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김 선교사 간증: 야쿠자 가정에서 믿음의 길을 걷다
## Best Titles:
지금 당신의 믿음에 강한 수혈이 필요하신가요?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청년들이 존경하고, 영상 조회수도 엄청나다는 다니엘김 선교사님을 모시고 믿음에 대한 깊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방송 출연은 처음이시라는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집회 외에는 뵙기 힘든 분이라 더욱 귀한 시간인데요, 5년간의 끈질긴 섭외 끝에 드디어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해주셨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로운 간증을 넘어, 척박한 세상 속에서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삶과 신앙 여정을 통해,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믿음을 깨우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삶을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보통의 젊은이들이 누리는 세상적인 즐거움과는 거리를 둔, 나실인의 삶과 같은 모습인데요, 술, 담배는 물론이고 춤, 연애와 같은 4종 세트와도 담을 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금욕적인 삶이 억압적이었다거나 재미없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과 정체성을 확립해나갔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삶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여정이었던 것인데요, 이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에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컸던 그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 같은 것 때문에 교회 안 가는 거야" 라는 말 또한 그에게 큰 상처가 되었는데요, 이는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이러한 간절함은 그를 세상적인 유혹과 타협하지 않고, 굳건한 믿음의 길을 걷도록 이끌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어머니는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독실한 신앙인이셨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기도는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어머니는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아버지가 야쿠자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결혼 초 야쿠자였던 아버지의 삶으로 인해 고난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어머니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믿음이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의 삶은 그에게 살아있는 믿음의 본보기가 되었고, 그의 신앙 성장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아버지는 한때 일본 야쿠자의 간부였습니다. 겉모습만 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조직 내에서 높은 위치에 있었지만, 가정에는 헌신적인 아버지였습니다. 어머니의 끈질긴 기도와 사랑, 그리고 본인의 깊은 고뇌 끝에 아버지께서는 야쿠자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셨습니다. 세례를 받는 날부터 아버지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을 성별해나가셨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아버지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는 그에게 세상적인 권력이나 명예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따르는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야쿠자 생활 때문에 어머니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했고, 다니엘김 선교사님과 여동생은 외가에서 외할머니와 삼촌들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10살이 되어서야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요, 그때까지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의 삶이 낯설거나 두렵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와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느꼈습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 안에서 굳건하게 형성된 그의 긍정적이고 담대한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아버지는 야쿠자 생활을 청산한 후, 사진 현상소를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이전 조직과의 관계 속에서도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인정받아, 오히려 사업적으로 크게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시고, 그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사업이 번창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내면에는 여전히 옛 삶의 그림자가 남아있었습니다. 술을 드시거나 옛 습관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10년, 20년에 걸쳐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셨고, 마침내 장로님이 되기까지 굳건한 믿음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어머니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새벽마다 교회를 찾아 기도하셨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를 따라 새벽기도에 동참했는데요, 어머니는 금식기도를 밥 먹듯이 하며, 오직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특히 다니엘김 선교사님이 다섯 살, 여섯 살 무렵, 어머니는 3일 금식기도 후 쌀 미음을 드시고 다시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는 생활을 반복하셨습니다. 어린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교회 의자에 누워 잠들곤 했는데, 잠결에 텅 빈 교회 강단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과 안도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에게 어머니의 기도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힘이었고, 삶의 나침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모태 신앙'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는 단순히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다닌 것을 넘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전제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의미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삶의 중심이자 전부였고,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우선순위였습니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은 그가 수많은 유혹과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어린 시절의 신앙 교육과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평생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중학교 1학년 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뜨겁게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어느 순간 갑자기 뜨거워진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세계관 속에 하나님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세계관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이 옳고 그른가' 라는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님 안에서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되었고,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의 특별한 경험은 그의 믿음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 교회와는 다른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다녔던 교회는 일본에서 가장 큰 교회였지만, 교인 수가 250-300명 정도의 작은 규모였습니다. 특히 2세들은 교회를 잘 나오지 않아, 청소년부는 다니엘김 선교사님과 여동생 둘뿐일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오히려 더욱 깊은 신앙 훈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 수련회 대신, 일본인 전도사님과 함께 산기도를 다니며, 캠프파이어를 하고 찬양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는 대형교회 시스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소그룹 중심의 밀도 높은 신앙 훈련이었으며, 그의 신앙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중학교 1학년 때, 일본 전도사님과 함께 3,800km 십자가 횡단에 동참했습니다. 