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병원 선교 헌신, 건국대 고필수 목사 감동 간증
37년 헌신, 영혼을 치유하는 병원 천사 고필수 목사
“아픈 영혼과 함께하는 24시간”: 건국대학교 병원교회 고필수 목사 간증 상세 정리
오늘 우리는 37년간 아픈 영혼들의 곁을 묵묵히 지켜온 건국대학교 병원교회 고필수 목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삶의 고난 속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의 가치에 대해 깊이 알아보고자 합니다. 과연 고필수 목사님은 어떻게 수많은 환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삶의 희망과 믿음을 심어줄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과 병원 선교 노하우를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시죠.
고필수 목사님은 건국대학교 병원의 전신인 민중병원 시절부터 원목으로 사역하며 3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봐왔습니다.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하여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이후에는 수술을 앞둔 환자들의 병실을 일일이 방문하여 기도와 심방을 진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상담과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장례 예배까지, 그녀의 하루는 그야말로 쉴 틈 없이 바쁘게 흘러갑니다. 단순히 예배를 인도하는 것을 넘어,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영혼의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그녀의 모습은 진정한 헌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고필수 목사님의 헌신적인 사역은 놀라운 결실로 이어져, 한 해 평균 천 명의 환자를 전도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매년 천 명이 넘는 환자들이 고필수 목사님을 통해 영접 기도를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놓인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녀의 사역은 영적 최전방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혼 구원 전쟁과 같습니다. 그녀의 열정과 헌신은 병원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귀한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고필수 목사님은 과거 남편의 빚보증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고, 설상가상으로 병까지 얻게 되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중 치유의 손길을 경험한 그녀는 “병을 고쳐주시면 평생 병원 선교를 하겠다”는 서원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자신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병원 선교라는 소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개인의 아픔을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으로 승화시키고, 고난을 통해 얻은 치유의 경험은 병원 사역에 헌신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간증은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믿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고필수 목사님의 이름, '필수'는 본명이 아닌 점술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본래 아들을 원했던 집안에서 딸만 넷을 낳자, 점술가에게 가서 남자 이름을 받아 지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필수'라는 이름은 “반드시, 꼭 필요하다”는 뜻처럼, 그녀는 병원 선교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즉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름 때문에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는 오히려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며 소명을 굳건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이름처럼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 영혼 구원에 헌신하는 삶, 그녀의 이야기는 이름마저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고필수 목사님은 중학교 입학 전 세례를 받으려 했지만, 점술가가 지어준 이름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이 그녀를 놀리는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교회 목사님께 개명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목사님은 “이름대로 살라”며 오히려 이름의 긍정적인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높을 ‘고’, 반들 ‘필’, 지킬 ‘수’, 즉 “높은 뜻을 반듯이 지키라”는 의미로 해석하며, 하나님의 뜻은 지옥 갈 사람들을 전도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목사님의 격려에 힘입어 이름대로 살기로 결심한 고필수 목사님은 37년간 병원에서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린 시절의 고민은 오히려 소명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이름은 평생의 사명을 상기시키는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1981년 2월 13일, 34세의 나이에 병원 사역을 시작한 고필수 목사님은 70세가 된 지금까지 37년간 한결같이 병원을 지켜왔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에 출근하여 환자들을 돌보고 복음을 전하는 그녀의 모습은 시간을 초월하는 헌신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3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환자를 향한 사랑과 영혼 구원의 열정은 변함없이 뜨겁습니다. 그녀의 삶은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고필수 목사님의 하루 일과는 새벽 6시 출근으로 시작됩니다. 6시 30분에는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고, 7시부터는 부목사님과 함께 병실을 돌며 수술 환자들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과거에는 혼자 이 모든 일을 감당했지만, 수술 환자가 많아지면서 부목사님과 역할을 분담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평균 5-60명의 환자 병실을 방문하여 기도하고 위로하며 마음의 평안을 전달합니다. 퇴원 환자가 많은 날에는 11시간, 늦게 퇴원하는 환자가 있는 날에는 12시간 넘게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봅니다. 환자들의 필요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은 진정한 섬김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시간과 체력을 아끼지 않고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그녀의 열정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병원 내에서 고필수 목사님은 “천연기념물”, “시계”, “해결사”라는 세 가지 별명으로 불립니다. “천연기념물”은 오랜 시간 병원을 지켜온 최고참 원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병원 개원 멤버로서 역사를 함께 해 온 그녀는 살아있는 역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시계”라는 별명은 과거 승용차가 없던 시절, 매일 아침 6시 8분 첫 전철을 타고 6시 13분에 병원에 도착하는 정확함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환자들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시간을 확인할 정도로 성실함의 대명사였습니다. “해결사”는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고필수 목사님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모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돕는 그녀의 모습은 신뢰와 존경을 얻기에 충분했습니다. 