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호 28년 복음 항해와 김영란 선교사의 새로운 시작 이야기
28년 파도와 기적의 항해, 한나호 김영란 선교사의 새로운 시작
"땅으로 간 한나호": 김영란 선교사의 28년 헌신, 파도와 기적의 복음 항해를 마치고 육지에서 새로운 시작을 열다
김학중 목사님의 따뜻한 미소와 함께 "새롭게 하소서"의 문이 열립니다. 전혜진 님의 밝은 인사로 스튜디오는 활기를 띠는데요, 세상에는 수많은 발걸음이 존재하지만, 복음과 동행하는 발걸음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별한 발걸음을 걸어온 분, 거친 파도를 헤치며 배를 타고 복음을 전한 김영란 선교사님을 모셨습니다. 그녀는 바다 위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보호하심과 은혜를 몸소 체험했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동양 유일의 복음선포선, 한나호는 1988년 첫 항해를 시작하여 지난 28년간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지역을 누비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사랑의 손길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의료선이자 구호선 역할을 톡톡히 해냈는데요. 수많은 감동과 은혜의 기록을 남긴 한나호는 이제 배 사역을 마무리하고 땅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세월, 한나호의 모든 여정을 함께 해 온 김영란 선교사님과 함께, 파란만장했던 28년의 항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환한 미소로 스튜디오에 등장한 김영란 선교사님은, 30년 동안 배를 타고 사역한 베테랑 선교사입니다. 한나호는 둘로스, 로고스와 함께 세계적인 복음선교선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시작은 1988년, 김 선교사님의 남편인 박수진 선교사님이 기도 중 "배로 사역하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비전을 받으면서부터였습니다. 국내 낙도와 오지를 다니며 선교하던 중, 외국 선교단체의 배 사역을 벤치마킹했고, 둘로스에서 4년간 사역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놀랍게도, 1988년, 하나님은 부산항에 한나 1호를 이미 준비해 두셨습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에게 선교를 제안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던 배를, 10년간 배 사역을 준비해 온 김 선교사님 부부에게 기적처럼 맡기신 것입니다. 이는 10년간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으며, 김 선교사님 부부는 한나호를 통해 28년간 전도 훈련, 구호 물자 수송, 의료 사역 등 다양한 사역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8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한나호는 작년에 폐선되었습니다. 45년이나 된 노후 선박이었기에,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과 사역을 고려했을 때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인천의 교회들은 기념관 건립을, 60명의 사역자들은 인도네시아 이전 후 활용을 제안했지만, 결국 폐선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폐선 결정은 아쉬웠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는다고 김 선교사님은 담담하게 전합니다.
원래 중학교 교사였던 김 선교사님은, 불신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70년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학 진학만이 인생의 답이라고 여겼지만, 대학에서도 삶의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고민 끝에 스스로 교회를 찾았고, 청년부 담당 교역자였던 박수진 목사님(現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 3-4년 차에 남편의 선교 헌신 소식을 들었지만, 선교에 대한 비전은 전혀 없었습니다.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의 강한 의지에 이끌려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고,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출국 전날까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에 대한 훈련도, 비전도, 심지어 선교에 대한 호감도 없었던 김 선교사님은 그렇게 선교사의 길에 발을 들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첫 선교지 둘로스에서의 배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화장실 청소, 밤마다 물통 나르기 등 힘든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교사였던 자신이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남편과 밤마다 싸우기도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정체성에 대한 혼란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질문 "당신 도대체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믿는 거야?"라는 질문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편의 질문은 김 선교사님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평안과 안정이 직업, 월급 등 세상적인 것에 있었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진정으로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을 다시 영접했고, 로마서 1장 16절 말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는 말씀을 통해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30년간,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한나호는 '철선'이었기에, 60명의 다양한 국적, 문화, 성격의 선교사들이 함께 생활하는 '용광로'와 같았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24시간 함께 생활하며,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성숙해져 갔습니다. 마치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잠언 27:17), 서로를 연단하며 성장하는 공동체였습니다. 도망갈 곳 없는 배 안에서, 숨겨왔던 쓴 뿌리, 기질들이 드러나고, 서로를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나호 공동체는 6개국 출신, 선교 헌신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겉으로는 헌신적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어려움과 갈등에 직면했습니다. 사소한 해프닝부터 인간관계의 어려움까지, 공동체 생활은 끊임없는 인내와 사랑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부모의 이혼으로 깊은 상처를 가진 한 자매는, 쓴 뿌리를 드러내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사랑받지 못했던 결핍으로 인해 거짓말, 과장된 행동을 반복했고, 주변의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한나호는 한국 교회의 따뜻한 사랑으로 힘을 얻었습니다. 한국에 입항할 때마다 교회들의 헌신적인 섬김과 사랑은, 지친 선교사들에게 큰 위로와 회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동남아시아 출신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의 사랑을 통해 사랑의 게이지를 채우고, 본국으로 돌아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이 자리를 빌려 한국 교회에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28년간의 사역 동안, 한나호는 수많은 섬들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작은 배였기에 접근이 어려운 외딴 섬들까지 갈 수 있었는데요, 3일 항해해야 도착하는 작은 섬에서 세 명의 남자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팔라우, 얍 등 정부의 배도 닿지 못하는 섬들을 방문하여 구호 물자를 전달하고 의료 사역을 펼쳤습니다. 한번은 3일 거리에 있는 올래아이 섬에서 구호 요청을 받고, 물자를 싣고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올래아이 섬에서 추장의 아들 '미노'를 만난 것은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본토 유학 경험이 있는 미노는 영어를 구사했고, 복음 통역을 도왔습니다. 통역 중 예수님을 영접한 미노는, 한나호와 함께 선교하겠다는 결심을 밝혔습니다. 추장은 막내아들 미노를 만류하며 추장 자리를 제안했지만, 미노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나호에 승선했습니다. 배에서 예배, 훈련을 받으며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비전을 키웠고, 신학 공부를 결심했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미노를 위해 교회 건축을 기도했고, 놀랍게도 인도네시아에서 얍으로 향하는 항해 중 교회 건축 자재를 실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컨테이너 분량의 건축 자재를 싣고 얍에 도착, 6개월간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현재 미노는 목사가 되어 본토에서 외부 섬 출신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 명의 남자만이 살던 작은 섬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열매 맺게 된 것은 한나호의 헌신적인 사역 덕분이었습니다. 지금도 올래아이 섬에는 아름다운 교회가 굳건히 서 있다고 합니다.
