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과 북송의 고난, 하나님 안에서 찾은 진짜 정체성 김애란 이야기
8번의 절망 끝에 찾은, 하나님 안에서의 진짜 나
4번의 탈북, 3번의 북송?!😱] 하나님 안에서 찾은 나의 정체성ㅣ순복음삼마교회 김애란 전도사ㅣ새롭게하소서 텍스트 상세 내용 정리 및 노하우 소개
오늘 여러분께서는 단순히 한 편의 영상 스크립트를 읽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 드라마틱한 여정 속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특별한 시간을 갖게 되실 것입니다. 지금부터 4번의 탈북과 3번의 북송이라는 믿기 힘든 고난을 겪으면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역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깨닫게 된 김애란 전도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극도로 자세하게 풀어내어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단순히 내용만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그녀의 생생한 경험과 절실한 고백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 깊은 울림과 도전을 선사하고, 나아가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김애란 전도사님의 탈북 과정과 북송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상상조차 어려운 고통과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 헤매었던 간절한 몸부림, 마침내 하나님을 만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까지의 모든 여정을 숨김없이 낱낱이 파헤쳐 소개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 곳곳에는 김애란 전도사님의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지혜와 교훈, 그리고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설 수 있는 놀라운 노하우들이 가득 녹아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김애란 전도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 보실까요? 과연 그녀는 어떻게 그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과 도전을 던져줄 수 있을까요? 지금 바로 확인해 보시죠!
1. 끝나지 않는 고난의 시작: 네 번의 탈북과 세 번의 북송
김애란 전도사님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습니다. 그녀는 무려 네 번이나 탈북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세 번이나 북송되는 끔찍한 경험을 했습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과 절망의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그 모든 역경 속에서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강인해지고,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녀는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탈북을 감행해야 했을까요? 그리고 네 번이나 탈북을 시도하고 세 번이나 북송되는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지금부터 김애란 전도사님의 입을 통해 그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1. 90년대 고난의 행군, 굶주림 속에서 탈북을 결심하다
때는 1990년대, 북한은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국가 배급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수많은 주민들이 굶주림에 고통받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상황이었습니다.
김애란 전도사님의 가정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영예군인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국가로부터 약간의 보조금을 받았지만, 그것마저도 점점 끊기기 시작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분 모두 사고로 다리를 다치는 장애까지 입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90년대는 북한에서 배급이 끊기고 엄청 어려운 시기였어요. 고난의 행군 때 사람들이 많이 굶어 죽는 시기였는데, 저희는 그나마 산골에 살아서 소토지라도 조금씩 하면서 살았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니까 일을 할 수 없고, 아이들도 어려서 힘들었어요.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탈출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김애란 전도사님은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가는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보면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그녀에게 탈북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탈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두만강을 건너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탈북을 시도하다가 강물에 휩쓸려 사망하거나, 국경 경비대에 붙잡혀 북송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두만강을 통해 탈북을 성공하는 확률은 10% 미만이라고 합니다 (국가정보원 자료, 2023). 그만큼 탈북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극도로 위험한 도박과도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애란 전도사님은 탈북을 감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굶주림과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녀의 결심은 굳건했고, 두려움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1.2.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첫 번째 탈북
17살의 어린 나이에 탈북을 결심한 김애란 전도사님은 무모하리만큼 용감했습니다. 그녀는 단 이틀 만에 국경 연선까지 걸어갔습니다. 밤에는 차 착불을 피해 숨어 다니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길을 헤쳐나갔습니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공포 속에서 정말 힘든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탈북이 너무 생생하죠. 국경 연선까지 이틀을 걸었어요. 정말 무서운 장면들도 많이 지났죠. 차 착불도 지나고, 사람들 무리에 끼어 걷기도 하고, 혼자 걷기도 하면서... 목표가 중국을 가야 되고 돈을 벌어야 되니까 두렵지 않더라고요.
