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 가죽 업사이클링 브랜드 모어댄, 가치 소비의 혁신
폐차 가죽의 변신, 가치를 더하는 '모어댄'
"버려진 것들에 생기를 불어넣다": 프리미엄 업사이클링 브랜드 '모어댄' 최이현 대표의 이야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롭게하소서의 개밥 중 목사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정은입니다. 최근 미세먼지로 공기 질이 점점 나빠지면서 답답함을 호소하는 내용들이 많아졌는데요, 이제는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정말 그래요. 우리가 그런 걱정 없이 살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고 산다는 게 참 슬프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람과 자연 환경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대입니다.
오늘 저희가 만날 분은 바로 이러한 환경을 생각하면서 특별한 가방을 만드는 분입니다. 네, 맞습니다. 버려진 자동차 시트에 가죽, 골재 등을 사용하며 업사이클링을 널리 알리고 계신 분인데요. 믿음을 바탕으로 아주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가는 오늘의 주인공, 최이현 대표님을 영상으로 먼저 만나보시겠습니다.
[동영상 링크 삽입: https://youtube.com/watch?v=7OSvivv8y6A]
"쓸모없는 것에 생기를 불어넣어 가치있도록 만드는 사회적 기업, 모어댄." 모어댄은 방탄소년단의 RM, 개그맨 강호동, 김동현, 전병진, 유병재 씨 등 유명 인사들이 착용하며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많은 응원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사실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과 밤낮없는 고생이 뒤따랐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폐자동차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도 묵묵히 견뎌내야 했습니다.
사업 초기, 파도처럼 덮쳐오는 어려움 속에서 최이현 대표님은 목회자이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믿음을 붙들고 시련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탈북민과 경력 단절 여성들을 고용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으며, 소외되고 버려진 것들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업을 세워 가는 모어댄 최이현 대표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업사이클링의 선구자, 최이현 대표를 만나다
업사이클링의 선구자, 최이현 대표님을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대표님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넥타이에 차량 영업사원 같은 딱딱한 이미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하지만 대표님은 저희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편안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하셨습니다. 캐주얼하면서도 멋스러워 보이시네요. 아, 역시 젊은 CEO의 모습이 물씬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청년 기업이다 보니까 최대한 편하게 입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의 답변에서부터 젊고 활기찬 기업 문화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참, 모어댄은 아주 특별한 기업이라고 들었는데요, 회사 소개를 간략하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저희 모어댄은 '가장 쓸모없음을 쓸모있음으로 만드는 회사'입니다." 기존의 재활용조차 되지 않던 버려진 폐기물을 가방이나 신발 등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아이디어인데요, 창업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창업한 지는 이제 5년 차가 되었습니다. 2015년 6월에 창업했습니다." 벌써 5년이나 되었군요. 대표님께서는 과거 방송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셔서 대중적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그 당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려주시겠어요?
"2015년 창업 후 연구 개발을 하면서 아이템의 경쟁력을 검증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벤처 창업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무려 6,600개 팀이 참가한 엄청난 규모의 대회였습니다. 아이템 검증만 받아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파이널 탑 10까지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출전하셨을 때 회사 이름이 지금과는 달랐다고 들었는데요. 원래 회사 이름을 "죽었던 것을 새로 살린다"는 의미로,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뜻을 담아 바꾸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회 진행 과정에서 '모어댄'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알려지면서 결국 기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모어댄'이라는 이름이 대표님의 예상과는 다르게 오히려 더 잘 어울렸던 것 같네요.
최근에는 폐자동차에서 나오는 가죽을 활용하여 가방이나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몇 가지 제품을 직접 가지고 나오셨다고 하는데, 대표님 옆에 있는 가방부터 소개해주시겠어요?
"네, 이 가죽 제품들은 겉보기에는 일반 가죽과 거의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자동차 생산 및 폐차 시 유일하게 재활용되지 않는 폐기물인 자동차 가죽 시트로 만든 것입니다." 폐차 과정에서 나오는 가죽 시트를 수거하여 6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가방과 지갑 등으로 재탄생시킨 것이죠. 정말 놀랍습니다. 이것이 정말 버려진 자동차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 맞나요? 새 제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퀄리티가 뛰어나네요.
