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혁 전도사 33년 찬양 사역 이야기와 대표곡 모음
33년 찬양 외길, 최인혁 전도사의 파란만장 음악 인생
33년 찬양 사역 외길, 최인혁 전도사의 삶과 음악 이야기: "우리 모두 노래합시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롭게 하소서 김학중 목사입니다. 오늘, 3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며 수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선물해 온 귀한 분을 모셨습니다. 마치 오래된 차량처럼,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몸소 경험하며 살아온 분인데요. 바로 찬양 사역자 최인혁 전도사님입니다. 흔히 CCM계의 "국민 가수, 아이유" 라고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온 분이시죠. 놀라운 사실은, 33년 찬양 사역 동안 발표한 곡 수가 무려 100여 곡에 달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한 곡 한 곡마다 깊은 묵상과 영혼의 울림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 새롭게하소서에서는 최인혁 전도사님의 파란만장했던 33년 찬양 사역 여정과, 그의 음악 속에 담긴 진솔한 고백과 뜨거운 열정을 심층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최인혁 전도사님은 새롭게하소서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1989년, 방송 초기부터 '다 함께 복음성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과 처음 만났는데요. 당시 신선하고 파격적인 찬양 스타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새롭게하소서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후 16개에 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26년간 매일 아침 시청자들에게 은혜로운 찬양을 선물해 왔습니다. 특히 24시간 한국 찬양을 송출하는 "조이포유" 앱을 세계 최초로 개발, 운영하며 찬양 사역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 새롭게하소서와 동행해 온 최인혁 전도사님과의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그의 음악 인생과 신앙 여정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33년이라는 찬양 사역의 긴 세월을 돌아보며, 최인혁 전도사님은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했습니다. "제가 한 일은 진짜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했는데요. 집회 중에 불치병이 낫거나,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은 결코 자신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오직 자신을 도구 삼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임을 간증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이처럼 겸손함과 감사함으로 33년 찬양 사역 외길을 걸어온 최인혁 전도사님의 진솔한 고백은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은혜를 선사했습니다.
최인혁 전도사님의 찬양은 처음부터 센세이션 그 자체였습니다. 기존 복음성가의 틀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찬양을 선보였는데요. 하지만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갔고, 결국 찬양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찬양은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을 넘어, 깊은 영성과 메시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표한 100여 곡 중 대표곡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최인혁 전도사님은 다음과 같은 곡들을 언급했습니다.
"위로하여라": 박종호 1집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소망을 전하는 곡입니다. 특히 가사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는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주만 의지해": 논산 훈련소에서 4~5년간 군가처럼 불렸던 곡으로,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담고 있습니다. 힘든 훈련과 고된 군 생활 속에서 "주만 의지해" 라는 가사는 장병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노래합시다": 최인혁 전도사의 대표곡 중 하나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찬양입니다. 특히 후렴구 "우리 모두 노래합시다, 주님을 찬양하며" 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흥얼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대는 주님": 연인 간의 사랑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독특한 콘셉트의 찬양입니다. 당시 CCM계에서는 파격적인 시도로 평가받았으며, 프로포즈송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사 "그대는 주님, 나의 사랑, 나의 전부" 는 하나님을 향한 뜨겁고 헌신적인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잃어버린 궤를 찾아서": 7080세대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잃어버린 법궤를 찾아 헤매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통해,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하고자 하는 갈망을 노래했습니다.
