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상처를 십자가로 치유한 조각가 장동근 목사 이야기
분노의 삶을 십자가로 치유한 조각가
"분노로 가득한 삶을 구원한 십자가" 조각가 장동근 목사 이야기 상세 정리
세상에는 마음의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치 몸에 난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마음의 상처에도 치유가 필요합니다. 과거보다 현대 사회로 올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데, 과연 무엇이 이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사랑만이 진정한 치유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새롭게 하소서"에서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된 특별한 분, 장동근 목사님을 만나볼 텐데요. 과거 알코올 의존과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던 삶에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회복되어, 현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조각가로도 활발히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영상을 통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장동근 목사님의 어린 시절은 고통과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한쪽 손이 불편한 어머니,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그리고 또래 아이들보다 유독 작았던 키는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상처는 마음속에 분노로 자리 잡았고, 술에 의존하며 잦은 싸움을 벌이는 어두운 삶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알코올 중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는, 강렬한 빛과 함께 주님을 만나면서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함으로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방광에 결핵이 발병하는 등 시련은 계속되었는데요. 하지만 하나님은 목회자의 자리로 그를 이끌며 단련시키셨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그는 오랫동안 묵혀왔던 상처들을 치유받았고, 원망했던 아버지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은혜에 은혜를 더하시는 하나님은 그에게 부자녀를 입양하게 하셨고, 튼튼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하셨습니다. 현재 장동근 목사는 교회 목회뿐만 아니라 예술적 재능을 활용하여 조각가로서도 사역하며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딛고 십자가 안에서 회복된 장동근 목사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지금부터 펼쳐집니다.
오병이어 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장동근 목사님을 스튜디오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목회 활동 외에도 조각가로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2016년부터 3년 연속 대한민국 기독교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하고 초대 작가 반열에 오르셨다고 합니다. 초대 작가 선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목사님께서는 신학 공부를 하기 전에 미술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장동근 목사님은 원래 조각을 전공했으며, 목회자가 되기 전 미술 공부를 하셨습니다.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10년 동안은 조각 활동을 멈추셨지만, 약 5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예술적 재능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미술대전 공모전에 지원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 특선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초대 작가 제도는 국전 등 여러 미술 공모전에 존재하는데요, 초대 작가가 되려면 점수를 모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입선은 1.5점, 특선은 3점, 대상은 9점 등으로 점수가 매겨집니다. 장동근 목사님은 3년 연속 특선과 입선을 한 번 수상하여 빠르게 초대 작가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목회 활동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셨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지금까지 십자가와 사랑을 주제로 70여 점의 작품을 제작하셨다고 하는데요. 스튜디오에 놓인 작품들을 보니, 평범한 사람이 쉽게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고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동근 목사님의 70여 점 작품에는 십자가가 다양한 형태로 녹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십자가 형태뿐만 아니라, 숨겨진 십자가 형상까지 작품 속에 담겨 있는데요. 스튜디오에 놓인 작품 중 하나인 "챔피언이 될 때까지"는 예수님과 사람의 형상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챔피언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따뜻한 위로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사람의 형상과 배경을 통해 십자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또 다른 작품 "아빠 품에 안긴 아이처럼"은 십자가 형태를 예수님의 몸으로 표현하고, 어린아이가 아빠 품에 안겨 기뻐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아빠를 향한 아이의 순수한 사랑과 기쁨을 십자가와 연결하여 표현한 작품입니다. 작품 곳곳에 녹슨 철판 등 평범한 소재들이 눈에 띄는데요. 이러한 소재를 사용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작품의 소재는 일상에서 버려지는 폐품들을 활용했습니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폐품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순회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작품 운반과 파손 문제가 고민이었는데요. 도자기나 나무 소재는 파손 위험이 커서 철 재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교회 집사님 중에 고물상을 운영하시는 분이 계셔서 버려진 철근이나 철판 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의미 없이 버려진 폐품들을 재활용하여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물상에서 얻은 폐품들을 통해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을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장동근 목사님은 개인전 15회 이상을 통해 십자가의 사랑을 꾸준히 전하고 계십니다. 또한,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 종탑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예술적 재능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계신데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어린 시절에는 콤플렉스가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콤플렉스를 가지고 계셨는지,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장동근 목사님은 어릴 적부터 콤플렉스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한쪽 손이 불편한 장애인이셨기 때문에, 어릴 적 친구들에게 "너희 엄마 병신", "갈고리" 등의 놀림을 받아 마음속에 분노가 쌓였습니다. 