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선교 30년, 편견을 넘어 사랑과 이해로 중동을 품다
편견을 넘어 사랑으로, 이슬람 선교 30년
"이슬람 땅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김동문 목사: 중동 선교 30년, 편견을 넘어 복음의 씨앗을 뿌리다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을 모시고 이슬람, 그리고 중동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입니다.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성지 순례를 통해 성경 속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하고 감동을 받지만, 동시에 이슬람에 대한 불편함과 거리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동 지역에서 선교사로 헌신하며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한국 교회의 선교 방향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김동문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김 목사님은 격변하는 중동 땅에서 겪었던 생생한 경험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선교적 태도와 방향을 제시해 줄 것입니다. 지금부터 김동문 목사님과 함께 이슬람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우리가 어떻게 이 땅을 품어야 할지에 대한 귀한 통찰을 얻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김동문 목사님은 자신을 "중동 전문가"가 아닌 "중동에 대한 관심자"라고 겸손하게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90년대부터 2010년까지 약 20여 년간 이집트와 요르단을 중심으로 중동 지역에서 사역했습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보다 아랍 사람들을 만날 때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이야기하며, 중동 문화에 대한 깊은 친밀감을 드러냈는데요, 이는 단순한 선교사로서의 헌신을 넘어, 문화와 사람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목사님은 90년대 초, 걸프 전쟁 발발 직후 중동에 발을 디뎠으며,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묵묵히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성경 속 배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중동 땅에서, 성경이 단순히 글자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임을 생생하게 경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성경을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느꼈다는 김 목사님의 고백은, 중동 현장이 주는 특별한 의미를 강조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경이 분위기를 좌우하듯, 성경 역시 당시의 '햇살, 바람, 나무 색깔'과 같은 현장 배경을 고려해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글자, 즉 텍스트로만 접하는 것은 마치 배경음악 없는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며, 현장 경험을 통해 성경 속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그는 "성경은 원래 살아있는 이야기인데, 현대에 와서 머리 나쁜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책이 되어버렸다"고 안타까워하며, 중동 현장에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느꼈던 깊은 감동을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김 목사님이 중동 선교에 헌신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요르단에서 아랍 교회를 담임하고, 무슬림들을 만나 교류하는 사역을 주로 감당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의 '다리' 역할을 자처하며, 기독교인들에게는 성경 속 이야기가 '개념'으로만 남아있는 반면, 무슬림들은 그 '현장' 속에서 살아가지만 성경적 '개념'이 부족한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양쪽의 간극을 좁히고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데 힘썼습니다. 또한, 그는 미디어가 중동을 '열사의 땅, 석유가 나는 땅'으로만 획일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사람 사는 곳'으로서의 중동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습니다. 언론 보도의 변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중동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궁극적으로 한국 교회의 선교 방향 또한 건강하게 변화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김 목사님이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 문화적 이해와 인식 개선을 통해 선교의 지평을 넓히고자 했음을 보여줍니다.
20년 전만 해도 중동 지역 선교는 쉽지 않았지만, 김 목사님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중동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미술대학 진학을 꿈꿨지만, 갑작스러운 교육 정책 변화로 입시 준비에 차질이 생겨 미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뜻밖의 좌절을 겪은 후, 우연히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이것이 중동과의 인연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아랍어를 배우면서 아랍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졸업 후 아랍 세계에서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배로부터 중동 선교 제안을 받았을 때,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90년대 초 중동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걸프 전쟁이라는 혼란 속에서 선교를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단순한 믿음으로 낯선 땅에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김 목사님의 인생 여정이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계획되었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30세, 젊은 나이에 중동 선교를 시작한 김 목사님은 무슬림들을 직접 만나면서, 그동안 교과서와 뉴스에서 접했던 이슬람 세계와 현실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배운 '이슬람'은 현실과 괴리된 낡은 지식이었고, 뉴스 속 '중동'은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었습니다. 예상과 달리, 이슬람 세계에도 천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이 존재했으며, 2000년 역사를 가진 기독교 유적 또한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과의 조우는 김 목사님에게 놀라움과 함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대한 깊은 반성을 안겨주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주입된 편견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중동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고,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올바르게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는 김 목사님이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 진실에 기반한 선교를 지향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흔히 알려진 '무슬림은 강팍하다'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 만난 무슬림들은 '환대'를 베푸는 따뜻한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26년 전 중동은 한국보다 '골목 공동체' 문화가 훨씬 강하게 남아있었고, 낯선 외국인에게도 거리낌 없이 호의를 베푸는 모습이 일상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카이로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무슬림이 집에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꾸며진 친절이 아닌, 친구를 대하는 자연스러운 환대 문화였으며, 김 목사님에게 무슬림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무슬림들이 하루 다섯 번 기도하고 종교에만 매달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일상 