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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김 선교사의 믿음 이야기: 야쿠자 출신 가족과 기도, 간증

요약

## 고난과 역경을 딛고, 타협 없는 믿음으로

지금 당신에게 믿음의 강한 수혈이 필요하신가요? 그렇다면 반드시 시청해야 할 영상이 여기 있습니다!다니엘김 선교사새롭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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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롭게하소서'의 주영훈입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가 모신 특별한 손님은,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바로 그 분, 다니엘김 선교사님입니다. 놀랍게도 방송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집회 외에는 뵙기 어려웠던 분이라 저 또한 무척 설레는 마음입니다. 오늘 방송 제목을 "어서 와 TV는 처음이지? 김선교사"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다니엘김 선교사님,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영훈) 와, 실제로 뵈니 풍채가 정말 대단하시네요. 마치 든든한 경호원 같으시면서도, 왠지 모르게 '나웃 버거' 냄새, 즉 미국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송지은) 정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저희 '새롭게하소서' 팀이 다니엘김 선교사님께 방송 출연 요청을 드린 지 무려 5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섭외를 위해 공을 들였는데, 특별히 방송 출연을 꺼리셨던 이유가 있으셨나요?

선교사님께서는 방송 출연을 오랫동안 고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다니엘김 선교사) 음, 제가 하는 사역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중국 선교사로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노출이 많아지면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이 중국으로 돌아갈 길이 막힐까 봐 조심스러웠습니다. 선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영훈) 아, 깊은 뜻이 있으셨군요. 귀한 사역을 위해 신중하게 결정하신 점 존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희 작가가 살짝 귀띔해 주셨는데, 선교사님께서 젊은 시절부터, 특히 미혼이시다 보니 여성분들에게 인기가 엄청 많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휴대전화 번호를 철저히 비밀로 하시고,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벽을 쌓아 놓으셨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젊은 시절부터 인기가 많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관리에 철저하셨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음, 정말 조심스럽게 살고 싶었습니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로서, 더욱 자기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순수하게 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주영훈) 아, 역시 깊은 생각이 있으셨군요. 제가 선교사님 프로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흔히 세상적인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것들, 젊은이들이 흔히 경험하는 여러 가지 유혹들을 나실인의 삶처럼 멀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술, 담배, 연애, 춤과 같은 것들을 말이죠. 요즘 젊은 세대는 '술, 담배, 춤, 연애'를 4종 세트처럼 즐기는 경우도 많은데, 선교사님께서는 전혀 그러지 않으셨다고요.

세상적인 즐거움을 멀리하고 나실인의 삶을 사셨다는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들을 절제하셨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아, 작가님께서 좀 과장해서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나실인처럼 포도밭에 가까이 가지 않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겠다는 강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던 곳이 일본이었는데, 당시 일본 사회는 기독교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나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가졌습니다. (송지은) 춤은 전혀 안 추시나요? (다니엘김 선교사) 하하, 춤은 찬양할 때 몸을 움직이는 정도는 춥니다. (송지은) 아, 다행이네요. 다윗도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나실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몰라서 여쭤봅니다.

