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리 8남매 가족 이야기: 양동훈 목사 간증과 입양, 믿음, 사랑
8남매 가족, 사랑과 믿음으로 세운 명곡리 천국
"명곡리 8남매 아빠, 엄마" 양동훈 목사 간증 상세 정리: 8남매 가족과 함께 만들어가는 천국 이야기
본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한 양동훈 목사님의 간증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그 속에 담긴 깊은 노하우와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0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영상 내용을 꼼꼼하게 텍스트로 옮겨내어 독자 여러분께 생생하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내용 외에 어떠한 정보도 추가하지 않고, 오직 영상 스크립트 내용만을 충실히 반영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특히, 양 목사님 가정의 특별한 양육 방식과, 도시를 떠나 시골 마을에서 8남매를 키우며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참된 목회의 길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농촌 마을은 젊은 세대가 도시로 떠나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명곡리에 위치한 작은 교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행복한 주님의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는 특별한 가족, 바로 8남매와 양동훈 목사님 가정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10명의 대가족, 명곡리 8남매 이야기의 시작
방송에 출연한 양동훈 목사님과 사모님은 8명의 자녀들과 함께 스튜디오를 찾았습니다. MC 김학중 목사는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인 것 같다"며 10명의 대가족이 함께 방송에 출연한 것에 대한 놀라움과 반가움을 표현했습니다. 양 목사님은 "신기하고 설렌다"며 방송 출연 소감을 밝혔습니다. 명곡리 마을에서는 8남매가 어르신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동네 할머니들을 만나면 애교를 부리고, 할머니들은 그런 아이들을 예뻐하신다고 합니다. 아이들 덕분에 교회에 새로 나오는 어르신들도 계시다고 합니다.
양 목사님은 2012년 4월 8일 부활주일에 명곡리 교회에 부임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최씨 할머니 한 분만 남아 계셨다고 합니다. 전임 목사님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할머니 혼자 쓸쓸히 교회를 지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황량했던 시골 교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까지, 양 목사님 가정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요?
목회자의 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다
양동훈 목사님은 불신 가정에서 자랐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학력고사 준비 과정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학교에 가던 중,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동훈이는 목회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말씀이 목사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고, 기도할 때마다 그 의미를 묵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신 가정이었던 탓에, 목사님의 결심은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아들이 신학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strongly 반대하셨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목사님을 붙잡고 교복을 찢고,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핍박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운동화를 물에 담가 못 신게 하는 등, 어머니의 반대는 상상 이상으로 격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소동까지 벌이며 신앙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리, 아들의 신앙을 존중해주셨습니다. 장손으로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은 있었지만, 신학대학 학비를 지원해주시며 목회자의 길을 지지해주셨습니다. 이처럼 1세대 신앙인으로서, 또 불신 가정의 아들로서 목회자의 길을 걷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부교역자 시절의 고뇌, 참된 교회와 목회의 길을 찾아서
신학대학 졸업 후, 부교역자로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양 목사님은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1세대 신앙인이었기에, 교회 문화에 적응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로서 "어떤 목사가 되어야 하는가?", "참된 교회는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교역자로서 겪었던 어려움과 고민은, 훗날 그가 참된 목회의 길을 찾아 나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양 목사님은 "하나님을 다시 만나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고, 자신을 목회자로 부르셨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후, 성경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Seek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묵상 중, 요한일서를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나 또한 사랑이 되어야 한다. 사랑이 없이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하나님은 "아빠"와 같은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아버지 되심을 깊이 묵상하면서, 양 목사님은 입양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아 사랑을 실천하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아빠가 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입양은 단순한 동정심이나 선행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는 숭고한 결단이었습니다.
개척교회 목사의 입양,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다
양 목사님은 울산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지만, 간판도 제대로 달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슈퍼마켓 운영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어렵게 교회를 꾸려나갔습니다. 청소년 중심의 교회를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결국 울산에서의 개척을 접고, 안동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4명의 자녀를 입양한 상태였는데, 아이들을 키우기에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안동을 선택한 것입니다. 안동은 다자녀 가정에 대한 지원이 비교적 좋은 편이었고, 목사님은 그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입양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특히 부모님은 셋째 찬영이를 입양했을 때 strongly 반대하셨습니다. "아들딸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왜 남의 아이를 데려오느냐"며 격렬하게 화를 내셨습니다. 심지어 "입양하면 집에도 오지 마라"고 선언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목사님은 입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 "목사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입양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진심 어린 고백에 아버지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으셨지만, 어머니의 반대는 여전히 완강했습니다.