속에서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원 바로 옆에 살면서도 사원에 가지 않는 무슬림들을 보며, 그가 교과서와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이슬람 세계가 얼마나 단편적이고 왜곡된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선교사로서 무슬림들을 만나는 것은 일반적인 외국인으로서 만나는 것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역사적 갈등, 그리고 서구 사회의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선교사들에게 예상치 못한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 IS 테러 등으로 인해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기독교 선교사는 더욱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 목사님은 실제로 무슬림들의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직전에도 이라크 내 반미 감정은 크지 않았으며, 미국 여권 소지자들의 여행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전쟁 발발 직전, 적대 국가 국민의 여행이 자유로웠다는 것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른 중동 사회의 정서를 보여줍니다. 전쟁 이후에도 미국인 혐오 범죄가 크게 확산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아랍 사회가 '집단적 매도'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는 서구 사회의 시각으로 이슬람 세계를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오류인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국에는 중동 지역 선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일례로, 중동 선교사들이 기도 편지에 '기도'라는 단어 대신 '기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등, 비밀리에 선교 활동을 해야 할 정도로 기독교 탄압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하지만 김 목사님은 '기독교 탄압'과 함께 '무슬림 탄압' 또한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정치적 상황,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무슬림 또한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종교적인 이유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적 요인 등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합니다. 일부 강경한 성향의 공무원이 기독교를 탄압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국가적인 차원의 탄압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사건을 '종교 대립'이라는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다양한 사회, 정치적 맥락 속에서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이방인 선교사로서 정체성을 드러냈을 때, 무슬림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김 목사님은 기독교인이 중동에 거주하는 것 자체가 의아한 일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는 2003년 이라크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기독교 국가'에 의해 벌어진 전쟁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고, 무슬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진심을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바꿀 수는 없지만, 고통을 겪는 이들의 곁을 지키고 위로하며,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미안해서, 당신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 곳에 왔다"는 진솔한 고백은,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요르단에는 더 이상 방문할 수 없지만, 김 목사님은 한국에서 중동에서 온 이주민들을 돕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사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김 목사님은 무슬림 이주민들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무슬림에 대한 '경직된 시각', 그리고 그로 인해 무슬림들이 느끼는 '모멸감'은, 그가 한국에서 사역하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한국 교회가 무슬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거나, 차별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교회 앞에서 한국 사회의 '무슬림 혐오'를 비판하고, 무슬림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아랍 무슬림들에게 한국인의 편견과 오해에 대해 '사과'하며, 그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자처합니다.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김 목사님이 한국 사회와 무슬림 공동체 사이의 '소통 창구' 역할을 감당하며, 상호 이해와 공존을 위한 bridges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 사회에서 무슬림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무엇일까요? 김 목사님은 '무슬림=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프레임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IS와 같은 극단주의 테러 단체는 무슬림들에게도 '테러리스트'이며, 폭력과 테러를 혐오하는 평범한 무슬림들이 다수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무슬림 전체를 '경계 대상'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무슬림들에게 큰 상처와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테러의 피해자인 무슬림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것은, 심각한 '역차별'이며,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극소수의 폭력적인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행위로 인해, 18억 무슬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명백한 '일반화의 오류'이며, 극심한 편견입니다. 김 목사님은 이러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고, 무슬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김 목사님은 한국과 중동, 장소에 따른 '차이'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이나 '단계'가 아닌, '이웃'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억지로 '이웃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관계 맺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웃으로서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상대방의 문화와 신앙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무슬림들이 기독교에 대해 질문할 때, 준비된 답변을 해주는 것이 선교사의 역할입니다. 억지로 질문을 유도하거나, 굴복시키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가슴과 가슴으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다가갈 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복음의 씨앗이 뿌려질 수 있습니다. 이는 '관계 중심적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인위적인 접근보다 진솔한 인간 관계 속에서 복음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김 목사님이 생각하는 '무슬림', 그리고 '이슬람'은 무엇일까요? 신학적 논쟁은 잠시 접어두고, 실제 경험에 기반하여 무슬림을 '예수님을 가장 잘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슬림들이 이미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과 유사한 신앙적 토대를 가지고 있으며, 성경 이야기의 배경인 중동 땅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무슬림들은 '알라'라는 이름으로 유일신을 섬기며, 구약 성경의 인물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성경을 통해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과 동일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각성'입니다. 