아버지는 막걸리 공장에서 일하시다가 도박 중독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결국 집을 떠나셨습니다. 또한, 앉은 키가 작아 156cm 정도였는데, 이 역시 큰 콤플렉스였습니다. 가난한 가정환경, 장애인 어머니, 아버지의 부재, 작은 키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콤플렉스를 느끼며 성장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가정 환경까지, 어린 시절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성장 환경에 많은 상처가 있었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장동근 목사님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도박 중독은 가정에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도박에 빠지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단칸방으로 이사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도박 빚 때문에 매일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하며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휴지통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는 휴지통 속에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있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폭행하는 일이 잦았고, 심지어 어머니가 식칼로 아버지를 찌르려고 했던 충격적인 기억도 있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고, "차라리 부모님이 둘 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습니다.
어머니의 장애, 아버지의 도박 중독, 가정 폭력 등 어린 시절 겪었던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장동근 목사님의 어머니는 한쪽 손이 불편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억척스럽게 가정을 지키셨습니다. 여름에도 항상 긴 팔 옷을 입으셨는데, 이는 불편한 손을 가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장애를 숨기기 위해 여름에도 긴 팔을 입고 힘든 일을 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장동근 목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어머니는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기구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아버지의 도박 중독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을 텐데, 아버지를 향한 미움과 분노가 점점 커져갔을 것 같습니다. 성장 과정은 어떠셨나요?
아버지의 도박 중독은 장기간 이어졌고, 중학교 입학 무렵 아버지는 집을 나가셨습니다. 장애인 어머니 혼자 세 남매를 키워야 했기에 가정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셋방살이를 전전하며 가난과 멸시 속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도둑으로 오해받아 억울하게 매를 맞기도 하고, 화풀이 대상을 찾지 못해 집 강아지를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억울한 일들을 겪으면서 분노는 더욱 커져갔습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다고 해서 분노와 미움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커졌을 수도 있겠는데요.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복수심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장동근 목사의 꿈은 오직 하나, 아버지를 찾아 무릎 꿇리고 사죄받는 것이었습니다. 복수를 다짐하며 웃음을 잃고 살았습니다. 억지로 웃음이 나오려고 하면 스스로 뺨을 때리며 웃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웃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 정도로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습니다. 15살 때부터 웃지 않았으니, 웃는 것이 얼마나 어색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15살 이후 웃음을 잃을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 컸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 혼자 삼남매를 키우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미술이라는 꿈을 꾸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려운 형편에 꿈을 포기해야 할 순간도 있었을 텐데요.
장동근 목사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대한 열정이 컸습니다. 다른 꿈은 생각해 본 적 없고, 화가가 되는 것만을 꿈꿔왔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 진학은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졸업 후 3년 동안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미술 대학은 실기 비중이 높았지만,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되어 독학으로 3년을 준비했습니다. 3년 만에 대학에 합격하신 것을 보면, 정말 끈기와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3년 동안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셨다고 하는데요. 건설 현장에서 위험한 일도 많았을 텐데,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의지할 곳이나 상대가 있었나요?
장동근 목사는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에 다녔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어려운 상황 때문에 교회와 멀어졌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술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술은 잠시 고통을 잊게 해주었지만, 절망과 분노를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술에 취해 싸움을 벌이고, 길에서 잠드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겨울에 길에서 세 번이나 잠들었는데, 다행히 모르는 사람들이 깨워 따뜻한 방으로 옮겨주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은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그를 아버지와 닮은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했을 때 절망감이 컸을 것 같습니다. 알코올 중독은 정말 무서운 늪과 같은 것인데요. 교회와 멀어졌던 그가 어떻게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더욱 심각한 문제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부터 잠만 들면 귀신이 나타나 목을 조르는 환상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어릴 적 교회에 다녔던 기억을 떠올려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성경을 펴놓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어떤 종교적인 행위도 효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차마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술에 취해 살았던 지난날 때문에 교회에 가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교회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것은 정말 놀라운 변화입니다.
