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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목사 간증: 무슬림 아버지와 찬양 그 사랑의 탄생 이야기

요약

## 무슬림 아버지와 '그 사랑' 찬양 작곡가: 박희정 목사의 파란만장 간증

찬양 "그 사랑" 원작자 박희정 목사님의 특별한 간증: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피어난 은혜의 찬양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은혜를 선사하는 찬양 "그 사랑"의 원작자이신 박희정 목사님의 특별한 간증입니다. 박희정 목사님은 CTS 기독교 TV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시어, 파란만장했던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찬양 "그 사랑"을 작곡하게 되었는지 진솔하게 털어놓으셨는데요. 고경희 수어통역사의 통역으로 더욱 깊이 와닿는 박희정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함께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과연 박희정 목사님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고, 그 삶 속에서 "그 사랑"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무슬림 아버지와 목회자의 길

박희정 목사님의 이야기는, 그의 아버님이 이슬람 신도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방송에서 진행자는 박희정 목사님을 소개하며, 그 유명한 찬양 "그 사랑"을 작사 작곡하신 분이라고 언급하는데요. 놀랍게도 박 목사님의 아버님은 무슬림 신자였으며, 그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박 목사님이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슬림 아버지와 목회자 아들이라니,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데요. 박 목사님은 과연 어떤 배경 속에서 자라났으며,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셨을까요?

박희정 목사님은 아버님에 대해 회상하며, 아버님이 원래 경인 에너지라는 에너지 회사에 근무하셨다고 밝혔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자가 직접 와서 몇 명을 스카우트했고, 아버님은 그 중 한 명으로 발탁되어 사우디 회사로 가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버님은 사우디로 이주하시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슬람교를 믿게 되신 것 같다고 박 목사님은 추측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버지께서 단순히 사우디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이슬람을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아버님이 매우 독실한 이슬람 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정말 놀라운 사실은, 아버님이 단순히 이슬람 신앙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할 정도로 깊은 믿음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박희정 목사님은 자신이 23살 때, 1993년 전주에서 전도사 사역을 하던 중 아버님의 독실한 이슬람 신앙을 알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교회 안수집사님 중에 사우디에서 근무했던 분이 계셨는데, 그 집사님의 간증 집회에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집사님의 간증을 듣던 중, 놀랍게도 그 집사님이 사우디 지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모함메드 도박이라는 사람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모함메드 도박'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요, 박 목사님은 순간적으로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집사님께 아버지 사진을 보여드렸다고 합니다. 사진을 본 집사님은 깜짝 놀라며, 그 사람이 바로 지하 교회를 박해했던 '모함메드 도박'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소름 돋는 우연이 아닐 수 없는데요. 자신이 전도사로 섬기는 교회 집사님이, 아버지가 박해했던 지하 교회의 교인이었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통해 박 목사님은 아버지의 독실한 이슬람 신앙을 더욱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아버님이 한국에 1년에 한두 차례 휴가로 오실 때마다 자녀들을 데리고 이태원의 사원을 방문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박 목사님은 아버지와 함께 이슬람 사원에 가서 예배드리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아버님은 이슬람 격식을 갖추고 중동 사람들과 섞여 예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이슬람 사도신경 같은 것을 외우게 하려 하셨고, 심지어 장래에는 자녀들을 사우디로 데려가 국제학교에 보내고 함께 살 계획까지 가지고 계셨다고 하니, 아버님의 이슬람 신앙은 매우 깊고 확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독실한 무슬림 아버지를 둔 박 목사님이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어린 시절의 고난

박희정 목사님은 중학교 1학년 때, 14살의 어린 나이에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1984년 7월 26일,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어머니께 전화가 왔는데,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아이들 물놀이 시키지 말고 빨리 집으로 데려오라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며칠 뒤 사우디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쓰러지셨다고 하는데요. 당시 어린 박 목사님은 정확히 아버지의 사망 원인을 알지 못했지만, 어른들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가족들은 한 달 뒤면 사우디로 이주할 예정이었던 아버지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고, 어린 박 목사님은 큰 슬픔과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린 박 목사님에게 큰 충격과 함께 삶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객사한 아버지의 장례를 집에서 치르지 못하고 밖에서 치러야 했던 상황, 중학교 1학년 어린 나이에 상주가 되어야 했던 현실은 그에게 깊은 슬픔과 허무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장례식에서 어른들이 관 뚜껑을 열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려 했을 때, 여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고 남자 상주였던 박 목사님만 아버지의 부패된 시신을 봐야 했던 끔찍한 기억은 어린 박 목사님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생전에 영어도 잘하고 팝송도 잘 불렀던, 능력 있고 멋있었던 영웅 같았던 아버지가, 부패된 시신으로 눈 앞에 나타난 모습은 어린 박 목사님에게 인생의 허무함과 염세적인 생각을 심어주었습니다. "인생이 다 덧없고, 별거 아니구나, 자다가 눈 안 뜨면 죽는 거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사망 후 어머니는 아버지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집까지 잃게 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사우디 이주를 한 달 앞두고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한국에 있던 집을 정리해야 했는데, 아버지의 친구에게 집문서를 맡겼다가 사기를 당해 집을 날려버린 것입니다. 결국 단독주택에서 반지하셋방으로 이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한꺼번에 닥쳐왔습니다. 하루아침에 아버지도 잃고, 집도 잃고, 셋방살이를 하게 된 현실은 어린 박 목사님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의 사망이 객사로 처리되어 사망 보험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어머니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연이은 불행에 큰 충격을 받고 술에 의존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46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40대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술 없이는 힘든 현실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면 3~4일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잦았고, 어린 삼남매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화투를 즐기기도 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궂은 일을 하지 않고, 좋아하는 화투를 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 같다고 박 목사님은 회상했습니다. 어머니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아버지와의 불화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역시 술과 화투를 즐겼지만, 가부장적인 성격 탓에 어머니의 음주와 외박을 용납하지 못했고,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합니다. 특히 어머니가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이 나타났고, 어린 자녀들은 불안에 떨며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가 길에서 돌에 맞아 머리가 찢어지는 끔찍한 상황까지 목격해야 했던 어린 박 목사님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밤마다 다리를 떨었다고 합니다.