이미 '준비된 밭'과 같은 무슬림들에게 복음의 '불'만 붙여주면, 누구보다 뜨겁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김 목사님의 통찰입니다. 이는 무슬림 선교를 '미개척지'가 아닌, '기회의 땅'으로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을 제시합니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국의 이슬람화' 주장에 대한 질문에, 김 목사님은 먼저 '이슬람화'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무슬림 인구 증가가 '이슬람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되묻고, 실제 통계 자료를 제시하며 '이슬람화' 주장이 과장되었음을 지적했습니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 외국인 체류자 수는 2.2배 증가했지만, 무슬림 외국인 증가율은 1.6배로, 오히려 전체 외국인 증가율보다 낮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슬람 세력의 전략적 침투'와 같은 주장이 객관적 근거가 희박한 '음모론'에 불과함을 시사합니다. 일부 SNS에서 확산된 '라마단 기간 한국 국기 밟고 기도' 괴담 또한, 2015년 용산구 이슬람 사원에서 성지 순례를 앞두고 평화롭게 기도하는 장면을 왜곡, 조작한 '가짜 뉴스'였습니다. 이러한 '괴담'들은 혐오 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유포되며,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혐오'와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말고,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것을 당부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무슬림 선교 사역을 통해 '열매'를 맺은 경험에 대한 질문에, 최근 15년간 800만 명 이상의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통계 자료를 제시했습니다. 물론, 통계의 정확성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주목할 점은 '환상과 계시, 기적'을 통해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무슬림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선교사의 직접적인 전도 활동 외에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무슬림들에게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성경 속 사울(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편견' 때문에 보지 못하고, '불신'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닫힌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할 때, 무슬림 선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선교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우리는 단지 '증인'으로서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김 목사님의 이야기는 한국 교회에 '시각 변화'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합니다. 그는 한국 교회가 무슬림 선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버리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질 수 있는 그의 외침은, 한국 교회의 '닫힌 문'을 열고, 무슬림들을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아닌, '이웃'으로 맞아들여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입니다. 최근 김 목사님은 인천공항에 '구금'된 시리아 난민들을 만나 위로하고 지지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8명의 시리아 난민들은 난민 신청 후 6개월 이상 공항에서 '비자유스러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식사도 제공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이들을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으로 규정하고, 한국 사회와 교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는 '말씀'과 '사랑'으로 무슬림들에게 다가가는 김 목사님의 선교 철학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김 목사님은 시리아 난민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아랍어로 대화하고, 그들의 고향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교감'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국에서 가져온 아랍 음식을 함께 나누며, 6개월간 고향 음식을 그리워했던 난민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네 번째 방문 때, 난민들은 한국 욕을 하면서 정확한 뜻을 물어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는 난민들이 한국 사회의 '냉대'와 '무시'를 경험하면서도, 일부 한국인들의 '친절'에 감동받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김 목사님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 사회에 무슬림 혐오가 확산되지 않고, 긍정적인 관계가 유지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는 방송이 송출될 때쯤에는 난민 문제가 해결되어, 오늘 나눈 이야기가 '해프닝'처럼 좋은 결말을 맺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김 목사님이 단순히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님은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을 나누었습니다. 지난 35년간 아랍 세계와 교류하며 느꼈던 것은, '한국과 아랍이 서로 더 잘 지내면 좋겠다'는 소망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건강한 이웃 관계'를 맺고,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사회를 꿈꿉니다. 무슬림들이 '참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복음을 깊이 깨닫기를 기도하며, 한국 교회가 무슬림 이주민들을 '배척'과 '혐오'의 대상이 아닌, '이웃'으로 따뜻하게 맞아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구약 시대 등잔과 신약 시대 등잔을 비교하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으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만, 현실은 어둠을 비추기보다 어둠을 '비난'하고 '모멸감'을 주는 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 자성했습니다. 무슬림들이 무슬림으로 태어난 것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며, 그들에게도 '빛'을 향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으로 부름 받았다면, 어둠을 비난하기보다 어둠 속에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하며, 무슬림 곁에 서서 그들에게 '빛'을 전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무슬림에게 '빛'된 존재로 회복되도록, 자신은 '조력자'로서 묵묵히 섬기겠다는 다짐을 밝혔습니다. 이는 김 목사님이 '개척자'의 외로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묵묵히 사역을 이어가는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오늘 김동문 목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무심코 가졌던 무슬림에 대한 '막연한 벽'을 발견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무슬림과 이슬람 땅 또한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그 땅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슬림을 '비판'하고 '멀리'하는 대신, 하나님의 '빛'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사랑으로 품어야 합니다. 오늘 방송을 통해 많은 분들이 무슬림 선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기를 소망하며, 김 목사님의 귀한 사역에 응원과 격려를 보냅니다. 무슬림 선교는 '미지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시는 '희망의 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에 귀 기울인다면, 무슬림 선교의 '어려운 문제'들을 조금씩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빛'과 '말씀'에 귀 기울이는 한 주가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 새롭게하소서 순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