한나호는 의료 사역을 통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했습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지만, 추상적인 개념일 수 있습니다. 무료 의료 사역은 복음을 체험적으로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환자들은 진료 순서를 기다리며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었습니다. 노방 전도보다 의료 사역을 통한 복음 전파의 열매가 더 컸다고 합니다. 특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 '복음선교' 타이틀로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의료 사역을 통해 비교적 쉽게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28년간의 항해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태풍, 좌초 등 위험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태풍은 가장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한번은 자카르타에서 배가 고장나 부산으로 수리하러 돌아오는 길에, 태평양에서 두 개의 태풍을 만났습니다. 앞뒤로 태풍에 갇힌 상황에서, 파도는 집채만 했고, 작은 배 한나호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렸습니다. 엔진 냉각수 공급이 끊겨 엔진까지 멈춰버리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태풍 속에서 엔진 정지는 배의 전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순간, 선교사들은 찬양을 선택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모두 갑판에 모여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구토와 멀미로 지쳐있었지만,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평안을 주셨습니다. 기적적으로 죽을 끓여 먹을 힘을 얻었고, 엔진을 수리하여 두 개의 태풍을 뚫고 부산항까지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찬양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죽음 앞에서 생명을 가져다주는 놀라운 힘이었습니다.
또 다른 위기는 산호초 좌초였습니다. 팔라우는 산호 섬이 많아 좌초 위험이 항상 존재했습니다. 좌초되는 순간, 50% 확률로 배가 순식간에 침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좌초 당시, 선장은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긴급 방송을 했고, 침몰 가능성을 직감했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아이들을 찾아 구명조끼를 입히고 마지막을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었고, 아이들의 믿음을 확인하며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복음에 대한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좌초된 배는 산호초에 갇혀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산호초는 철선을 칼처럼 잘라낼 수 있기에, 탈출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레이더도 작동하지 않아 방향 감각을 잃었을 때, 기적처럼 섬 주민 세 명이 스피드보트를 타고 나타나 후진하라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한나호는 엔진 두 개를 장착한 덕분에, 망가진 엔진 하나를 제외하고 남은 엔진 하나로 후진하여 산호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프로펠러는 망가지고 선체는 긁히고 갈라졌지만,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한나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좌초 사고 후, 다음 항해를 위해 필리핀 세부로 향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망가진 배를 이끌고 다시 항해를 시작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듯, 김 선교사님 역시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고, 그 희생으로 인류에게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선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 길 끝에 생명의 역사가 시작됨을 믿었습니다. 아이들만이라도 비행기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결국 한나호와 함께 항해를 이어갔습니다.
남편 박수진 선교사님이 사역 중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섰던 남편은,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수고했다" 칭찬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달랐습니다. "네가 많은 일을 했지만, 사랑으로 한 것만 계산해 줄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은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이 음성을 듣고 깨어난 남편은, 앞으로 사랑으로 사역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사역을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해 왔음을 반성하고, 사랑으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사역을 다짐했습니다.
김 선교사님에게 한나호는 애증의 대상이었습니다. 20대부터 30년 가까운 청춘을 바친 헌신, 삶의 터전이었던 한나호를 떠나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폐선을 결정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쉬움과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28년간의 한나호 사역은, 하나님께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고린도후서 3:3)라고 말씀하시며 사용하신 시간들이었습니다. 한나호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의 편지였고, 60명의 선교사들은 각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편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한나호 사역을 마무리하며, 김 선교사님은 다음 스텝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저희 사역은 끝난 건가요? 달려갈 길을 다 마친 건가요?" 하지만 복음은 능력이었고, 증인은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자입니다. 한나호 28년은 하나님의 구원, 기적, 변화를 목격한 여정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잊지 않고,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다짐했습니다. 놀랍게도, 흩어졌던 한나호 사역자들이 다시 모여 제 3의 한나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3의 한나 사역은 '만화도 인도네시아' 사역입니다. 지난 6월, 마나도에서 100명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라이프 게임 캠프를 열었고, 청년들의 삶의 가치관과 목표 재정립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마나도 시는 캠프 사역의 효과를 인정하고, 지속적인 캠프 사역을 요청했습니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도네시아 사역으로 이끄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육지에서 펼쳐질 새로운 사역, 제 3의 한나호는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 선교사님은 기도 제목을 나누었습니다. 한나 2호는 60명이 함께했지만, 인도네시아 사역은 12명 팀으로 시작합니다. 12명의 사역 팀 구성과, 마나도 센터 건립을 위해 기도 요청했습니다. 바다에서 육지로, 공간은 바뀌지만, 복음을 향한 열정은 변함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한나호 이야기는, 28년간의 파도와 기적의 항해를 마치고, 육지에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는 김영란 선교사님과 함께 계속될 것입니다. 제 3의 한나호 사역, 만화도 인도네시아를 향한 기대와 응원을 보내며, "새롭게 하소서"는 마무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