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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훈 소장 간증: 문화와 복음, 퍼즐로 세상과 소통하는 비전

요약

퍼즐에서 복음으로, 문화로 세상과 소통: 윤영훈 소장

“퍼즐 속에서 복음을 발견하다”: 빅퍼즐문화연구소 윤영훈 소장 간증 상세 정리 및 노하우 소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롭게 하소서 김학중 목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전혜진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영화, 음악, 책과 같은 문화 콘텐츠를 떼어놓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들을 단순히 즐기는 차원을 넘어, 문화 콘텐츠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요. 오늘, 이러한 문화 속에서 답을 제시해 주실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바로 빅퍼즐 문화 연구소의 윤영훈 소장님이십니다. 소장님, 어서 오십시오.

빅퍼즐 문화 연구소라는 이름만 들으면,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퍼즐 게임을 연구하는 곳인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빅퍼즐 문화 연구소는 문화를 삶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 수용하고 재미있게 공부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오늘날은 문화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삶을 어떻게 행복하게 즐기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문화를 모르면 돈도 벌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선교에 있어서도 문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문화 감각과 매력적인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인디 문화의 중심지인 홍대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문화를 연구, 향유하며 문화를 통한 선교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문화 연구소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운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영화, 음악, 책을 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요즘 말로 ‘덕후’ 수준이었죠.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음반을 찾아다니고, 개봉 영화는 모두 챙겨 보며 영화 잡지를 모으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문화를 탐닉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과 더불어, 문화가 오늘날 선교의 중요한 주제라는 인식,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비평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소년 시절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랐다고 합니다. 저의 신앙 여정은 중학교 2학년 때 시작되었습니다. 이사 온 동네 바로 옆에 교회가 있었는데, 교회에서 심방과 전도를 활발하게 하던 시기였습니다. 교회에서 옆 동네에 중학생이 이사 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전도자를 파송한 것이죠. 어느 날,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예쁜 여학생이 교회에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저는 그 여학생의 권유에 이끌려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절 옆으로 이사 갔다면 스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렇게 처음 교회로 인도한 여학생은 바로 지금의 제 아내, 사모님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만나 청년부 활동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고, 결혼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한 은인입니다. 교회에 처음 갔을 때, 저는 매우 소심하고 내성적인 학생이었지만, 교회의 활기 넘치는 문화는 저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활발한 교류와 다양한 활동들을 지켜보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교회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교회는 저에게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골목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골목은 시간만으로 친구를 만들어주듯, 교회는 저에게 신앙 안에서 함께 성장할 친구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학원이나 아파트에서 과연 시간만으로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요? 교회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을 배우고 점차 성장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을 지나 대학에 진학하면서 신앙의 방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저는 대학 입시에 세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지금도 시험 보는 것이 두려울 정도입니다. 운전면허 시험도 일곱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시험만 보면 긴장되고 힘듭니다. 입시 실패가 반복되면서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선생님이셨고, 엄격하게 저를 훈육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제 모습에 실망감을 느껴, 더욱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재수, 삼수를 하는 동안 신앙마저 잃어버리고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삼수 끝에 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신학교 생활도 쉽지 않았습니다. 신학교는 상상조차 못했던 선택이었지만,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갈 곳이 없어 신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 갔지만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신학생들은 마치 목사님과 같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고, 제가 2년 정도 방황하는 동안 기독교 문화도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예전 찬송가는 더 이상 불리지 않고, “오, 주여 나의 마음이”와 같은 새로운 찬양들이 울려 퍼졌습니다. 통성기도 시간에도 저는 기도하지 못하고 겉돌았습니다. 신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하던 중, 우연히 동료의 소개로 선교 단체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분위기에 어색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또 다시 여성분이었습니다. 제 인생에는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어머니, 아내, 그리고 이 누나까지. 여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주변에 여자가 많아서 책임져야 할 여자가 많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 딸만 둘이고, 여동생만 있고, 이모만 있는, 남자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집안입니다. 이런 환경을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겠지만요.