"저희 제품을 유명 연예인분들뿐만 아니라, 반기문 UN 사무총장님, SK 최태원 회장님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분들이 사용해주시면서 '가치 있는 소비' 아이템으로 인정받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버려지는 자동차 가죽은 과거에는 어떻게 처리되었나요?
"폐차되는 자동차 가죽은 재활용이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환경 문제의 주범이었습니다." 매립되거나 소각되면서 환경 오염을 유발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죽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발생하는 물 낭비, 동물 가죽 사용 등의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모어댄의 업사이클링은 이러한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폐차 자동차라고 하면 낡고 오래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일반적으로 자동차 시트는 담배 냄새, 얼룩, 가죽 벗겨짐 등이 심할 것 같은데, 냄새나 색깔 변화 등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세척 과정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자동차 가죽은 일반 가죽과는 달리 내구성이 뛰어나고 수명이 40~45년 정도로 매우 깁니다." 아무리 오래된 자동차라도 10년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저희는 주로 뒷좌석 등받이 부분처럼 사용감이 적은 가죽을 사용합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냄새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냄새 제거를 위한 특별한 세척 과정을 거칩니다. 총 6단계의 세척 및 가공 과정을 통해 냄새와 오염 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새 가죽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품질을 확보합니다.
그러면 폐가죽이 소재로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보통 수거부터 세척, 건조까지 6단계를 거치는데, 총 2달 정도 소요됩니다. 제작 기간 2달을 더하면 제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약 4달 정도 걸립니다. 일반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제품과는 달리, 모어댄 제품은 사람의 손길과 정성이 깃든 '핸드메이드'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슬로우 패션'의 가치를 담고 있네요.
"네, 맞습니다. 모어댄 제품은 '가치'와 '시간'이 담겨있는 특별한 제품입니다." 제작 과정 중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사실 모든 과정이 다 힘들지만, 특히 냄새 제거 과정이 가장 어렵습니다." 가죽을 물로 세척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건조 과정에서 가죽이 갈라지거나 굳어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오랜 연구 개발을 통해 세척 후에도 가죽 변형이나 틀어짐이 전혀 없는 기술력을 확보했습니다. 섬세한 기술력이 필요한 작업이군요. 가죽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온도, 습도, 색깔 유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디자인은 전문 디자이너분들께 맡기고, 저희는 자체 디자인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생산 과정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폐기물로 만든 제품이 얼마나 좋겠어?'라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품 퀄리티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제작 자체를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에 맡겨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거의 '수거 매니아'라고 불릴 정도로 직접 폐차장을 찾아다니며 가죽을 수거한다고 들었습니다. 재료 수집부터 꼼꼼하게 챙기시는군요.
"네, 저는 제 재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작이나 디자인보다는 폐차장을 찾아가 가죽을 얻어오고, 세척 과정을 준비하는 일에 더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직접 수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가죽 수거가 가장 재미있고 신기하다고 말씀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폐차장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들이 버려져 있습니다. 각 자동차마다 스토리가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버려진 자동차에서 쓸모 있는 가죽을 발견하고, 그것을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이 마치 보물찾기처럼 느껴져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데요.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모어댄' 제품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스토리가 담긴 제품, 가치 소비를 이끌다
아까 유명 인사분들이 모어댄 가방을 사용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특히 김동현 부총리께서 모어댄 가방을 애용하시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제품이 더욱 유명해졌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김동현 부총리님께서 저희 가방을 꾸준히 사용해주시고, SNS에도 인증샷을 올려주시면서 제품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 디자인뿐만 아니라, 제품에 담긴 '스토리'와 '가치'에 공감하고,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치 소비'의 힘이 아닐까요?
