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남매 엄마 권미나 선교사의 감동 육아와 입양 스토리
[울컥 주의] '바보 엄마' 권미나 선교사의 6남매 육아 감동
[수어통역] 클로징 멘트에 폭풍 오열한 바보 엄마💗ㅣ권미나 선교사ㅣ김현숙 수어통역사ㅣ새롭게하소서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com/watch?v=H42KEIqPiVQ
권미나 선교사의 파란만장 육아 스토리, 6남매 엄마의 솔직 담백 인생 이야기
안녕하세요, 새롭게하소서 주형훈입니다. 오늘, 정말 특별한 분을 모셨는데요. 저출산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6남매를 키우시는 권미나 선교사님입니다. 선교사님께서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하시는데요. 힘든 시간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으셨다고 합니다.
권미나 선교사님께서는 여섯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과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주실 예정입니다. 출산과 입양, 그리고 육아의 고충과 기쁨까지,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공감, 그리고 도전을 선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함께 해주실 권미나 선교사님을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권미나 선교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주형훈: 선교사님이라고 소개해 드렸는데요. 여섯 아이를 키우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여섯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이야기,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대해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여섯 남매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권미나 선교사: 네, 첫째 황세희 15살, 둘째 황조의 13살, 셋째 황태희 11살, 넷째 황로이 9살, 다섯째 황예의 8살, 막내 황제의 7살입니다. 아들 다섯에 딸 하나, 6남매입니다.
주형훈: 와,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들이 다섯이라니, 집안이 아주 든든하시겠어요.
권미나 선교사: [웃음] 많은 분들이 저를 다산의 여왕으로 생각하시기도 하는데요. 사실 저는 스스로를 '바보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친정 어머니께서 9남매 막내로 태어나셨는데, 당시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눈치로 인생을 살아오셨고, 한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키우시면서 양육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해주지 못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속옷을 며칠에 한 번 갈아입어야 하는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속옷을 하루 이상 입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을 듣고, 그때부터 속옷은 매일 갈아입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처음 생리를 시작했을 때 어머니께서는 생리대가 아닌 아기 기저귀를 사다주시면서 기저귀를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남들은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살면서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해야 했는데, 친정에서는 손빨래만 하셨기 때문에 세탁기를 단 한 번도 돌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세탁기 사용법을 물어보고 겨우 빨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세제를 넣은 후, 세탁기 문을 닫지 않고 열어두었는데, 남편이 30만 원이 넘는 아디다스 오리털 파카를 세탁기에 넣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드라이클리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바보 같았습니다.
여섯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매번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육아는 정말 끊임없는 도전이었고, 이전의 경험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매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비밀 무기가 있었는데요. 바로 하나님께 묻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벌써 다섯 번째, 여섯 번째인데 그것도 모르냐?" 라고 핀잔주시지 않으시고, 지혜를 주시고 주변의 탁월한 엄마들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한 번은 아이가 도저히 젖병을 떼지 못해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기도만 하지 말고 네가 직접 단호하게 젖병을 떼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젖병을 끊었더니, 아이가 며칠 울다가 스스로 젖병을 떼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육아는 정말 기도와 노력이 함께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잘 자라주었고, 선교지에서도 씩씩하게 잘 적응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여섯 명의 아이를 맡겨주셨습니다.
주형훈: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여섯 명이라고 하셨는데, 출산은 몇 번 하셨나요?
권미나 선교사: 여섯 명 중에 네 명은 제가 직접 출산했고, 두 명은 가슴으로 낳은 입양입니다. 첫째는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엄마가 된 것이죠. 둘째는 첫째 19개월 때 또 다시 하나님의 선물처럼 찾아왔습니다.