이는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최북단 홋카이도까지, 6개월에 걸쳐 십자가를 지고 걸으며 복음을 전하는 여정이었습니다. 당시 횡단에 동참했던 7명은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열정 하나로 뭉쳐 일본 땅을 누볐습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집회를 열고 복음을 전했으며, 일본 교회 부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전도사님과 함께 일본 섬 고쿠라 섬을 40일 동안 십자가 행진하며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러한 훈련은 그를 영적으로 더욱 단련시키고,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이 어린 시절 가장 큰 은혜를 받았던 말씀은 시편 66편 18절,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였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결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매일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훈련은 그를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었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습관을 형성하도록 도왔습니다. 그 결과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며 성장하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삶에 큰 영향을 준 세 명의 스승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스승은 그에게 '영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척추 교정 의료 선교사였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매년 40일씩 동남아시아에서 의료 선교를 하셨는데, 중학교 1학년 다니엘김 선교사님을 단기 선교에 동행시키면서 엄격한 훈련을 시켰습니다. 선교사님은 다니엘김 선교사님에게 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라는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도록 가르쳤습니다. 또한 시편 66편 18절 말씀을 통해, 매일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디보션' 훈련을 시켰습니다. 선교사님의 엄격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훈련은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 신앙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선교사님과의 훈련을 통해 '병적으로' 회개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까지도 죄로 여기고 회개했으며, 심지어 영화를 보다가도 죄책감에 눈을 감고 기도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회개는 때로는 아버지로부터 "제발 그렇게 기도하지 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늘 정결한 마음을 유지하려는 간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훗날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이 '필터링 기간' 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시고 성별하시기 위해, 그의 내면을 철저하게 걸러내는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이 시기에 형성된 신앙의 틀은 평생 그의 삶의 기준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중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난 후, 영혼에 대한 뜨거운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일본의 낮은 기독교 복음화율을 생각하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동생과 함께 노방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에서, 여동생은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신호등 옆 가드레일에 올라가 성경책을 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외쳤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외쳐야 할지도 몰랐지만, 점차 "우리는 죄인입니다, 용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 갑니다" 와 같은 메시지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노방은 첫 설교 강단이었고,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는 훈련장이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이 예수님을 뜨겁게 만난 결정적인 계기는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였습니다. 선교사님과의 단기 선교 중,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끊임없이 들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가슴 벅찬 감격인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이 울었다고 고백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는 그의 심령을 깊이 울렸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뜨겁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비롯하여, 하용조 목사님, 홍정길 목사님 등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를 즐겨 들으며, 신앙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설교 테이프 전집을 선물할 정도로, 자녀의 영적 성장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학창 시절, 세상의 유혹을 멀리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친구들이 술집에 가자고 할 때, 그는 "재미없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세상적인 즐거움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었습니다. 친구들과 너무 친해지면 복음을 전하기 어려울까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언행에 있어서도 늘 조심했습니다. 심지어 영화를 보다가도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눈을 감고 기도할 정도였으니, 그의 신앙적인 열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도전을 줍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재미'를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즐거움이나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맺히는 열매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재미를 좇아 어떤 길을 선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재미있는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진정한 기쁨과 만족은 세상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에게도 경쟁심을 느꼈던 '라이벌' 친구가 있었습니다. 키도 비슷하고 운동 실력도 엇비슷해서, 은근한 경쟁 의식을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학생회장을, 친구는 농구부 주장을 맡으면서, 서로 다른 영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성장해나갔습니다. 경쟁 속에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며,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학창 시절 친구 중 가장 보고 싶은 친구를 꼽으라면, 바로 그 라이벌 친구라고 말할 정도로, 그와의 관계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선 깊은 우정으로 발전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무슬림 친구, 몰몬교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신앙의 도전을 받기도 했습니다. 무슬림 친구는 그와 절친한 친구였지만,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고, 그에게 '하나님 대결'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몰몬교 친구들은 매우 모범적인 삶을 살았고, 커피나 콜라도 마시지 않을 정도로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몰몬교 친구들의 착한 행실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 더욱 경건하게 살아야겠다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만남들은 그에게 타 종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자신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공부 실력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설명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성적을 '증거'로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때 일본어를 전혀 못해,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 굴복하여 학생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하고, 매일 3시간씩 책상에 앉아 공부했습니다. 