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세 김옥라 장로의 삶과 신앙 이야기: 역사와 믿음의 증거
103세 김옥라 장로의 삶과 신앙: 시대의 증거
103세 김옥라 장로님의 삶과 신앙: 마지막 부탁과 감동적인 이야기
오늘, 100세 시대를 훌쩍 넘어 103세가 되신 김옥라 장로님의 놀라운 삶의 이야기를 통해 깊은 감동과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장로님은 1918년생으로,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셨는데요. 마치 손녀뻘인 65세 막내아들보다 더 젊어 보이는 정정함에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공항에서 여권 검사 시 나이 때문에 겪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장로님의 젊음을 더욱 실감 나게 합니다.
103세에도 멈추지 않는 배움의 열정
놀랍게도 장로님은 10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배우고, 성경 해설 강좌를 시청하며 끊임없이 배움을 이어가고 계셨습니다. "BTBC 힐링 토탈 바이블 커리큘럼"이라는 어려운 영어 약자까지 막힘없이 설명하시는 모습은 경탄스러웠는데요. 이는 장로님의 지칠 줄 모르는 학구열과 끊임없는 자기 계발 의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성경 공부와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장로님의 일상은 그 자체로 귀감이 됩니다.
파란만장했던 삶: 만주사변부터 6.25 전쟁까지
장로님의 삶은 한 편의 파노라마와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만주사변, 태평양 전쟁, 6.25 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직접 겪으셨는데요. 특히 일본 유학 시절 겪었던 드라마틱한 귀국 이야기는 마치 영화와 같습니다. 장로님은 당시 도시샤 대학 영문학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전쟁이 격화되면서 학도 동원령이 내려졌습니다. 남학생들은 전쟁터로, 여학생들은 군수 공장으로 징집되는 상황이었죠. 해군 공창으로 동원될 위기에 처했던 1944년 겨울, 장로님은 기적적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두컴컴한 공장 길을 걷던 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성진 창극 소리에 이끌려 초가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부인을 통해 고국 소식을 접하고 그리움을 달랬는데요. 놀랍게도 며칠 후, 부인의 남편이 장로님을 찾아와 부산으로 가는 연락선이 끊긴 대신, 일본과 부산을 오가는 교환선이 있다는 희소식을 전해줍니다. 베이비시터 자리를 제안받은 장로님은 이를 기회 삼아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창극 소리를 따라갔던 우연이 필연이 되어, 장로님을 고국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장로님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6.25 전쟁 당시 겪었던 고난 역시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결혼 후 가정을 꾸린 지 5년 만에 6.25 전쟁이 발발했고, 3개월간 공산 치하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민군은 집집마다 들이닥쳐 물건을 약탈하고, 젊은 남자들을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9월 초,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인민군은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서울에 남아있던 인민군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젊은 남자들을 학살하고, 건물에 불을 지르는 등 잔혹한 행위를 일삼았죠. 장로님의 남편 역시 인민군에게 끌려갈 뻔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청와대 근처에서 인민군에게 붙잡혀 총살 직전까지 갔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요강을 핑계로 위험한 상황을 벗어난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스카우트 활동과 여성운동: 사회 봉사와 헌신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 장로님은 스카우트 운동에 헌신하며 사회 봉사에 나섰습니다. 특히 걸스카우트 한국연맹 창설에 기여하고, 오랫동안 연맹 회장직을 맡아 소녀들의 교육과 성장에 힘썼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일본 여성들이 서양 여성들을 숭배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걸스카우트 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뒷산에 올라 통곡하며 기도했던 간절함이, 걸스카우트 한국연맹 창설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장 출마는 쉽지 않았습니다. 영어에 능통하지 못했던 장로님은 회장 자리에 대한 부담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을 묵상하며 용기를 얻었고, 결국 걸스카우트 세계연맹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였다" 라는 말씀을 통해, 장로님은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세계 걸스카우트 연맹 회장으로서, 장로님은 49개국을 방문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유엔 NGO 가입을 성사시키고, 세계 여성들의 권익 신장과 평화 증진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남편의 든든한 외조 덕분에 해외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는데요. 남편은 항상 장로님의 활동을 지지하고 격려했으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죽음 준비 교육: 삶의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
1990년,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은 후, 장로님은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 삶의 유한함을 절감하고, 죽음 준비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는데요.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를 설립하여 죽음 준비 교육 운동을 펼쳤습니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죽음을 삶의 연장선상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돕는 교육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장로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을 빌려, "죽음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넘어가는 문과 같다" 고 표현했는데요. 죽음 이후의 세계는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103세의 삶을 돌아보며, 고난 속에서도 항상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전쟁, 가난, 질병 등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극복할 힘을 주셨다고 간증합니다.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 역사 의식과 배움의 중요성
장로님은 젊은 세대에게 역사 의식과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갖고 미래를 개척해나가기를 당부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알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며 힘주어 말합니다. 또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자세를 강조하며, 103세에도 여전히 배움을 멈추지 않는 자신의 삶을 통해 모범을 보입니다. 장로님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삶의 지혜와 용기를 줍니다. 오늘 김옥라 장로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노인의 삶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는 깊은 울림과 교훈을 전달합니다. 우리 모두 장로님의 삶을 통해 배우고, 더욱 성숙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