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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신교회 김길 목사 인생 간증: 고난과 거리 예배, 믿음의 이야기

요약

고난 넘어 도시를 품은 믿음

"길 위에서 통과한 고난": 명신교회 김길 목사의 파란만장한 인생 간증 상세 정리

오늘, 고난 속에서 피어난 믿음의 꽃, 명신교회 김길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상처 입었다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우리 마음 속 상처를 핑계 삼아 작은 아픔에도 쉽게 좌절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하게 됩니다. 최근 예측 불허의 어려움 속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오늘,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하신 김길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혹시 우리가 스스로를 과도하게 연약하게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수많은 고난과 연단 속에서,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아가는 김길 목사님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서울 도심 한복판,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거리에서 기도와 묵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특별한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명신교회입니다. 명신교회 김길 목사와 성도들은, 획일적인 교회 공간을 벗어나 도시 곳곳, 서울을 넘어 아시아 대도시까지 예배의 장소를 확장하는vision을 품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정 불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선교단체 간사 시절의 극심한 물질적 어려움,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의 장애까지. 하지만 그는 절망 속에서도 인내하며 하나님을 더욱 깊이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도시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거리에서 묵묵히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하는 김길 목사님. 그 험난한 고난의 길 위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굳건히 나아온 그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펼쳐집니다.

거리에서 드리는 예배, 도시를 향한 묵직한 외침

김학중 목사: 명신교회 김길 목사님, 귀한 걸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CBS 시청자분들께 반가운 소식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김길 목사: CBS "올포원"이라는 방송을 김학중 목사님과 함께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시청자분들과 더욱 자주 소통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김학중 목사: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독특한 교회, 명신교회. 명동 거리에서 예배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김길 목사: 저는 대학 시절부터 선교단체 간사로 캠퍼스 선교를 했습니다. 특별한 장소 없이,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죠.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시를 향해 나아가 기도하며 전도하고, 자연스럽게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제게 익숙한 사역 방식이었습니다. 20대 사회단체 간사 시절부터, 도시를 선교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교회 개척에 대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예배당을 먼저 짓고 사람들을 모으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를 향해 기도하며 사역하다가 자연스럽게 교회가 세워지기를 소망했습니다.

김학중 목사: 성경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대도시를 향해, 나아가 유럽과 로마까지 복음을 전파한 기록이 있습니다. 도시마다 복음의 거점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개교회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거리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시도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명동 거리 예배는 1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거리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릴까?"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김길 목사: 현재는 매주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주에는 여의도 공원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오전 10시 30분 카페에서 시작합니다. 구역별 묵상 모임과 기도 모임을 통해 교제를 나눕니다. 카페에서 따뜻하게 몸을 녹이며 묵상과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는 것이죠. 이후, 근처 공원, 예를 들어 여의도 공원 같은 곳에서 야외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 후에는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합니다. 거리 예배는 도시를 향한 미안한 마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식사만큼은 최고로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명동에서 예배드릴 때는, 명동 맛집들을 섭렵했었죠. 여의도 역시 맛집이 많습니다.

김학중 목사: 카페는 생각해보면, 훌륭한 예배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일 아침 명동은 한산하고, 카페도 비교적 조용합니다. 3층 규모 카페의 3층을 빌려 예배를 드린 적도 있습니다. 오히려 카페 점장님이 고맙다고 하시며, 손님들을 1, 2층으로 안내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김길 목사: 교회가 굳이 특정 건물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카페처럼, 속으로 모이기 좋은 공간도 훌륭한 예배 처소가 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사무실이나 공간을 빌려 모일 수도 있었지만, 저희 교회는 도시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0년 전부터 거리 예배를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무실을 얻어 주중에는 사무실에서 사역하고, 주일 예배는 여전히 도시 곳곳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김학중 목사: 10년 가까이 거리 예배를 드리면서, 6, 7개월마다 예배 장소를 옮겼다고 들었습니다.