선교 단체 모임에서 만난 누나는 저에게 큰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누나는 저에게 성경 공부를 제안했고, 저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말을 걸어준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소심하고 열등감에 짓눌려 있던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누나와 성경 공부를 하면서, 닫혀있던 제 마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속 깊은 상처와 아픔을 누나에게 털어놓으면서, 누나는 설교 대신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었습니다. 누나는 저에게 상담자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누나와의 만남을 통해 저는 치유받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점차 밝아지고 교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신앙생활에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소심했던 대학 시절을 극복하고, 놀랍게도 유명 음악 선교 단체 ‘컨티넨탈 싱어즈’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컨티넨탈 싱어즈’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던 단체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컨티넨탈 싱어즈’ 공연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정확하게 칼군무를 추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습니다. 저도 한번 지원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군 제대 후 용기를 내어 지원했고, 운 좋게 3기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동기들 중에는 김명식, 천관웅, 조은희, ‘아침’과 같이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명 음악인들이 많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당시 무명이었지만, 함께 모여 동역하며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컨티넨탈 싱어즈’ 활동은 저에게 또 다른 아픔을 안겨주었습니다. 멤버들 중에서 제가 노래를 가장 못했습니다. 리듬감도 부족하고, 안무도 따라가지 못해 실수를 연발했습니다. 팀에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단체 미팅 후 친교 시간에 멤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어느 그룹에 끼려고 해도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혼자 벽에 기대서서,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해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돌연, 과거의 열등감이 다시금 저를 덮쳐왔습니다. 저는 입을 굳게 다물고, 투어 내내 말 없는 이상한 아이처럼 지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단원들은 저를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투어 중 간증 시간, 갑자기 지휘자 형님이 저에게 간증을 시켰습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 저는 무대 앞으로 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래도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십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고백이었지만, 그 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반겨주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단원들은 “아멘”으로 화답해주었습니다. 다음 찬양은 ‘나는 자유’였습니다. ‘자유케 하라’라는 주제로 자유를 선포했지만, 정작 자유롭지 못했던 저는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찬양을 부르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대 위의 관객과 단원들이 사라지고, 텅 빈 무대 위에 홀로 남겨진 저의 눈앞에 하얀 십자가가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환상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남들의 시선과 칭찬을 구걸하며 살아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이미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80도 변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집회 이후, 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안아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뚱뚱한 몸매가 드러날까 스킨십을 극도로 꺼렸지만, 이제는 먼저 다가가 스스럼없이 사람들을 안아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자, 모든 일에 자신감이 솟아났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니, 모든 면에서 긍정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랜 짝사랑 상대였던 아내에게 고백할 용기도 얻었습니다. 고백할 자유는 제게 있었지만, 아내는 6개월 동안 대답을 미뤘습니다.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었고,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그 십자가 환상 사건은 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가장 먼저,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학업에 매진하여 유학까지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국 유학은 새로운 도전이자 연단의 과정이었습니다. 명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왔지만, 유학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아이의 질병이었습니다. 아이는 심장판막증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기도하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아이를 낳았지만, 생후 4개월 만에 아이는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지만, 수술 중 폐렴에 감염되어 아이의 폐가 터지는 의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뇌 손상으로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혹시 과거에 놓친 죄가 있는지, 회개하지 못한 것은 없는지 되돌아보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아이는 더 이상 예전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중증 장애를 갖게 된 아이를 보며 절망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평생 중증 장애로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위로도 오히려 상처가 되었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께서 벌주신 것이다”라는 비난, “큰 종이 되려니 하나님께서 연단하시는 것이다”라는 부담스러운 격려, “기도하면 다 낫는다, 걱정하지 마라”라는 공허한 위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고 의심만 커져갔습니다. 같은 병으로 입원했던 다른 아이는 건강하게 퇴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 아이만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 신앙적인 의문에 빠졌습니다. 1년 동안 깊은 절망 속에서 헤어 나왔습니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상처를 안고 전도사 사역을 계속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설교는 억지로라도 할 수 있었지만, 찬양 인도는 고통스러웠습니다. 기쁨 없는 찬양은 마치 나 자신을 속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마음속에서는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맴돌았습니다. 절망적인 1년의 병원 생활,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하나님은 저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1년간의 병원 생활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병원 공동체였습니다. 전도사로서 아픈 사람들을 심방하며 위로했지만, 아픈 사람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이 병동에서 수많은 아픈 아이들과 그 곁을 지키는 엄마들을 보면서,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며,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는 동병상련의 공동체는 1년간의 힘든 병원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습니다. 특히, 옆 침대에 있던 이집트 크리스천 가족은 매일 아이를 위해 기름을 바르며 기도해주었습니다. 상처 입은 자들이 만들어낸 공동체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건강을 회복하여 퇴원하기도 하는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깊은 연대감을 느꼈습니다. 병원에서 맞이한 아이의 첫 번째 생일, 병원에서 열어준 깜짝 파티는 잊지 못할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두 번째는 교회 성도들의 사랑이었습니다. 젊은 전도사 부부의 아픔 소식을 듣고, 교회 성도들은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해주었습니다. 1년 동안 예배 때마다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었고, 도시락을 싸서 병원으로 보내주었습니다.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목사님은 병원에 찾아와 아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서 가장 약한 아이를 누구에게 맡겨야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시다 윤 전도사 부부를 선택하신 것 같다. 하나님께서 윤 전도사 부부에게 아이를 선물로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잘 키워낼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목사님의 진심 어린 위로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나님께 죄송했고, 아이에게 미안했습니다. 지난 1년간 아이를 인생의 짐이라고 생각했던 못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수술 직후, 4개월 만에 만났기에 아이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던 탓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못된 생각까지 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건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 그리고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마세요. 제가 키우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아이를 극진히 보살피며 키워왔습니다. 현재 19살이 된 아이는 여전히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밝고 긍정적으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를 보며 교만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배우고 깨닫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한 아이를 보며, 건강하게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불평하며 살아가는 제 모습을 반성합니다. 아이는 저에게 가정의 스승과 같습니다.