별명들은 그녀의 헌신, 성실함, 그리고 문제 해결 능력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고필수 목사님은 병원에서 공로상까지 수상하며 병원 직원들에게도 인정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원래 예수를 믿지 않던 병원장님조차 “어떻게 하루도 안 빼고 그렇게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느냐”며 그녀의 헌신에 감탄했습니다. 종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진심과 노력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병원 개원 기념식에서 직원들에게 주는 공로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헌신은 병원 전체에 귀감이 되었습니다. 믿음을 넘어선 헌신은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존경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고필수 목사님이 특별히 병원 사역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과 죽음의 문턱에서 경험한 특별한 체험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마음은 자연스럽게 간호사의 꿈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간호사가 아닌 병원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34살 때, 빚보증과 질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살려만 주시면 평생 병원에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고 새로운 생명을 얻으면서 병원 선교는 그녀의 삶의 목적이자 소명이 되었습니다. 개인의 꿈과 삶의 경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병원 선교라는 특별한 사역으로 이어졌습니다.
고필수 목사님은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심장병과 합병증으로 피를 토하며 사경을 헤매던 그녀는 병원에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린 두 아들을 남겨두고 떠날 수 없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이라도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병원 선교를 서원했습니다. 잠시 후, 놀랍게도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희미해진 시력에도 불구하고 디모데후서 4장 말씀을 펼쳤는데, “그러므로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는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치유에 대한 확신과 병원 선교에 대한 소명을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성경 말씀은 그녀에게 생명과 소망을 주었고,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기적적인 체험 이후, 고필수 목사님은 병이 완전히 나았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말씀을 통해 치유와 소명을 확신한 그녀는 산소 호흡기를 스스로 제거했습니다. 놀랍게도 호흡이 편안해졌고, 몸에 기운이 솟아났습니다. 기쁨에 겨워 찬송가를 불렀는데, 숨이 차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병이 나았음을 확신했습니다. 3일 후 일반 병실로 옮겼고, 죽부터 시작해 미음, 밥까지 순차적으로 섭취하며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의료진조차 “꾀병처럼 나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기적적인 치유는 그녀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고, 병원 선교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었습니다. 기적은 믿음과 소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고필수 목사님은 병이 나은 후 곧바로 신학교에 진학하지 않았습니다. 퇴원을 앞두고 있을 때, 병원 봉사자 박예자 님이 찾아와 기도해 주었고, 병원 전도사가 되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놀랍게도 박예자 님은 6개월 전부터 병원 전도사 파송을 위해 기도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임을 직감한 고필수 목사님은 선교 단체 총무에게 연락했고, 3일 후 총무와 함께 선교 단체를 방문하여 병원 전도사 훈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가을 학기부터 신학교에 편입하여 본격적인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기적적인 치유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고, 병원 전도사라는 소명을 발견하는 놀라운 여정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고필수 목사님이 사역을 시작할 당시, 가정 형편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에 쫓기고 있었고, 어린 두 아들을 키우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의료 선교 단체에서 받는 사례비는 한 달에 1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사글셋방과 정부미, 간장과 보트를 사면 돈이 부족했고, 아이들은 하루 한 끼만 먹는 날도 많았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병원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소명감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난은 그녀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고 환자들의 아픔에 더 깊이 공감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고필수 목사님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습니다. 환자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몰래 가져와 끓여서 누룽지처럼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이기도 했습니다. 남들이 보면 창피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굶길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자존심보다 자녀를 향한 사랑이 더 컸던 것입니다. 어려운 시절의 경험은 그녀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길러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고, 헌신적인 사역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고필수 목사님의 아들들은 어머니의 헌신 때문에 어린 시절 외로움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항상 바쁜 어머니 때문에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고,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자랐습니다. 큰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도 없고 밥도 없었다”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헌신을 이해하게 되었고, 오히려 신앙적인 유산을 물려받아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어려움은 믿음 안에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어머니의 삶은 자녀들에게 귀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고난은 때로는 성장의 촉매제가 되기도 합니다.
