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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빈민의 어머니 노재인 선교사 26년 기적과 헌신 이야기

요약

기적의 어머니, 방글라데시 노재인 선교사

방글라데시 빈민의 어머니, 노재인 선교사님의 26년 헌신 이야기

여러분, 혹시 ‘나홀로 시대’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1인 가구가 500만을 넘어서면서 혼자 하는 문화가 발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혼자 밥 먹는 ‘1인 식탁’, 혼자 여행하는 ‘1인 여행’과 같은 신조어까지 생겨나는 시대인데요, 심지어 ‘포미족’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자신을 위하고 간섭을 싫어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복음을 전하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에도, 홀로 묵묵히 주님만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분은 바로 그런 분인데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홀로 방글라데시로 떠나 26년간 헌신하신 노재인 선교사님입니다. 방글라데시 빈민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노재인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죠.

스무 살의 헌신, 방글라데시 선교의 시작

노재인 선교사님은 스무 살 여름, 평생을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방글라데시 선교사로 정식 파송되었는데요, 청춘을 다 바쳐 현지에 학교를 세우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사역을 26년째 이어오고 계십니다. 오로지 방글라데시 복음화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살아온 노재인 선교사님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방글라데시 남쪽 쿨라 지역에서 사역하는 노재인입니다.”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노 선교사님의 모습은 26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소녀처럼 맑았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26년이나 사셨다니, 한국어보다 벵갈어 (방글라데시어)가 더 편하실 것 같다는 질문에 노 선교사님은 “노력해서 한국어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방글라데시, 가깝고도 먼 나라

방글라데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나라입니다. 많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여전히 방글라데시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노 선교사님은 방글라데시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셨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우리나라 남한 지역에 강원도를 더 붙인 정도의 영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는 1억 6천만 명으로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고 합니다. 종교적으로는 회교가 84%, 힌두교가 12%를 차지하며 기독교는 0.5% 정도로 매우 적은 비율입니다. 경제적인 수준은 노 선교사님이 처음 방글라데시에 갔을 때, 먼저 와 있던 선교사님들이 “6.25 직후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70년대 후반 정도 수준일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이처럼 종교적으로,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26년간 사역하신 노 선교사님. 주로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노 선교사님은 처음에는 영양사로 방글라데시에 갔다고 합니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는데, 설사와 영양 부족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노 선교사님은 현지 지도자들을 교육하여 영양 및 보건 지식을 전파하는 교육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15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14개 학교는 직접 설립하고, 1개 학교는 교회와 협력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26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노 선교사님은 한국의 놀라운 변화에 외국에 온 것 같은 생소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한국에 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신학 공부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배움을 향한 열정, 더 나은 섬김을 위해

“방글라데시에서 사역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신학적으로 더 깊이 알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지도하기 위해서는 신학적, 목회적 지식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평신도 사역자로 헌신했지만, 앞으로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섬기기 위해 신학 공부를 결심하신 것입니다. 안식년이 아닌, 오직 배움을 위해 한국에 오셨다는 노 선교사님의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선교를 위한 굳건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 공부를 선택하신 것이죠.

여성의 몸으로, 그것도 혼자서 26년간 타지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선교사님은 묵묵히 헌신의 길을 걸어오셨는데요, 어떻게 방글라데시 선교를 결심하게 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방글라데시로 이끌다

1980년대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복음화 성회에서 노 선교사님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김 목사님의 설교를 듣던 중, 헌신자를 찾는 부름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고 합니다. 계획에도 없던 헌신이었지만,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노 선교사님의 인생을 방글라데시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 제 인생이 어디로 향하는 건가요?” 기도하는 노 선교사님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You must go to Bangladesh.” 방글라데시라는 나라도 몰랐던 노 선교사님은 당황했지만, 1년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국해외선교회에서 방글라데시를 방문하고 돌아와 영양사와 안과 의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마침 영양사였던 노 선교사님은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임을 직감했습니다. 5개월 동안 기도하며 기다린 끝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자 자신이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열악한 환경의 후진국이었지만, 노 선교사님은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놀랍게도 노 선교사님은 국내 최초의 영양사 선교사였습니다. 이후 노 선교사님의 헌신은 다른 영양사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오병이어 선교회’라는 영양사 선교 단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척박한 땅 방글라데시에서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노 선교사님은 방글라데시 도착 당시의 충격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마르고 굶주려 성냥개비처럼 걸어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맨발로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영양사로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양사로 헌신했지만, 실제 사역은 고아원과 학교 운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고아와 학교, 사랑으로 품다

