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 CCM 가수 10년 만에 컴백 라벤더 커피 간증과 사역 이야기
김수지, 라벤더 커피: 10년 만의 컴백, 세상과 소통 찬양
"이 시간 너의 맘 속에" CCM 가수 김수지 간증: 잊혀지지 않는 목소리로 돌아오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과 울림을 전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던 CCM 가수 김수지 님. 한동안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져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녀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새롭게하소서 김학중 목사님과 김정 교수님의 진행으로 김수지 집사님의 진솔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찬양을 함께 만나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리움을 넘어, 다시 우리 곁으로
오랜 기다림 끝에, 잊혀지지 않던 목소리의 주인공, CCM 가수 김수지 집사님이 새롭게하소서에 귀환했습니다.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인 "이 시간 너의 맘 속에" 찬양을 들으며, 감동과 은혜의 시간을 시작해보겠습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 마음속 깊이 울려 퍼집니다.
[음악 재생: 김수지 - 이 시간 너의 맘 속에]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치 않는 맑고 깊은 울림, 김수지 집사님의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습니다. 찬양 후, 김학중 목사님은 감탄하며 변함없는 목소리에 놀라움을 표현했습니다. 김수지 집사님은 시청자들에게 오랜만에 인사를 전하며, 평안과 건강을 기원했습니다. 2006년 12월 이후 약 10년 만에 공식적인 활동을 재개한 그녀,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을까요?
10년의 공백, 삶의 깊이를 더하다
2006년 12월 마지막 집회 이후, 김수지 집사님은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 곁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역을 잠시 내려놓고 2007년 새해, 가장 먼저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역 중에는 미뤄왔던 일상적인 치료였죠. 1~2년간 교정 치료에 집중한 후, 오랜 시간 품어왔던 학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음악과 사역으로 가득했던 삶에서 잠시 벗어나 학업에 열중했던 시간,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음악과 사역 외에 학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김수지 집사님. 10여 년간의 공백 동안, 그녀는 문득문득 사역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지방으로 이동하며 교회 건물을 볼 때면, 자연스레 발길이 향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학업에 집중하는 동안은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어린 학생들과 경쟁하며 학업에 매진했고, 그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 공부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요?
대학교 시절부터 사역을 시작, 20대 초반부터 12년간 쉼 없이 달려온 김수지 집사님. 사역을 내려놓기 전까지 그녀의 주변은 항상 크리스천들로 가득했습니다. 가족, 친구,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기독교인이었죠. 하지만 교회 울타리 밖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교회 밖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교회 안과 밖의 풍경이 얼마나 다른지, 세상과 교회 사이의 간극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 내부자의 시각에서 벗어나 외부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경험, 그녀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습니다.
믿음의 시작,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행복한 인생 여정 속에 깊고 단단한 믿음을 뿌리내린 김수지 집사님, 그녀의 믿음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그녀는 모태신앙인입니다. 어머니는 대대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외할아버지께서는 장로님으로서 교회 개척에 헌신하신 분입니다. 외딴 지역,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고 목사님을 모셔와 자리를 잡게 하셨습니다. 외할아버지의 헌신적인 삶은 어머니의 믿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믿음과는 달리, 아버지께서는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성장하셨지만, 정작 종교는 무교셨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는 목사님 아들이었습니다. 노래, 글, 그림 등 다재다능했던 아버지는 교회 행사에 봉사하며 돕는 것을 즐거워하셨습니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예쁘게 보셨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 그리고 김수지 집사님의 탄생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결혼 후 서울로 상경하여 어려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김수지 집사님을 임신했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병원에 제대로 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만삭이 되었음에도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예정일이 12개월이나 지나도록 진통조차 없었습니다. 12개월째 되던 달, 갑작스럽게 진통이 시작되었고 어머니는 동네 조산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조산원 할머니는 위험하다며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했습니다.
진통은 계속되었지만, 아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어머니는 누워 있었고, 그때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이 툭툭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잡고 울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무교였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제발 제 아내를 살려주세요. 평생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 그 순간 기적처럼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기적적으로 태어난 아이, 하지만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2개월 만에 태어난 아이는 온몸이 태변으로 뒤덮여 있었고, 솜에 묻어 굴릴 정도로 작고 약했습니다. 할머니는 아이가 죽었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라며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아이는 살아났고, 갓 태어난 아기의 머리에는 태변 독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게 자라났고, 이 경험을 통해 아버지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딸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아버지의 신앙, 김수지 집사님은 그야말로 복덩이였습니다.