셋째부터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셋째는 입양을 통해 가슴으로 낳았고, 눈물로 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저에게 "존재의 가치"에 대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은 세상에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남편의 말이 맞는 말이었지만, 당시 세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 세 명 키우는 것도 벅찬데, 무슨 또 새로운 생명이냐" 라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런데 큐티를 하던 중 창세기 1장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는 말씀을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처음으로 하신 명령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면서 처음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람이 처음 하는 말과 마지막에 하는 말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혈을 기울여 창조하시고 처음으로 하신 말씀에는 정말 간절한 소망과 계획, 그리고 하나님의 진심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기대를 품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고 말씀하셨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이미 충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욱 생육하고 번성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소망을 담아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제가 삶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는지, 바로 넷째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다섯째는 또 다시 입양을 통해 가슴으로 낳았습니다. 여기서 끝일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묵상하게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다. 내 삶의 주인이시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무언가를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예수님, 제가 무엇을 해드릴까요?" 라고 기도하는 가운데 마리아가 생각났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 잉태를 예고했을 때, 마리아는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탄생했듯이, 저의 몸을 통해 예수님 오심을 앞당길 일꾼이 탄생하기를 소망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망을 담아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너무 기뻐하시고 바로 여섯째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여섯 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주형훈: 직접 출산도 네 번이나 하셨으니, 출산 과정도 다양하게 경험하셨겠네요.
권미나 선교사: 첫째, 둘째는 병원에서 출산했는데, 저는 병원 출산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첫째를 낳을 때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하자, 간호사가 제 배 위에 올라가서 아이를 밀어내듯이 힘을 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무 공포스러운 경험이었고, 출산의 감격은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셋째를 임신했을 때는 병원에서 출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안을 찾아봤더니, '구성원'이라는 출산 센터가 있었습니다. 구성원에서는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방에서 편안하게 출산했는데, 출산 후 아이를 데려가시고 저 혼자 방에 남겨지니 2% 부족한 우울감이 찾아왔습니다.
넷째를 출산할 때는 말레이시아에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 병원을 알아보니 자연주의 출산은 비용이 상당히 비쌌습니다. 저렴한 병원도 한국 돈으로 150만 원 정도였고, 한국 분들이 많이 가는 병원은 250만 원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집에서 출산하는 '가정 출산'이라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병원비도 아낄 수 있고 더욱 자연스러운 출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하나님께서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던져주셨습니다.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기에 남편에게 가정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남편은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너무 재미있고 신나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며 흔쾌히 가정 출산에 동의했습니다. 남편이 찬성해주니 용기가 생겼고, 저희 부부는 가정 출산을 결심했습니다.
주형훈: 저도 둘째를 자연주의 출산으로 출산해서 어떤 경험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갑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정 출산을 하셨다고 했는데, 낯선 환경이라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권미나 선교사: 정말 신기하게도,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완벽한 인도하심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출산 전날,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는데, "아, 이제 때가 되었구나" 라는 직감이 왔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여놓고 출산 준비를 했습니다.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관장이었는데요. 병원에서는 인위적으로 관장을 하지만, 가정 출산은 관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출산 직전까지 자연 관장을 네 번이나 시원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아이가 눌러서 자연스럽게 관장이 된 것이죠.