선교사님께서 언급하신 '나실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시청자분들이 '나실인'이라는 단어를 낯설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아, 나실인은 성경에 나오는 개념인데요,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신 사람을 뜻합니다. 나실인은 머리를 자르지 않고, 포도주와 같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등,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받았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삼손과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나실인입니다 (민수기 6장 1-21절). (주영훈) 아, 그렇군요. 제가 농담을 좀 던져봤는데, 선교사님께서 잘 받아주시지 않으시네요. (송지은) 그러게요, 툭툭 던져도 입질이 없으시네. (주영훈) 만약 썰렁한 농담이라도 과거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풀어주실 수도 있을 텐데요. (송지은) 아, 그러게요. 그런데 오늘 방송 제목이 굉장히 강렬합니다. "철인 완주자, 불멸의 전파자"라고 되어 있는데, '불멸의 전파자'는 죽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오늘 방송 제목인 "불멸의 전파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제목만 들어서는 쉽게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하하, '불멸의 전파자'는 제가 최근에 출간한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제가 사역자, 설교자, 선교사로서 살아오면서 겪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간증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비들, 좌절과 포기, 답답함과 힘겨움 속에서 저를 일으켜 세웠던 하나님의 말씀과 응답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 모든 어려움을 딛고 '불멸의 전파자'로 살아갈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영훈) 아, 그렇군요. 오늘 나실인의 삶을 살아오신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가 됩니다. 선교사님의 이력이 정말 독특하신데요, 한국에서 10년, 일본에서 10년, 미국에서 10년을 사시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일본, 미국,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선교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각 나라에서 어떤 경험들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사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네,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주영훈) 선교사님께서 특별히 어린 시절부터 싫어하셨던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어떤 말인지 아시나요? (송지은) 으음... 잘생겼다? (주영훈) 정답! 어떻게 아셨어요? (송지은)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주영훈) 맞습니다. 선교사님께서는 "잘생겼다"는 말, 그리고 "너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을 정말 싫어하셨다고 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하하,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싫어했던 말은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선교사님께서 가장 싫어하셨던 말은 "하나님이 싫어하신다"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말은 제게 가장 두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너 같은 것 때문에 교회 안 가는 거야"라는 말도 정말 듣기 싫었습니다. 그 말은 제게 큰 상처가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영훈) 정말 마음 아픈 경험이셨겠네요. 그렇게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신 데에는, 가정적인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어떤 가정에서 자라셨나요?

선교사님의 신앙심 깊은 가정 환경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고, 가정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저희 집안은 목회자 집안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나중에 장로님이 되셨지만, 원래는 평범한 분이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기도를 정말 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사실 어머니께서 완벽해서 제가 도전을 받고 힘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결혼 후, 아버지께서 야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의 인생에 고난이 시작되었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의지하고, 기도에 매달리셨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하나님은 저렇게 섬겨야 하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송지은) 어머님께 큰 영향을 받으셨군요.

어머니의 헌신적인 기도와 믿음이 선교사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어떤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그리고 아버지의 변화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네,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변화되는 모습 또한 저희 가정에 큰 위로이자 간증이었습니다. (주영훈) 몇 대째 신앙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하셨는데, 야쿠자 아버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겉모습만 봐서는 쉽게 알 수 없었을 텐데요. (다니엘김 선교사) 아, 네. 저희 아버지는 야쿠자셨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꽤 큰 조직의 높은 위치에 계셨지만, 오히려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은 문신 같은 것을 하지 않습니다. 문신은 주로 현장에서 활동하는 하위 조직원들이 과시를 위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멋진 양복을 입으셨고, 사업가처럼 보였습니다.

겉모습만으로는 야쿠자임을 짐작하기 어려웠던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아버님의 사업가적인 면모와 어머니와의 만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네, 아버지는 사업가처럼 보이셨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꽤 유명한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셨는데, 도쿄에서 옷감을 신칸센으로 공수해 와서 아버지 마네킹에 맞춰 옷을 만들 정도였습니다. 아버지 밑에는 직원들도 많았기 때문에, 야쿠자라기보다는 사업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일본에서 태어나셨는데, 당시 사업을 하셨던 외할머니의 소개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일본 기업과 거래하는 회사에서 통역 일을 하셨는데, 거래처 관계자 중 한 분이 아버지를 소개해 주셨다고 합니다. (송지은) 아, 선보고 만나서 결혼하신 거군요. 그런데 아버님의 직업을 숨기고 결혼하신 건 사기 결혼 아닌가요?

