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극복한 전혜련 소장 이야기, 치유와 희망 메시지
가정폭력 딛고 일어선 삶, 전혜련 소장의 치유와 희망 이야기
벗어날 수 없었던 아픔: 전혜련 소장의 삶과 가정폭력 치유 이야기
오늘, 새롭게하소서 채널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던 아픔,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치유와 회복을 이룬 전혜련 라브리가정폭력상담소 소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전혜련 소장님은 아버지의 폭력에서 시작하여 남편의 폭력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폭력과 함께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과연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다른 이들을 돕고 있는지, 전혜련 소장님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아버지의 폭력: 딸이라는 이유로 받은 고통
전혜련 소장님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애정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회상합니다. 당시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지만 딸만 계속 낳았고, 할머니의 압박 속에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과 여성 편력의 모습을 보이셨고, 가정 내 폭력은 일상처럼 벌어졌습니다. 다른 딸들은 아버지에게 순종했지만, 전혜련 소장님은 아버지에게 순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할아버지께서 "너는 커서 큰 사람이 될 거야"라며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주셨고, 이는 어린 전혜련 소장님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폭력은 전혜련 소장님을 향했습니다. 아버지는 딸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유독 순종하지 않는 전혜련 소장님에게는 폭력으로 다스리려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외도를 직접 목격하는 충격적인 경험까지 겪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예민한 시기에 겪은 아버지의 외도는 큰 상처가 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당시 아버지들은 자녀에게 사과하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오히려 딸이 반항한다는 이유로 폭력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어머니는 방앗간 사업으로 바빠 가정 폭력에 개입하기 어려웠고, 전혜련 소장님은 아버지의 폭력에 홀로 맞서야 했습니다.
미국 유학: 폭력으로부터의 도피, 그러나 끝나지 않은 고통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전혜련 소장님은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던 중, 우연히 미국 워싱턴 대학의 한 교수님을 만나 유학 제의를 받게 된 것입니다. 교수님은 입학 허가서를 보내주었고, 전혜련 소장님은 부모님과 상의 없이 유학을 결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오히려 딸의 유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나처럼 살지 말고 너의 인생을 찾으라"고 격려했습니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유학길에 올랐지만, 아버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아버지의 간섭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전화하여 "빨리 돌아오라",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해야 한다"며 딸을 압박했습니다. 2년간의 유학 생활 후, 전혜련 소장님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가정은 여전히 폭력의 그림자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언니는 폭력적인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고, 전혜련 소장님은 언니를 돕기 위해 형부와 맞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순수했던 남편의 가면: 결혼과 함께 시작된 지옥
폭력적인 형부를 보며 폭력적인 남자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전혜련 소장님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적인 남편과 결혼하게 됩니다. 남편은 그림 그리는 순수한 남자였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전혜련 소장님은 남편의 순수함에 매료되었고, 그에게서는 폭력의 그림자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전혜련 소장님에게 또 다른 폭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결혼 전 순수했던 남편은 결혼 후 180도 돌변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남편은 술에 취해 난폭한 모습으로 돌변했고, 폭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전혜련 소장님은 꼼짝없이 폭력에 갇히게 되었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남편은 술에 취하면 갤러리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심지어 흉기로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전혜련 소장님은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어느 날, 극심한 폭력에 지쳐 잠시 잠들었던 전혜련 소장님은, 남편이 잠든 틈을 타 경비실로 도망쳤습니다. 경비 아저씨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듯했지만, 남편은 경비실까지 쫓아와 난동을 부렸습니다. 다행히 경비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남편을 제압하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지만, 전혜련 소장님은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교회와 목사님의 도움: 절망 속에서 찾은 희망
경찰의 도움으로 폭력 현장에서 벗어난 전혜련 소장님은, 공중전화 박스에서 교회 목사님께 연락했습니다. 목사님은 즉시 달려와 주셨고, 전혜련 소장님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주셨습니다. 목사님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전혜련 소장님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남편에 대한 두려움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막함에 휩싸였습니다.
목사님은 전혜련 소장님에게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권유했습니다. 목사님은 남편을 교회로 불러 타일렀고, 남편은 잘못을 뉘우치는 듯했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적인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전혜련 소장님은 남편의 폭력적인 행동 뒤에 숨겨진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남편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고, 전혜련 소장님은 이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혼 후에도 남편의 괴롭힘은 계속되었고, 심지어 시댁 식구들까지 합세하여 전혜련 소장님을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전혜련 소장님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갤러리 운영과 빚,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이혼 후, 전혜련 소장님은 갤러리를 운영하며 힘겹게 삶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갤러리에 홍수가 나 수십억 원의 피해를 입게 되었고, 빚더미에 짓눌리게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전혜련 소장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놀랍게도 하나님은 전혜련 소장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채권자들은 전혜련 소장님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고 빚을 탕감해주었고, 갤러리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전혜련 소장님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빚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혜련 소장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의 심정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죄인 취급을 받으며 고개 숙인 여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남편의 죽음과 용서, 그리고 새로운 시작
남편과 이혼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전혜련 소장님은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남편은 병원에서 투병 중이었고, 임종 직전에 전혜련 소장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재회한 남편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했고, 전혜련 소장님은 진심으로 남편을 용서했습니다. 남편의 임종을 지켜보며 전혜련 소장님은 그동안의 고통과 원망을 모두 씻어내고, 남편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전혜련 소장님은 슬픔과 함께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성숙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딸을 얻게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비록 불행했지만, 딸은 전혜련 소장님에게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희망이 되었습니다.
쉼터 사역과 가정폭력 상담소 설립: 고통을 넘어선 사명
남편과의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과 빚더미 속에서 벗어난 전혜련 소장님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갤러리 운영 외에는 특별한 경력이 없었던 전혜련 소장님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삼계탕 집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점장으로 일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삼계탕 집에서 일하면서 전혜련 소장님은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돕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마다 찾아오는 여성들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했습니다. 여성들은 전혜련 소장님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았고, 전혜련 소장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 과정에서 전혜련 소장님은 쉼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외국인 여성 쉼터를 설립하게 됩니다. 유학 시절 외국인 친구들에게 받았던 도움을 갚고자, 한국에 온 외국인 여성들을 돕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쉼터를 통해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상담과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자립을 지원했습니다.
외국인 여성 쉼터 운영을 시작으로, 전혜련 소장님은 본격적으로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사역에 헌신하게 됩니다. 가정폭력상담소를 설립하여 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전문적인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가정폭력 행위자들을 위한 교정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폭력의 근절을 위해 힘썼습니다.
가정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과 앞으로의 비전
전혜련 소장님은 가정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 의식 개선과 적극적인 신고를 강조합니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 문제로 치부되어 방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피해 여성들에게는 폭력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키우고, 폭력적인 남편과의 대화를 피하며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전혜련 소장님은 앞으로도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 운영과 상담 사역에 헌신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묘비명에 "한 가정의 회복을 기쁘고 즐겁게 헌신하다 잠들다"라고 새겨놓고,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다음 세대를 위해 청소년들의 정체성 확립 교육과 폭력 예방 교육에 힘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전혜련 소장님의 이야기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 다른 이들을 돕는 삶을 선택한 전혜련 소장님의 용기와 헌신은 우리 사회에 큰 귀감이 됩니다. 전혜련 소장님의 앞으로의 사역을 응원하며, 우리 모두 가정폭력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