저녁에 아이들 밥을 먹이고 나니 진통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미리 연락해둔 선교사님들께 아이들을 맡겨두고, 남편과 저 둘만 집에 남았습니다. 둘만 남겨진 집에서 분만실을 준비했습니다. 잔잔한 CCM 음악을 틀고, 조명을 어둡게 조절하여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진통을 견디고 있는데, 남편이 "여보, 중력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좀 서봐" 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말대로 일어서서 남편 어깨에 손을 얹고, 남편도 제 어깨에 손을 얹고 부르스를 추듯이 몸을 흔들면서 진통을 견뎌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는 우리 부부의 사랑 안에서 생겨난 존재인데, 출산 또한 부부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구나." 남편을 의지하고, 남편과 함께 춤을 추듯이 진통을 겪으니, 고통 속에서도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정말 로맨틱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로맨틱한 분위기도 잠시, 갑자기 진통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남편이 "이제 힘을 줘보라" 라고 했지만, 이미 힘이 너무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휘몰아치는 듯한 진통이 시작되었고, 저는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큰일났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을 쳐다보니 제 눈이 흰자를 보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제 뺨을 치면서 "정신 차려! 이러다 당신과 아기 모두 위험해진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남편의 다급한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아이가 위험해진다" 라는 말에 엄마로서의 모성애가 발동했습니다. 급박한 순간에는 대단한 기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라는 기도만 계속 되뇌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를 외치며 힘을 주면서 진통을 견뎌냈지만, 힘을 제대로 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저를 화장실로 데려가서 변기에 앉아 힘을 줘보라고 했습니다. 변기에 앉아 힘을 줬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이번에는 쪼그려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남편 말에 무조건 따라야 했습니다. 남편 말대로 쪼그려 앉아 힘을 주니, 머리가 나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보, 머리가 나오는 것 같아!" 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여보, 우리 공부한 거 있잖아. 이제부터는 힘을 빼야 해!" 라고 말했습니다. 몸에 힘이 저절로 들어가는 상황이었지만, 남편의 말을 떠올리며 호흡을 하면서 힘을 빼려고 노력했습니다. 남편이 신기하게 아이가 스스로 어깨를 돌리더니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스스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남편은 아이를 받고, 저는 기절하듯이 쓰러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안고 방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배가 계속 아팠습니다. "분명히 아이를 낳았는데, 왜 이렇게 배가 아프지?" 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힘을 줘봤더니, 물컹한 태반이 확 나왔습니다. 그제서야 모든 출산 과정이 끝났습니다.
병원에서는 탯줄을 빨리 자르지만, 가정 출산에서는 탯줄에서 맥박이 뛸 때까지 기다립니다. 탯줄을 통해 태반에 있는 산소와 영양분이 아이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15분에서 20분 정도 기다린 후, 맥박이 멎은 것을 확인하고 소독한 가위로 탯줄을 자르고 실로 묶었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제 맨살에 안고 캥거루 케어를 했습니다. 아이를 계속 안고 있으니 안정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젖을 찾길래 젖을 물리고 초유를 먹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가정 출산 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가정 출산은 정말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공포와 고통의 순간이 아니라, 정말 기쁘고 축복된 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주형훈: 네 아이를 출산하시고, 두 아이를 입양하셨다고 했는데, 입양은 어떻게 결심하게 되셨나요?
권미나 선교사: 입양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첫째, 둘째를 씻기면서 "엄마 없는 아이들은 누가 씻겨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던 중, 홈스쿨 모임에서 사모님들이 직접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모님들께서는 입양한 아이들을 친자녀와 똑같이 사랑으로 키우고 계셨습니다. "아, 가슴으로 낳은 아이도 똑같이 사랑으로 키울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태어났지만 돌봐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눈물과 아픔에 대한 마음을 계속 부어주셨습니다. "네가 그 아이들을 키워주지 않겠느냐?" 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스스로 '바보 엄마'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오죽하면 저에게 이런 부탁을 하실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종해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남편의 동의도 필요했습니다. 남편에게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남편도 기도하는 중에 야고보서 1장 27절 말씀을 응답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흠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남편도 입양에 찬성했고, 셋째 입양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입양 기관에서 미숙아도 괜찮겠냐고 물어봤습니다. 셋째는 8개월 만에 태어난 미숙아였습니다. 미숙아여도 괜찮다고 말씀드렸고, 아이를 만나러 갔습니다.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눈물보다는 큰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작고 소중한 아이를 품에 안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부부에게 큰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아이 이름을 '클 태, 기쁠 희' 태희라고 지었습니다.