"네, 맞습니다. 저희 제품은 단순히 '예쁜 가방'이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가방', '가치 있는 소비를 실천하는 제품'으로 인식되면서 소비자들에게 더욱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모어댄은 한 달에 얼마나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나요?
"지갑까지 합하면 한 달에 약 5,000개 정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생산량이 꽤 많네요. 제품 생산에 필요한 가죽은 어떻게 확보하고 계신가요?
"가죽은 일주일에 5~10톤 정도 수거하고 있습니다." 매번 가죽 색상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여 시즌별로 색상을 나눠 제품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검은색 가죽이 많이 들어오는 시즌에는 검정색 제품을, 회색이나 베이지색 가죽이 많은 시즌에는 그 색상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매달 새로운 '한정판' 제품이 출시되는 셈이네요.
최근에는 업사이클링 제품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사업 초기에는 부정적인 시선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폐기물로 만든 제품'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요, 초창기 에피소드를 몇 가지 소개해주시겠어요?
"제품이 출시되기도 전에 언론에 소개가 되었는데, 악플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자동차 시트 가죽으로 만든 가방? 냄새나고 더러울 것 같다", "폐차장에서 방귀 냄새 찌든 가죽으로 뭘 만들 수 있겠냐", "쓰레기로 만든 제품이 얼마나 좋겠어?" 등 온갖 부정적인 댓글들이 쏟아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업 아이템에 대한 조언을 구했을 때도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대표님께서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하는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 뒤에는 분명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님께서는 언제 처음 주님을 만나셨나요?
믿음으로 걸어온 길, 하나님의 기업을 세우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마치 학교 가는 것처럼 습관적인 일상이었고, 예배 시간에도 맨 뒷자리에 앉아 딴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참석했던 부흥회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부흥회에 갔는데, 평소에 앉던 뒷자리가 모두 차서 어쩔 수 없이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가슴 깊이 와닿았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기도'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비로소 신앙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네요. 그날 우연히 앞자리에 앉았던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 자녀로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신앙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요,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아버님은 원래 목사님이 아니셨고, 늦은 나이에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신앙을 강요하기보다는 자유롭게 믿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항상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늦게 목회를 시작하셔서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 가정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요, 대표님 가정도 힘들었나요?
"네, 많이 힘들었습니다. 1994년 당시 아버지의 사례비가 10만 원이었는데, 저희는 4남매였고, 할머니까지 모시고 살았습니다." 누나는 신학대학생, 형은 고등학생, 작은 누나는 중학생, 저는 초등학생이었으니, 7명의 식구가 10만 원으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때의 어려움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목회자 자녀들은 극과 극의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반대로 나가거나. 대표님은 혹시 방황했던 적은 없으신가요?
"물론 저도 방황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목회자의 길을 걷기를 바라셨던 것 같지만, 저는 전혀 다른 길을 꿈꿨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교회를 등지거나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일 성수는 꼬박꼬박 지켰고, 교회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친구들은 주일마다 교회 가는 저를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저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표님은 모범적인 신앙인의 길을 걸어오신 것 같네요.
"믿음이라는 것은 뿌리가 깊어야 흔들리지 않는데, 대표님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흔들린 적은 없으신가요? 혹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기도하다가 좌절감을 느낀 적은 없으신가요?"
"감사하게도 저는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왜 이렇게 하셨나요?'라고 질문하거나 불평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지, 왜 모든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삶의 기준이 되는 성경 구절이나 말씀이 있을 텐데요, 저에게 가장 와닿는 말씀은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항상 길을 예비하신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원망하거나 다른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을 예비하고 계실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감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갔습니다.
원래 성격 자체가 긍정적이신 편인가요?
