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벨 가문 5대의 헌신, 복음과 북한 결핵 퇴치 이야기
## 5대째 이어온 사랑과 헌신: 유진벨 가문의 복음 외길
5대에 걸친 조건 없는 사랑, 오직 복음을 위하여: 유진벨 재단 인세반 회장 간증 상세 정리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과 문화적 영향력을 인정받는 나라가 되었는데요,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은 서구 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척박한 땅에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5대에 걸쳐 헌신한 가문이 있습니다. 바로 유진벨 선교사님의 가문인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유진벨 재단의 대표이신 인세반 회장님을 모시고 그 감동적인 이야기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5대에 걸친 한국 사랑, 유진벨 가문의 숭고한 헌신
인세반 회장님의 가문은 1895년 유진벨 선교사님이 한국 땅을 밟으신 이후 5대에 걸쳐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유진벨 선교사님은 물론, 그의 딸 샬롯 벨 선교사님과 윌리엄 린튼 선교사님의 결혼, 그리고 그 아들인 휴 린튼 선교사님까지, 대를 이어 한국 선교에 헌신하셨습니다. 현재 인세반 회장님과 그의 형님, 동생인 인요한 박사님, 그리고 조카까지 총 4명의 가족 구성원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한 가문이 한국을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인세반 회장님은 한국에 세 살 때 처음 오셨다고 합니다. 회장님의 부모님은 전쟁 직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한국에 파송되어 순천에서 평생을 봉사하셨는데요, 회장님 역시 순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진벨 선교사님이 어떻게 한국에 오시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유진벨 선교사님의 한국행에는 남장로교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이어진 미국 남북전쟁 이후, 남부는 북부의 침략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재건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장로교는 1882년 한국에 첫 개신교 선교사가 체류할 수 있게 된 후에도 10년이나 늦게서야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기 때문인데요, 1895년 유진벨 선교사님 부부는 남장로교의 두 번째 팀으로 한국에 오게 되셨습니다. 당시 조선은 여전히 척박하고 위험한 땅이었지만, 유진벨 선교사님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굳게 믿고 한국행을 결심하셨습니다.
19세기 말, 선교는 목숨을 건 헌신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아프리카로 파송된 선교사들의 평균 수명이 3년에 불과했다는 통계는 그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사역에 임했으며, 유진벨 선교사님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1895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향하던 배에 함께 탔던 4명의 선교사 중 절반이 5년 안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유진벨 선교사님은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믿으셨습니다.
유진벨 선교사님이 한국에서 감당하셨던 주요 사역은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남장로교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립 가능한 한국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는데요, 유진벨 선교사님은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스스로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돕는 데 헌신하셨습니다. 초기에는 서툰 한국어로 설교를 해야 했지만, 점차 한국 교회를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이후 의료 선교와 교육 선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유진벨 선교사님의 주요 목표는 교회 개척이었다고 합니다.
유진벨 선교사님의 교회 개척 방식은 매우 체계적이었습니다. 100호 이상 되는 마을, 기존 교회와 5km 이상 떨어진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는 계획적인 전략을 추진하셨는데요, 이는 당시 사람들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를 고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유진벨 선교사님은 철저한 계획과 헌신으로 한국 교회 성장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와 교육 선교
유진벨 선교사님의 선교 활동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제강점기는 한국 교회가 순수성을 지키기 더욱 용이했던 시기였다고 인세반 회장님은 회고합니다. 일제 치하에서 한국인들의 사회 진출이 제한되면서, 오히려 세상적인 욕심보다 신앙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1935년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기독교 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였습니다. 남장로교 선교부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학교 폐쇄라는 강경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기독교 교육기관으로서 신사참배를 용인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 때문이었는데요,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폐교하며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냈습니다. 이는 당시 선교사님들의 굳건한 신앙과 용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유진벨 선교사님의 교육 선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성경을 읽고 복음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맹 퇴치에 중요한 목표를 두었습니다. 선교 초기 성경 번역과 한글 보급에 힘쓴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인데요, 한글은 배우기 쉬운 문자였기에, 계층과 성별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한국 선교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진벨 재단의 설립과 북한 결핵 퇴치 사업
인세반 회장님은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79년, 우연한 기회로 북한을 방문하게 되셨습니다. 당시 탁구 대회 관광객 모집에 빈자리가 생겨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이를 통해 남한 외에 또 다른 한국, 즉 북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1995년 유진벨 재단을 설립하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초기에는 식량 지원 사업을 진행했지만, 1997년부터는 북한 결핵 퇴치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진벨 재단은 단순한 식량 지원을 넘어, 북한의 결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일반 결핵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 결핵 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다제내성 결핵은 치료 기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질병이지만, 유진벨 재단은 북한 의료진과의 협력을 통해 치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다제내성 결핵 환자 1인당 치료비가 1억 원이 넘는 것에 비해, 유진벨 재단은 500만 원으로 치료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북한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가능한 놀라운 성과입니다.
최근 몇 년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북한 지원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유진벨 재단은 굳건하게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북한 방문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재단은 후원금을 모아 북한 결핵 퇴치 사업 재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세반 회장님은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북한 주민들을 돕는다는 사명을 강조하십니다. 남북 관계나 미북 관계가 어렵더라도, 정당한 필요가 있다면 언제든 북한을 돕겠다는 의지를 밝히셨습니다.
유진벨 재단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 결핵 퇴치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합니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기보다는, 민간 차원의 자발적인 후원을 통해 정치적 상황에 관계없이 꾸준히 북한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인세반 회장님은 한국 교회가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 차원에서 북한 결핵 문제 해결에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를 위해 유진벨 재단은 후원금을 투명하게 관리하며, 북한 결핵 퇴치 사업 재개를 묵묵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
인세반 회장님은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다음 세대 크리스천들에게,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물질적인 풍요에 매몰되지 않고, 영혼을 위한 삶,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는데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많은 교인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천국을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세상의 헛된 영광보다 영원한 생명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세반 회장님은 남북 관계가 어려운 시기에, 한국 교회가 정치적인 입장을 초월하여 중재자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초기 한국 교회가 정치와 무관하게 복음 전파와 사회 봉사에 헌신했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 교회 역시 정치적인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북한 주민들을 위한 사랑과 섬김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의 젊은 세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세반 회장님은 유진벨 선교사님을 비롯한 선배 선교사님들의 헌신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한국 교회가 초기 교회의 순수했던 신앙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복음을 전했던 초기 한국 교인들의 모습을 되새기며, 오늘날 한국 교회 역시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유진벨 재단과 인세반 회장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5대에 걸친 헌신적인 사랑,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믿음, 그리고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는 오늘날 우리에게 귀감이 됩니다. 우리 역시 유진벨 가문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