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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자격증 변호사 곽상빈의 인생역전 하나님 만남 간증

요약

30개 자격증보다 강한 믿음, 돈 쫓던 변호사의 인생역전 간증

💸 돈, 돈, 돈! 에 얽매였던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방향을 바꾼 이야기: 곽상빈 변호사의 간증

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의 진행자 주영훈입니다. 오늘 함께할 또 다른 진행자 연 씨와 이정수 씨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정말 괴롭고 힘든 순간, 그 어떤 곳에도 기댈 곳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오늘 모신 곽상빈 변호사님 역시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돈을 좇아 살았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하나님을 만나면서 인생의 목적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곽 변호사님은 자격증을 무려 30개나 보유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것도 쉽지 않다는 자격증들을 말이죠. 대체 어떤 자격증들을 가지고 계신 걸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실까요? 지금 바로 곽상빈 변호사님을 모시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곽상빈 변호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주영훈: 변호사님을 변호사라고만 소개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인데요. 자격증이 30개나 된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대표적인 자격증 몇 가지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곽상빈 변호사: 네, 변호사, 공인회계사, 감정평가사, 손해사정사, 경영지도사, 가맹거래사, 국제공인투자분석사 등 금융 관련 자격증들을 주로 취득했습니다.

주영훈: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 모든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나요?

곽상빈 변호사: 대략 10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보통 자격증 하나 따는데 4~5년씩 걸리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주영훈: 맞습니다. 변호사나 회계사 같은 자격증은 정말 어려운 시험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자격증들을 모두 가지고 계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혹시 변호사님처럼 여러 전문 자격증을 가진 분이 또 있을까요?

곽상빈 변호사: 현재까지는 전국에서 저 혼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흔치 않은 케이스일 겁니다.

주영훈: 정말 특이한 이력이네요. 솔직히 자격증 하나만 따도 더 이상 공부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자격증에 도전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많은 자격증 중에 가장 따기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곽상빈 변호사: 사실 모든 자격증 시험이 다 어려웠습니다. 어떤 시험이 더 어렵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각 시험마다 요구하는 역량이나 시험 유형이 다르고, 또 개인의 강점과 약점이 다르기 때문에 체감 난이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주영훈: 그렇군요. 만약 모든 자격증을 버리고 단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어떤 자격증을 선택하시겠어요?

곽상빈 변호사: 음... 제 목적, 즉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데 가장 부합하는 자격증은 변호사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자격증들은 변호사로서 사역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도구들을 마련하기 위해 취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변호사 자격증 자체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과 전문성이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주영훈: 변호사님의 이력이 너무나 특이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일반적인 인물 검색 결과와는 다르게, 변호사님 이름 밑에 책 목록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더군요. 광고인가 싶었는데, 모두 변호사님이 직접 쓰신 책이라고요?

곽상빈 변호사: 네, 지금까지 25권 정도 책을 썼습니다. 실무서, 이론서, 문제집 등을 제외하면 단행본만 10권 정도 됩니다.

주영훈: 10년 동안 자격증 30개 취득, 책 25권 집필... 혹시 친구는 있으신가요?

곽상빈 변호사: (웃음) 신한 형이 제 친구죠. 그래도 친구들과 가끔 만나기도 합니다. 주변에서는 저를 '인맥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덕분에 고객도 많은 편입니다. 물론 실속 없는 인맥왕일 수도 있지만요. (웃음)

주영훈: 아, 그리고 김앤장에서도 근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곽상빈 변호사: 네, 작년 말까지 김앤장에서 일했습니다.

주영훈: 김앤장이라니, 정말 '인맥왕'을 넘어 '인맥 황제'시네요! (웃음) 자격증도 많이 취득하시고, 책도 많이 쓰시고, 김앤장에도 근무하시고... 본인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셨을 텐데, 어린 시절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혹시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셨나요?

곽상빈 변호사: 아닙니다. 오히려 굉장히 힘들게 자랐습니다. 만약 제가 순탄한 삶을 살았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다양한 자격증에 도전하거나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 많은 자격증은 오히려 제게 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살아온 데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곽상빈 변호사: 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을 하셨는데, 갓난아기 때 사업이 잘 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4살 때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건설 하청업체에 모터를 납품하는 회사를 운영하셨는데, 건설 경기 침체와 함께 연쇄 부도가 발생하면서 아버지 회사도 부도를 맞게 된 것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아버지 회사 빚보증을 서셨습니다. 지금 변호사가 된 입장에서 보면 절대 안 될 일이지만, 당시에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에 덜컥 보증을 서셨던 거죠. 결국 아버지, 어머니 모두 거의 동시에 파산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집도 압류당했습니다.