최인혁 전도사님의 음악은 CCM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당시 CCM은 중창이나 합창 스타일이 주류였지만, 그는 쌩뚱맞게도 요즘 스타일의 노래를 선보였습니다. 랩과 힙합을 찬양에 접목시키는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찬양을 저렇게 해도 되나?"라는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젊은 세대들은 그의 음악에 열광했습니다. 결국 최인혁 전도사의 음악은 CCM의 다양성을 확장시키고, 젊은 세대들을 교회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90년대 초, 최인혁 전도사는 "빛과 소금"이라는 프로젝트 앨범을 발매하며 또 한 번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가요계의 유명 그룹 "빛과 소금" 멤버들과 협업하여 만든 앨범인데요. 타이틀곡 "나의 노래는"은 세상 노래와는 다른, 오직 주님만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가사로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 앨범은 CCM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최인혁 전도사를 명실상부한 CCM 대표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앨범 발매 에피소드 중 하나로, 타이틀곡 "나의 노래는"을 듣고 감동받은 한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최인혁 전도사의 음악은 단순한 찬양을 넘어, 사람들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감동과 변화를 선사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음악 이야기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최인혁 전도사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도 궁금해합니다. 33년 동안 한결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온 그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최인혁 전도사는 자신의 신앙 여정과 가정사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파란만장했습니다.
최인혁 전도사님은 120년째 4대째 예수를 믿는 모태신앙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고조할머니께서 18세에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집안 전체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의 큰아버지 최창근 장로님은 장로교단의 거목으로, 독실한 신앙인이셨습니다. 이처럼 4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신앙 명문가에서 자랐지만, 최인혁 전도사의 삶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최인혁 전도사님에게도 방황과 갈등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떠나지 않았지만, 뜨겁고 열정적인 신앙을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자 합기도 관장이셨는데, 엄격하고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반항심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70년대 당시, 부유한 가정환경 덕분에 학교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12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겪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가정 형편의 어려움은 최인혁 전도사님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유복했던 환경에서 갑자기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으로 내몰리면서, 정체성의 혼란과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술과 담배를 시작하며 방황했고, 학업에도 소홀해져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졸업식에도 오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최인혁 전도사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중학교 시절 친구 4명 중 2명이 퇴학당할 정도로, 그의 학창 시절은 어둡고 암울했습니다.
절망과 방황 속에서 최인혁 전도사님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었던 것은 음악이었습니다. 목사 아들이었지만, 교회보다는 음악다방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문화 공간이었던 음악다방 DJ로 활동하며, 팝송과 가요를 섭렵했습니다. 홍제동에서 운영하던 음악다방은 꽤나 인기가 많았고, 쏠쏠한 수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축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통기타를 메고 달려가 노래를 불렀고,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음악 활동은 그저 먹고살기 위한 수단일 뿐, 가수의 꿈이나 찬양 사역자의 비전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방황하는 청춘이었고,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수의 꿈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방황하던 최인혁 전도사님은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군 생활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몸무게가 48kg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허약했고, 훈련소에서 낙오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군대에서 글씨를 잘 쓴다는 이유로 행정병 보직을 받아, 힘든 훈련 대신 비교적 편안한 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제대를 며칠 앞두고 휴가를 나왔을 때, 그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마치 죽음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30살 전에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마약 중독자가 되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회상할 정도로, 그의 젊은 시절은 어둡고 절망적이었습니다.
마지막 휴가를 나왔을 때, 최인혁 전도사님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목사가 되어 개척교회를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낡고 허름한 개척교회, 아무도 없는 빈 예배당에 홀로 들어가 절망적인 마음으로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분명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교회를 떠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 노래하라." 바로 그 순간, 최인혁 전도사는 찬양 사역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군 제대 후 예수전도단 DTS에 들어가 본격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했고, 33년 찬양 사역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최인혁 전도사님의 어머니는 그가 결혼할 때, "너는 복덩이"라는 덕담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어머니께 해드린 것이 없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며,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찬양 사역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최인혁 전도사의 삶 뒤에는 묵묵히 기도하며 응원해 준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25살, 젊은 나이에 찬양 사역을 시작하면서 최인혁 전도사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가요는 노래만 잘하면 되지만, 찬양은 삶이 노래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노래 가사처럼 살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하며, 먼저 자신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증조할머니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신앙의 유산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본격적인 찬양 사역을 위해, 최인혁 전도사는 예수전도단(YWAM)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에 입학했습니다. 누나의 추천으로 가게 된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에서 큰 감명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DTS 훈련은 그에게 큰 도전이었지만, 철저한 훈련 과정을 통해 신앙적으로 성숙해지고, 찬양 사역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전도단에서의 4년간의 훈련은 최인혁 전도사의 찬양 사역에 든든한foundation이 되었습니다.