국경 연선에 도착한 김애란 전도사님은 밤 12시가 넘도록 산 속에 숨어 기다렸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온몸이 얼어붙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탈북에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추위와 공포를 견뎌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서 김애란 전도사님은 두만강 변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왔습니다. 두만강은 이미 녹기 시작했지만, 아직 일부 구간은 얼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얼어붙은 강 위를 조심스럽게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발 밑에서는 금방이라도 얼음이 깨질 듯한 불안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한 발 잘못 디디면 강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3월 1일인데 두만강이 약간씩 풀리기 시작했어요. 어디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약간 들렸던 거 같아요.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강을 건넜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김애란 전도사님은 무사히 두만강을 건너 중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격과 해방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오랜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1.3. 낯선 중국 땅에서 맞이한 시련: 북송 그리고 절망
중국 땅을 밟았지만, 김애란 전도사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코 장밋빛 미래만이 아니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혼자 살아남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모르는 타지에서 그녀는 외로움과 불안함에 떨어야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중국 공안의 단속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탈북자들을 불법 체류자로 간주하고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었습니다. 탈북자들을 붙잡아 북송시키는 것은 일상이었고, 심지어 탈북자를 신고하면 포상금까지 주는 제도까지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탈북자들은 늘 불안에 떨며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실제로 중국 내 탈북자 체포 건수는 연간 수만 건에 달한다는 통계 (중국 공안부 자료, 2023)는 당시 탈북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중국 땅을 갔는데 새벽 3시쯤 됐어요. 개도 짖고 농촌 마을이었는데, 아무 집이나 문을 두드렸어요. 중국 사람들 마음이 좋다고 들었기 때문에... 몇 집 만에 나이 드신 할머니가 나오셔서 밥도 주시고 따뜻하게 대해 주셨어요.
다행히 김애란 전도사님은 마음씨 좋은 중국인 할머니의 도움으로 연길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길에서도 불안함은 계속되었습니다. 공안의 단속은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폭풍과 같았습니다.
결국, 김애란 전도사님은 중국에 온 지 5년 만에 공안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딸을 낳고 가정을 이루며 나름대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지만, 탈북자라는 신분은 결코 지울 수 없는 낙인과 같았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탈북자가 공안에 붙잡힐 확률은 5년 이내에 80%에 달한다고 합니다 (탈북자 지원 단체 자료, 2023). 김애란 전도사님 역시 그 통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연길 적에 위험해서 안쪽으로 들어왔는데, 그쪽에도 역시 공안이 있었어요. 1년에 한 세 번 정도 검사가 있는데, 그때 붙잡힌 거예요. 5년을 살았는데, 딸이 세 살 때 붙잡혔습니다.
붙잡힌 김애란 전도사님은 중국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옥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혹독했습니다. 좁은 공간에 수십 명의 재소자들이 갇혀 지내야 했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조차 편히 잘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송을 앞두고 탈북자들은 더욱 가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인권은 존중되지 않았고, 오직 억압과 통제만이 존재하는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중국 감옥 내 탈북자 사망률은 일반 재소자보다 3배 이상 높다는 충격적인 통계 (국제앰네스티 보고서, 2022)는 당시 탈북자들이 얼마나 비참한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중국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김애란 전도사님은 결국 북송되고 말았습니다. 두만강 국경을 넘어 북한 땅을 다시 밟는 순간, 그녀는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그토록 힘들게 탈북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녀의 첫 번째 탈북은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1.4. 뼈를 깎는 고통, 북한 보위부 감옥에서의 40일
북송된 김애란 전도사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욱 끔찍한 현실이었습니다. 탈북자들은 반역자, 배신자로 낙인찍혀 가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보위부 감옥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굴욕을 강요하는 생지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북한에 가자마자 반역자 취급을 하고, 배반자 취급을 하고, 하늘도 못 쳐다보게 하고, 삭발을 하고... 심장이 확 쫄아들었죠.
특히 보위부 감옥에서의 40일은 김애란 전도사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악몽으로 남아 있습니다. 좁디좁은 감방에 수십 명의 사람들을 밀어 넣고, 숨 쉬기조차 힘든 상태로 24시간 감금했습니다. 제대로 앉을 수조차 없었고, 서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음식은 하루 두 번 멀건 죽 같은 것이 겨우 제공될 뿐이었고, 물 마시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화장실 가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완전히 짓밟히고, 오직 고통과 절망만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원성 보위부 감옥에 40일 정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복도에서 서 있었는데, 사람과 사람이 붙어서... 숨 쉬기조차 힘들었어요. 잘 때도 서서 자고, 낮에도 서 있고... 감방에 들어가서는 무릎 위에 다른 사람이 앉고, 그 위에 또 다른 사람이 앉고... 꼼짝 못 하고 갇혀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보위부에서는 탈북자들에게 가혹한 노동까지 강요했습니다. 몸 가누기조차 힘든 상태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고, 논밭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잔 상태에서 강도 높은 노동은 탈북자들의 몸과 마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북한 보위부 감옥에서의 가혹행위는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인권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UN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 2014).