"평소에는 긍정적인 편이지만, 사업을 하면서 가끔 어두워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믿음으로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가정 환경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늦게 목회 사역을 시작하셔서 열정적으로 헌신하셨지만, 안타깝게도 건축 헌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시련 속에서 피어난 믿음, 더욱 단단해진 가정
"네, 아버님께서는 시골에 개척 교회를 세우셨는데, 교회가 작고 낡아서 증축을 해야 했습니다."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교회 공간이 부족해졌고, 성도들과 함께 힘을 모아 교회를 증축하기로 했습니다.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짓기보다는, 성도들의 형편에 맞춰 헌금을 모으고, 직접 건축 자재를 나르고, 벽돌을 쌓는 등 온 성도들이 함께 교회를 지었습니다. 원래 인테리어 사업을 하셨던 아버님께서 직접 설계도 하시고, 건축 과정 전반을 지휘하셨습니다.
"교회를 짓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헌금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성도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조금씩 교회가 완성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 건축 중에 아버님께서 시력을 잃게 되셨습니다. 무리한 건축 작업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것입니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방치하는 바람에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셨습니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시신경 손상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게 되시면서 가장 힘들어하셨던 점은 성경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성경을 읽고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시력을 잃으면서 목회를 계속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늦은 나이에 목회를 시작하셨는데, 안타깝게도 10년도 채 안 되어 목회를 그만두게 되셨습니다. 2000년도에 시력을 잃으셨으니, 약 10년 정도 목회하신 셈이네요. 그리고 2년 뒤에 교회 건축이 완공되었지만, 아버님께서는 더 이상 강단에 설 수 없게 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시력을 잃으시고 가장 힘들어하셨지만,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시고 다시 일어서셨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아버님께서 새벽마다 사택에서 교회까지 걸어가시는 모습입니다. 계단 5개, 오른쪽으로 3발자국, 그리고 직진 158발자국. 시력을 잃으신 후에도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시기 위해 매일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교회를 향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힘드셔서 목회를 내려놓으셨지만, 그때 당시에는 아버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니, 얼마나 힘드셨을지, 얼마나 안타까우셨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말 아버지의 헌신과 사랑으로 세워진 교회네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훌륭하신 아버님을 보면서 자라왔지만, 마음 아픈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아버님께서 장애를 갖게 되시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때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아버지가 장애인이 되시고,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게 되시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교회에서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주셨지만,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저희 가정을 안타깝게 여긴 교회 집사님 한 분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따랐던 권사님이었는데, 충청남도 서산에서 판넬 공장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아버님께 사업을 제안하셨던 것 같아요. 그 권사님은 아버님께서 주례를 서주셨던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권사님 부부는 아버님의 주례로 결혼하셨습니다. 권사님께서 아버님께 '목사님, 이제 은퇴하셨으니 집에서 뭐 하실 거냐, 애들도 크는데 사업을 한번 해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마련해준 아파트를 팔아서 사업 자금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기를 당하셨습니다. 사업은 실패하고, 돈은 모두 날리고, 빚만 남았습니다. 그때부터 이사를 정말 많이 다녔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휴가를 나왔는데, 집을 찾지 못해서 엉뚱한 곳으로 간 적도 있습니다. '우리 집이 여기가 아닌데...' 하면서 낯선 동네를 헤매기도 했습니다. 정말 힘든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희 가정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아버님은 시력을 잃으시고 장애인이 되셨지만,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으셨습니다. 대표님께서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아버님께서 놀라운 일을 해내셨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만 해도 저희 집은 10평 남짓한 작은 집이었는데, 제대할 때쯤 되니 서산에서 제일 번화한 곳에 작은 상가 건물이 생겼습니다." 군에 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아버님께서 앞도 보지 못하시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기적 같은 일을 이루셨을까요?
역경을 발판 삼아 일궈낸 기적, 경매를 통한 재기의 발판 마련
"저희 가족은 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께서 '우리도 집을 사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시면서 집을 살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경매를 통해 집을 사면 시세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경매를 통해 집을 사면 90% 정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 월세 보증금도 안 되는 작은 돈으로 경매에 참여하여 집을 사셨습니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경매에 참여했는데, 기적적으로 낙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집을 기반으로 사업 자금을 마련하고, 재기에 성공하셨습니다. 경매를 통해 집을 사고, 그 집값이 오르면서 재산을 불리게 된 것이군요. 정말 드라마틱한 이야기네요.
