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희 목사 부부의 중국 동포 사랑과 한중사랑교회 감동 실화
감동 실화: 중국 동포 사랑 17년, 서영희 목사 부부
“중국 동포, 우리 가족입니다” 서영희 목사•이상부 장로 부부: 깊이 있는 텍스트 상세 정리 및 노하우 소개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부부를 만나, 그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을 예정입니다. 바로 서영희 목사님과 이상부 장로님 부부인데요, 이 두 분은 “새롭게 하소서” 프로그램에 출연하셔서 자신들의 헌신적인 삶과 사역을 진솔하게 나누어주셨습니다. 단순한 부부 관계를 넘어, 이들은 이 땅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중국 동포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사역하고 계십니다. 이 글에서는 서영희 목사님과 이상부 장로님 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텍스트 내용 상세 정리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고, 그들의 특별한 노하우를 소개하며 함께 귀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과연 이 부부는 어떻게 중국 동포들을 섬기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들의 사역 속에는 어떤 놀라운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지 함께 깊숙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칭찬과 격려로 맺어진 부부, 동역의 길을 걷다
부부 사이에도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있다고 하는데요, 놀랍게도 그것은 사랑해나 미안해가 아닌 “칭찬”이라고 합니다 (설문조사 인용). 부부는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불평이나 불만이 습관처럼 나올 수 있지만, 서영희 목사님과 이상부 장로님 부부는 일반적인 부부 관계를 훌쩍 뛰어넘어 서로를 아낌없이 칭찬하고 격려하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합니다. 방송에서 MC 김정 님이 부부 사이에 가장 어려운 말이 무엇인지 묻자, 서영희 목사님은 사랑한다는 표현은 잘 하지만 사과하는 것이 어렵다고 솔직하게 답하셨는데요, 이러한 솔직함 속에서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와 이해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칭찬과 격려가 더욱 중요하며, 그것이 건강한 부부 관계와 사역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계십니다.
2. 이 땅의 이방인, 중국 동포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
서영희 목사님 부부는 “한중 사랑 교회”를 통해 국내 거주 중국 동포와 외국인 근로자들을 헌신적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동포 체류 지원센터를 통해 법률 상담, 임금 체불 문제 해결, 행정 지원 등 한국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숙소를 운영하여 하루 평균 120여 명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있으며, 어린이집, 한중 사랑 학교, 가정 상담 등 동포 사회에 필요한 다방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부 장로님은 한국 사회가 중국 동포들을 단순한 노동력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들 또한 인격체로서 교육, 문화, 비자 문제 등 다양한 필요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영희 목사님 부부는 바로 이러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사역하며 중국 동포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3. 17년의 헌신, 1만 7천 명의 발걸음: 한중 사랑 교회의 놀라운 성장
한중 사랑 교회는 2001년 설립되어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등록 교인 수만 1만 7천 명을 넘어섰으며,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도 600~700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숫자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교회가 중국 동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이상부 장로님은 서영희 목사님을 “최고의 질주자”라고 칭찬하며, 사역을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열정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서영희 목사님의 열정적인 리더십과 이상부 장로님의 든든한 지원, 그리고 교인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어우러져 한중 사랑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4. 아픔을 넘어선 믿음, 둘째 아들의 100일 기도와 목회자의 길
서영희 목사님 부부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둘째 아들의 100일 무렵에 찾아온 예상치 못한 고난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뇌수종이라는 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의사는 수술 후에도 장애가 남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서영희 목사님은 아이만 살려주시면 아들을 목회자로 헌신하겠다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고, 이상부 장로님 또한 밤늦도록 벤치에 앉아 통곡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놀랍게도 기도는 응답되었고, 아들은 건강을 회복하여 현재 목사 안수를 받고 어머니의 뒤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경험은 서영희 목사님 부부에게 깊은 믿음을 심어주었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몸소 체험하는 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5. 어머니의 기도, 아들의 응답: 감동적인 영상 편지
방송에서는 서영희 목사님 부부의 둘째 아들 이준희 강도사가 보낸 감동적인 영상 편지가 공개되었습니다. 영상 속에서 아들은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죄송함과 늘 같은 자리에서 사랑과 힘이 되어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전하며, 목사 안수를 받기까지 부모님의 기도와 사랑이 큰 힘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다음으로 서로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다음으로 서로를 의지하시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메시지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영상 편지를 보는 이상부 장로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벅찬 감동을 감추지 못했고, 서영희 목사님 또한 아들의 성장에 대한 감격스러움과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이 영상 편지는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믿음의 가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감동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6. 