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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감독 간증: 야구 인생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이야기

요약

## 야구 인생, 하나님의 사인 따라 홈으로: '헐크' 이만수의 드라마틱 간증

"하나님의 4번 타자" 이만수 감독, 그의 야구 인생 간증 속으로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소서’의 김학중 목사입니다. 반갑습니다, 전혜진입니다. 혜진 씨, 야구 좋아하시나요? 저는 야구를 정말 좋아합니다! 특히, 지고 있던 경기를 홈런 한 방으로 역전시킬 때의 그 짜릿함과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야, 역시 야구를 좀 아시는군요! 많은 분들이 우리 인생을 야구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오늘 "새롭게 하소서"에서는 야구와 같은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오신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오늘 만나 뵐 분은 정말 멋진 분이고, 제가 너무나 만나 뵙고 싶었던 분인데요, 혹시 누군지 짐작이 가시나요? 네, 짐작이 갑니다! 바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 선수이자 감독, 그리고 지금은 야인으로 살아가시는 분, 하나님의 작전대로 살아가는 영원한 4번 타자, 이만수 감독님이십니다! 자, 그럼 오늘의 주인공을 화면으로 먼저 만나보실까요? 정말 기대되시죠?

[음악]

홈런!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획을 그은 전설적인 인물, 최초 안타, 최초 홈런 기록, 최초 트리플 크라운까지! '헐크'라 불리던 사나이, 이만수! 국내 리그를 넘어 메이저리그 진출, 한국인 최초 불펜 투수 코치로 활약,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우승으로 이끈 살아있는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역사! 이제는 헐크에서 야구 전도사가 된 이만수 감독의 파란만장한 야구 인생을 지금 바로 함께 만나보시죠!

[음악]

어서 오세요, 감독님! 반갑습니다! 예, 반갑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SK 유니폼 입고 감독님으로 뵙다가, 이렇게 사복을 입고 뵈니, 이분이 이만수 감독님 맞나 싶을 정도인데요? 그러니까요, 저도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좀 어색합니다. 감독님, 유니폼 벗고 사복 입으시니 기분이 어떠신가요? 음, 좀 어색합니다. 지금 방송 보시는 많은 분들이 깜짝 놀라셨을 것 같아요. "저 분 헐크 맞아?" 하시면서요. 시청자분들께 간단히 인사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이만수 집사입니다. 네, 정말 간단명료한 인사군요! 감독님,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 제가 감독 그만두고, 사실 집사람하고 동유럽 여행 가려고 모든 계획을 다 세워놨었습니다. 아, 여행 계획을 세우셨군요! 네, 그런데 집사람이 늘 봉사하고 재능 기부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이제는 정말 실천해야 된다면서, 라오스에 가서 야구 재능 기부를 하라는 거예요. 그 봉사 활동 이야기를 듣고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계획도 없었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집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별로 쉬지도 못하고 급하게 라오스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야구 보급을 위해 라오스에 가신다니, 정말 놀라운데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이야기인가요? 어떻게 라오스에 야구 보급을 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년에 라오스에 계신 선교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님께서 라오스에 야구 용품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작년부터 계속 연락을 주고받다가, 올해 4월에 야구 용품을 라오스로 보내드렸습니다. 물품 지원을 해주셨군요. 네, 그렇게 물품을 지원해 드리고, 마음으로는 라오스에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실 실천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렇죠, 쉽지 않죠. 그런데 집사람 이야기를 듣고, 아, 정말 우리 앞선 세대, 특히 저처럼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은, 이제 사회에 나가서 봉사도 하고, 재능 기부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남아는 처음 가봤습니다. 라오스가 동남아 첫 방문이셨다고요? 아니, 전지훈련도 동남아로 가시지 않나요? 동남아 쪽은 한 번도 안 가봤습니다. 일본은 가봤지만, 동남아는 처음이라, 제가 오히려 촌사람 같아요. 급하게 라오스에 가게 되었지만, 그때 이미 하나님께서 제가 라오스로 가도록 모든 계획을 다 준비해 놓으셨더라고요.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거군요! 저는 정말 우연히 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 중에 우연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정말 놀라운데요!