유년 시절, 교회는 삶의 আনন্দ
아버지의 전도, 기적적인 탄생, 김수지 집사님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고 찬양을 즐겼습니다. 교회 가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그녀는 유치부 대신 언니, 오빠들이 있는 유년부에 다니고 싶어 했습니다. 6살 때부터 1학년 유년부에 3년간 다녔고, 성가대 활동도 했습니다. 5학년 때부터는 직접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눈이 많이 와도 교회에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말려도 교회에 가겠다고 고집했던 어린 수지. 털장갑을 껴도 손이 곱아버릴 정도로 추운 날씨에도, 교회 가는 길은 항상 행복했습니다. 교회는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части였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때 구원의 확신을 얻고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며, 성령 체험을 통해 더욱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어릴 적 그녀에게 교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사랑, 말씀 속에서 얻는 즐거움, 친구들과의 관계, 교회는 그녀에게 আনন্দ와 기쁨,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사랑은 김수지 집사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열정적인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준비했고,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당시 교회는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놀 거리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 교회는 아이들에게 আনন্দ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친구들과의 소중한 관계 속에서 김수지 집사님은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찬양 사역의 길,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김수지 집사님은 목회자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신학대학교 진학을 결심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예상외로 심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아들이었다면 찬성했겠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신학대학교 진학을 반대하셨습니다. 당시 여성 목사님은 খুবই 드물었고, 여성으로서 목회자의 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신학대학교 진학의 꿈이 좌절된 후, 김수지 집사님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녀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주찬양 선교단이었습니다. 주찬양 선교단의 음악을 듣고 부르면서,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자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 음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찬양 사역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김수지 집사님, 본격적인 사역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 그녀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산 기도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산 기도가 흔했습니다. 전도사님은 바위를 붙들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김수지 집사님은 바위와 나무를 붙들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기독교 대학에 진학한 후, 김수지 집사님은 매 학기 시작 전 수련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며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수련회에서 작곡한 곡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우연한 기회에 소리엘 3집 앨범에 3곡을 싣게 되었습니다. 그 중 "문을 열어라"라는 곡으로 게스트 보컬로 참여하면서, 찬양 사역자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소리엘과의 인연은 1995년 첫 솔로 앨범 발매로 이어졌습니다.
파격적인 데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다
1995년, 김수지 집사님의 데뷔 앨범은 CCM 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시 CCM 앨범 자켓 사진은 획일적인 분위기였지만, 그녀의 앨범 자켓은 맨발 사진으로 파격적이고 신선했습니다. 일부에서는 CCM 사역자가 맨발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았습니다. "이 시간 너의 맘 속에"라는 곡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녀는 단숨에 CCM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김수지 집사님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청소년, 젊은 세대들이 교회 수련회와 집회에 активно 참여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녀는 다양한 집회와 수련회에서 찬양하며 젊은 세대들과 소통했습니다. 대상에 따라 메시지와 찬양을 달리 전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주로 어떤 메시지를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을까요?
김수지 집사님은 집회를 크게 두 부류, 장년층 집회와 청소년, 청년층 집회로 나누어 사역했습니다. 장년층 집회에서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전하는 그녀를 따뜻하게 격려하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청소년, 청년층 집회에서는 또래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더욱 편안하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젊은 세대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정말 사랑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 청년들에게 김수지 집사님은 사랑의 하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심리학 공부를 통해 아동 발달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양육자의 애착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청소년, 청년들의 관계 역시 애착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녀는 젊은 세대에게 사랑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 친구이자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역의 절정, 영적 소진과 마주하다
왕성한 활동, 2천여 교회 집회 사역, 김수지 집사님은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찬양과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쉴 틈 없이 바쁜 사역 일정 속에서 영적인 소진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역이었지만, 인간적인 한계와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체력적인 한계, 낯선 환경에서의 계속되는 사역,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김수지 집사님도 인간이기에, 사역 중 지치고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마른 체형이었던 그녀는 체력적인 어려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집회 전에는 반드시 밥을 챙겨 먹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낯선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는 일, 다양한 교회와 목회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바로 예배, 찬양 시간이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김수지 집사님을 지탱해준 것은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 혹은 내려온 후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찬양하는 시간만큼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놓인 도구라고 생각하며, 예배 시간만큼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했습니다. 예배는 그녀에게 힘을 공급받는 시간이었고, 다시 힘을 내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은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다
왕성한 활동,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김수지 집사님은 2006년 갑작스럽게 사역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대중들은 그녀의 은퇴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결혼, 건강 문제 등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녀는 사역을 내려놓기로 결심했을까요?