방황과 도박, 그리고 교회와의 만남

민감한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방황 속에서 박희정 목사님 역시 방황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는 마작을 하고 있었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화투판을 기웃거리며 자랐던 환경은 자연스럽게 박 목사님을 도박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도박단'을 만들어 친구 집에서 하우스를 차리고, '섰다', '도리짓고땡' 등 다양한 도박을 즐겼다고 합니다. 버스가 끊길 때까지 도박에 빠져 살았던 어린 시절,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과연 이런 방황의 시기를 겪었던 박 목사님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박희정 목사님은 중학교 1학년 때, 동네 친구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자친구를 소개해 준다는 말에 솔깃하여 교회에 따라갔는데, 교회 누나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기타 치며 찬양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교회에 발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강요로 이슬람 사원에 다니면서 교회와는 잠시 멀어지게 되었지만, 아버지 사망 후 다시 교회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박 목사님에게 끊임없이 심방을 왔고, 결국 어머니의 허락 하에 다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철야 기도회는 박 목사님의 신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열정적인 신학생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참여했던 철야 기도회에서, 뜨거운 성령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친구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시작한 기도 모임에서, 박 목사님은 '성령의 불'을 경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는 박 목사님에게 아버지의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주셨고, 술에 취해 방황하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함께 어머니의 구원을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어린 박 목사님은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은 영혼 구원이라는 것을 깨닫고, 영혼을 구원하는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의사는 육체의 병을 치료하지만, 목회자는 영혼을 치료하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큰 감명을 받고, 목사가 되기로 서원한 것입니다. 당시 음악에 대한 열정도 있었기에, 음악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찬양 사역의 시작과 "그 사랑"의 탄생

예수님을 뜨겁게 만난 후, 박희정 목사님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방황은 사라지고 삶의 목적이 분명해졌으며, 교회는 그의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너무나 좋아서 매일매일 주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친구들과 교제하며, 칭찬받는 모든 것이 행복했고, 교회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교회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은 자연스럽게 찬양 사역으로 이어졌습니다.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시작하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가대 악보를 통달하며 작곡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성령 체험 후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기도, 그리고 교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박희정 목사님을 찬양 사역의 길로 이끌었고, 마침내 "그 사랑"이라는 명곡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술 취해 잠든 어머니의 발을 붙잡고 눈물로 기도하던 중, 문득 "아버지 당신의 사랑이"라는 가사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 가사를 멜로디에 맞춰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찬양 "그 사랑"의 시작이었습니다. 자신의 아픔과 고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 작곡한 "그 사랑"은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은혜를 선사하는 찬양이 되었습니다.

박희정 목사님은 "그 사랑"이 수많은 리메이크 앨범으로 발매되고, 예배 찬양으로 널리 불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고 고백합니다. 놀랍게도 찬양 발표 전에 아내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앵커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찬양곡이 있습니다. 한국 목사가 쓴 '그 사랑'이라는 곡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꿈이었다고 합니다. 꿈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처럼, "그 사랑"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찬양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은혜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박 목사님은 찬양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치유하시고, 아버지가 되어주셨으며, 평생 함께 해주셨다는 간증을 전하며, 앞으로도 찬양 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박희정 목사님의 간증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어린 시절의 고난과 방황,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 찬양 사역자로 변화된 그의 삶은, 역경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여줍니다. 특히 찬양 "그 사랑"은 박 목사님의 ব্যক্তিগত적인 고백과 간증이 담겨 있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데요. 찬양 "그 사랑"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소망을 얻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희정 목사님의 찬양 사역을 통해 앞으로도 더 많은 은혜와 감동이 우리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하며,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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