제가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했을 때, 선교사님께서 갑자기 북쪽 관광 도시 루앙프라방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루앙프라방은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찾는 유명한 관광 도시인데요. 저는 라오스에 야구 보급을 위해 온 것이기 때문에, 관광지에 가면 오해를 살까 봐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이상하게 선교사님이 이미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 꼭 가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드셨군요. 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에 선교사님이 이미 비행기 표를 끊어 놓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는데, 이왕 비행기 표를 끊어 놓으셨으니, 할 수 없이 루앙프라방에 가게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오해받을 수도 있잖아요. "야구 전해주러 간다더니 관광지나 다니고, 이만수 실망이다" 이런 소문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루앙프라방에 도착하니, 한국 분 한 분이 마중 나와 계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바울 이야기인데요. 바울이 아시아로 복음을 전파하려 할 때, 밤에 꿈에 아시아로 가지 말고 마케도니아로 가라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마케도니아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죠. 루디아는 빌립보 교회의 최초 교인이 되는데요, 하나님께서 저를 루앙프라방으로 보내신 것도, 바로 그 한 영혼, 루디아와 같은 영혼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루앙프라방에서 특별한 분을 만나셨군요! 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이 지금 제가 단장으로 있는 팀을 후원하고 계신 분인데요, 사회주의 국가다 보니, 섣불리 이름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복음을 전하면 추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만나 첫날 밤새도록 간증했습니다. 야구 이야기는 전혀 안 하고, 오직 하나님 이야기만 했죠. 간증을 통해 복음을 전하셨군요. 네, 간증하다 보니, 그분이 옛날에 홍콩에서 신앙생활을 하셨던 분이셨어요. 그래서 그분과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루앙프라방에 같이 있던 현지인들에게 제가 전한 신앙 이야기를 모두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라오스 현지인이 아니라 한국 분이셨군요? 네, 한국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마치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루디아처럼, 라오스 땅에서 감독님을 통해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신 분이 된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인데요! 네, 정말 하나님의 계획은 너무나 놀랍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중에 우연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제가 감독에서 은퇴했을 때는 마음이 굉장히 속상했습니다. 아쉬움이 컸죠.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은퇴하지 않았더라면, 야구 감독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과연 그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인들은 감독님이 SK 감독에서 물러나신 것을 단순히 성적 부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감독님 말씀대로, 오히려 그 일을 통해 라오스에 가서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게 되셨으니, 정말 하나님의 섭리는 헤아릴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패배처럼 보였던 일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더 큰 승리로 이어진 셈인데요, 그 기쁨과 보람은 정말 남다르시겠어요. 네, 정말 그렇습니다.

라오스에 가게 된 이야기도 감동적이지만, 감독님이 처음 야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도 궁금한데요.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야구를 늦게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리틀 야구단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희 때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거든요. 저는 초등학교 때 야구를 하지 않고, 중학교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늦게 시작하셨네요. 네, 중학교 1학년 말부터 야구를 시작해서, 다른 친구들보다 늦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를 3년이 아니라 4년 다녔습니다. 1년 유급한 거죠. 운동선수로서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워서, 중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했습니다. 중학교를 4년이나 다니셨다니, 정말 특이한 케이스인데요. 네, 제가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야구 '야'자도 몰랐습니다. 늘 선배들 물통 나르고, 운동장 정리하는 잡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굉장히 무서우셨어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직업 군인이셨거든요. 아버님께서 "이왕 야구 시작하려면 최고가 되라, 최고가 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엄격하신 분이셨군요. 네, 그래서 아버지께 "이왕 시작했으니,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대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중학교 1학년, 열네 살 어린 나이였는데, 그때 10년을 내다보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내일부터 하루 4시간만 자고 운동하겠습니다"라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10년 계획을 세우다니, 정말 대단한 결심인데요! 저도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그런 계획을 세웠는지 신기합니다. 정말 놀라운 집념인데요. 네, 어머니께도 부탁해서, 새벽 4시에 깨워주시지 않으면, 뺨을 때려서라도 깨워달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물을 뿌려서라도 깨워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11년 동안 하루 4시간만 자면서 야구에만 매달렸습니다. 정말 11년 동안 하루 4시간 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훈련량인데요. 와, 정말 집념의 사나이시네요! 저도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임만수 감독님은 원래 야구를 잘하고, 워낙 타고난 신체 조건을 가지신 줄 알았어요. 그냥 스타는 원래 그런 줄 알았는데, 이런 엄청난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스타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사람도 "당신은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하는데도, 이 정도 실력밖에 안 되는 것을 보면, 참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농담할 정도입니다. 사모님도 정말 솔직하시네요! 저희가 감독님 40년 야구 인생을 정리하면서, 감독님 영관 검색어를 찾아봤는데, 재미있게도 첫 번째 영광 검색어가 '최초의 사나이'였습니다. 아, 네, 뭔지 알 것 같아요. 임만수 감독님 하면, 한국 야구사에 '최초'라는 타이틀이 정말 많은데요, 직접 소개해주시겠어요? 아무래도 선수들이나 일반 팬들에게 각인된 것은,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했을 때,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의 개막전이었을 겁니다. 그때 첫 안타, 첫 타점, 첫 홈런을 모두 제가 기록하다 보니, 많은 분들에게 '최초의 사나이'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4번 타자 이만수! 정말 대단한 기록입니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 1호 안타, 1호 홈런, 1호 타점!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인데요, 정말 '최초의 사나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습니다.