아버님의 직업을 숨기고 결혼한 것이 사기 결혼에 해당될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해, 선교사님의 답변이 궁금합니다. 당시 상황과 부모님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하하,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옛날 회사에서 연금이 나올 정도이니, 겉으로는 사업가처럼 보이는 '정직한' 야쿠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송지은) 아, 그렇군요. 그럼 아버님께서는 결혼하시고 나서 야쿠자 생활을 그만두셨나요? (다니엘김 선교사) 네,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날부터 아버지의 삶에 하나님의 구체적인 개입이 시작되었고, 점차 변화되어 야쿠자 생활을 정리하고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전에 듣기로는 부모님께서 10년 동안 떨어져 사신 기간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부모님이 10년 동안 떨어져 살게 된 배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선교사님과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제가 열 살 때까지는 외할머니 댁에서 삼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야쿠자 생활을 하셨고, 신변 문제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저와 여동생을 외가에 맡기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아버지와 저희를 번갈아 만나셨습니다. 열 살 무렵 아버지께서 야쿠자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시고, 일본 후쿠오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신 후, 저희 가족은 다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안정된 환경을 만드신 후에 한국에 계신 저희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한국에 오셔서 저와 여동생에게 "일본에 같이 갈래?"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열 살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가족과 함께 살게 된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시 선교사님의 심경과 일본 생활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네, 아버지께서는 한국에 오셔서 저희에게 일본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신기하게도, 저는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그런 마음을 넣어주신 것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아버지께 "저도 일본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고, 그날로 여권을 만들어 곧바로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한국 친구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배낭 하나 메고 일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일본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계속 일본에서 살았습니다. (주영훈) 10년이나 일본에서 사셨군요. 아버님께서는 야쿠자 생활을 그만두시고 무슨 일을 하셨나요?

야쿠자 생활을 청산하신 후, 아버님의 새로운 직업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버님의 직업 변화가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아버님께서는 당시 유행했던 사진 현상소를 운영하셨습니다. 일반 현상소와는 달리, 회사와 거래하는 큰 규모의 현상소를 운영하셨습니다. 일본 도로공단, 건설 회사 등과 계약을 맺고 공사 과정 기록 사진 현상 일을 하셨기 때문에, 사업이 번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새로운 사업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주영훈) 그럼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나요? (다니엘김 선교사) 당시 아버지는 교회에서 서리집사로 봉사하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워가도록 하신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께서는 술을 드시는 등 옛날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버님의 신앙생활과 변화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완전히 변화되기까지 어떤 어려움과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네, 아버지는 서리집사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지만, 하나님께서 끈기 있게 아버지를 붙드시고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10년,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완전히 변화되셨습니다. 지금은 장로님이 되셔서, 저를 위해 가장 많이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영훈) 아버님께서 전도하시면 많은 분들이 교회에 오시겠네요. (다니엘김 선교사) 하하, 아버지는 정말 진실하셔서, 기도하겠다고 약속하면 반드시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기도 제목을 적어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시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도전을 받고 감동을 받습니다. 아버지의 진실된 모습과 삶을 통해 복음을 접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주영훈) 어린 시절 어머님께서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셨던 모습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어머니의 신앙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선교사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어머니의 모습은 무엇이었나요? (다니엘김 선교사)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정말 많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제가 다섯 살, 여섯 살 때 어머니께서 금식기도 하시던 모습입니다. 당시 아버지께서 야쿠자 생활을 정리하시는 힘든 시기였는데, 어머니께서는 살레시오 수녀회 기도원에 들어가 3일 금식기도를 하시고 내려오셔서, 보식으로 죽을 드시고 다시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거의 한 달에 몇 번씩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저희가 섬기던 작은 교회 목사님께서 어머니께 교회 열쇠를 주셔서, 어머니께서는 저와 여동생을 데리고 밤마다 교회에 가서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2층 상가에 있던 작은 개척교회에서, 어머니께서는 강단에 무릎 꿇고 기도하시고, 저는 교회 의자에 누워 잠들곤 했습니다. 새벽 예배 시간에 목사님께서 오실 때까지, 어머니께서는 6-7시간 동안 쉬지 않고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철야기도 모습이 어린 시절 선교사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합니다. 당시 어머니의 기도 모습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선교사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네, 어머니께서 철야기도 하시던 모습은 제게 정말 큰 감동과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잠결에 눈을 떠보면, 날로의 주황빛 불빛에 비친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이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께서 저렇게 간절히 기도하시니, 우리는 괜찮을 거야'라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제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제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주영훈) 어머니 기도의 모습을 보고 자라셨으니, 정말 큰 영향을 받으셨겠네요.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기도하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송지은) 어머니 생각하니까 또 눈물이 나시나 봐요. 오늘도 어머니께서 함께 오셨는데, 어린 시절 생각에 감정이 북받치시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이 선교사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영훈) 정말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자녀에게 가장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말씀을 제일 싫어하셨다고 했는데, 언제 하나님을 가장 진하게 만났다고 느끼셨나요?