주형훈: 보통 아이들도 그렇지만, 입양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욱 힘든 순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태희로 인해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권미나 선교사: 저희 부부는 기쁨으로 태희를 입양했지만, 태희는 웃지 않는 아기였습니다. 처음 집에 왔을 때부터 얼굴이 어두웠고, 보통 아기들이 짓는 배냇짓으로라도 웃지 않았습니다. 전혀 웃지 않는 태희를 보면서 마음이 짠했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생후 5개월쯤 되었을 때, 어느 날 아침에 태희가 빵긋 웃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기뻐서 사진을 찍어 놓았는데, 그때부터 태희도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태희가 자라면서, 어느 날부터 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아이들도 고집을 피우거나 떼를 쓸 때 악을 쓰기도 하지만, 태희의 악 쓰는 소리는 조금 달랐습니다. 어린 아이 안에 뭔가 모를 분노와 불안이 담겨 있는 듯한 소리였습니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걱정이 되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태희는 지금 가슴으로 낳고 있는 중이다"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네가 첫째, 둘째 아이를 배가 찢어지듯이 아픈 고통 가운데서 낳았듯이, 가슴으로 낳는다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 순간을 통해 가슴으로 낳는 것이다. 너는 지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 순간이다"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가 지금 가슴으로 낳고 있는 것이구나."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속에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선수이고, 하나님은 제 감독이 되셔서 박수를 쳐주시면서 "이 장애물은 뛰어넘을 수 있다. 뛰어넘으면 된다!" 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일어나라!" 라고 외치시는 듯 했습니다.
하나님의 격려에 제 마음에 평안이 임하고, 다시 시작할 힘이 생겼습니다. 낙심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새로운 소망이 솟아났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주형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이 변화된 후에 태희에게도 변화가 있었나요?
권미나 선교사: 하나님의 은혜로 제 모든 세포가 변화된 후, 집에 돌아왔는데 태희는 여전히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감사했던 것은,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출생, 외모, 성품, 재능 등 아이가 결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변해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인 우리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깊이 느껴졌습니다.
제 안에는 스스로 변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제 육신의 눈을 거두어 가시고 하나님의 눈을 다시 끼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태희를 보니, 태희가 반짝반짝 빛나고 너무 예뻐 보였습니다. "아, 우리 태희 안에 이런 매력이 숨겨져 있었구나" 라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표정도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뀌고, 태희에게 "사랑해" 라고 말하고 안아주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느낀 태희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악을 쓰는 횟수가 줄어들고, 애교도 많아지고, 점점 밝아졌습니다. 태희의 변화를 보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태희의 문제 행동이 신기하게 사라졌습니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말씀 암송을 하고 있었는데, 태희가 "엄마, 다 외웠어요!"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암송이 끝난 아이들에게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는데, 태희에게 "오늘 암송하면서 어떤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니?" 라고 물었습니다.
태희는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이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라는 말씀이 가장 와닿았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태희의 대답을 듣고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그래, 그랬구나. 하나님께서 태희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길, 하나님 앞에서 태희의 인생이 해석되게 해주시길,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줄게." 눈물을 머금고 기도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예레미야 말씀을 암송하면서 하나님을 선포한다는 사실에 큰 감동과 반성을 받았습니다.
주형훈: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넷째 로이에게 틱 장애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틱 장애는 어떻게 극복해나가셨나요?
권미나 선교사: 로이는 저희가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후 코로나가 극심했던 2020년쯤부터 틱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눈을 깜빡깜빡 거리는 증상을 보였습니다. 눈을 깜빡거리더니 "음, 음" 하는 소리를 반복해서 냈습니다. "왜 그럴까?" 걱정하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이 아이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할 것이니, 기대하라" 라는 마음을 주셔서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틱 증상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틱 소리는 점점 커지고, 틱 증상을 보이는 빈도도 잦아졌습니다. 그때서야 검색을 해봤더니, 로이의 증상이 틱 장애 중 음성 틱 소리와 매우 흡사했습니다. 아이가 틱 장애라는 것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 "틱 장애를 낫게 해달라" 라는 기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아이에게 틱 장애가 생겼을까?" 라는 죄책감에 회개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억지로 하는 회개 기도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회개하는 마음을 부어주시는 기도였습니다.