김길 목사: 명동에서 2, 3년 예배드릴 때, 아이들과 함께 온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길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노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을 빌리게 되었고, 이후에도 6, 7개월마다 장소를 옮기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현재 사무실은 은행 사무실로 사용되던 공간이라, 예배당처럼 꾸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사무실이 생겨, 주중 사역과 주일 예배를 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김학중 목사: 최근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졌습니다. 거리 예배 중에, 예기치 않게 반대 세력과 충돌하거나 저항을 받은 적은 없었나요?

김길 목사: 거리 예배 초기에는 건물 앞에서 예배를 드릴 때, 건물 관리인들이 나와 항의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조용히 자리를 옮겼습니다. 크게 찬양하거나 소란스럽게 예배드리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리 예배를 평화롭게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김학중 목사: 규모는 작지만, 최근 분립 개척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김길 목사: 분립 개척 당시, 아이들 포함 100명 정도의 성도가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소그룹, 구역 중심 사역이 강점입니다. 각 구역 리더들이 10년 이상 선교단체 사역을 헌신했던 베테랑들이었죠. 구역별로 탄탄하게 성장한 소그룹들이, 부천과 죽전으로 분립 개척했습니다. 부천은 학원 사역을 하는 성도 가정을 중심으로, 죽전은 학원 사역을 하는 집사님 가정을 중심으로 개척이 이루어졌습니다.

고난의 파노라마, 어린 시절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다

김학중 목사: 목사님의 사역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입니다. 많은 분들이 목사님의 삶 자체에 대해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도 잠깐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길 목사: 어린 시절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 폭력이 심했고, 9살 때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어머니 장례 후, 아버지는 재혼하셨고, 저는 큰 누나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7남매 중 막내였던 저를 큰 누나가 헌신적으로 돌봐주셨습니다.

김학중 목사: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형제들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마음의 상처가 컸을 것 같습니다.

김길 목사: 형님 댁은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낡은 양옥집 2층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연탄 두 장으로 겨우 난방을 했죠. 하지만 크게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형님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저를 잘 돌봐주셨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저는 왠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치 누군가 제 등을 떠밀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학중 목사: 감히 상상하기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을 텐데,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특별한 방법이 있었나요?

김길 목사: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실 뒤편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양한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죠. 나중에 "생의 한가운데"라는 책을 읽고, 주인공이 전쟁의 혼란 속에서 책을 읽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 모습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마음의 위로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 생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교회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김학중 목사: 신앙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김길 목사: 큰 누나가 교회에 다니라고 권유했습니다. 누나가 공무원 시험 합격을 위해 기도했는데, 합격하면 밥 먹는 사람은 모두 교회에 데려가겠다고 서원했다고 합니다. 누나 덕분에 얼떨결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신앙생활을 통해 큰 기쁨과 평안을 얻었습니다.

김학중 목사: 그렇게 시작된 신앙생활을 꾸준히 이어오셨군요.

김길 목사: 중고등부 시절부터 교회 임원을 맡고, 중고등부 회장도 했습니다. 80년대 광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시대적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치 운동에 투신하여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군대에서 군종병으로 복무하면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군대에서의 드라마틱한 변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다

김학중 목사: 군대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길 목사: 군대에서 군종병으로 복무하면서, 새벽 설교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예수님은 민족 해방을 이루실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군종병 설교에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설교를 준비하던 중, 마태복음 16장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해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을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삶의 모든 계획과 신념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김학중 목사: 극적인 변화였군요. 삶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김길 목사: 이전에는 사회 운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선교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군 제대 후, 선교단체에 들어가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김학중 목사: 선교단체 간사로 헌신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길 목사: 군 제대 후, 교회 도서관에서 로렌 커닝햄 목사님의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정말로 당신이 살아계시냐고 질문했습니다. 마침, 대학교 2학년 때 캠퍼스에서 한국예수전도단 간사님을 만났습니다. 간사님이 선교단체 모임에 초청해주셨고, 그곳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원래는 영어 공부를 해서 해외 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모든 계획을 내려놓고 예수전도단 간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김학중 목사: 대학교 졸업 후, 바로 간사로 사역하신 건가요? 선교단체 간사라는 직업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 않나요?