아내의 헌신은 더욱 컸습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아내에게 더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강했습니다. 아내는 튜브를 통해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먹이 훈련을 시켰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매일 학교에 가서 재활 훈련 과정을 지켜보고, 집에서 똑같이 반복했습니다. 의사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아이를 돌보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했습니다.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한 의료진은 아내를 “스트롱 마미”라고 칭찬하며 격려해주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돌보면서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습니다. 단순히 전도사 아내, 목사 아내로 살아가는 것을 넘어, 장애인 선교라는 독자적인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밀알 선교단을 만나 장애인 사역에 대한 꿈을 키웠고, 한국으로 돌아와 특수 교육과 상담을 공부하며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을 위한 상담 사역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대학교가 아닌 홍대를 사역지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인 목회자의 길을 택하지 않고, 홍대라는 독특한 문화 공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솔직히 처음에는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쉬운 길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박사 학위도 받았으니 대학교 강단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대학교 정교수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시간 강사 자리를 전전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명지대학교 교목으로 일하면서 비로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청년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채플 인도와 기독교 교양 과목 강의를 통해, 교회 안에서는 평범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오히려 교회 밖 청년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설교가 오히려 새로운 청중에게는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명지대학교가 홍대 근처에 있었기에, 학생들과 함께 홍대 문화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홍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홍대 인디 문화의 역동성에 매료되었고,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홍대에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 선교를 시도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대학교 강단 대신, 홍대에 ‘빅퍼즐 문화 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문화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빅퍼즐 문화 연구소의 독특한 사역 중 하나는, 기독교 찬양이 아닌 일반 가요를 통해 묵상하는 ‘명곡 묵상’입니다. 찬양 대신 대중가요를 가지고 묵상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찬양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낯설고 거부감을 줄 수 있지만, 대중가요는 친숙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습니다. 대중가요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명곡 묵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저는 오래전부터 노래와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대중음악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비평하고 묵상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해왔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종교는 내용이고 문화는 형식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속 문화처럼 보이는 대중문화 속에도 종교적인 질문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문화라는 형식을 통해 세상에 전달될 수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를 통해 선교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 문화 속에서 종교적인 질문을 발견하고 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명곡 묵상’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명곡 묵상’ 책에는 22곡의 대중가요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글들이 실려 있습니다. 하덕규의 ‘가시나무’는 예수님 이야기는 아니지만, 복음을 믿기 전 황폐한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는 완벽한 가요이지만, 가사 속에는 깊은 신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 훗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 잊혀지지 않는, 사랑만 주고 가라고.” 우리의 인생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먼 곳에서 사랑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고 세상에 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2절 가사에서는 진실한 사랑의 허무함을 노래하다가, “그때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준 사랑을, 나는 알게 되었네”라고 고백합니다. 이 가사를 통해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떠올렸습니다. 마지막 구절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 많은 꽃 피우고, 영원한 내 별로 돌아가리,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에서는 이타적인 사랑을 강조합니다. 저는 ‘백만 송이 장미’를 들을 때마다, 별에서 온 존재로서 별로 돌아가는 인생 여정을 그린 아름다운 신앙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명곡 묵상’은 대중가요 속에 숨겨진 신앙적인 이야기를 발굴하고 해석하는 작업입니다. 책 출간 후, 심수봉 권사님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습니다. 책을 잘 읽었다는 칭찬과 함께, 가사 오류를 지적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대중문화 속에도 신앙적인 고백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적인 내용은 없지만, 신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노래도 있습니다.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제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것이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아를 부인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연상시키는 가사입니다. 후렴구 “저 강들이 굽이쳐 흐르는 곳, 험한 바다로 가리라. 나는 Everbody wants to be happy, Everybody wants to be loved, 그래도 나는 가리라, 민물장어의 길을, 꿈꾸는 자만이, 험한 바다를, 끝내, 이룰 수 있다.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에서는 자아를 찾아가는 인간의 고독한 갈망을 노래합니다.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방황하고 고뇌합니다. ‘민물장어의 꿈’은 이러한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는 노래입니다.