곽상빈 변호사: 제가 아홉 살,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그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상빈이네 망했대'라는 소문이 돌고, 저는 살던 곳에서 쫓겨나듯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고척동에서 상계동 끝자락으로 이사했는데, 이사 간 곳에서도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사업이 망하면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변호사로서 집행 절차를 잘 알기 때문에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할머니 집, 그것도 14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의 거실에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그 좁은 공간에 바퀴벌레가 들끓고, 곰팡이가 슬어 있는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고,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망해서 집도 없고, 옷도 이상하다'라며 놀림을 당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곽상빈 변호사: 이 채널이 기독교 채널인데요,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장로님이시고, 친척 중에는 목사님도 계십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주일학교도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이 망하고 힘든 상황에 놓이자 처음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 '교회 다녀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을 하며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신앙 무용론'을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요?

주영훈: 정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셨네요.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셨나요?

곽상빈 변호사: 정말 닥치는 대로 궂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것이, 피자집 전단지 아르바이트는 전단지 한 장당 10원씩 받았습니다. 전단지를 몰래 버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정직하게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전단지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신문 배달, 식당 설거지 등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해도 하루 벌어 먹고 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저임금이 워낙 낮았던 탓도 있겠지만, 아홉 살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더욱 제한적이었으니까요.

주영훈: 아홉 살 때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했다니, 정말 믿기지 않네요. 보통 아홉 살이면 부모님 보호 아래에서 뛰어놀 나이인데...

곽상빈 변호사: 하지만 저는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음 아팠던 것은 그렇게 힘들게 일해도 돈이 잘 모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 아르바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막 홈페이지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나모 웹에디터'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했을 때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홈페이지 제작 아르바이트를 하면 20~3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컴퓨터 교육을 통해 홈페이지 제작 기초를 배우기도 했고, 저는 곧바로 홈페이지 제작 광고를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광고를 보고 홈페이지 제작 의뢰가 들어왔고, 어느 달에는 100만 원까지 벌기도 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이제 돈을 벌 수 있겠구나', '나도 밥벌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사업자등록까지 냈습니다.

주영훈: 중학교 1학년 때 사업자등록을 했다고요?

곽상빈 변호사: 네, 제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습니다. 세무서 공무원도 미성년자가 사업자등록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강북세무서에 사업자등록 신청을 했는데, 처음에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동의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업자등록 후 본격적으로 홈페이지 제작 영업을 하면서 조금씩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제작한 홈페이지 포트폴리오가 100개가 넘어가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인터넷 헌책방을 만들던 고등학생 벤처기업가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북닷컴'이라는 인터넷 헌책방이 벤처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었는데, 그 회사 창업 멤버들과 함께 파운더로 참여하여 개발 및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안양에 있는 벤처기업이었는데, 이때부터 '나는 사업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사람들은 변호사님을 공부만 했던 '모범생'으로 생각할 텐데, 10대 시절부터 사업에 뛰어드셨다니 정말 의외네요. 그 당시 공부는 거의 안 하셨겠어요?

곽상빈 변호사: 네, 10대 시절에는 공부는 뒷전이고 사업에만 몰두했습니다. 홈페이지 디자인, 프로그래밍, 서버 관리 등 사업 관련 업무에만 집중했습니다. 사실 디자인은 예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각 디자인을 공부해보면 아시겠지만, 레이아웃, 색상, 폰트 하나하나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디자인은 타고난 감각이 중요한 분야인데, 저는 제게 디자인 감각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으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영훈: 흔히 '천재'가 아니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변호사님은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셨네요. 보통 사람들은 공부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지만, 변호사님은 타고난 재능으로 다른 길을 선택하신 거군요.