회개 기도를 하면서 떠오른 장면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말레이시아에 와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는데, 로이가 다녔던 학교는 인도계 선생님이 뺨을 때리는 등 엄격한 교육 환경이었습니다. 로이는 학교에 가기 싫어했지만, 학교 비자 문제 때문에 억지로 스쿨버스에 태워 보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아이를 너무 힘들게 했구나" 라는 죄책감에 오열했습니다.
넷째 로이가 19개월 때 다섯째 예의를 입양했습니다. 로이 입장에서는 19개월이나 10개월이나 비슷한 나이의 동생이 생긴 것입니다. 새로운 동생이 집에 와서 며칠이면 갈 줄 알았는데, 계속 집에 있는 것을 보고, 더 어린 동생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보면서 로이가 돌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을 뺏겼다" 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는 임신 3개월 만에 말레이시아로 이주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 또한 극한 육아에 지쳐있었고,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 아이들에게 밑바닥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과거의 잘못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오열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너무 잘못했습니다. 제가 로이를 너무 아프게 했습니다." 라는 회개 기도가 계속 터져 나왔습니다.
일주일 정도 회개 기도를 계속하던 어느 날, 로이가 틱 소리를 내면서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틱 증상을 보이는 로이를 보는데, 로이 존재 자체에 대한 소중함이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습니다. 로이를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틱 소리를 내고 있는 로이에게 다가가서 "로이야, 너무 사랑해. 로이가 엄마 아들로 살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너무 감사해. 로이는 엄마에게 너무 소중해." 라고 말해주고 꽉 안아주었습니다.
로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이야, 혹시 힘들었던 것이 있으면 말해볼래?" 라고 물었더니, 로이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유치원에서 힘들었던 일, 아팠던 일, 그리고 엄마에게 섭섭했던 일 등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로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선생님을 대신해서 "너무 미안해. 너무 마음이 아팠겠다. 너무 무서웠겠다." 라고 공감해주고 사과했습니다. 저에 대한 섭섭함을 이야기할 때도 "엄마가 너무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너무 미안해." 라고 사과했습니다. 그 후부터 로이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었습니다. 어느 날은 로이가 "엄마, 또 이야기해 줄까요?" 라고 물어보는데 마음이 짠했습니다. "로이야, 미안해. 진작 네 이야기를 들어줬어야 했는데. 이제라도 이야기해줘서 너무 고마워." 라고 말해주니 눈물이 났습니다.
주형훈: 로이의 틱 증상은 좀 좋아졌나요?
권미나 선교사: 시간이 지나면서 틱 증상은 점점 나아졌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틱 장애가 만성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습니다. 1년 안에 사라지는 일과성 틱 장애도 있지만, 만성 틱 장애나 뚜렛 증후군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로이의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 알 수 없어서 마음을 많이 졸였습니다.
기도할 때 엘리야가 떠올랐습니다. 엘리야가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만한 구름" 을 사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로이 틱 장애가 1년 안에 사라질 틱이라면 손만한 사인을 보여주세요. 그래야 제가 이 힘든 시간을 버티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신기하게도 로이의 틱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틱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와, 정말 다 나았나보다!" 라고 기뻐했지만, 3일째 되는 날 아침에 다시 틱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눈물을 머금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딸아, 안심하라. 이 일을 통해 내가 행할 일이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힘든 시간을 잘 버티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주형훈: 여섯이라는 숫자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숫자인 것 같습니다. 여섯 아이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으실 텐데, 육아가 힘들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권미나 선교사: 여섯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저에게 늘 벅찬 일입니다. 지금은 막내가 일곱 살이지만, 아이들이 클수록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생겨납니다. 정말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일어납니다. 