소장님의 문화 사역은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요? 청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문화 묵상 모임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저는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많은 청년들이 절망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공동체를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이원석 작가와 함께 북클럽을 운영하며 한 달에 두 번씩 책을 읽고 토론합니다. 영화 기획자 강도영과 함께 영화 모임을 운영하며 한 달에 한 편씩 영화를 보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토론합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와 함께 뮤직클럽을 운영하며 한 달에 한 명의 아티스트를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탐구합니다. 아티스트의 음악 세계와 삶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묵상합니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모임을 통해 청년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문화 사역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요? 저는 함께하는 청년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갈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방황과 고민을 털어놓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함께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큰 기쁨을 느낍니다. 저보다 한 세대 아래의 젊은 동역자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초창기에는 외롭게 혼자 사역을 시작했지만, 점점 많은 젊은 인재들이 동참하여 함께 창의적인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명함을 만들어줍니다. 명함은 단순한 종이 조각이 아니라, 정체성을 부여하는 도구입니다. ‘독립문화 비평가’, ‘영화 기획자’와 같은 명함을 만들어주면, 청년들은 자신감을 얻고 독립적인 활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빅퍼즐 커뮤니티는 다양한 브랜드와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 프로젝트는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롤링스톤스의 노래 ‘Nobody Knows’ 가사처럼, “아무도 내게 길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지” 우리는 성공하는 법, 취업하는 법,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 배웠을 뿐, 실패했을 때, 길바닥에 내몰렸을 때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습니다. 취업난 시대, 청년들은 스스로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빅퍼즐 문화 연구소는 청년들이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콘텐츠화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발견하고 세상에 나아갈 때, 저는 큰 희열과 보람을 느낍니다.

과거에는 복음과 문화를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시각이 있었지만, 윤 소장님의 사역을 통해 문화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자산이며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문화 비평가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은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탕자의 비유, 씨 뿌리는 비유, 어부의 비유와 같이 일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심오한 진리를 전달하셨습니다. 문화 콘텐츠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는 낯선 언어가 되어버린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일반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복음을 재해석하고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다면, 더욱 창의적이고 신선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 소장님의 사역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을 말씀해주십시오. 빅퍼즐 문화 연구소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계획인가요? 새로운 기도 제목이 있다면 함께 나눠주십시오. 문화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막막했지만,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다양한 문화 요소들이 맞춰져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문화 선교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 인재들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합니다. 창의적인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갈 젊은 세대를 키워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빅퍼즐 문화 연구소단순한 단체를 넘어, 다음 세대를 위한 플랫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를 이어 문화 사역을 이끌어갈 젊은 리더를 찾는 것이 첫 번째 기도 제목입니다. 문화 비평 능력과 영성을 겸비한 젊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두 번째 기도 제목은 가족의 건강입니다. 둘째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가족 모두 건강하게 문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족은 저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역자입니다. 가족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문화 선교를 더욱 확장해나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체력이 약해지고 건강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히려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더욱 강건하게 사용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빅퍼즐 문화 연구소 윤영훈 소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문화 속에서 복음을 발견하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습니다. 문화세상과 소통하는 중요한 도구이며,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윤 소장님의 문화 사역이 더욱 확장되어 다음 세대에게 복음문화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기를 응원하며 축복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새롭게 하소서는 여기서 인사드리고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윤 소장님과의 말씀을 통해, 문화를 크리스천들이 이끌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 속에서 복음을 읽어내는 일, 신앙의 답을 찾아가는 것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그리고 예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참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세상에서는 그 답을 찾지 못하지만, 우리는 복음 안에서 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귀를 닫아버린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하기는 어렵습니다. 문화라는 공통의 언어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포용하는 그리스도인의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모두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새롭게 하소서는 여기서 인사드리고,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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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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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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