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건너뛰기

100년 믿음의 유산과 희망, 이광희 패션 디자이너의 성공 비결

요약

100년 믿음 유산, 희망을 심는 디자이너 이광희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땀과 눈물, 이광희 패션 디자이너의 삶과 철학: 김현숙 수어통역사와 함께하는 깊이 있는 이야기

여러분은 혹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실감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숨길 수 없는 유전자, 놀라운 재능, 그리고 대대로 이어지는 믿음의 유산까지, 우리 삶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연결고리가 존재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유산을 훌륭하게 이어받아 자신만의 빛나는 길을 개척해 온 한 인물에 대한 것인데요, 바로 앙드레김 디자이너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대한민국 대표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 이광희 선생님입니다. 과연 그는 어떻게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이광희 디자이너의 파란만장한 삶과 성공 비결,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깊은 철학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80년대 맞춤 정장 시대, 앙드레김 선생님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며 패션계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흔히들 성공에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광희 디자이너에게는 1980년대 초,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원미경 씨와의 만남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원미경 씨는 드라마 ‘갯마을’과 ‘진실’에서 이광희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출연했는데, 당시 드라마 시청률이 무려 78%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인기였죠. 이 드라마를 통해 이광희 디자이너의 이름은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었고, 이후 갓난 아기부터 20대 모델까지, 누가 입어도 옷이 빛을 발하는 놀라운 디자인으로 입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그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디자이너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고객들이 자신의 옷을 입었을 때 ‘격’이 느껴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합니다. 옷 자체가 사람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는 것인데요, 심지어 어떤 아버지는 딸에게 “다른 옷은 다 버리고 이광희 옷만 입으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광희 디자이너의 옷은 단순한 의상을 넘어, 입는 사람의 가치와 개성을 표현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많은 후배 디자이너들이 궁금해하는 성공 비결에 대해, 이광희 디자이너는 6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답할 수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섣불리 성공을 논하기 어려웠다는 것인데요, 과연 그가 깨달은 성공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요?

이광희 디자이너는 성공의 근본적인 비결을 부모님의 가르침에서 찾았습니다. 목사이셨던 아버지와 사모님이셨던 어머니는 평생을 헌신과 봉사로 살아오셨는데요, 아버지에게서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원칙을, 어머니에게서는 ‘혼을 담아 일해야 한다’는 자세를 배웠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정도’는 경영의 원칙이 되었고, 어머니의 ‘혼’은 옷을 만드는 섬세한 태도가 되었습니다. 결국 ‘혼을 담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성을 쏟는 것을 넘어,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숭고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작은 일 하나에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정성이야말로 이광희 디자이너 성공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성공의 비결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주저 없이 ‘인내’라고 말합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이광희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광희 디자이너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또 다른 중요한 가치로 ‘수용’을 꼽았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힘든 일들을 겪을 때마다 어머니는 “주신 대로 받아라”라는 짧지만 깊은 가르침을 주셨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어진 현실을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헤쳐나가는 ‘수용’의 힘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난을 주시지 않기에, 불평 대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이광희 디자이너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오늘도 참아 받았느냐”라고 물으며 ‘인내’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이광희 디자이너 내면에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주었고, 하루하루 묵묵히 참아가는 인내의 과정 속에서 성공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에게 또 다른 삶의 지혜를 준 것은 바로 ‘책임감’이었습니다. 힘든 시기, 심지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조차 그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산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은 그를 좌절 থেকে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책임을 다하는 삶 속에서 비로소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느끼고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책임감은 그의 삶에 깊은 저력을 만들어주었고, 마침내 성공이라는 빛나는 결과로 이끌었습니다.