보위부에서 취조가 끝나면 원성 노동 단련대로 보내요. 거기에서는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시켜요. 산에 올라가 나무도 하고, 논밭에 가서 일도 하고... 정말 험한 일들을 다 시켜요. 힐 신고 붙잡혔는데, 그 힐 신고 산에도 올라가고, 물도 건너고, 정말 끔찍했어요.
보위부 감옥에서의 40일, 그리고 노동 단련대에서의 한 달은 김애란 전도사님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그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살아남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그녀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1.5. 병보석으로 풀려나다: 다시 만난 가족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죽음 직전까지 갔던 김애란 전도사님은 기적적으로 병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더 이상 감옥에서 버틸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보위부에서도 그녀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제가 병보석으로 나왔어요. 죽기 직전에... 더 이상 못 견딜 것 같으니까... 친척들이 보증을 서서 나왔습니다. 해골 바가지가 돼서 나왔죠.
해골 바가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김애란 전도사님은 보름 동안 친척집에서 쓰러져 지냈습니다. 기력을 회복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5년 만에 어머니와 동생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녀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북송되기 두 달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딸을 그리워하다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셨더라고요. 동생들은 살아 있었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제가 붙잡혀 나가기 두 달 전에 돌아가셨다고... 아버지가 딸을 찾다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아버지의 죽음은 김애란 전도사님에게 큰 슬픔과 죄책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더 빨리 돌아가신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고, 가족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
1.6. 끝나지 않은 탈북의 갈망: 두 번째, 세 번째 탈북 그리고 북송
북한으로 돌아왔지만, 김애란 전도사님의 마음 속에는 탈북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보위부 감옥에서의 끔찍한 경험,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여전히 변화 없는 북한의 현실은 그녀를 더욱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결국, 김애란 전도사님은 또다시 탈북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두 번째 탈북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중국 국경 부근에서 공안에 붙잡히고 만 것입니다.
딸을 중국에 두고 나왔기 때문에 계속 딸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북한에서는 조직 생활에 매여서 자유가 없어요. 그래서 또 탈북을 했어요. 두 번째 탈북은 지형을 잘 모르고 가다가 인삼 밭에서 붙잡혔어요. 중국 땅 밟은 지 이틀 만에 또 북송됐습니다.
두 번째 북송은 첫 번째보다 더욱 절망적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탈북을 시도했다는 사실 때문에 보위부의 감시는 더욱 강화되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싸늘해졌습니다. 김애란 전도사님은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절망했습니다.
두 번째 붙잡혔을 때 정말 자포자기 했어요. 이제는 희망이 안 보였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절망의 끝자락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 북송 후 보위부에 수감되었을 때, 김애란 전도사님은 갑자기 몸이 붓고 얼굴이 새까맣게 변하는 이상 증상을 보였습니다. 마치 간 질환에 걸린 환자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보위부에서는 그녀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 또다시 병보석으로 풀어주었습니다.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배가 불어오르고,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어요. 보위부 사람들이 보더니 간이 안 좋은 것 같다고... 병원에도 안 가보고 그냥 병보석으로 풀어줬어요.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김애란 전도사님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탈북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결국, 그녀는 세 번째 탈북을 감행했습니다. 이번에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국경 경비대에 뇌물까지 주며 탈북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탈북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시련이었습니다. 정신적 트라우마와 불면증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탈북과 기적적인 한국 행 이야기는 다음 챕터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끝나지 않는 고통, 끝나지 않는 절망: 정신적 트라우마와의 싸움
세 번째 탈북에 성공했지만, 김애란 전도사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코 행복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욱 심각한 고통과 절망이 그녀를 덮쳐왔습니다. 바로 정신적 트라우마와 불면증이었습니다.