"네, 맞습니다. 10평짜리 작은 집에서 시작해서, 20평, 30평, 50평으로 점점 넓혀갔고, 마침내 상가 건물까지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인생 역전' 드라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지혜와 노력,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께서는 사업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으신가요?
"사람은 저마다 가치관에 따라 쫓는 것이 다르지만, 무엇을 쫓는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척 교회 목사님으로 시작해서, 장애를 얻고, 사기까지 당하는 등 숱한 고난을 겪으셨지만, 아버지께서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내셨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표님은 그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불평한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요, 정말 놀랍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원망하고 좌절할 만한 상황인데, 어떻게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목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넉넉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훈련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교회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하면서 '십의 3조'의 의미를 되새기곤 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고, 현실을 원망하기보다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시고,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말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시네요. 하나님께서 대표님에게 특별한 아이디어를 주신 것 같습니다.
폐자동차에서 영감을 얻다, 업사이클링 사업의 시작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오신 덕분에, 폐자동차 가죽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신 것 같습니다." 처음 폐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제가 돈을 벌려고만 하는 저에게 아버님께서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공부는 때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자동차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영화 '미스터 빈'에 나오는 클래식 미니 쿠퍼였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고 개성 넘치는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미니 쿠퍼가 흔하게 돌아다니고, 가격도 150만 원 정도로 저렴했습니다. 그래서 큰맘 먹고 미니 쿠퍼를 구입했습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미니 쿠퍼를 갖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사고가 났다고 들었습니다." 300km 정도 운전해서 교회에 갔다가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차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후진하다가 제 차를 들이받고 도망간 것입니다. 견인차 기사님께서 수리 견적을 알아보니, 수리비가 2,000만 원이나 나왔습니다. 차량 가격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 폐차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50만 원짜리 차를 폐차해야 하다니, 너무나 허무했습니다.
"차는 폐차해야 했지만, 미니 쿠퍼와의 추억을 잊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니 쿠퍼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 저에게는 '소울메이트'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함께 영국 곳곳을 누비며 소중한 추억을 쌓았던 친구를 버리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미니 쿠퍼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사진이라도 찍어놓을까, 아니면 부품이라도 챙겨놓을까 고민하다가, 차에서 뜯어낼 수 있는 것을 찾아봤습니다. 핸들을 뜯으려고 했는데, 잘 안 뜯어졌습니다. 그래서 의자를 뜯어왔습니다. 집에 가져온 의자를 소파처럼 사용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뜯어온 의자와 핸들, 에어백 등이 자동차에서 유일하게 재활용되지 않는 폐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쓸모 있는 폐기물이 왜 재활용되지 않을까?" 라는 의문에서부터 업사이클링 아이템 개발 아이디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사업 아이템을 발견하게 되셨네요.
"미니 쿠퍼 의자를 집에서 어떻게 활용하셨나요?" 정말 소파처럼 사용했습니다. 타자기를 올려놓고 책상처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집이 좁아서 둘 곳이 마땅치 않았고, 가끔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폐가죽으로 가방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나중에 자동차 회사의 지속가능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업사이클링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석사 논문 주제를 '한국 자동차 회사의 사회적 책임'으로 정하고, 업사이클링을 통한 환경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논문에서 제시한 아이디어가 실제로 사업화로 이어진 것이군요.
"네, 맞습니다. 논문 제목은 '한국 자동차 회사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 사회적 효과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논문을 통해 자동차 폐기물의 심각성을 알리고, 업사이클링을 통해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입증했습니다. 논문 발표 후 국내 대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졌다고 들었는데요, 모두 거절하고 창업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대기업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창업을 선택한 이유
"대기업 취업 제의는 감사했지만, 저는 제 손으로 직접 사업을 일궈보고 싶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어디에 취업할까?'라는 고민보다는 '무엇을 해야 재미있을까?',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손에 쥐게 된 것이 석사 논문이었고, 논문에서 제시한 업사이클링 아이디어를 사업화시키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세 가지 선택지, 즉 대기업 취업, 박사 과정 진학, 창업 중에서 창업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창업을 통해 얻는 경험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걷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업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특히 사회적 기업은 수익을 내기가 더욱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창업을 시작하면서 기도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하나님께 더 매달리게 되셨나요?