선교사님께서 하나님을 가장 강렬하게 만났던 순간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사실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말은 제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전제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관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등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네 가지 요소를 하나님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말은 제게 가장 큰 경고처럼 느껴졌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뜨겁게 만나 사랑을 체험했지만,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주영훈) 그럼 어릴 때부터 수련회도 많이 다니셨을 텐데, 은혜받았던 경험도 많으시겠네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다는 선교사님. 수련회나 교회 활동을 통해 은혜받았던 경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제가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처럼 큰 교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가 일본에서 가장 큰 교회였지만, 교인 수가 250-300명 정도였습니다. 일본 교회는 2세들이 교회에 잘 나오지 않았고, 일본어만 사용하는 2세 청소년들은 교회가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청소년부는 많을 때 4-5명, 없을 때는 저와 여동생 둘뿐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중고등부 전도사가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수련회를 가봤고, 청소년 캠프 강사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청소년 캠프에 가봤습니다. (주영훈) 어렸을 때 회개의 눈물을 흘리거나 하나님을 간절하게 붙잡았던 경험은 없으셨나요?

수련회 경험은 부족했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던 어린 시절의 경험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특별히 회개의 눈물을 흘리거나 깊은 기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수련회 캠프 경험은 없었지만, 오히려 감사했던 것은 저희 일본어 담당 목사님께서 저와 여동생을 특별히 교육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저희 둘만 데리고 산기도를 다니셨습니다. 밤에 플래시를 켜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캠프파이어를 하고, 기타 치면서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주에 한 번씩 산기도를 갔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일본인 전도사님과 함께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3,800km를 십자가를 지고 횡단하는 행진에 참여했습니다. 6개월 동안 일본 땅을 횡단하며 기도하고 전도하고, 각 지역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때 일본에 부흥이 일어났었습니다. 횡단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온 전도사님께서는 저와 여동생을 데리고 밤마다 산기도를 가셨고, 1년 후에는 저를 데리고 일본 고쿠라 섬 둘레 1,000km를 십자가 행진하는 순례에 동행하셨습니다.

3,800km 십자가 횡단과 1,000km 섬 둘레 십자가 행진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셨다고 합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겪었던 십자가 행진은 어떤 의미였으며,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주영훈) 고등학생 때 1,000km 십자가 행진은 정말 힘들었을 텐데, 하기 싫지는 않으셨나요? (다니엘김 선교사) 아니요, 저는 오히려 행복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십편 말씀을 많이 듣고 은혜를 받았는데, 특히 시편 66편 18절 말씀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가 제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영훈) 시편 66편 18절 말씀이 특별히 와닿았던 이유가 있었나요?

시편 66편 18절 말씀이 선교사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죄에 대한 민감한 의식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중학교 1학년 때,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신 세 분의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그중 첫 번째 스승님은 영적인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척추 교정 의료 선교사님이셨는데, 1년에 40일씩 동남아시아로 의료 선교를 떠나셨습니다. 선교사님께서는 일본 후쿠오카 교회에 오셔서 간증을 하셨는데, 오후 예배 후 점심 식사 시간에 성도님들을 위해 척추 교정을 해주셨습니다. 저도 선교사님께 호감을 느껴 옆에 있었는데, 선교사님께서 제게 "이번에 동남아시아 가는데 너도 갈래?"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선교사님께서는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저를 빈손으로 선교에 데려가셨습니다. 훈련을 위해서였습니다.

빈손으로 떠난 동남아시아 선교 여행에서 어떤 훈련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선교사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던 첫 번째 스승과의 만남과 훈련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선교사님께서는 홍콩으로 먼저 가시고, 저는 항공사 승무원 누나의 도움을 받아 홍콩에 혼자 입국했습니다. 공항에서 선교사님을 만났고, 그때부터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선교사님께서는 저를 홍콩 구룡의 게스트하우스로 데려가셨고, 다음 날 새벽 5시에 저를 깨우셨습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성경을 펴고, 선교사님께서 제게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암송하라고 하셨고, 암송하지 못하면 점심과 저녁을 굶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말씀을 암송했고, 이 말씀이 제 삶의 목적이 되기를, 이 말씀을 위해 살고 죽기를 기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을 삶의 목적으로 삼게 된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말씀 암송 훈련 외에 또 다른 훈련은 없었는지, 그리고 그 훈련을 통해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다음 날 선교사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은 시편 66편 18절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 즉 디보션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를 살피고, 마음에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정결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병적으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안 짓고 살 수 없지만, 넘어지고 실수하더라도 매 순간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영훈) 어린 나이에 매 순간 회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으셨나요?