곽상빈 변호사: 맞습니다. 저는 공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도 사업에 도움이 되는 학교를 알아봤습니다. 대학 진학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고, 10대 때 빨리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사업자등록 주소지를 변경하면서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했습니다. 사업가 육성에 특화된 학교를 찾다가 '설린인터넷고등학교'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설린상업고등학교가 설린인터넷고등학교로 전환되면서 IT 분야 벤처 창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학교 내에 연구실 공간을 제공하고, 사업 자금을 지원해주고, 학교 기업 형태로 홍보도 지원해주는 등 벤처 창업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설린인터넷고등학교 입학 성적이 부족했지만, 홈페이지 포트폴리오와 사업계획서를 들고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간절하게 입학 의지를 밝혔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제 사업계획서를 보시고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며 합격을 허락해주셨습니다. 학교 지원을 받아 사업계획서를 더욱 구체화했고, 벤처 창업 대전에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16살 때 벤처 창업 대전에 참가한 것이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16세 벤처 사업가 곽상빈, 벤처 창업 대전 본선 진출'이라는 기사가 인터넷에 남아있으니, '데모닉스'라는 회사 이름으로 검색해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벤처 창업 대전에서 장관상까지 수상하며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곧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주영훈: 벤처 창업은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죠. 팀원들과의 협업이 중요한데,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곽상빈 변호사: 저희 팀은 총 5명이었고, 모두 개발자 출신이었습니다. 부대표를 포함해 팀원 모두 각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벤처 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고, 어떤 친구는 취업을 목표로 했습니다. 사업 자체에 대한 비전이나 열정보다는 개인적인 목표 달성에 더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사업 운영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익 모델 부재로 매출은 지지부진했고, 세금 문제, 지원금 사용 문제 등 운영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벤처 기업은 1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고, 팀원들도 모두 흩어졌습니다. 사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팀워크 부족이었습니다. 팀원 간의 불화, 소통 부재, 목표 불일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업 실패라는 쓴 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주영훈: 고등학교 시절에 인생 첫 실패를 경험하신 거네요. 아무리 고등학생이라도 사업 실패는 큰 충격이었을 텐데,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보통 힘든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을 찾으셨나요?

곽상빈 변호사: 정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전까지는 모태신앙이라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지는 않았습니다. 예배도 형식적으로 드리고, 기도도 대충 하고... 하지만 사업 실패 후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자 비로소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였을 때,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나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깊이 빠졌습니다.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이 17살에 인생이 끝난 건가'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단절된 채 고립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습관처럼 교회를 찾았습니다. 예배만 겨우 드리고 나오려고 했는데, 그날따라 목사님 설교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곽상빈 변호사: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능력을 주셨다. 주신 능력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역에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능력을 주셨다고? 나는 실패만 거듭하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능력이 있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혹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날 예배 후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용산역에서 상계동까지, 새벽까지 쉼 없이 걸으면서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가출이라도 해야 하나', '세상에서 벗어나 혼자 살아야 하나'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부모님마저 이혼하시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장남으로서 책임감은 무겁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계속 걷다가 인적 없는 곳에서 죽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하나님께서 내게 능력을 주셨다'는 목사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나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뜻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문득 '공부'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있다면 공부를 통해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공부'라는 단어가 '능력'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면서 '너의 능력을 키워라. 세상에 보여지는 헛된 것을 좇지 말고, 내면의 능력을 키워라'는 하나님의 음성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격증이라도 취득해서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 300만 원을 들고 서점에 가서 자격증 관련 서적을 샀습니다. 전기기사 같은 기술 자격증은 응시 자격 제한이 있어서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지만, 외국계 자격증은 응시 자격 제한이 비교적 덜했습니다. 그래서 시스코에서 주관하는 네트워크 자격증부터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벽돌처럼 두꺼운 시스코 자격증 책을 사고, 시험 등록 기관을 알아봐서 곧바로 시험 접수를 했습니다. 합격 점수는 900점 만점에 600점 이상, 필기와 실기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했습니다. 시험 날짜를 2주 후로 잡고, '2주 안에 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이 돈을 모두 탕진하고 죽겠다'는 각오로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책을 파고들었습니다.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무작정 책을 10번 넘게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기출문제집도 1,000문제 넘게 풀었습니다. 시험장에 갔는데, 신기하게도 문제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문제를 보자마자 '어, 이거 풀어봤던 문제인데' 하면서 답을 찍어나갔습니다. 실기 시험은 네트워크 토폴로지 그림을 그리는 시험이었는데, 설계도를 대충 그려서 제출했는데도 놀랍게 합격했습니다. 시험 결과가 바로 나왔는데, 980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합격한 것입니다. 그동안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제가, 단 2주 만에 외국계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단기간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저는 이후 3개월 동안 10개의 자격증을 연달아 취득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자격증, 네트워크 관련 자격증 등 다양한 분야의 자격증을 섭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으니, 이제는 좋은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저처럼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교 진학까지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대학교는 어디로 진학하셨나요?