김수지 집사님은 사역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이야기했습니다. 첫 시작을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열어주셨듯이, 마지막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적으로 내려놓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사인을 보내주셨고, 2006년 강력한 사인을 통해 사역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남편과 기도하며 상의한 결과, 미래 사역을 위해 잠시 멈추고 준비하는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2006년 12월, 미련 없이 사역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사역 중단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 하지만 김수지 집사님은 오히려 평안했다고 합니다. 섭섭하거나 아쉬운 마음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과 기대감이 컸습니다. 11년간의 공백 기간 동안, 그녀는 학업에 열중하며 새로운 지식을 쌓았고, 교회 밖 세상과 소통하며 시야를 넓혔습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그녀, 이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려 합니다.
라벤더 커피, 새로운 이름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우리 곁으로 돌아온 김수지 집사님,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이름, "라벤더 커피"라는 팀으로 돌아왔습니다. 김수지 집사님과 남편 곽상엽 씨가 함께 결성한 팀입니다. 2014년 졸업 후,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학업에 집중하는 동안 잊고 지냈던 작곡 능력이 다시 살아났고, 곡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와 세상의 높은 문턱을 낮추고 싶다는 마음, 라벤더 커피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교회 안과 밖의 문화적 간극을 좁히고,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라벤더 커피는 CCM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음악을 추구합니다. 아이돌 음악이나 대중적인 사랑 노래와는 다르지만, 그녀의 진솔한 감정과 신앙적 메시지를 담아낸 음악입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 라벤더 커피는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운 통로가 되고자 합니다.
라벤더 커피는 3, 40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지향합니다. 사랑, 이별, 삶의 고민 등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지만,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녹여냅니다. 세상의 사랑 노래와는 다르지만, 크리스천의 사랑, 이별,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음악, 라벤더 커피는 문화적인 접점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남편 곽상엽 씨는 대중음악 작곡가 출신으로, 현재 사업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과거 SM 엔터테인먼트 작곡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대중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라벤더 커피 앨범 작업에도 активно 참여하며, 음악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김수지 집사님과 남편은 유재하 가요제 동문입니다. 음악적으로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고받는 동료이자 부부입니다.
라벤더 커피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라벤더는 진정, 안정 효과가 있는 대표적인 허브이고, 커피는 각성 효과가 있는 대표적인 음료입니다. 라벤더 커피는 "쉼이 필요할 때는 라벤더 향기처럼, 활력이 필요할 때는 커피처럼, 당신 곁에 머물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쉼을, 새로운 활력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입니다.
새로운 시작, 문턱 낮추기 캠페인을 향하여
라벤더 커피는 이미 15곡 정도의 곡을 작업했으며, 작년에는 콘서트도 개최했습니다. 음원 플랫폼을 통해 "가을", "커피", "별", "보이지 않는 것들", "사랑이 보이는 것" 등 5곡을 발표했습니다. 곡 제목만 들어도 따뜻하고 감성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크리스천들에게는 찬양처럼 들리고,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듣기 좋은 음악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남편 곽상엽 씨는 CCM과 대중음악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 안에 있는 진솔한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CCM 사역자 김수지, 라벤더 커피 김수지, 두 이름으로 활동하지만,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동일합니다. 억지로 CCM 스타일, 대중음악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감정과 메시지를 담아 곡을 씁니다. 그녀의 음악은 CCM과 가요의 경계를 넘어, 진정성 있는 메시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라벤더 커피, 이름처럼 앞으로 많은 이들에게 쉼과 위로, 치유와 은혜를 선사하는 음악을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김수지 집사님은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을 이야기했습니다. CCM 사역자 김수지로서, 라벤더 커피로서, 두 가지 사역을 병행하며 активно 활동할 계획입니다. 그녀의 가장 큰 목표는 교회가 지역 사회를 위해 문턱을 낮추는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문턱을 낮추는 캠페인, 김수지 집사님의 새로운 비전입니다. 교회 중심적인 전도 집회, 행사 형식을 벗어나, 친근한 카페 공간에서 라벤더 커피 공연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문턱 낮추기 캠페인을 통해, 교회와 지역 사회가 협력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꿈꿉니다. 눈앞의 열매에 집착하기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씨앗을 심는 사역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방식을 벤치마킹하여, 낮은 자세로 세상에 다가가 복음을 전하는 라벤더 커피의 사역을 응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돌아온 김수지 집사님, 그녀의 새로운 활동을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라벤더 커피의 음악이 세상에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라벤더 커피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으며, 오늘 새롭게하소서 시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음악 재생: 라벤더 커피 - 보이지 않는 것들]
오늘 귀한 간증과 아름다운 찬양을 들려주신 김수지 집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사역을 더욱 응원하며, 라벤더 커피의 음악을 통해 많은 분들이 위로와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새롭게하소서 시청자 여러분, 다음 주에도 새로운 감동과 은혜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