어린 시절부터 매 순간 회개하는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놀랍습니다. 지나치게 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네, 한때는 너무 지나치게 회개해서 아버지께서 말리실 정도였습니다. 집에서 영화를 보다가도 순간순간 눈을 감고 "하나님,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순간적인 생각만 떠올라도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마음에 하나님께 꺼리낌이 있는 것은 오래 참지 못하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선택하시고 성결하게 하실 때, 집중적으로 필터링하는 기간을 주신다"고 했는데, 제게는 3-4년 정도가 그런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 안에 있는 모든 죄악들이 걸러지고, 올바른 믿음의 틀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주영훈) 어린 시절의 믿음 교육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평생 가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형성된 믿음의 틀이 평생 간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어린 시절 노방전도 경험도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여동생분과 함께 노방전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중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일본 영혼들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당시 일본 인구 1억 2,500만 명 중 기독교인은 0.2%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오가며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다 지옥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당시 일본인 전도사님께서 "외치자"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제대로 못 했지만, 외치다 보면 나온다고 하셔서 여동생과 함께 노방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여동생은 전도지를 나눠주고, 저는 신호등 옆 가드레일에 올라가 성경책을 들고 외쳤습니다. (주영훈) 노방전도 때 무엇을 외치셨나요?

노방전도 당시 외쳤던 메시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처음 노방전도를 시작했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처음에는 무엇을 외쳐야 할지 몰랐습니다. 전도사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만 외치라"고 하셔서, 성경책을 들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라고 외쳤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라고 하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라고 정확하게 풀네임을 외쳤습니다. 두 시간 정도 외치다 보니, 점차 메시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용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 갑니다!"와 같은 메시지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노방은 제가 처음으로 설교를 시작한 강단이었습니다. (주영훈) 노방전도 이야기가 정말 감동적이네요. 오카 목사님 설교를 많이 들으셨다고 했는데, 어떤 내용의 설교였나요?

오카 목사님 설교가 선교사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습니다. 오카 목사님 설교의 특징과 어떤 면에서 감동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중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뜨겁게 만날 때, 결정적인 계기는 오카 목사님 설교를 많이 들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잖아요 (로마서 10장 17절). 오카 목사님 설교를 듣다가,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가슴에 와닿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났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 30일 동안, 선교사님과 동남아시아 선교 여행을 하면서 오카 목사님 설교를 워크맨으로 계속 들었습니다. 잠잘 때도 이어폰을 꽂고 듣고, 일어나서 테이프를 뒤집어 다시 듣고, 설교를 수십 편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오카 목사님 설교를 거의 다 외울 정도였습니다.

오카 목사님 설교를 통해 하나님 사랑을 깊이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입니다. 설교를 듣는 것 외에 부모님의 영향도 컸을 것 같은데, 부모님께서 신앙 교육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주영훈) 중학생 때 오카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선물 받으셨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신앙 교육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네,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께서 생일 선물로 오카 목사님 설교 테이프 전집, 하용조 목사님 설교집, 한홍 목사님 설교집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한홍 목사님 설교집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 설교도 많이 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설교 듣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주영훈) 부모님께서 계속 신앙적인 것만 강조하시면, 오히려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을 텐데, 탈선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셨나요?