다음 영광 검색어도 준비했습니다. 아, 이건 뭡니까? '헐크'? 어흥! 왜 '헐크'라는 별명이 붙었나요? 제가 프로야구 선수 시절, 당시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굉장히 인기 있었습니다. 헐크로 변신하는 드라마였죠. 저도 그 드라마를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경기할 때, 아직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해서 그랬는지, 막 "으라차차!"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홈런을 치고 나서 너무 좋아서 깡총깡총 뛰면서 홈에 들어올 때, 초등학생 팬들이 "저 아저씨 헐크 같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헐크'라는 별명이 붙었고, 저도 그 별명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렇게 헐크라는 별명이 탄생했군요! 그 별명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본인도 그 별명이 싫지 않으신가요? 네, 저는 헐크라는 별명이 정말 좋습니다! '헐크' 이만수, 정말 찰떡같은 별명인데요! 헐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죠. 팬티만 입고 경기장을 돌았던 사건! 혹시 기억하시나요? 아, 네, 팬티 사건! 그거는 제가 코치 시절, 문학 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네, 맞습니다. 2007년 5월, 제가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질주했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 보면, 5만 관중이 꽉 들어찬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거든요. 10년 동안 미국에서 그런 광경을 보다가, 한국 프로야구 경기장에 와보니, 관중석이 텅 비어 있는 거예요. 프로야구는 팬이 없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팬들을 야구장에 더 많이 오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문학 경기장은 프로야구 구장 중에서도 시설이 좋고 아름답기로 손꼽히는데, 이 좋은 구장에 관중이 너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3만 관중을 돌파해서 문학 경기장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선수들이 침체되어 있을 때, 제가 혼잣말로 "야, 우리 야구장에 3만 관중 꽉 차면, 내가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 한 바퀴 돌겠다!"라고 공약을 했습니다. 정말 과감한 공약인데요! 네, 그런데 옆에 있던 코치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공중파 방송에 이야기를 해버린 거예요. 방송에 이야기가 나가자, 해설위원과 아나운서가 경기 중에 "이만수 코치가 앞으로 열 경기 안에 3만 관중이 오면,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돌겠다고 공약했답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일이 커져버렸네요! 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던진 공약이었는데, 방송을 타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그 방송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만수, 진짜 약속 지킬까? 지키겠어, 안 지키겠어?" 하면서 관심을 보였습니다. 솔직히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한국 사회가 '약속'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치인, 학교, 일반 사회, 심지어 가족 간에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꼭 약속을 지켜서, 한국 사회에 약속의 중요성을 보여줘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경기 끝나자마자 기자들이 열 명 넘게 몰려와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진짜 열 경기 안에 3만 관중 돌파하면, 팬티 입고 뛸 거냐?" 묻길래, "네,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홈경기 열 경기 안에 3만 관중 넘으면, 팬티만 입고 뛰겠습니다!"라고 다시 한번 공약했습니다. 정말 배수의 진을 치셨군요! 네, 다음 날 신문에 제 공약이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이만수, 팬티 입고 질주?" 기사가 나가자, 정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 경기부터 관중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정말 3만 관중을 돌파한 겁니다! 와, 정말 놀라운데요! 기적적인 사건이었죠. 하지만, 막상 3만 관중이 넘으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약속은 했지만, 정말 팬티만 입고 뛰어야 하나? 미국에 있던 아들이 전화해서 "아빠, 나이가 몇 살인데, 철없이 그런 약속을 했냐? 제발 약속 취소해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도 "당신 미쳤냐? 알몸은 나한테만 보여주면 되지, 왜 사람들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려고 하냐? 절대 안 된다!"면서 반대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군요. 네, 하지만 저는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 동안 3만 관중을 넘지 못했거든요. 2005년, 2006년 동안 단 한 번도 3만 관중을 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3만 관중 돌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걱정 마, 앞으로 열 경기 안에 3만 관중 절대 안 될 거야!"라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의 오산이었습니다. 정말 기적처럼, 8번째 경기에서 3만 관중을 돌파한 겁니다! 약속은 이미 했고, 3만 관중은 돌파했고, 이제 팬티를 입고 뛸 일만 남았는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가슴이 떨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팬들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팬들이 팬티를 선물하기 시작한 겁니다. 원숭이 팬티를 선물한 팬도 있었어요. 엉덩이 부분이 엄청 큰 원숭이 팬티였죠. 평범한 팬티 말고, 원숭이 팬티를 입고 뛰라는 팬들의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그래서, 원숭이 팬티를 입고 뛰기로 결심했습니다. 드디어 운명의 날! 뉴스에도 보도되었습니다. "프로야구 헐크, 이만수 sk 코치, 오늘 경기에서 팬티 바람으로 그라운드 질주!" "문학 경기장 3만 관중 돌파 공약 이행!" 정말 설마 설마 했는데, 이만수 코치가 실제로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질주했습니다. 이 장면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남았습니다. 후손들에게도, "우리 할아버지가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 돌았던 분이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반대가 심했지만, 막상 3만 관중이 돌파하고, 팬티 질주를 해야 하는 토요일, 온 가족이 야구장에 총출동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정말 3만 관중이 넘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3만 관중이 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3만 관중 돌파 후, 5회 말 끝나고 클리닝 타임 때 팬티 질주 행사를 했습니다. 팬티만 입고 뛰려니, 조금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몸 관리 좀 할 걸 그랬나 후회도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혼자 뛰라고 했으면 못 뛰었을 겁니다. 하지만, 동료 코치들, 선수들, 구단 직원들이 함께 뛰어주었습니다. 특히, 구단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서, 제 등번호 22번을 활용해, 22명을 추첨해서 함께 뛰는 이벤트를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덜 창피하게 뛸 수 있었습니다. 팬티 질주 사건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면서, 이만수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음악]