"네, 창업 초기에는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교회 선교, 구제 부흥회에 참석해서 '이 사업을 꼭 성공시켜달라'고 기도했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을 붙들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가방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공장을 찾아다니고, 소비자 반응을 살피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제품 판매를 위해 문을 두드리고, 홍보 활동을 펼치면서 매 순간 기도의 힘을 느꼈습니다. 감사하게도 기도할 때마다 길이 열리고, 응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창업 과정 자체가 기도의 연속이었네요.
"모어댄 제품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제작된다고 들었습니다.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폐가죽은 일반 가죽과는 달리 다루기가 까다롭습니다. 재질도 두껍고, 표면도 고르지 못해서 대량 생산 시스템에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모어댄 제품은 4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장인들의 손을 거쳐 수작업으로 제작됩니다. 수작업을 통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차별화된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다, 사회적 기업의 어려움과 극복
"계획했던 대로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되었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많았을 텐데요, 사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가죽 수거부터 제품 제작,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폐가죽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제품 제작도 간단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폐차장에서는 폐가죽을 쉽게 내주지 않았고, 공장에서는 폐가죽으로 만든 제품 제작을 꺼려했습니다. 소비자들은 폐가죽으로 만든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사업은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사회적 기업은 수익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적인 어려움도 많을 것 같습니다." 모어댄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정말로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직원 월급을 밀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자본금 없이 시작했지만, 5년 동안 사업을 운영하면서 직원 월급과 거래처 대금을 제때 지급해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모어댄은 사회적 기업으로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직원 구성이 특별하다고 하던데, 직원 채용 기준이 궁금합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 모어댄의 사회적 가치
"모어댄은 전문직 여성뿐만 아니라, 경력 단절 여성,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도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윤 추구도 중요하지만, 제품 판매를 통해 얻는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자리 창출은 사회적 기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어댄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자립을 돕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경력 단절 여성들에게는 어떤 기회를 제공하고 있나요?"
"경력 단절 여성들은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쉬었던 분들입니다. 뛰어난 경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어댄은 경력 단절 여성들에게 다시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여 자율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등하굣길에 맞춰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유연근무제를 통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도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북한 이탈 주민들은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취업률도 매우 낮은 편입니다." 모어댄은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 기술 교육을 제공하고, 제품 제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북한 이탈 주민들은 경제적인 자립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모어댄은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사회적 기업이네요. 여성분들, 특히 경력 단절 여성분들에게 희소식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모어댄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모어댄은 함께 '가치 있는 기업'을 만들어갈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모어댄에 문을 두드려주세요. 모어댄은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대표님의 말씀처럼, 모어댄은 정말 '가치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의 꿈과 기도 제목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의 누룩이 되는 기업, 모어댄의 꿈과 기도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라는 잠언 말씀처럼, 저희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왜 저에게 이 기업을 맡기셨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어댄이 어떤 회사가 되기를 원하시나요? 앞으로의 꿈과 기도 제목을 말씀해주세요.
"모어댄은 겉으로 보기에는 패션 제품을 만드는 회사처럼 보이지만, 저희는 '세상의 누룩'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누룩이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모어댄도 사회 곳곳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퍼뜨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버려지는 폐기물을 재활용하여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더 나아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 이것이 모어댄의 꿈이자 기도 제목입니다. 정말 멋진 꿈입니다. 모어댄은 작지만 강한 기업,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치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어댄이 사회에서 더욱 성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기업이 되기를 저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부부도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또 삶을 위해 매일 아침 일터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터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는 또 하나의 교회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거룩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욱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표님께서 가지고 계신 귀한 생각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 나눠주신 최이현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이 시청자 여러분들에게도 큰 은혜와 도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새롭게하소서를 시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