곽상빈 변호사: 처음에는 서강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주영훈: 서강대학교 법학과라니, 정말 대단하네요. 법대에 진학하신 후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곽상빈 변호사: 법 공부를 하면서도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사업을 다시 시작할까, 아니면 사업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할까' 고민했습니다. 아버지도 사업하다 실패했고, 저도 벤처 사업 실패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업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는 변호사보다 회계사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에 법대에서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법대 공부와 회계사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법대 학점은 계속 떨어지고, 회계사 공부에도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안 되겠다' 싶어서 수능을 다시 봐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로 편입했습니다.

주영훈: 수능을 다시 봤다고요? 서강대학교 법대도 들어가기 힘든데, 또 수능을 봐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합격하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학교 한 번 가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곽상빈 변호사: (웃음)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편입 후 회계사 시험 준비에 매진했고, 다행히 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했습니다.

주영훈: 정말 드라마틱한 인생이네요. 중간중간 힘든 순간도 많았을 텐데, 그때마다 예수님을 찾았다고 하셨잖아요. 아까 '이것만 들어주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하셨는데, 약속은 잘 지키셨나요?

곽상빈 변호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고, '이제부터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고백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다시 세상적인 욕심에 눈이 멀 때도 있었습니다. 잘 나간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교만해지기도 하고... 교회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다녔지만,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닌 제가 자리 잡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가서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꿈틀거렸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당시에는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족한 제가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게 된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저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제 삶에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걸까요? 어떻게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되었을까요?

곽상빈 변호사: 사실 제 삶에는 또 다른 비극과 같은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신기하게도 시련이 없을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군 입대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군대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26살에 장교로 입대했습니다. 장교 훈련 과정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3개월간의 훈련을 마치고 교관으로 보직을 받았는데, 진주에서 교관 생활을 하면서 정말 끔찍한 '악마'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보다 계급이 높은 선배 장교였는데, 끊임없이 폭언과 인격 모독을 일삼았습니다. 툭하면 숙소에 들이닥쳐 돈을 갈취하고, 후임들에게까지 저를 괴롭히라고 강요하는 등 상상하기 힘든 갑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하고 분했지만, '어떻게든 참아보자'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좋은 후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후임과 함께 부대 내에서 '용성교회'라는 작은 기도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둘이서 몰래 기도실에 모여 울면서 기도하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저 악마 같은 사람으로부터 저를 구원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함께 기도했던 후임의 기도 제목도 비슷했습니다. '곽 중위님을 만나서 행복했고, 함께 이 힘든 군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새로운 삶과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용성교회'라는 이름은 후임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후임과 또 다른 후임 한 명, 이렇게 셋이서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 말씀을 나누면서 힘든 시간을 버텼습니다.

곽상빈 변호사: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살려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1년 동안 악몽 같았던 군 생활이 거짓말처럼 끝이 났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기적적으로 저를 도와줄 '구원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군 검찰관이었습니다. 저의 군대 선배였는데, 부대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저의 힘든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는 저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격려해주었고, 저는 용기를 내어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선배는 즉시 조사에 착수했고, 가해 장교는 군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가해 장교는 잘못을 뉘우치고 저에게 사과했고, 저는 용서하는 마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내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통해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고통 속에서 기도할 때 나를 건져주시는구나'라는 것을요. 또한, 그동안 제가 자만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주신 것은, 제가 마지막으로 준비하던 시험을 잘 마무리하고, 그 능력을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데 사용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마지막 시험이 바로 감정평가사 시험이었습니다. 군 복무 중에도 틈틈이 감정평가사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던 이유는, 처음 하나님께 약속했던 '내 능력을 키워 세상에 좋은 일을 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다는 오기도 발동했던 것 같습니다.