[박수]

[음악]

선수 시절 에피소드 중에 이런 이야기도 있더군요. 정말인지 꼭 확인하고 싶었는데, 타석에 임만수 선수, 아니 감독님이 들어서면, 상대편 투수나 포수가 심리전을 걸었다고 합니다. "야, 이만수! 네 와이프 어제 나이트클럽에서 봤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정말 그런 황당한 심리전이 실제로 있었나요? 네, 정말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야기인데요, 정말 해서는 안 될 상황이었죠. 1982년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아직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포수였을 때, 상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계속 말을 걸면서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야, 너 어제 뭐 했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다며? 너 때문에 와이프가 딴 남자 만난다더라!" 이런 식으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지어내서 상대방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면 상대 타자들이 당황해서 집중력을 잃고, 헛스윙하거나, 볼넷으로 걸어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번은 MBC 청룡 백인천 감독님이 참다 못해 타임을 걸고, 홈플레이트로 걸어오시더니, 심판에게 "저 이만수, 입 다물게 하라고 하세요! 저 녀석 퇴장 안 시키면, 경기 안 하겠습니다!"라고 항의했습니다. 정말 드라마 같은 이야기인데요! 네, 정말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지금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흑역사인데요. 그때는 정말 승리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승률을 높이기 위해, 온갖 반칙꼼수를 썼던 거죠. 정말 다이나믹하고 버라이어티한 야구 인생을 살아오셨는데요, 선수 생활 은퇴 후, 지도자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코치, sk 와이번스 감독 등을 역임하시면서, 수많은 우승을 이끌었고, 명장 반열에 오르셨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전성기는 없는 법! 누구에게나 정점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는 것처럼, 감독님에게도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선수 시절 화려한 영광 뒤에는, 벤치 신세를 져야 했던 힘겨운 시간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은퇴할 즈음, 젊은 선수들에게 밀리고, 출전 기회가 줄어들면서, 천하의 이만수 선수가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하는데요, 선수 생활 내내 주전으로 뛰다가, 은퇴 직전 벤치 신세를 지게 되니, 충격이 정말 컸을 것 같습니다. 극과 극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선수 생활이었는데요, 그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추억을 되돌아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그 당시 마음은, 역시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는 영원히 선수 생활을 할 줄 알았습니다. 젊은 혈기자만했던 거죠. 하지만, 저도 세월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결국 벤치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벤치에 앉아 있다 보니, 후보 선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음료수 캔 따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왕년에 잘나가던 4번 타자에서, 이제는 음료수 담당으로 전락한 거죠. 늘 시원하게 음료수 캔만 따주면서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한번은 후배 선수들을 모아놓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재능도 많고, 잠재력도 충분한데, 노력을 게을리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선수들을 모아놓고, 선배로서 진심 어린 조언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팀도 좋아지고, 너희 개인도 오랫동안 야구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 야구에만 집중하고, 딴 짓 하지 마라!" 제가 진심으로 이야기했는데, 어린 선수들 반응이 시큰둥했습니다. "선배님은 잘하니까 그렇게 말씀하시죠, 우리는 선배님처럼 잘 못해요"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예전에 제가 잘나갈 때도 똑같이 후배들에게 쓴소리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반응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잘나갈 때는 후배들이 제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흥, 선배님은 원래 잘하니까, 우리 마음 몰라" 이런 느낌이었죠. 하지만, 제가 벤치 신세를 지고, 밑바닥까지 추락하니, 이제야 제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 선배님이 우리를 위해 정말 좋은 이야기해 주시는구나" 똑같은 이야기인데도, 선수가 잘나갈 때못나갈 때, 받아들이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경험하신 셈인데요.