놀랍게도 첫 학기에 전교 1등을 차지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적이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여동생은 그와는 달리 꾸준히 공부를 잘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신학대학원까지 모두 수석으로 졸업하고, 현재는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책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성적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반면, 여동생은 늘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어머니는 다니엘김 선교사님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은혜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셨고, 부흥회에 참석시켜 은혜를 받게 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밤새워 공부했고, 성적이 다시 오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학업 성취 또한 하나님 은혜임을 인정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신학대학 대신 군사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어린 시절 꿈이 대통령, 장군, 목사였던 그는, 군사학교에서 리더십 훈련을 받으며 정치학을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정치학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아 심리학으로 전공을 변경했고, 장교의 길을 걷는 대신 목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군사학교 4년 동안 힘든 훈련을 받으면서도, 학교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 외에는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신학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군사학교 시절, 인종차별과 구타 등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소수 인종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그는 하루 세 번씩 학교 채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특히 여동생이 보내준 카세트 테이프 속 찬양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를 들으며, 큰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힘든 훈련과 차별 속에서도, 그는 학교 복음화를 위해 힘썼고, 오히려 더욱 뜨겁게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습관처럼 해왔던 '화장실 기도'는 군사학교에서도 이어졌고, 그에게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이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군사학교에서 리더십 훈련을 받고, 미래의 미국 리더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군사학교로 이끈 것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싶다'는 갈망이었습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힘든 군사학교 생활은 그의 믿음을 더욱 단련시켰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고난 속에서 더욱 뜨겁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마침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신앙의 '배짱'을 강조합니다. 어머니로부터 "믿음으로 사는 것은 신앙의 배짱이다" 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는 굶어 죽으면 굶어 죽었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선이 있다고 말합니다. 취업을 못 하면 못 했지, 절대로 가지 않는 곳,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배짱은 그가 사역을 감당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사역에 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신학대학원 시절,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물질관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드림카였던 지프차를 충동적으로 구매했지만, 신학생 신분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빚이었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으며 생활했지만, 자동차 유지비와 빚 상환에 허덕이며 '카푸어' 생활을 했습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이 경험을 통해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리면서,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빚 때문에 신용카드를 여러 개 발급받아 사용하다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늘어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학비와 생활비를 신용카드로 충당하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신용카드 이자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십일조를 '뛰어넘는' 헌신을 시작했습니다. 수입이 생길 때마다 십일조를 드리고,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놀랍게도 십일조를 드리는 과정에서, 빚 문제가 해결되고, 학비가 채워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그에게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풀타임 사역 제안을 받고, 종교 비자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잘 다니던 신학대학원을 휴학하고, 교회 영어 예배부를 맡아 풀타임 사역을 시작했지만, 종교 비자 발급이 거부되면서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빚은 여전히 많고, 졸업은 불투명하고, 목사 안수도 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그는 신앙의 '배짱'을 발휘했습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미련 없이 미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부모님이 계신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일본 부모님 댁에서 어머니와 함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온천 호텔 한 켠에 마련된 기도실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텅 빈 손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간구를 드렸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중국 선교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새로운 소명과 열정을 회복한 그는, 거절당했던 종교 비자를 다시 신청해보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일본 주재 미국 대사관에 비자를 재신청했고, 놀랍게도 5년짜리 종교 비자를 발급받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비자 발급 후,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학비 후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현재 후원 없이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년간 사역하면서, 교회나 단체의 정기적인 후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원을 사양하며, 자립적인 사역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말씀 사역자로서, 어떤 외부적인 압력이나 눈치 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질적인 풍요보다, 말씀의 자유를 더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은 물질적인 후원을 거의 사양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는 물질 후원을 받는 것이, 말씀 사역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원하는 교회의 입장을 의식하거나, 후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교회로부터 연간 3천 달러의 후원 제안을 받았지만, 말씀 사역의 자유를 위해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고,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결단은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며, 사역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타협 없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그의 삶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그는 물질, 명예, 세상적인 즐거움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 흔들리는 믿음으로 방황하는 많은 영혼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다니엘김 선교사님의 간증은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타협 없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깊이 묵상하게 하는 귀한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