부모님의 신앙 강요에 대한 반발심이나 세상적인 유혹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춘기 시절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잘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주영훈) 부모님께서 신앙적인 것만 강조하시면, 오히려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을 텐데, 탈선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셨나요? (다니엘김 선교사) 아니요, 저는 오히려 설교 듣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잘 때도 설교를 틀어놓고 자고, 일어나서도 설교를 들었습니다. 사실 사춘기 시절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많을 시기인데, 저는 그런 유혹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더 끌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야쿠자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겉으로는 멋있어 보였지만, 저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신앙적인 모습에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 인생에는 '재미'라는 단어가 없는 것 같아요. 즐거움, 보람, 행복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열매이지, 그것 자체가 목표는 아닙니다. (주영훈) 정말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시는군요. 여태까지 출연하셨던 분들 중에 가장 공감이 안 되는 분입니다. 제 호흡기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오신 선교사님의 이야기에 감탄했습니다. 세상적인 재미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추구하는 삶이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그런 삶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주영훈) 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하신 것을 들어보면, 경쟁심이나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은 전혀 없을 것 같은데, 혹시 경쟁 상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나요? (다니엘김 선교사) 경쟁 상대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키도 비슷하고 운동도 비슷해서, 은근히 라이벌 의식을 느꼈습니다. 나이도 같고, 학생회장 선거에도 같이 출마했습니다. 저는 학생회장을 2년 동안 했고, 그 친구는 농구부 주장을 했습니다. 공부든 운동이든 서로 경쟁하면서 좋은 친구로 지냈습니다. 지금도 학창 시절 친구 중에 가장 보고 싶은 친구를 꼽으라면 그 친구를 꼽을 것입니다. (주영훈) 종교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친구는 없었나요? 몰몬교 친구나 무슬림 친구처럼요.

종교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친구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라이벌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무슬림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기독교를 안 좋게 이야기했는데, '하나님 대결'이라는 생각으로 그 친구에게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더 잘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면 좋은 친구였지만, 당시에는 경쟁심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몰몬교 친구도 있었는데, 몰몬교는 워낙 이미지가 좋아서 경쟁 자체가 안 되더라고요. 너무 착하고,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몰몬교 선교사 자녀들이었는데, 가족 전체가 다 착했습니다. 학교에서 몰몬교 학생들은 칭찬받고, 기독교 학생들은 비난받는 분위기였습니다. "몰몬교는 저렇게 착한데, 너희 기독교인들은 왜 그러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주영훈) 몰몬교 친구들 때문에 학교생활이 힘들었겠네요. 숨 막히는 분위기였을 것 같아요.

몰몬교 친구들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 더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당시 학교 분위기와 기독교 학생으로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송지은) 커피, 콜라도 안 마시는 몰몬교 학생들 틈에서 학교생활 하기가 쉽지 않았겠네요. (다니엘김 선교사) 네,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제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욕이 되는지 생각하며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정말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셨군요. 국대로 가셨어야 했는데. 그럼 공부 실력도 경쟁 상대가 있었나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업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는지, 그리고 학업 성적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저는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성적을 증거로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일본어를 전혀 못 했는데, 외국인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시험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거의 모든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공부에 재미도 없고, 중학교 1학년 때까지도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공부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공부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학업 성적은 어떻게 향상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 후,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어느 날 큐티 시간에 누가복음 9장 23절 말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를 묵상하면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굴복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지만, 본질은 굴복입니다. 예수님께서 굴복하셨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굴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여, 학생의 신분으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굴복한다'는 의미를 깨닫고 학업에 임하는 태도가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학업 성적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하나님께 굴복하기로 결심한 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책상 앞에 세 시간씩 앉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잘하겠다는 기도보다는,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학교 갔다 와서 책상에 앉았지만, 일본어를 잘 몰라서 교과서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영한사전을 찾아 모르는 단어를 찾고, 한국어 뜻도 초등학생 수준으로 써놓고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첫 학기말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습니다. 4.0 만점에 3.75점으로 전교 1등을 한 것입니다. (주영훈) 와, 정말 놀랍네요. 뭘 찍었는데 다 맞은 건가요?

전교 1등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비결이 궁금합니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혜를 주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주영훈) 와, 정말 놀랍네요. 뭘 찍었는데 다 맞은 건가요? (다니엘김 선교사) 하하, 찍어서 맞춘 것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특히 수학은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습니다. (웃음) 사실 저는 수학을 잘 못하는데, 교과서를 외우다 보니 점수가 잘 나왔습니다. 제 여동생은 저와 달리 꾸준히 공부를 잘하는 스타일입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신학대학원까지 항상 최우등 졸업했습니다. 제 성적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지만,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성적을 올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공부하라고 강요하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은혜받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부흥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으면, 밤새도록 공부하고 성적이 오르곤 했습니다. 저는 은혜로 공부했습니다. (주영훈) 정말 역대급 간증이네요. 와... 그만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힘듭니다.