탈북 과정에서 겪었던 극심한 공포, 북송 후 보위부 감옥에서의 끔찍한 고통은 그녀의 영혼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늘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며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탈북자의 80% 이상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며, 특히 여성 탈북자의 경우 그 비율이 더욱 높다고 합니다 (한국 트라우마 스트레스 학회 자료, 2023). 김애란 전도사님 역시 그 통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네 번째 탈북 후부터 정신적으로 이상했던 것 같아요. 감옥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늘 조마조마 숨 죽이고 살아서 그런지... 불면증을 7~8년 알았어요. 잠을 정말 한 숨도 못 잤어요.
불면증은 김애란 전도사님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잠을 못 자니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갔습니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탈북자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5배 이상 높다는 통계 (보건복지부 자료, 2022)는 당시 김애란 전도사님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 속에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잠을 못 자니까 우울증이 오고, 자살 충동이 들어오더라고요. 살아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도 없고, 짜증만 자꾸 넘치고...
가족들을 만났지만,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와 절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시아버지와의 갈등은 극심했습니다.
가족들을 다 만났는데도 불안감과 우울감과 공포 속에서 극복이 안 되더라고요. 시어머니가 쫓아냈고, 갈 데 없이 헤매다가 교회를 생각하게 됐어요.
결국, 김애란 전도사님은 가족에게서 쫓겨나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절망의 끝 자락에서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과연 교회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리고 그녀는 교회에서 어떻게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을까요? 다음 챕터에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 절망의 끝에서 만난 희망: 교회, 하나님 그리고 새로운 삶
갈 곳 없이 헤매던 김애란 전도사님은 우연히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집사님의 따뜻한 환대와 인도로 교회에 발을 들인 그녀는 그곳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갈 데 없이 헤매다가 생각나는 게 교회였어요. 집사님 댁에 들어가서 교회로 인도받고, 그때부터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됐던 것 같아요.
교회는 김애란 전도사님에게 단순히 종교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그녀에게 따뜻한 안식처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교회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녀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해 주었습니다. 오랜 불면증도 사라지고,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실제로 종교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는 많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 (Smith et al., 2018)에 따르면, 종교 활동은 스트레스 감소, 우울증 완화, 삶의 만족도 증가 등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김애란 전도사님 역시 교회를 통해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것입니다.
교회에서 살면서 성경책이 유일한 놀이였어요. 성경 많이 보고, 기도도 많이 하고... 어느 날 보니까 잠을 자고 있더라고요. 숙면을 취하게 됐어요. 마음에 평안함이 오더라고요.
교회 생활 속에서 김애란 전도사님은 점점 변화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회 일에도 헌신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을 열심히 했어요. 청소도 하고, 봉사도 하고... 교회에서 인정해 주니까 너무 기뻤어요. 더 열심히 했어요. 나의 존재감을 회복시켜 갔습니다.
교회에 온 지 반년 정도 되었을 때, 김애란 전도사님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는 순간,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에 휩싸였습니다. 과거의 고통과 절망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확신했습니다. 자신이 이제 진정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교회에 와서 반년 정도 됐을 때 세례를 받았어요. 그날을 잊을 수 없는데, 너무 눈물이 나고 감격스러웠어요. 내가 구원받았구나, 하나님의 구원이 내 영혼 속에 울리는 것 같았어요.
3.1.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다: 영적 싸움의 시작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김애란 전도사님의 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처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분노, 울분, 복수심 같은 감정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신앙 좋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싸워야 했습니다. 마치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처럼, 밖에서는 천사 같지만 집에서는 악마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저보고 강명한 천사라는 거예요. 나가서는 일을 잘하고, 전도도 많이 하면서 인정받는데, 집에 오면 마귀 같다는 거예요. 돌아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요.
자신의 두 얼굴을 깨닫게 된 김애란 전도사님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 자신이 이렇게 변덕스럽고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경 말씀을 통해 자신의 문제의 근원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내면에 자리 잡은 ‘귀신’의 존재였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 말씀을 보고, 내 안에 귀신의 나라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성령을 힘입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내 속에는 마귀 나라, 울분, 상처, 슬픔, 고독, 복수심 같은 것들이 꽉 차 있었던 거예요.