감독님 인생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마지막 영광 검색어에도 등장하는 '기독교'입니다. 이만수 감독님 하면, 독실한 크리스천으로도 유명하신데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셨는지, 크리스천이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기독교 입문 스토리, 자세히 들려주시겠어요? 기독교 신앙 간증, 기대해도 될까요? 하나님을 만난 드라마틱한 이야기, 궁금합니다! 스토리가 꽤 깁니다. 제가 어릴 때, 집 바로 앞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저희 집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이었죠.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노트, 연필을 나눠주었습니다. 저는 1년에 딱 한 번, 크리스마스 선물을 타기 위해 교회에 갔습니다. 선물 때문에 교회에 다니셨군요! 네, 1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 후 야구를 시작하면서, 교회와는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운동 때문에 시간도 없고, 피곤하기도 했고요. 저희 집안은 원래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기독교와는 인연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대학교 1학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운명적인 만남이었죠. 아내 될 분이 모태신앙이셨군요. 네, 아내는 모태신앙이었고, 저는 그때 처음으로 이성에게 호감을 느꼈습니다. 첫눈에 반했다고 할까요? 아내분보다 감독님이 더 적극적으로 구애하셨군요? 처음에는 아내가 저를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쫓아다녔죠. 캠퍼스 커플, cc로맨스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내가 어느 날 저에게 지혜롭게 전도를 했습니다. "교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아내 될 분이 신앙도 좋으셨군요. 네, 아내가 교회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저는 "교회 갈 시간 있으면, 야구 연습을 해야 한다. 나는 시간이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알았어, 그럼 이제 그만 이야기할게" 하면서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될 분이 정말 지혜로우시네요. 네,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같이 가자고 은근권유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아내가 또다시 교회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저도 여전히 "시간 없다"거절했습니다. 저는 보기보다 고집이 세서, 한번 아니라고 하면 끝까지 아닌 스타일입니다. "교회 갈 시간 없어, 지금은 야구에 집중해야 해!" 그러자 아내가 충격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그럼, 이제 더 이상 교제할 수 없어!"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습니다.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아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 물었더니, 아내가 "나와 같이 교회 가면, 데이트도 하고, 교회도 가고, 일석이조 아니냐"고 했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제안이었죠. 네, 아내의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내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아내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좋아, 그럼 같이 교회 가자!" 그렇게 억지로 교회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때부터 억지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종교를 택하신 셈이군요. 네, 사랑 때문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인생의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대학교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될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이었는데, 대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팀에서 탈락한 겁니다. 신앙생활 시작하자마자 시련이 닥친 건데요. 네, 신앙생활 시작하자마자 국가대표팀에서 탈락하다니,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하나님, 이건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내가 교회 다니기 시작하니까, 바로 시련을 주시다니! 