은혜로 공부했다는 간증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전교 1등까지 했던 학업 실력이 대단한데, 당연히 신학대학원에 진학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군사학교에 진학했다고 들었습니다. 군사학교에 진학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주영훈) 와... 정말 역대급 간증이네요. 와... 그만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힘듭니다. 이어가 주세요. (송지은) 네, 정말 놀라운 간증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하신 것을 들어보면, 당연히 신학대학원에 진학할 것 같은데, 군사학교에 진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군사학교에 진학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군사학교에 진학한 이유는 군사 훈련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꿈이 세 가지 있었는데, 대통령, 장군, 목사였습니다. 군사학교에 가서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대통령이나 장군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가지 옵션을 열어놓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치학을 3개월 공부하고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꿨습니다. 정치학은 저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장군의 꿈을 꾸면서 군사학교 생활을 했지만, 4년 졸업을 앞두고 '나는 군인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사학교에서 4년 동안 생활하면서 군인의 길이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군인의 길을 포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진로를 변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군사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정말 열심히 받았고, 성적도 좋았습니다. 소총 분해 조립도 가장 빨리 할 정도로 군사 훈련에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군 생활은 저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안에 창의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군대는 획일적이고 틀에 박힌 생활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예술 선생님께서 "군사학교에 가면 창의력을 죽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군 생활을 하면서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미국 '미라' 극단에서 배우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연극 오디션에서 잭과 콩나무 연기를 했는데, 극단 관계자들이 제 연기를 보고 스카우트 제의를 했습니다. 장학금까지 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군사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군사학교 4년을 마치고 졸업을 앞두고, '내 안에는 군인보다 목사의 길이 더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4년 동안 군사학교에서 복음 전도 활동을 하면서 예수님을 더욱 깊이 만나게 되었고, '주님을 섬기는 것 외에는 보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사학교 생활을 통해 목회자의 길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군사학교 생활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힘든 훈련과 생활을 견뎌냈는지 궁금합니다. (주영훈) 군사학교 생활이 마음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힘들 텐데, 어떻게 4년 동안 버티셨나요? 미국 군사학교에서 다니신 건가요? (다니엘김 선교사) 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군사학교에서 다녔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의 상징적인 학교로, 남부 사상이 강하고 인종차별도 심했습니다. 제가 입학할 당시에는 구타도 심했고, 여생도 학교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여생도 들어오자 여생도에게 아세톤을 뿌리고 불을 지르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관학교보다 훈련이 더 힘들었습니다. 정말 힘든 군사학교 생활이었지만, 여동생이 보내준 카세트테이프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여동생은 제가 군사학교에 입학할 때 한국에서 유행했던 노래들을 녹음해서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줬습니다. 그 테이프를 들으면서 군사학교 1학년 생활을 견뎌냈습니다. 특히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여동생분이 보내준 카세트테이프와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노래가 군사학교 생활에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힘든 군사학교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켰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군사학교에서 인종차별과 구타, 밤샘 훈련 등으로 정말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주말이 되어도 외출할 곳도 없고,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에도 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미국 학생들은 부모님께 택배를 받았지만, 저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화장실에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군사학교에서도 화장실이나 학교 채플에서 기도했습니다. 특히 학교 채플은 제게 피난처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채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하나님께서 날개로 덮어주시는 듯한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힘들 때마다 채플에 가서 기도하면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여동생이 보내준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면서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찬양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군사학교 4년 동안 매일 기도하면서 신앙을 지켰고, 졸업 후 신학대학원에 진학해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힘든 군사학교 생활을 기도로 이겨내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과정이 감동적입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왜 하나님께서 바로 신학교로 보내지 않고 군사학교를 거치게 하셨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주영훈) 하나님께서 왜 바로 신학교로 보내지 않고 군사학교에서 고생하게 하셨을까 생각해 본 적은 없으신가요? (다니엘김 선교사) 군사학교에 가게 된 이유는 리더십 훈련을 받고 싶었고, 군 장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핍박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단련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갈망은, 어제 만났던 예수님이 아니라 오늘 새롭게 만나주시는 예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어제의 경험이 아니라, 오늘 새로운 체험, 새로운 간증을 갈망했습니다. 