교회에 다시 나가기로 결심한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교회에 나가자마자 환상이나 악몽이 사라졌나요?
놀랍게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귀신 환상이 즉시 사라졌습니다. 오랫동안 괴롭혔던 악몽이 예배 한 번으로 사라진 것은 정말 기적과 같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앓았던 병이 한 순간에 치유된 것처럼, 귀신에 시달리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귀신에 시달렸던 것은 신병과 비슷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무속인이셨는데, 무속적인 영향이 늦게 나타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통해 귀신이 떠나가고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악몽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꿈, 회복의 꿈을 꾸게 되셨나요?
환상이 사라진 후, 놀랍게도 예수님 꿈을 3번이나 꾸게 되었습니다. 꿈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강력한 부르심을 주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동근 목사님에게 남들보다 훨씬 강렬하고 확실한 체험을 통해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영적인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알코올 중독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을 텐데요. 알코올 중독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귀신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알코올 중독은 쉽게 끊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은혜를 받았지만, 술에 대한 의존성은 여전했습니다. 1년 반 정도 술을 끊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술을 끊기 위해 여러 번 결심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끊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세요. 구원해주세요." 그리고 다시 술을 마시게 되면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간절히 약속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다음 날부터 술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술을 끊게 된 것은 정말 기적적인 은혜입니다.
교회에 다시 돌아온 이후 많은 변화와 경험을 하셨는데요, 예전부터 갖고 있었던 분노와 원망은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뿌리 깊은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분노와 원망은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신학교에 다니고 30살이 넘어서도 분노 조절이 어려워 싸움에 휘말리고 경찰서에 잡혀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분노의 뿌리가 깊어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면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습니다. 분노가 폭발하면 이성을 잃고 싸움을 벌이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개척하면서 분노 문제가 점차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33세에 교회를 개척했고, 교인들을 만나면서 점차 변화되었습니다. 처음 교회 개척했을 때, 악성 민원인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괴롭히는 민원인 때문에 화가 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움을 느끼고 순종하면서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화내거나 큰 소리 내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하면서 점차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용납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지만, 때로는 두려운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서 균형 잡힌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분노를 다스리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 오랫동안 원망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떻게 회복되었나요?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은 정말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장동근 목사를 포함한 삼남매는 성인이 된 후 아버지가 집에 다시 들어오겠다는 어머니의 제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형과 누나는 아버지를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장동근 목사는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셨고, 장동근 목사는 아버지를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형님은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는 장동근 목사가 모시는 형태로 가족이 나뉘었습니다. 목회를 시작한 후에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만남을 피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 설립 17주년 예배 설교를 하던 날, 아버지가 교회에 찾아오셨습니다. 설교 도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지만, 겨우 감정을 억누르고 설교를 이어갔습니다. 교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해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후로도 계속 교회에 나오셨고, 결국 장동근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교회 집사님이 되셨습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것처럼, 아버지와의 관계도 극적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만남은 용서의 문을 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아버지의 등장으로 열리고, 용서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입니다.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 가정을 이루셨나요?
사모님과는 중학교 동창으로 교회 친구였습니다. 가정 환경이 비슷하여 서로 의지하며 친해졌습니다. 장동근 목사가 방황하던 시절에도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며 좋은 친구로 남아주었습니다. 25살에 결혼했는데, 결혼 후 22년 동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싸우지 않고 살아온 비결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 덕분입니다. 두 사람 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절대 싸우지 말고 살자"고 굳게 다짐했고, 서로 노력하며 약속을 지켜왔습니다. 두 분의 굳은 의지와 노력이 행복한 가정을 만든 원동력이 되었네요. 자녀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자녀는 몇 명인가요?