저에게 육아는 늘 버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힘든 육아 상황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눈물로 기도하고, 아이들을 붙잡고 기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을 느낍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가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몸부림치면서 예배를 드리는 제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 삶을 통해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키우는 시기는 영적 침체기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최고의 영적 부흥기" 라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한두 명 늘어나면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기도가 더욱 간절해지고 급박해지면서 어느 날부터 두 손을 들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셋, 넷, 다섯, 여섯으로 늘어나면서 두 손을 든 기도도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막내를 업고 새벽 기도를 갈 때, 두 손을 들고 기도하고 너무 힘들면 본당 뒤편 벽에 몸을 기대어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나님, 저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해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편안한 환경에서 기도하고 예배드릴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눈물과 감격을 하나님께서 제게 부어주셨습니다. 힘든 육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를 더욱 깊은 영성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제가 가는 곳마다 엄마들에게 "육아는 영적 침체기가 아니라, 최고의 영적 부흥기" 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늘 벅찬 육아를 허락하시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너무 몰라서, 너무 바보 같아서 '바보 엄마, 울보 엄마' 라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부족한 모습과 하나님의 은혜를 솔직하게 담은 책입니다. 책을 쓰면서 눈물로 읽을 엄마들을 생각했습니다. 제 치부, 부족했던 모습, 밑바닥 모습, 다듬어지지 않은 성품, 죄인 중의 괴수와 같은 모습, 망가지고 무너졌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 책에 담았습니다.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당신들보다 더 모르는 엄마도 있다. 당신들보다 더 못한 엄마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다. 하나님께 나아갔더니, 하나님께 소망과 위로가 있더라. 희망이 있더라." 라는 것입니다. 바보 엄마에게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모르는 것을 구하는 저에게 사소한 것까지 깨닫게 해주시고, 때로는 저를 통해 전하게 하시려고 가슴 터질 듯한 메시지를 부어주십니다. 제 삶이 누군가 다른 엄마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여섯 아이를 눈물로 끙끙대며 키우고 있는 제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삶을 살게 하시려고 저를 바보 엄마로 만드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형훈: 본인의 삶이 다른 사람이 읽는 성경책이라고 하셨는데, 선교사님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 신혼부부, 그리고 아이를 갖기 원하는 분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귀한 간증 감사드립니다.
이정수: 저는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요, 오늘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보 엄마, 울보 엄마' 라는 책 제목처럼, 우리는 부족하고 모르는 것도 너무 많고 연약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말씀과 기도로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섯 명의 자녀를 가슴과 배로 낳으시고, 하나님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받은 사랑을 세상에 베풀며 살아갈 것이라는 기대감과 축복된 가정이라는 생각에 부러웠습니다.
김현숙: 저는 건강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데, 주 양육자로서 힘들 때가 많습니다. 오늘 선교사님 간증을 들으면서 아이들이 영혼의 부흥을 가져다준다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핑계가 있으면 교회도 잘 안 가는 사람인데요, 첫째를 교회에 보내고 싶고, 하나님을 더 알게 해주고 싶어서 이번 여름에 여름 캠프를 신청했습니다. 캠프에 혼자 못 가서 저도 함께 가야 합니다. 평생 여름 성경학교나 캠프에 가본 적이 없는데, 아이들 때문에 캠프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통해 영적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주형훈: 캠프 다녀오셔서 변화된 이정수 형제를 기대하겠습니다. 요즘 현대 여성들은 '바보 엄마'가 아니라서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힘든지, 결혼하면 얼마나 힘든지 미리 다 계산하기 때문에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았기 때문에 무모하게 자녀를 많이 출산하고 입양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교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엄마를 본 것 같습니다. 엄마라는 타이틀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이를 키우고, 고통을 함께 나누고, 끊임없이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님은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많은 아이를 출산하고 입양하셨고, 아이들과 고통을 나누면서 헌신적으로 양육하셨습니다. 자신의 편안함, 몸의 고통, 직장 생활 등 개인적인 욕심은 전혀 없이 오로지 자녀를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선교사님 간증은 엄마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가장 현명한 엄마의 간증이었습니다.
오늘 방송을 보시는 많은 부부들과 앞으로 아이를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오늘 말씀이 큰 은혜가 되고, 삶의 기준이 변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많은 곳에서 간증해주시고, 출산과 양육에 대한 귀한 말씀을 전해주셔서, 하나님 말씀대로 번성할 수 있도록 힘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선교사님을 열심히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권미나 선교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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