놀랍게도 이광희 디자이너의 외할머니 역시 예사롭지 않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이주해 오신 외할머니는 동네에서 덕망이 높고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는데, 마치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시대에 외할머니는 동네 대소사를 챙기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존경받는 존재였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셨을 때, 3년 동안 39첩 반상을 손수 차려 극진히 간호하여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동네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칭송을 받았고, 마을 사람들은 외할머니를 ‘성모 마리아’처럼 숭배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외할머니의 헌신적인 삶은 이광희 디자이너 가문에 깊은 믿음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외할머니는 자녀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셨습니다. 특히 막내딸이었던 이광희 디자이너의 어머니에게는 특별한 기대를 걸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신학 공부를 시켰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기독교를 믿으면 선교사로 키워준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를 기독교로 인도했고, 10년 동안 헌신적인 믿음 생활 끝에 어머니는 마침내 훌륭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선구자적인 교육관과 강인한 정신력은 어머니를 통해 이광희 디자이너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이처럼 이광희 디자이너의 삶의 뿌리에는 100년을 뛰어넘는 땀과 눈물, 그리고 굳건한 믿음의 유산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의 부모님, 즉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합니다. 두 분 다 독신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려 했지만, 운명처럼 만나 부부가 되셨다고 하는데요, 두 분 다 뛰어난 인품과 신앙심을 가진 분들이셨기에, 주변 사람들은 두 분의 만남을 ‘천생연분’이라고 불렀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어머니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예수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감동적인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낭만적이면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맺어진 부모님의 인연은 이광희 디자이너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의 부모님은 교회에서 낮에는 아버지, 밤에는 어머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두 분은 24시간 헌신적인 삶을 사셨는데요, 아버지는 낮에는 목회 활동에 전념하고, 어머니는 밤에 어려운 사람들을 몰래 찾아가 도움을 주셨다고 합니다. 특히 어머니는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배려하여 아무도 모르게 밤에 ‘포대’를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헌신을 실천하셨습니다. 이러한 부모님의 숭고한 봉사 정신은 이광희 디자이너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직후, 가장 어려운 지역이었던 해남 땅끝마을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당시 해남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버지는 교회를 통해 전쟁 고아와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습니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와 함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며 평생을 보내셨는데요, 두 분은 검소한 생활을 몸소 실천하며,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데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평생 30kg대의 몸무게를 유지하며,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봉사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헌신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이광희 디자이너에게 깊은 감동과 존경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의 집은 늘 어려운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합니다. 거지, 한센병 환자, 심지어 정신질환자까지, 누구든 차별 없이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부모님의 사랑은 이광희 디자이너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머니는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옷을 입혀주며 보살폈고, 이광희 디자이너는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낯선 풍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웃 사랑을 배우고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헌신적인 삶 속에서도 자녀들에게 소홀함이 없었는데요, 오히려 넘치는 사랑으로 자녀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셨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 덕분에 어린 시절 외로움이나 결핍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회상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광희 디자이너는 부모님의 삶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해남 촌에서 벗어나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된 것인데요, 화려한 도시 생활과 자유로운 분위기는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방황 속에서도 스스로 절제하고 통제하며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교회에서 2시간 동안 꼼짝 않고 예배를 드리는 훈련, 겨울에도 코트 없이 지내는 극기 훈련, 그리고 말을 아끼는 침묵 훈련 등을 통해 그는 강인한 정신력과 반듯한 자세를 확립했습니다. 이러한 고등학교 시절의 훈련은 훗날 사회생활을 하면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아버지에 대해 한마디로 ‘참’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참’이라는 글자를 써놓고 진실하고 거짓 없는 삶을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목회자로서 새벽기도를 5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지켰다는 사실은 아버지의 철저한 자기 관리와 신앙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폭설이 쏟아지는 날에도 새벽기도를 위해 산길을 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일기를 쓰셨는데, 일기에는 궂은 날씨에도 새벽기도를 향하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감탄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광희 디자이너의 아버지는 진실하고 성실한 삶의 표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의 아버지는 함석헌 선생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이광희 디자이너의 집을 자주 방문하여 어린 시절의 그를 무릎에 앉혀 사랑해주셨다고 합니다. 함석헌 선생은 이광희 디자이너의 어머니를 극찬하며, “지금까지 만난 여인 중 최고의 여인”이라고 칭송했을 정도입니다. 또한 정호승 시인은 ‘하나님 전상서’라는 시를 통해 이광희 디자이너 아버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도 했습니다. 