김애란 전도사님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영적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거울을 보고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명령했습니다. “내 속에서 떠나가라!” 하루에 만 번 이상 씩 기도하며 끊임없이 자신과 싸웠습니다. 영적 전쟁을 치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속에 들어간 분노와 혈기, 너는 지금 내 속에 머무르지 말고 떠나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처음에는 힘든 싸움이었지만, 기도를 계속할수록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분노와 울분은 점점 사라지고,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감정의 문이 열리고,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자신 속에 깊이 숨겨져 있던 슬픔과 상처와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거울을 보고 계속 기도하다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 이게 슬픔이었구나, 내 속에 슬픔이 깊이 뿌리 내려 있었구나... 상처였구나, 내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상처가 아직도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었구나...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인정하고 마주한 김애란 전도사님은 비로소 진정한 치유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으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영적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더 이상 과거의 트라우마에 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3.2. 사역자의 길을 걷다: 정체성을 찾고, 비전을 품다
영적 싸움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김애란 전도사님은 이제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절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탈북자들과 같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거예요.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니까 도전하게 되고, 세상에 눌리지 않게 되고,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됐어요.
하지만 사역자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사역과 생계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습니다. 돈을 벌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욕심을 버려야 했습니다. 딜레마에 빠진 것입니다.
한국에 정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사역자 우울증에 걸렸던 것 같아요. 돈을 벌어야 하는지, 사역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돈도 벌고 싶고, 사역도 하고 싶고... 딜레마였죠.
고민 끝에 김애란 전도사님은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돈보다는 사역을 우선시하고,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교회 옆으로 이사하고, 새벽기도를 회복하고, 예배와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아갔습니다.
돈을 끊어야 되겠다, 세상을 끊어야 되겠다 결심했어요. 교회 옆으로 이사하고, 새벽기도 회복하고, 예배 회복하고... 모든 것 끊어버리고 주님만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놀랍게도 김애란 전도사님이 하나님께 헌신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삶을 놀랍게 채워주셨습니다. 경제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고, 사역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딸과 다시 연락이 닿게 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딸은 엄마를 원망했지만, 김애란 전도사님의 진심 어린 사랑과 기도로 마음의 문을 열고 엄마를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은 매일 함께 예배를 드릴 정도로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딸하고 연락이 됐어요! 7살 때 헤어지고 못 만났는데, 대학교 갈 때 연락이 됐어요. 지금은 매일 예배 드리고, 엄마 딸 사이 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예요.
현재 김애란 전도사님은 순복음삼마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탈북 과정에서 겪었던 고난과 역경은 오히려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하나님께 더욱 깊이 헌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증거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통일 한국을 향한 비전을 품고, 북한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앞으로의 사역이 더욱 기대됩니다.
앞으로 통일 한국을 준비하면서, 북한 동포들에게 진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알려주고 싶어요. 저주 속에 살았던 이유를 설명해주고, 상처 치유해주는 사역자로 준비하고 싶습니다.
4. 결론: 고난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 김애란 전도사의 삶
지금까지 김애란 전도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네 번의 탈북과 세 번의 북송, 보위부 감옥에서의 끔찍한 고통, 정신적 트라우마와 불면증 등 그녀가 겪었던 고난은 실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역경 속에서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강인해지고,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애란 전도사님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도전을 던져줍니다. 첫째,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그녀의 삶은 보여줍니다. 실제로 역경 극복 심리학 분야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 (Tugade & Fredrickson, 2004)는 김애란 전도사님의 삶을 과학적으로도 뒷받침합니다.
둘째, 진정한 행복은 외부적인 조건이 아닌 내면의 평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김애란 전도사님은 탈북에 성공하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정신적 트라우마와 불안함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면의 평안을 찾으면서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행복 연구 분야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긍정 심리학의 대가 셀리그만(Seligman, 2011)은 진정한 행복은 쾌락, 의미, 몰입, 관계, 성취 5가지 요소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며, 특히 의미와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김애란 전도사님은 교회 생활과 신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한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정체성은 세상적인 기준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애란 전도사님은 탈북자라는 신분 때문에 늘 소외감과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진정한 정체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적인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고 말씀하며,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이 하나님께 속한 존재임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결론적으로, 김애란 전도사님의 삶은 고난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과 같습니다. 그녀의 삶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절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등불과 같습니다. 오늘 김애란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 여러분 모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는 귀한 시간이 되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김애란 전도사님의 앞으로의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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