방글라데시에서 3년 차 되던 해, 노 선교사님은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절뚝거리며 찾아온 그에게 노 선교사님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수지침으로 조심스럽게 치료를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하루 만에 다리가 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노 선교사님은 순식간에 ‘의사 선생님’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다리 나은 사람이 돌아간 후, 지도자 5명이 찾아와 노 선교사님께 “당신 안에 있는 빛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노 선교사님 안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던 것입니다. 노 선교사님은 기도 끝에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요리사의 아들을 교사로 초빙하여 기독교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학교 사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학교는 현재 15개로 늘어났습니다. 교사를 채용할 때 기독교인을 우선적으로 뽑았고, 한국인 교사는 없이 현지인 교사들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마음을 열고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노 선교사님의 따뜻한 마음과 헌신에 현지인들도 감동한 것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은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과거 개구쟁이 같았던 아이들이 복음 사역자로 성장하고, 고아원을 운영하거나 학교의 디렉터가 되는 등,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노 선교사님은 이 아이들을 통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귀한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빈민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노 선교사님의 학교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학교 졸업생들이 방글라데시 명문 국립대학에 진학하는 쾌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의사가 되거나 쿨라 대학에 진학하는 등,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노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며 감격스러워했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노 선교사님은 이 아이들이 방글라데시의 미래라고 믿습니다. 미션 스쿨을 통해 배출된 인재들이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방글라데시를 변화시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 선교사님의 가장 큰 기쁨이자 보람입니다. 하지만 26년간의 사역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건강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건강의 위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다

방글라데시 초기, 노 선교사님은 건강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설사 한 번 안 하고 감기조차 걸리지 않는 건강 체질에 스스로 감탄하며 교만함마저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간염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숟가락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 헌신했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노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기도 중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 하나님께서 아시는 작업”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간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지고 몸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속에서도 역사하셨습니다.

방송 인터뷰를 앞두고 노 선교사님은 “큰 사건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소소한 이야기만 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혹시 겸손함 때문이었을까요?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노 선교사님은 솔직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사용하셨는지, 얼마나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했는지 이야기하며 감격스러워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 선교사님은 겸손하게 고백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기적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쌀독의 기적, 눈을 뜨게 된 거지

어느 금요일, 노 선교사님은 쌀이 떨어진 난감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사 직후라 쌀을 사놓지 못했고, 지갑에는 돈도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쌀을 구걸하러 온 거지 할머니들이 찾아왔습니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지금 당장 드릴 것은 없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놀랍게도 그 중 한 할머니가 “눈이 안 보인다”며 하소연했습니다. 노 선교사님은 부담감을 느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순종할 뿐입니다.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보인다!”며 외친 것입니다.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할머니는 기쁨에 겨워 “이제 보인다”를 연발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노 선교사님은 할머니에게 이제 거리에서 구걸하지 말고 집에서 편히 쉬라고 권했습니다. 이후 할머니는 정말 구걸을 하지 않고 집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도록 감동을 주셨습니다. 사진을 통해 기적을 증명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또 다른 기적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카에서 사역할 때, 볼카를 쓴 한 여인이 찾아와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딸의 뼈가 썩어가는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뼈를 잘라내는 수술만 권유했지만, 노 선교사님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딸을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노 선교사님은 딸을 데리고 함께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진찰 결과, 뼈가 썩어가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노 선교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딸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니? 예수님께서 기도하면 너를 낫게 해주실 거라고 믿니?” 딸은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노 선교사님은 딸의 다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 몸속에 있는 모든 병균이 떠나가게 해주세요!”

다카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딸을 데려왔는데, 놀랍게도 딸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고통 때문에 울기만 하던 아이가 염증이 가라앉고 통증이 사라지자 웃음을 되찾은 것입니다. 9개월 동안 썩어가던 뼈는 멈추고, 염증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 염증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딸은 기적적으로 완치되었고, 지금은 다시 걷고 있다고 합니다.

노 선교사님의 삶은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환경이 열악할수록 하나님의 기적은 더욱 강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노 선교사님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하신다”는 말씀을 삶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도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다시 방글라데시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노 선교사님.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을 여쭤보았습니다. 노 선교사님은 “제자 양육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오랜 사역 경험을 통해 제자 양육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성 지도자 양성에 힘쓰고 싶다고 합니다.

“여성 지도자들은 교육받을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여성들을 위한 신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 여성 신학교를 통해 여성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 이들을 통해 방글라데시 복음화에 더욱 힘쓰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기독교 대학을 설립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꿈도 꾸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 선교사님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을 통해 더욱 성숙한 사역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동역자들을 만나 함께 사역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노 선교사님은 6월 20일쯤 방글라데시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돌아가셔서 또 다른 기적들을 만들어가실 노 선교사님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노재인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26년간 낯선 땅에서 헌신하신 노 선교사님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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