장동근 목사님 부부에게는 두 딸이 있습니다. 친딸은 아니고, 입양한 두 딸입니다. 목회를 시작할 때 고아원 사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꿈속에서 길을 가다 울고 있는 아기를 발견하고, 불쌍한 마음에 아기를 안아주었는데, 아기 몸에 상처투성이인 것을 보고 눈물 흘리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습니다. 꿈을 통해 고아원 사역을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고아원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자녀를 갖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입양할 아이들에게 차별 없이 사랑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 서원기도까지 하며 친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고아원 사역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하지 못하게 되었고, 2년 후 17살 된 여고생을 만나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고등부 전도사 시절 만난 여고생은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사창가에서 태어나 사창가에서 살았고, 어린 시절 부모님이 빚 때문에 도망가는 바람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의 아픔을 이해했기에, 주저 없이 입양을 결정했습니다. 딸로 입양한 후 20년 넘게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입양한 딸 외에 동생 딸도 입양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입양한 딸이 엄마와 함께 도망간 동생을 그리워하여 동생까지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불행한 환경 속에서 학대받고 있었고, 언니의 도움으로 장동근 목사님 가정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두 딸을 입양하여 키우게 되었습니다. 두 딸 모두 훌륭하게 성장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큰 딸은 교회 전도사로 헌신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큰 딸은 교회 전도사로 헌신하며 든든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15년 전 교회를 개척하면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딸은 항상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교회 개척 초기부터 전도에 힘썼고, 300명 이상의 어린아이들을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삶이 변화된 아이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딸은 신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딸의 헌신적인 모습에 100점 만점을 주고 싶다고 하시네요. 목사님에게 상처와 결핍은 어떤 의미인가요?
상처와 결핍은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맥추감사절 설교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방법으로 가장 힘들고 절망스러웠던 순간을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장동근 목사님의 삶은 고난과 아픔으로 가득했습니다. 가난, 공사장에서의 사고, 자살 시도 등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목회하면서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과거의 고통을 떠올리며 이겨낼 힘을 얻습니다. 과거의 고난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말씀처럼, 고난과 아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풍성하게 임합니다. 상처와 아픔조차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주시지 않으시는데요. 목사님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주신 이유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목회자로 세우시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병이어 교회는 행복한 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 자랑을 해 주신다면?
오병이어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은 아니었지만, 15년 동안 아름답게 성장해왔습니다. 장동근 목사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기에, 행복한 목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교회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소망하며 목회했습니다. 교회 옥상에는 "사랑하면 행복해집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문구는 오병이어 교회의 영구적인 표어입니다. 행복한 목회를 위해 사랑을 강조했고, 그 결과 15년 동안 단 한 번도 교인들 사이에 큰 다툼이나 분쟁이 없었습니다. 회의나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큰 소리 없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왔습니다. 이것이 오병이어 교회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교회의 평화로움이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와 더불어 예술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신데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십자가 사랑 시리즈 작품을 100점까지 완성하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현재 70점까지 제작했고, 30점을 더 제작할 계획입니다. 새로운 작품 시리즈 "생명나무"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무 시리즈는 입체 회화 작품으로, 조각과 회화 기법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작품입니다. 올가을 개인전을 통해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내년에는 기독교 미술 작품들을 모아 미술관을 개관하는 것이 꿈입니다. 미술관을 통해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정말 훌륭한 계획입니다. 목사님은 세상 어디에 내놔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삶은 감동을 넘어 영혼을 구원하는 귀한 사역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깊은 상처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과 희망을 줄 것입니다. 세상에는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지?"라고 생각하며 홀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장동근 목사님뿐만 아니라, 성경 속 수많은 인물들이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변화될 수 있고, 변화될 차례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을 나눠주신 장동근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목회와 작품 활동을 응원하며, 다음에도 멋진 작품으로 다시 만나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새롭게 하소서"에서는 상처와 고난을 딛고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조각가 장동근 목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장동근 목사님의 삶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많은 분들이 장동근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고, 십자가 사랑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 주에도 더욱 은혜로운 간증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