예수전도단 DTS 훈련을 마치고, 최인혁 전도사는 본격적인 찬양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찬양 인도자로, 또 솔로 앨범 가수로 활동하며, CCM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박종호, 조영제 등 당시 유명 CCM 사역자들과 함께 사역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전도단 간사 시절, 신인 간사였음에도 불구하고 3집 앨범 녹음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무려 3곡이나 솔로곡을 부르는 파격적인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시 앨범 제작 에피소드에 따르면, 쉬는 시간에 최인혁 전도사가 찬양하는 모습을 본 조영제 목사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솔로곡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후 예수전도단 4집 앨범을 통해 본격적인 찬양 인도자로 데뷔하게 되었고, 그의 찬양 사역은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습니다.
1988년, 최인혁 전도사는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찬양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은혜를 선사했고, 초교파적으로 교회와 단체를 넘어 사랑받는 찬양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음반 판매 수익과 공연 수입이 급증하면서, 당시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돈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영적인 갈급함을 느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시기에, 최인혁 전도사는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주셨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 돈으로 후배들을 키워라."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재능과 재력을 후배 양성을 위해 쏟기로 결심했습니다. CCM 사역자로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을 돕고, 그들이 마음껏 찬양 사역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최인혁 전도사는 후배 양성에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CCM 기획사 "LOC"를 설립하고, 후배 사역자들을 발굴, 육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영국 목사, 예수와 함께 평창동 지하에 연습실을 마련하고, 한국 최초의 CCM 기획사를 설립했습니다. 박종호, 요나단, 송정미, 최재훈, 이선균 등 쟁쟁한 CCM 스타들이 LOC를 거쳐 갔습니다. LOC는 CCM계의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실력파 CCM 사역자들을 배출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후배들의 음반 제작과 활동 지원에 모든 재정을 쏟아부었기 때문입니다.
LOC를 통해 후배들을 키워내는 데 헌신하는 동안, 최인혁 전도사는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음반 판매 수익 대부분을 후배 양성에 투자했기 때문에, 정작 자신은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내가 부모님께 빌린 1천만 원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후배들이 찬양 사역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업가가 아닌, 사역자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나갔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최인혁 전도사는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후배들을 챙기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였지만, 그는 믿음으로 굳게 버텼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최인혁 전도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로 향하던 중, 우연히 들른 형제 집에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곡을 주신 것입니다. 그 곡이 바로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나는 주만 높이리" 입니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탄생한 이 곡은, 역설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선사했습니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와도,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 너를 덮쳐와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라는 가사는 힘든 시기를 겪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나는 주만 높이리" 발표 이후 최인혁 전도사의 삶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10년 넘게 빚에 시달렸지만, 7~8년 전에 모든 빚을 청산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33년 찬양 사역 동안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33년 찬양 사역,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최인혁 전도사는 묵묵히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월 28일 토요일,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입니다. 이번 콘서트는 33년 찬양 사역을 기념하는 동시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찬양 사역을 이어가는 후배들을 격려하고, 한국 찬양 사역의 미래를 조망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특히 콘서트 마지막에는 후배 사역자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 함께 찬양하며, 한국 교회에 동역자 의식을 심어주는 감동적인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입니다.
최인혁 전도사님은 앞으로 가요계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찬양 사역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는데요. 특히 가정 문제, 세대 갈등, 사회적 소외 등 세상 사람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노래에 담아,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내년에는 "빛과 소금" 멤버들과 함께 가요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며, CCM 사역자와 가요 가수의 경계를 넘어, 더욱 폭넓은 음악 활동을 펼칠 것으로 기대됩니다.
33년 찬양 사역 외길을 걸어온 최인혁 전도사님, 그의 삶과 음악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그의 음악 사역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소망을 얻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오늘 새롭게하소서에서는 최인혁 전도사님의 찬양을 들으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찬양과 함께, 평안하고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