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암 극복, 이건주 장로 간증과 봉사의 삶 이야기
두 번의 암, 봉사로 이겨낸 이건주 장로 간증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이건주 장로 간증 상세 내용 정리
이번 글에서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건주 장로님의 간증 내용을 상세하게 정리하고, 그 안에 담긴 삶의 지혜와 노하우를 심층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및 패럴림픽 자원봉사, 암 투병, 중동 건설 붐 1세대 등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살아오신 이건주 장로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삶의 용기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특히, 이 글은 단순한 요약이나 정보 전달을 넘어, 이건주 장로님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핵심적인 가치와 교훈을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분석하여 제시할 것입니다. 20,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작성될 이 글은, 텍스트 내용만을 충실히 반영하며 어떠한 추가적인 해석이나 의견도 덧붙이지 않을 것입니다.
1. 김학중 목사, 이건주 장로를 "미소가 아름다운 분"으로 소개
새롭게하소서 진행자인 김학중 목사는 이건주 장로님을 "미소가 아름다운 분"이라고 소개하며, 오늘 하루를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하고 후회 없이 살고자 하는 삶의 철학을 가진 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건주 장로님은 "드리밍 노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계시며, 이는 "꿈꾸는 노인"이라는 의미로,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꿈을 꾸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올해 73세이신 이건주 장로님은 50대로 보일 만큼 젊어 보이시며, 봉사 활동의 달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특히, 평창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는 외국 귀빈 의전 업무를 담당하며 활약하셨습니다.
2. 해외 건설 1세대, VIP 의전 업무를 하다
이건주 장로님은 인천공항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귀빈들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VIP 의전 업무를 담당하셨습니다. 비행기까지 직접 나가 귀빈들을 영접하고, 입국부터 출국까지 모든 과정을 안내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신 것인데요, 이러한 VIP 의전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특별한 인생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건주 장로님은 1970년대부터 해외 건설 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해외 영업, 지사장, 현지 법인 사장, 한인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국제적인 업무를 수행하셨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이건주 장로님은 어느 나라 손님이 오더라도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뛰어난 소통 능력으로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었습니다.
3. 폐암 4기 진단에도 봉사하는 삶
겉보기에는 매우 건강해 보이는 이건주 장로님은 2016년 7월 폐암 4기 진단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당시 의료진으로부터 수술이 불가능하고 치료가 어렵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신약 임상 시험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습니다. 암 투병이라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건주 장로님은 자원봉사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이웃을 섬기는 봉사활동을 선택했다" 고 밝히셨는데요, 이러한 결정은 죽음을 সামনে에 둔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과 나눔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의 강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이건주 장로님은 오히려 봉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습니다.
4. 자원봉사의 시작, 위암 3기 진단
이건주 장로님이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1년 위암 3기 진단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대기업에서 해외 근무를 오래 하며 바쁘게 살아왔던 그는, 자녀들을 모두 키워놓고 이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시기에 예상치 못한 암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당시 의료진은 그에게 빠르면 6개월, 길어야 2년의 시한부 선고를 내렸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건주 장로님은 삶을 정리하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사무소에서 우연히 월드컵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죽기 전에 우리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 는 마음으로 자원봉사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시험과 면접을 거쳐 자원봉사자로 선발된 그는 2001년 12월부터 인천공항에서 의전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암 투병 중에도 봉사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으면서 병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5. 겸손함을 배우다
이건주 장로님은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겸손함"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원래 자원봉사를 시작했던 계기는 암으로 인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봉사하겠다는 마음から였지만, 봉사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다른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더 겸손해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암이라는 ব্যক্তিগত적인 고난을 통해 시작된 자원봉사 활동은, 이건주 장로님에게 봉사 이상의 깊은 의미와 가치를 선물했습니다. 그는 자원봉사를 통해 타인을 돕는 기쁨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와 가치관까지 변화시키는貴重한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6. 두 번의 암 진단, 힘의 근원은 신앙과 가족
이건주 장로님은 2001년 위암 3기, 2016년 폐암 4기, 총 두 번의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좌절하고 절망할 만한 상황이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봉사 활동을 계속하며 오히려 더 활발하게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에너지와 불굴의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이건주 장로님은 그 힘의 원천으로 "가정 환경"과 "신앙의 힘"을 꼽았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긍정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을 형성했고, 해외 생활을 통해 신앙에 더욱 의지하게 되었으며, 가족들과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특히, 어머니의 신앙적인 영향이 컸다고 하는데요,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피난 시절에도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가셨습니다. 이건주 장로님은 어머니의 믿음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을 갖게 되었고,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7. 중동 건설 붐, 하나님의 부르심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났을 때, 이건주 장로님은 해외 건설 현장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동은 열악한 환경과 위험한 상황들이 많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고 묵묵히 헌신했습니다. 건설 회사 해외 담당 부사장과의 면접에서 우연한 기회에 중동 지역으로 파견되면서 그의 해외 생활이 시작되었는데요, 이것을 계기로 그는 척박한 땅 중동에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경험하고,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낯선 문화와 언어, 힘든 노동 환경 속에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갔습니다. 중동에서의 삶은 이건주 장로님에게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성장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8.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에서 교회를 세우다