고필수 목사님의 큰 아들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벤처 기업을 창업했지만, 사업 실패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미국에서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하며 부유하게 살았지만, 마음 속에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심장 발작과 호흡 곤란을 겪으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습니다. 절박한 순간, 과거 CCC 활동을 하며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순종을 맹세했고,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 후, 다니던 회사를 사직하고 신학교에 진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성공은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고, 죽음의 고비에서 소명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은 때로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 바뀌기도 합니다.
고필수 목사님의 큰 아들은 현재 미국에서 목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침례교단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목회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영혼 구원의 사역에 헌신하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헌신은 자녀에게까지 이어져, 믿음의 명문가를 이루었습니다. 신앙의 유산은 세대를 넘어 영원히 이어지는 귀한 가치입니다.
고필수 목사님의 둘째 아들은 삼성전자에 근무하며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형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어머니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 모두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을 존경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가족으로서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고필수 목사님은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사역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심장 질환까지 앓고 있지만, 환자들을 향한 사랑과 사명감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1년에 천 명이 넘는 환자를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쓰고 있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와 의료 환경 변화로 인해 전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입원 기간 단축과 감염 우려로 인해 환자들과의 접촉이 쉽지 않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은 귀감이 됩니다.
고필수 목사님은 병원 사역 중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병원 내 예배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해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배를 시작하면 수위가 와서 물을 뿌리고, 청소를 하는 등 방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꾸준히 헌신한 결과, 점차 병원 내에서 사역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5년 만에 원목실이 마련되었고, 병원 직원들로부터 공로상까지 수상하며 존경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내와 끈기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승리를 가져다줍니다.
고필수 목사님은 병원 사역 중 기억에 남는 환자로 추락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박영국 집사를 소개했습니다. 처음에는 고통과 절망에 힘들어했지만, 고필수 목사님의 지속적인 방문과 기도를 통해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며, 부모님까지 한국으로 초청하여 함께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불교 신자였던 박 집사의 아버지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고필수 목사님의 기도와 전도를 통해 임종 직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불교에 심취했던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세례까지 받은 것은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영혼 구원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고필수 목사님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37년간 병원에서 아픈 영혼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그녀의 삶은 진정한 헌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개인의 고난을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통로로 삼고, 죽음의 문턱에서 경험한 기적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영혼 구원에 헌신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고필수 목사님의 건강은 좋지 않습니다. 수술 후유증과 심장 질환으로 인해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호흡 곤란을 겪기도 합니다.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밤에 응급 상황이 발생할까봐 더욱 염려됩니다. 후임 목사가 오기 전까지 건강하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리고 아들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사역지를 찾을 수 있도록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고필수 목사님의 건강 회복과 사역의 지속, 그리고 아들의 목회 사역을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고필수 목사님은 37년간 자신의 시간을 아픈 영혼들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했습니다.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그녀의 헌신적인 삶은 더욱 귀하고 순고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고필수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 고필수 목사님처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