곽상빈 변호사: 감정평가사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겠지만, 시험을 두 달 앞두고 맹장이 터진 것입니다. 정말 '시련 끝에 또 시련'이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맹장이 터지는 고통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배가 칼로 찢는 듯이 아프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고통을 참다못해 119에 실려 응급실로 갔습니다. 수술대에 누워서 '이제 죽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계속해서 시험 공부를 해왔는데, 갑자기 '여기서 죽으면 안 돼'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지금 죽으면 너무 억울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분명히 내게 남은 사명이 있을 것이다. 수술은 잘 될 것이고, 나는 다시 깨어날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수술대에 누워서 마취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감정평가사 시험 관련 서적을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취가 시작되고 잠이 들기 직전, 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이 책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수술에서 깨어나 다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시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꼭 감정평가사 시험에 합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깨어나지 못한다면, 저는 여기까지 잘 살다가 천국으로 갑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듯 기도하고 잠들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수술 후 눈을 떴을 때, 몸 상태가 너무나 개운하고 좋았습니다. 맹장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몸은 가뿐했습니다. '깨어났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 나는 반드시 감정평가사 시험에 합격할 것이다'라고 확신했습니다. 비록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지만, 저는 기적적으로 회복될 것을 믿고 다시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난 후에도 병상에 누워서 계속 책을 봤습니다. 각 과목별로 열댓 번씩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 날이 다가왔습니다. 시험장에 도착해서 문제를 푼 순간, 또다시 절망했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절반 이상이었던 것입니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좌절했지만, 마지막 희망을 걸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모르는 문제라도 찍어서라도 맞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주관식 문제도 있었는데, 모르는 문제는 아예 답을 쓸 수 없었습니다. 보통 모르는 문제는 그냥 찍거나 빈칸으로 남겨두기 마련이지만, 저는 뭔가에 홀린 듯 문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는 범위 내에서 억지로 답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논리에 의해 영어권에서는 이렇게 평가하고, 부산에서는 이렇게 평가한다'는 식으로 엉뚱한 스토리를 지어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답안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빈칸을 채웠습니다. 황당한 것은 채점 결과였습니다. 제가 엉터리로 썼던 주관식 문제에서 오히려 고득점을 받은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지만, 저는 분명히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믿었습니다. 시험 결과 발표 날,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펑펑 울었습니다. '드디어 끝났다! 이제 더 이상 시험 공부는 안 해도 된다!' 감격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정평가사 시험 합격은 제 인생의 마지막 고비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힘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영훈: 정말 드라마틱한 합격 스토리네요. 감정평가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셨으니, 이제 평소 기도했던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셔야죠?

곽상빈 변호사: 네,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도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사업 실패와 여러 번의 좌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특히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억울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하거나, 소송 비용을 감면해주는 등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소송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고, 한 가정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호사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살리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생 절차를 통해 기업을 되살리고, 직원들의 일자리를 지키고, 나아가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회사 하나를 살리는 것은 단순히 법률 지식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법률 지식은 기본이고, 회계, 세무, 경영,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합니다. 제가 여러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여 의뢰인에게 최적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제가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주영훈: 정말 귀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회사 하나를 살리는 것은 단순히 회사 하나를 살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 회사에 딸린 수많은 사람들의 삶, 가족들의 삶까지 살리는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법률 지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변호사님은 여러 자격증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셨으니, 회사 회생 분야에서 더욱 큰 활약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 하나를 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곽상빈 변호사: 물론 어려움도 많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동업자 간의 분쟁, 투자 유치, 세금 문제, 노무 문제, 부동산 문제 등 다양한 법률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뿐만 아니라,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과 협상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의뢰인에 대한 깊은 공감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저는 다양한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여러 분야에 대한 융합적인 사고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벤처 기업 창업, 군 복무, 김앤장 근무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무 능력을 쌓았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회사 회생 업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 자격증을 '종합선물세트'처럼 갖추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다양한 능력을 주시고, 그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영훈: 아버님 얘기도 잠깐 해주셨는데, 아버님이 사업 실패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고, 변호사님도 아버님 때문에 원망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지금은 아버님과의 관계는 어떠신가요?

곽상빈 변호사: 어릴 때는 아버지를 정말 미워했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났다고 생각했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대화조차 하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사업 실패 후 아버지께서는 술에 의존하는 날이 많아지셨고, 가끔씩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힘든 생활고에 지쳐 있었고, 가정 분위기는 늘 냉랭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때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했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얼마 전 방광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제가 로스쿨 2학년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동안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항상 냉철하고 이성적인 제 아내마저 아버지 암 소식을 듣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공부가 무슨 소용인가, 로스쿨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아버지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하나님, 제발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로스쿨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아버지 목숨만 살려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던 마음을 후회하고, 아버지 병이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아버지는 방광 적출 수술 후 인공 방광을 다셨지만,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살아나신 것을 보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해야겠다', '앞으로 아버지께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아버지와 자주 연락하고, 안부도 여쭙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암 투병 후 교회에 더욱 열심히 다니시고, 신앙생활에 더욱 열심이십니다. 최근에는 저에게 '상빈아, 세상을 살 때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차분하게 살아가라'고 조언해주시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오랜 앙금이 사라지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저 또한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 같습니다.

