간증의 재료” 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어둠 속에서 별이 빛나듯, 고난은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향해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빛을 나타내는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어둠이 꼭 필요한 재료이듯이, 빛나는 인생, 하나님의 빛을 전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재료를 만드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이 저는 제가 생각하기에 고난의 시간, 하나님께서 간증의 재료를 만드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며, 고난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강조했습니다.
전대진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고통, 연이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합니다.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세상을 향해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대진 작가의 삶은 “고난은 간증의 재료” 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줍니다. 오늘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절정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전대진 작가의 용기와 희망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고난을 딛고 더욱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