김길 목사: 대학교 졸업 후 바로 예수전도단 간사로 헌신했습니다. 선교단체 간사로 사역하는 것은 낭만적인 일만은 아닙니다. 재정적인 어려움, 사역의 고됨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뚜렷한 소명감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내도 선교단체에서 만났습니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교사직을 그만두고 저와 함께 선교단체 간사로 헌신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동역자였습니다.

아내와의 만남, 그리고 결혼까지의 험난한 여정

김학중 목사: 아내분과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합니다. 결혼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김길 목사: 아내는 대학교 3학년 때, 제자훈련 동기로 만났습니다. 아내의 가정 환경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장인어른은 일찍 돌아가시고, 장모님께서 홀로 다섯 딸을 키우셨습니다. 장모님은 리어카에 과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셨습니다. 아내의 큰 형부는 은행 지점장으로, 어머니와 동생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셨습니다. 다섯째 딸인 아내가 교대에 진학하고, 좋은 사람 만나 가정을 일으켜 세우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선교단체 간사가 되겠다고 하자, 가족들의 실망이 컸습니다.

김학중 목사: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걱정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김길 목사: 장모님은 저를 만나 "내 딸, 선교단체 간사 말고 교사 발령받으면 결혼 허락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교사 발령을 받아야 결혼할 수 있다는 조건 때문에, 아내는 교사 발령을 받고, 저희는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바로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장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아내와 함께 장모님 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장모님은 여전히 탐탁지 않아 하셨지만, 결국 저희 결혼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김학중 목사: 장모님의 반대가 심하셨군요.

김길 목사: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장모님은 "선교단체 간사는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라고 말씀하시며,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는 굳건한 믿음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선교단체 간사, 가장의 무게, 그리고 아픔의 시간들

김학중 목사: 선교단체 간사로 헌신하며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감도 컸을 텐데요. 선교 사역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은 없었나요?

김길 목사: 선교단체 간사 시절에는, 가정보다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선교를 위해 헌신했고, 동역자로서 서로를 격려하며 사역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점점 힘들어했습니다. 제가 캠퍼스 개척과 지방 사역으로 집을 자주 비우면서, 아내는 혼자 아이를 돌봐야 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아팠는데, 아내는 육아와 아이 간호에 지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간사 사역을 그만두고 나서야, 아내의 어려움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김학중 목사: 간사 사역을 그만두고,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들었습니다.

김길 목사: 간사 사역을 그만두고, 당장 살 집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교사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과, 제가 여름 캠프 강사로 받은 강사료를 합쳐 반지하 방을 얻었습니다. 반지하 방에는 세탁기, 냉장고, 식탁,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었습니다. 쌀이 떨어져 굶을 뻔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쌀이 떨어질 무렵, 교회 권사님으로부터 쌀이 가득 담긴 쌀통을 선물 받았습니다. 강의 요청도 쇄도했습니다. 특히 김학중 목사님의 청소년 캠프 강사로 초청받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김학중 목사: 20년 전 이야기인데, 그때 캠프에서 처음 뵙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김길 목사: 김학중 목사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반지하 생활을 청산하고 지상으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또래 아이들보다 발달이 늦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소아신경정신과 검사 결과,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매주 4번씩 발달센터에 아이를 데려가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아이의 장애는 부모로서 감당해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고난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새로운 시작

김학중 목사: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거리 예배가 아닌, 일반 교회 개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길 목사: 처음에는 성남 모란시장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지만, 기도 중에 모란시장에서 개척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기도하던 중, 광현교회 전성도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분당 예배당에 함께 들어가 교회를 개척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분당에서 예배당을 얻어 교회를 개척했고, 교회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뭔가에 짓눌린 듯, 숨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기도하던 중, 명동에서 개척해야 한다는 마음을 받았습니다. 화려한 예배당에서 편안하게 목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명동 거리에서 다시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김학중 목사: 하나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확신하게 되었나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헷갈려 합니다.