시의 내용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편지를 쓴 아이를 이광희 디자이너의 부모님이 물심양면으로 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 아이는 훗날 신학대학 교수가 되었고, 총장까지 역임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광희 디자이너의 가정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따뜻한 사랑의 보금자리였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의 어머니는 평생 검소한 옷차림을 유지했습니다. 화려한 옷 대신 수수하고 질박한 무채색 옷을 즐겨 입으셨는데요, 이는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옷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검소함 그 자체였지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우아함과 품격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화려한 상류층 의상을 디자인하면서도, 땅끝마을에서 검소하게 살아가는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그리움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4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특히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손님을 대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화장실로 도망가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모님의 기도 덕분이었는데요, 어머니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네가 하는 일이 숭고한 일이지”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격려 덕분에 이광희 디자이너는 마음의 짐을 덜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고난 속에서도 늘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낙천적인 성격과 믿음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조차 “하나님이 너를 옷 만들라고 세상에 보낸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이광희 디자이너의 삶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빛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김혜자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월드비전 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30년 넘게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는 톤즈의 열악한 현실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광야와 같은 땅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삶을 떠올렸고,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강렬한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남수단 톤즈에 ‘희망의 망고나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망고나무는 심고 나서 열매를 맺기까지 7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교육 사업을 통해 톤즈 주민들의 자립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봉사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단순히 물품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교육, 직업 훈련, 학교 설립, 교회 건축 등 지역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사업들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원스톱 솔루션’ 방식을 택했습니다. ‘희망의 망고나무’라는 이름은 남편 홍성삼 씨가 지어주었는데, 척박한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위험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적극적으로 아내의 활동을 지지하고 돕고 있다고 합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희망의 망고나무’ 프로젝트를 13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매일 눈물을 흘릴 정도로 힘들었지만, 톤즈 주민들과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특히 5년 동안 공들여 지은 교회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톤즈 주민들이 이제는 보고 싶고 그리운 존재가 되었고, 그들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은 그를 끊임없이 봉사활동에 매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에 희망을 찾아간다’는 모토 아래, 이광희 디자이너는 앞으로도 톤즈를 비롯한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세상을 살아가는 힘으로 ‘책임감, 수용, 인내’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이 세 가지 가치는 그의 삶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어진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인내심을 가지고 숭고한 사명을 완수해나갔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주신 대로 받아라”라는 가르침은 그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는데요, 처음에는 단순히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수용’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힘든 일도 잘 잊고 살아가는 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억울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굳이 숨기거나 억누르지 않고, 건강하게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힘들 때일수록 오히려 더 크게 웃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것이죠. 이처럼 밝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이광희 디자이너의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방송 말미에 진행자는 이광희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올바른 교육’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강요하거나 지식을 주입하지 않았지만, 삶으로 보여준 헌신과 사랑은 그 어떤 교육보다 값진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땅끝마을 가장 어두운 곳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돌보는 부모님의 숭고한 삶은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이제는 이광희 디자이너가 지구 반대편 땅끝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며,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믿음의 유산이라고 진행자는 강조합니다. 또한 진행자는 이광희 디자이너 부모님의 기도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며 감사함을 전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와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희망의 망고나무’ 프로젝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부탁하며 방송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처럼 이광희 디자이너의 삶은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합니다. 그의 성공 뒤에는 부모님의 숭고한 헌신과 사랑, 그리고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도 작은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한 고대 문서 이야기

2.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4.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ChatGPT,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구독료 80% 할인 받는 법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