하나님, 정말 살아계신 건가요?'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웠습니다. 야구밖에 모르고 살아왔는데, 갈 곳도 없었습니다. 답답한 마음기도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기도원으로 향했습니다. 기도굴에 들어가 하나님따져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건 실수하신 거죠? 저 잘못 뽑으신 거 아니에요? 제가 하나님 믿기 시작했는데, 왜 이렇게 시련을 주시는 거죠? 하나님, 정말 제 편이신가요? 정말 살아계신 건가요?"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덩치도 크고, 먹성도 좋지만, 그때 3박 4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대학교 3학년 어린 나이에, 3박 4일 금식기도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운동선수가 금식기도를 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인데요. 네, 3박 4일 금식기도를 하는 동안, 마지막 날 밤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갑자기 뜨거운 성령강렬하게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온몸에 타는 듯 뜨거워지고, 마음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이 밀려왔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구나! 지금까지 내가 믿었던 하나님은, 가짜가 아니었구나! 진짜 하나님이셨구나!' 3박 4일 금식기도를 통해, 하나님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3박 4일 금식기도 후, 기도원에서 내려오니, 온 세상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야단이 났습니다. "이만수, 국가대표 탈락하더니, 드디어 미쳤나! 기도원에 쳐박혀서 나오지도 않네!" 부모님께서 걱정하며 야단치셨습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연락도 안 되고,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는 기도원에 간다고 이야기했지만,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기도원에서 돌아온 후, 아내는 너무 기뻐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걱정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쓴맛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셨군요. 정말 드라마틱간증입니다.

그 후, 감독님께서는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동료 선수들에게 전도하는 일에도 열심을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선수 시절 동료 선수들을 전도하는 데 탁월능력을 발휘하셨다고 하는데요, 전도 비법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선수들을 전도하실 수 있었나요? 제가 선수로서 잘나갈 때 이야기입니다. 4번 타자승승장구하면서, 팀에서 최고참 선수가 되다 보니, 구단도 저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신앙생활 초창기라, 열정넘쳐흘렀습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도헌신했습니다. 후배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야, 너 이제부터 교회 가자! 무조건 교회 가야 돼!" 하면서 협박하다시피 전도했습니다. 주일만 되면, 선수들교회강제 소환했습니다. 경기 때문에 교회에 못 가면, 목사님야구장으로 모셔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선수단 예배를 만드신 거군요! 네, 선수단 예배를 드렸는데, 도망가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강압적전도 방식 때문에 반발하는 선수들도 있었겠죠. 네, 구단에서도 불만이 나왔습니다. "감독님, 선수들 좀 쉬게 해주세요! 주일 아침부터 교회 끌고 가서 예배드리면, 선수들이 힘들어해요. 잠 좀 자게 해주세요!" 구단에서 항의했지만, 저는 "무슨 소리예요! 애들 다 교회 가야 돼요! 교회 가야 야구 더 잘해요!" 하면서 맞섰습니다. 전도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하셨지만, 방식은 조금 과격했던 것 같습니다. 김성래 수석 코치감독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김성래 코치주일만 되면, 저를 피해서 도망 다녔습니다. "교회 가자!" 쫓아갈까 봐, 집에도 안 들어가고 숨어 다녔습니다. 김성래 코치는 저보다 후배입니다. 저를 형님처럼 깍듯이 모시면서도, 교회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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