이건주 장로님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데 헌신했습니다. 198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건설 현장에 관리직으로 파견되었을 때, 그는 캠프 내에 있는 작은 교회를 발견했습니다. 낡고 허름한 이동식 막사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 그는, 교회를 재건축하고 새롭게 단장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 교회를 섬기면서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격려했습니다. 그 결과, 교인들이 늘어나고 공동체가 활성화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후 이라크에서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교회를 섬기며 신앙 공동체를 이루는 데 헌신했습니다. 척박한 중동 땅에서 교회를 세우고 신앙을 지킨 그의 헌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9. 전쟁 중 이라크, 기적적인 체험
1986년 이라크-이란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이건주 장로님은 이라크 지사장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당시 이라크는 전쟁의 위험과 불안감이 가득한 곳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파견을 꺼렸지만, 그는 회사의 요청으로 이라크로 향했습니다. 바그다드 한인연합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곧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교회 목사님이 현장 심방 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고, 교회는 폐쇄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이건주 장로님은 교인들을 흩어지지 않도록 돕고, 예배를 이어갈 수 있도록 헌신했습니다. 그는 건설 현장 캠프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인들을 모아 바그다드 시내 교회로 함께 가서 예배를 드리는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10. 뺑소니 교통사고, 아이를 살리다
1988년 4월 4일, 이건주 장로님은 이라크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건을 겪었습니다. 현장으로 향하던 중 길가에 서 있던 아이가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들었고, 피하려다 사이드미러로 아이의 얼굴을 치고 지나갔습니다. 사고 후 즉시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아이는 의식을 잃고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따라 뺑소니 사고는 엄하게 처벌받을 수 있었지만, 이건주 장로님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상황에서도 매일 아침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기적적으로 아이는 의식을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이건주 장로님은 "사랑이 아닌 무서운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intervention과 기적을 체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11. 위암 3기, 5년만 더 살게 해달라 기도
중동에서 দীর্ঘ年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건주 장로님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2001년 위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의료진으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는 절망했지만, "5년만 더 살게 해달라" 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자녀들을 결혼시킬 때까지만이라도 살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도했는데요, 수술을 앞두고 기도원에 가서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통해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는 말씀을 통해, 그는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남은 삶을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12. 세 자녀, 그리고 막내아들의 소천
이건주 장로님은 슬하에 삼남매를 두셨습니다. 장녀는 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고, 장남은 김포에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내아들은 2008년 유학 중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고통입니다. 이건주 장로님 역시 막내아들의 죽음으로 큰 슬픔에 잠겼지만, 신앙의 힘으로 그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부끄럽지만 5년만 더 살게 해달라는 조건을 붙였던 기도를 했다" 고 고백하며, 2011년 위암 수술 후 10년이 지나자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중동으로 향하게 됩니다.
13. 세 번째 중동행, 카타르 선교 사역
이건주 장로님은 세 번째 중동행을 결심하고 카타르로 떠났습니다. 과거 이라크에서 비서로 일했던 아르메니아 여성 마리나와의 인연도 카타르행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라크 전쟁 당시 인질로 잡혀있던 이건주 장로님을 돕고 위로했던 마리나는,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카타르에서 그는 한인회 사회봉사 담당 이사를 맡아 어려운 교민들을 돕고, 장례를 치르는 일까지 헌신적으로 감당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모든 일이 있으면, 썩어 없어질 시신은 가져갈 생각하지 말고 그냥 여기 묻어달라" 고 가족들에게 유언처럼 말하기도 했습니다. 카타르를 마지막 사역지로 생각하고 뼈를 묻을 각오로 헌신한 것인데요, 그는 카타르에서 비즈니스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업 자체는 잘 되었지만 다른 여건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카타르에서 선교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14. CEO 지저스, 직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카타르에서 이건주 장로님은 직원들에게 "CEO 지저스"라는 책을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침마다 직원들을 모아놓고 30분씩 교육을 하면서, 예수님의 기업가적인 면모를 설명하고, 그 가르침을 삶에 적용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직원들의 영적인 상태를 파악하고, 두 명의 직원을 선택하여 개인적으로 신앙 교육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외국인 회사 사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하여 직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직원들을 격려하고, 신앙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직원들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15. 폐암 말기 진단, 오히려 전도의 기회로
2016년 폐암 말기 진단을 다시 받았을 때, 이건주 장로님은 오히려 이것을 전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6인실 병실에서 함께 입원한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다니도록 권면했습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담대할 수 있느냐" 는 질문에, 그는 "신앙의 힘"이라고 답하며, 자신의 경험을 간증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폐암 환우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는 폐암 카페 등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투병 경험과 신앙 간증을 나누며, 많은 환우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병마와 싸우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욱 헌신하고 있습니다.
16.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이건주 장로님은 마지막으로 고촌중앙교회 교우들과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먼저, 고촌중앙교회 교우들에게는 등록 교인이 되기까지의 망설임과, 교인들의 따뜻한 환대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후배들에게는 인생의 굴곡 속에서도 신앙을 굳게 붙잡고,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라고 격려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면 반드시 응답받을 수 있다" 고 강조했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아버지로서 부족했던 점을 고백하며, 사랑과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특히, 아내에게는 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