김길 목사: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계획이나 장기적인 목표를 통해 명확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란시장에서 개척할 때도, 명동에서 개척할 때도, 내적인 갈등이 있었습니다. "왜 굳이 힘들게 거리에서 개척해야 할까?" 끊임없이 자문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거리 예배를 통해 얻는 유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배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도시를 향해 나아갈 때, 성도들의 우선순위가 사역과 비전으로 바뀌게 됩니다. 장소나 건물보다,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양육하는 본질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거리 예배를 통해, 진정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김학중 목사: 일반적인 목회자와는 다른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목사님 사역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요?

김길 목사: 처음 거리 예배를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습니다. "거리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카페에서 묵상하고, 공원에서 예배드리고, 맛집 찾아다니는 것이 마치 소풍처럼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역의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제자 훈련에 집중했지만, 교회 규모는 여전히 작았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 사역의 정체 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규모는 작지만, 사역의 본질과 소명을 더욱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처음 오시는 분들도 명신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분명히 압니다. 사역의 본질과 제자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회의 정체성이 확고해졌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내실 있는 교회로 성장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아픔을 넘어선 축복, 자녀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

김학중 목사: 아까 자녀 이야기 잠깐 하셨는데, 발달장애를 가진 첫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김길 목사: 첫째 아이는 홈스쿨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친구들에게 맞고 다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학교 대신 홈스쿨링을 선택했고, 제가 직접 국어, 수학, 도덕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2년 정도 홈스쿨링을 하다가, 검정고시 학원에 보내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습니다. 아이는 외로움을 많이 타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 했습니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수능을 준비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안산대학교 강서캠퍼스 사회복지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기독교 학교라, 선생님들이 아이를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이번에 졸업했는데, 대학 생활을 즐겁게 잘 마쳤습니다.

김학중 목사: 정말 대단하네요. 아이가 대학 졸업까지 하다니, 정말 기쁘고 뿌듯하시겠습니다.

김길 목사: 아내도 정말 기뻐합니다. 아이가 대학 졸업하는 모습을 보니, 지난 고생이 모두 잊혀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내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셋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임신 후반기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습니다. 진단 결과, 희귀병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내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힘든 치료 과정을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결국, 셋째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했습니다. 늦둥이 아들인데, 벌써 5살이 되었습니다.

김학중 목사: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네요.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해내셨군요.

김길 목사: 아내가 셋째를 임신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했습니다. 최근에는 아내가 자전거를 샀습니다.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셋째 임신 후,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일상적인 행복을 다시 누리고 있습니다.

김학중 목사: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의 삶은, 고난의 종합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고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길 목사: 고난의 시간을 통해,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고난은 힘들지만, 고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고,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밤새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더욱 깊이 의지하게 되었고,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20년 부부 생활 동안, 아내와 저는 어려울 때마다 서로 의지하며, 예수님 안에서 함께 이겨냈습니다. 고난은 우리 부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훈련 과정이었습니다.

김학중 목사: 목사님의 간증은, 마치 성경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감동을 줍니다. 오늘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초심을 회복하고, 복음 앞에 바로 서는 귀한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기도 제목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김길 목사: 현재 도시 사역을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시 해외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교회 문턱을 낮춰, 누구나 쉽게 와서 복음을 접하고, 도시를 변화시키는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교회가 작기 때문에, 항공권이나 숙박비 부담이 적습니다. 교회 자체를 선교적 플랫폼으로 만들어, 아시아 대도시에서 서울에서 했던 것처럼 묵상 모임, 기도 모임, 거리 예배, 제자 양육 사역을 펼쳐나가고 싶습니다. 상하이 등 아시아 대도시에서 한 달 살기 선교를 진행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입니다.

김학중 목사: 도시를 품고, 더 나아가 아시아를 품는 귀한 비전을 품고 계시는군요.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 이 도시와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더욱 아름다운 사역 이어가시길 응원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김길 목사: 감사합니다.

김학중 목사: 살다 보면 절망의 늪에 빠져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더 탄식하며 아파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을 지키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김길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용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대도시에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처럼 퍼져나가기를 함께 기도하며, 오늘 방송 마무리하겠습니다. 김길 목사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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