둘째 태희를 입양했을 때도 어머니는 strongly 반대하며, 며느리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셨습니다. 하지만 양 목사님 부부는 이러한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입양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안동으로 이주한 것은 부모님의 반대를 피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입양 사역을 펼치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사모님의 고백,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입양을 받아들이다"
사모님은 처음 입양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넷째 진영이를 임신 중이었고, 개척교회 운영과 육아, 경제적인 어려움, 심적인 고통까지 겹쳐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한 몸 지탱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또 다른 아이를 입양하다니..." 사모님은 남편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숭고한 뜻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한 생명을 사랑하고자 하는 남편의 마음이 너무나 귀했기 때문입니다. 사모님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남편과 같은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시간을 달라"고 남편에게 요청하고,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사모님의 마음속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입양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사라지고, 오히려 담대한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아, 하나님이 때가 되어 우리 가정에 아이를 보내주시려 하시는구나!" 사모님은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입양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넷째 아이의 이름을 "찬영"이라고 짓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이"라는 뜻처럼, 찬영이는 가정에 큰 기쁨과 감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입양 후, 주변에서는 "입양은 쉽지 않을 텐데...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염려가 많았습니다. 사모님 역시 "우리 가정이 찬영이를 고생시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찬영이에게는 썸머 아빠가 희생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 찬영이는 선택받은 아이"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사모님은 입양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은 셋째 찬영이를 입양하면서, 비로소 "말로만 듣던 하나님의 사랑을, 내 아이가 아닌 아이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입양은 단순히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맘에서 알 수 없는 사랑이 솟아나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8남매를 키우며 느끼는 행복,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
8남매를 키우면서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들이 더욱 많았습니다. 특히 넷째 찬영이가 6살 때, 아픈 동생 인형이를 돌보는 사모님에게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라고 말했을 때, 사모님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6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알고 하는 말일까?" 놀라움과 함께,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아이들은 종종 "엄마, 우리 가정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엄마, 우리랑 함께 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며, 사모님을 감동시키곤 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진심 어린 고백은, 입양 가정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자, 가장 큰 보람입니다.
물론 8남매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이 더 쓰이는 아이도 있습니다. 바로 여덟째 인형이입니다. 인형이는 생후 16일 만에 양 목사님 가정에 입양되었는데, 처음에는 건강하고 예쁜 아기였습니다. 하지만 가정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감기에 걸린 후, 폐렴, 모세기관지염, 장염 등 잦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영아 연축"이라는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았을 때는, 온 가족이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어린 딸을 보며 마음 아파했고, 막대한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첫째 아들 호영이가 막노동으로 번 돈을 병원비에 보탰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들은 서로 사랑하고 돕는 가운데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첫째 아들 호영이는 동생의 치료비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수입을 내놓았고, "인형이가 웃음을 되찾아서 너무 좋다"고 말했습니다. 온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 덕분에, 인형이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호영이는 여름 수련회에서 "맨발의 할아버지" 영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 할아버지는 하나님을 위해 저렇게 헌신하는데, 나는 젊은 나이에 하나님을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호영이의 마음속에 동생들의 얼굴을 보여주시며 "네가 입양한 동생들을 잘 키워주면, 그것이 나를 위해 사는 것이다"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호영이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이 간증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과거 동생 인형이의 병원비 때문에 막노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위해 헌신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던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호영이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양 목사님은 첫째 아들 호영이를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 아이를 특별하게 훈련시키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호영이는 동생들을 향한 깊은 사랑과 헌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호영이는 양봉 사업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농촌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8남매의 꿈, 농촌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희망
양 목사님 가정의 첫째 호영, 둘째 주용, 셋째 진영 삼형제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생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보육교사 자격증, 사회복지 관련 자격증 등을 취득하여, 전문성을 높이고, 엄마 아빠의 든든한 동역자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첫째 호영이는 양봉 사업에 뛰어들어, 농촌 경제 활성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농촌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늙어가는 땅이 되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청년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황무지 같은 농촌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호영이는 양봉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을, 농촌 공동체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는 것을 꿈꿉니다.
둘째 주용이는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자기 밥벌이는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박한 꿈을 밝혔습니다. 셋째 진영이는 "지금처럼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막내 태경이는 아직 어리지만, 형, 누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양 목사님은 8남매를 통해 "농촌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명곡리 교회처럼, 농촌 마을도 충분히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8남매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재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파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방송 말미에 김학중 목사는 "8남매 가정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칭찬하며, "앞으로도 행복한 천국을 만들어가기를 축복한다"고 격려했습니다. 양동훈 목사님과 8남매 가족의 이야기는, 단순한 감동 스토리를 넘어, 사랑과 헌신, 믿음과 소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입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농촌 공동체를 회복시켜나가는 그들의 삶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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