늦깎이 신학생, 어머니에서 목사로: 서영희 목사의 용기와 헌신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서영희 목사님은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주변에서는 만류도 있었지만, “신학을 하지 않으면 죽을 때 눈을 못 감을 것 같다”는 강렬한 소명감에 이끌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당시 나이가 만 40세였지만, 늦깎이 신학생으로서 열정적으로 학업에 매진하였고, 결국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상부 장로님은 아내의 신학 공부 결심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금식 기도 후 확신을 얻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영희 목사님의 용기 있는 결단과 헌신적인 노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 중국 선교의 비전, 가사 도우미와의 만남에서 시작되다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중 서영희 목사님은 중국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됩니다. 이러한 비전은 우연히 만난 중국 동포 가사 도우미를 통해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출신의 가사 도우미는 불안정한 한국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큰 위로를 받았고,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중국 동포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서영희 목사님에게 전했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서영희 목사님은 중국 동포 선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2001년 가리봉동의 한 성도 집에서 첫 예배를 드리며 한중 사랑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만남을 통해 놀라운 사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8. 급성장의 비결, 신뢰와 사랑으로 세운 관계
한중 사랑 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급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물질적인 지원보다 복음과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에 집중했을 때 더 큰 부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교인들은 예배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자발적으로 전도에 나섰으며, 교장 선생님 출신의 성도는 지역 사회에서 신뢰를 얻으며 교회 성장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서영희 목사님은 교인들과의 신뢰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에 힘썼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교회는 단단한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었고, 수많은 중국 동포들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9. 여성 목회자와 든든한 동역자, 이상부 장로
여성 목회자로서 중국 동포 사회를 섬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서영희 목사님은 든든한 동역자인 이상부 장로님과 함께 힘든 사역을 묵묵히 감당해 왔습니다. 이상부 장로님은 교회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고, 다양한 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하며 서영희 목사님이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서영희 목사님은 이상부 장로님을 “동역자”이자 “같은 영혼”이라고 표현하며 깊은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두 분은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며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함으로써 한중 사랑 교회를 안정적으로 성장시켜 왔습니다.
10. 시련 속에서 피어난 긍정, 전화위복의 은혜
목회에는 기쁨과 보람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시련도 따릅니다. 한중 사랑 교회 또한 불법 체류 문제, 경찰 조사, 강제 추방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던 교구장이 불법 체류 문제로 강제 추방을 당했을 때는 큰 충격과 좌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영희 목사님 부부는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고, 놀랍게도 시련은 오히려 교회가 더욱 든든하게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경찰 조사를 통해 오히려 교회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법무부의 지원을 받아 동포 체류 지원센터로 지정되는 전화위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서영희 목사님 부부는 어려움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게 되었고,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11. 사드 배치 논란, 동포 사회의 불안과 위로
최근 사드 배치 논란은 중국 동포 사회에 큰 불안감을 가져왔습니다.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걱정하는 동포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중 사랑 교회는 동포들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하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서영희 목사님은 정책 변화에 따라 교인들의 마음이 요동치기도 하지만, 오히려 어려움을 통해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교회는 동포들에게 영적인 안식처를 제공하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격려하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12. 통일 시대와 민족 복음화의 비전
서영희 목사님 부부는 중국 동포 사역을 통해 한민족의 통일과 복음화라는 더 큰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서영희 목사님은 중국 동포들이 한국 사회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동포 자녀들이 한국 사회에 잘 통합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이상부 장로님은 통일 시대에 중국 동포 사회가 한국 사회와 북한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한중 사랑 교회가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두 분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국 동포들을 통해 민족 복음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열방을 향한 선교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13. 마무리: 동포를 향한 사랑, 빛과 소금의 삶
서영희 목사님과 이상부 장로님 부부는 이 땅에서 소외받는 중국 동포들의 친구, 엄마, 아빠가 되어 사랑과 헌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만났지만, 하늘나라라는 같은 도착역을 향해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가고 있는 두 분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부부의 모습이며, 빛과 소금이 되는 아름다운 가정의 전형입니다. 방송 말미에 MC 김정 님은 두 분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를 아는 전문가가 아닌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순수한 한 사람이 되기를 도전했습니다. 서영희 목사님과 이상부 장로님 부부의 삶과 사역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며, 진정한 사랑과 헌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