새로운 간증을 만들기 위해서는, 편안한 환경보다는 힘든 환경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힘들 때, 가장 뜨겁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군사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약점과 고통스러운 부분을 정확히 아시고, 군사학교를 통해 저를 연단하신 것입니다. 제 약점은 외로움과 무시당하는 것이었는데, 군사학교 4년 동안 외로움과 무시를 견디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군사학교를 통해 외로움과 무시를 견디는 훈련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는 어떤 어려움과 은혜를 경험했는지 궁금합니다. (주영훈) 군사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연단을 받으셨군요. 이후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셔서도 여러 가지 경험을 하셨을 것 같은데, 신앙의 배짱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신앙의 배짱은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신앙의 배짱이다. 굶어 죽으면 굶어 죽었지, 절대로 넘지 않는 선이 있다. 취업을 못 하면 못 했지,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어머니께서는 늘 타협 없는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사역을 할 때도 어머니의 말씀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절대로 넘지 않는 선, 절대로 가지 않는 곳,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을 정하고, 신앙의 배짱으로 살아왔습니다. 신학대학원 시절에는 물질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특히 자동차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신학대학원 시절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드림카인 지프차를 샀습니다. 작은 돈이었지만, 당시 신학생 신분으로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으면서 생활비와 자동차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카푸어 생활을 하면서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고, 십일조를 떼기 시작했습니다. 수입이 적더라도 십일조를 먼저 떼고, 나머지를 생활비로 사용했습니다. 신앙은 배짱이라는 생각으로, 십일조부터 먼저 실천했습니다. 놀랍게도 십일조를 떼기 시작하면서, 부족한 학비가 채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물질적인 어려움을 통해 물질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물질에 얽매이면 하나님의 종으로 온전히 헌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서 십일조를 통해 물질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물질적인 어려움 외에 신학대학원 시절 또 다른 어려움은 없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물질적인 어려움 외에, 신학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종교비자 거절이라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시 중고등부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은퇴하시면서, 제게 영어 예배부 전담 사역을 제안하셨습니다. 풀타임 사역을 하면 종교비자를 신청할 수 있고, 영주권까지 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종교비자를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이민국에서 종교비자 거절 통보를 받았습니다. 학생비자는 이미 만료된 상태였고, 종교비자도 거절되었으니, 하루아침에 미국에서 불법체류자가 되었습니다. 빚은 많고, 학비는 없고, 졸업은 한 학기 남았고, 목사 안수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인생이 끝났다는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종교비자 거절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안타깝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지, 그리고 종교비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사명을 주시고 열정을 주신다면, 미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중국으로 가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소명을 받고, 사명자로서 다시 정체성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절당했던 종교비자를 다시 한번 신청해 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일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종교비자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는데, 놀랍게도 5년짜리 종교비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분들을 통해 학비가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학비가 생길 때마다 십일조를 떼고, 미국으로 돌아가 졸업하고 빚을 갚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종교비자 재신청 성공과 학비 마련, 그리고 목사 안수까지, 기적적인 은혜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주영훈) 마지막으로, 지금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역하고 계신 선교사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죠. (다니엘김 선교사) 워낙 힘들게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이 많아서, 제가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20년 동안 선교 사역을 하면서 후원 없이 사역해 왔습니다. 교회 후원도 없고, 개인 후원도 거의 없습니다. 후원이 없으면 사역이 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난 20년 동안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지금도 유튜브 사역을 하면서 많은 부분을 무보수로 사역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후원을 받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 전하는 종으로서,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후원을 받으면 후원하는 교회의 입장을 고려하게 될 수 있고, 말씀 전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떤 후원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역하고 싶습니다.

후원 없이 20년 동안 사역해 오셨다는 이야기가 놀랍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송지은) 정말 놀라운 간증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영훈) 오늘 다니엘김 선교사님 말씀 들으면서 타협 없는 믿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니엘김 선교사) 오늘 말씀을 통해 타협 없는 믿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1순위라고 고백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세상적인 욕망을 1순위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부족함이 많지만, 타협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타협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영훈)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다니엘김 선교사님 모시고 타협 없는 믿음에 대해 깊이 묵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귀한 간증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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