주영훈: 변호사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니, 지금과는 모습이 많이 다르네요. 어릴 때 122kg까지 나가셨다고요?

곽상빈 변호사: 네, 맞습니다. 어린 시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폭식을 했었습니다. 밥을 한 끼에 열 그릇씩 먹고, 계속해서 먹을 것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정신병처럼 먹는 것에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살이 찌면서 키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180cm를 훌쩍 넘었고, 덩치도 커지면서 몸무게가 122kg까지 불어났습니다. 학교 의자가 부러지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뚱뚱하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뚱뚱한 외모 때문에 자신감도 떨어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꺼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사업을 하려면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생각에 다이어트를 결심했습니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면서 체중 감량에 성공했고, 지금은 건강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뚱뚱했던 것도 하나님의 시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련을 통해 저를 단련시키고, 더욱 강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인내심, 끈기, 자기 통제력 등 다양한 덕목들을 키울 수 있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뚱뚱했던 어린 시절은 제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주영훈: 지금도 변호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시면서 엄청 바쁘실 텐데,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곽상빈 변호사: 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큽니다. 제가 가진 다양한 능력을 활용하여 사회에 기여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낍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가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연세대학교에 다닐 때 학교 정문 현판에 이 말씀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도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이 마음속에 가득했지만, 세상적인 쾌락이나 욕망을 좇는 것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오직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얻습니다. 또 좋아하는 말씀이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살이에 지치고 힘들 때, 이 말씀을 묵상하면 정말 쉼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힐링이 되고,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을 경험합니다. 혼자 예배를 드릴 때도 있지만, 교회 공동체 예배에 참석하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더욱 큰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는 모두 어깨에 120kg짜리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세상의 짐, 인생의 짐, 죄의 짐... 하지만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자유와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주영훈: 정말 감동적인 말씀 감사합니다. 연일 자매, 변호사님 같은 남자 어떠세요?

연: 아멘! 너무 좋습니다! (웃음)

주영훈: (웃음) 저도 변호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베드로전서 4장 16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변호사님은 힘든 어린 시절과 사업 실패, 질병 등 수많은 고난을 겪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셨습니다. 변호사님의 삶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입니다. 앞으로도 변호사님의 삶이 개인적인 영달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이정수: 저는 아까 주영훈 형님께서 '어깨에 짐을 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예전에 신앙이 없을 때 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살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늘 어깨가 결리고, 소화도 잘 안 되고, 몸 상태가 늘 좋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몸으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니, 정말 신기하게도 모든 증상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으니, 몸도 건강해진 것입니다. 오늘 변호사님 간증을 들으면서 그때 그 기쁨이 다시 한번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짐을 내려놓고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방송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전달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영훈: 정말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베스킨라빈스 써리원' 아이스크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자격증 30개를 가진 사람은 처음 봅니다. 오늘 변호사님을 뵈니 '30색 볼펜'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4색 볼펜, 6색 볼펜 정도는 봤지만, 30색 볼펜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변호사님은 30가지 색깔, 즉 30가지 능력을 가지신 분 같습니다. 30가지 색깔로 얼마나 다채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변호사님의 30가지 능력을 통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가지 색깔만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두 가지 색깔만 주시지만, 변호사님께는 30가지 색깔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호사님을 통해 정말 '컬러풀'한 세상을 만들어가실 계획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변호사님의 능력이 귀하게 쓰임 받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처럼, 변호사님도 쉼을 통해 재충전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더욱 힘차게 발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쉼 없이 달릴 수 없습니다. 쉬어야 다시 힘을 내서 달릴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서 쉬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여행 가서도 빡빡한 일정에 쫓겨 다니고, 해변에 앉아 여유롭게 쉬는 것을 낯설어합니다. 하지만 쉼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변호사님께서 쉼을 통해 재충전하시고, 30가지 색깔로 '컬러풀'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더욱 힘차게 쓰임 받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쉬시고, 자신을 더 사랑하시고, 재충전하시면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변호사님이 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곽상빈 변호사: 네, 알겠습니다. 오늘 귀한 간증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영훈: 오늘 귀한 간증 정말 감사드립니다.

(음악)

1. 한 고대 문서 이야기

2.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4.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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