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 목사 가족 간증: 고난 속에서 피어난 믿음과 감사 이야기
고난 속 피어난 감사, 조희창 목사 가족의 감동 간증
"고난은 축복입니다" 조희창 목사 가족 간증 상세 정리: 믿음과 감사의 여정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한 목회자 가정이 소개되면서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던 아들 조충현 강도사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동시에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워온 이 가족에게는 고난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아픔과 고난의 끝에서 축복을 고백하는 조희창 목사 가족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믿음이란 무엇이며 고난을 어떻게 승화시킬 수 있는지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역경을 이겨내고 감사를 찾았을까요? 함께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인기 예능 출연과 조희창 목사 가족 소개
조희창 목사님 가정은 최근 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방송 후, 조 목사님의 이름은 주요 포털 사이트 연관 검색어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는데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목회자 가정을 방문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시청자들은 이들의 소탈하고 진솔한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깊은 믿음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조희창 목사님은 현재 부천 W진병원 원목으로 섬기고 계시며, 사모님 홍순복 님과 함께 굳건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아들 조충현 강도사님은 사랑의교회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두 조 씨와 한 홍 씨' 라는 가족 구성원은 방송에서도 재미있는 포인트로 작용했는데요, 화목하고 유쾌한 가족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과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이제부터 조 목사님 가정이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그리고 겪어온 고난과 축복의 여정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중학교 부흥회
조희창 목사님은 1961년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작스러운 가정의 불행을 겪었습니다. 바로 세 살배기 남매를 두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당시 조 목사님 가정은 유교 집안으로 제사가 많은 종갓집이었는데요, 아버님은 이전까지 교회에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육 남매를 키우는 어려움 속에서 아버님은 교회를 다니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중학교 입학 후, 미션스쿨에 다니게 된 조 목사님은 중학교 3학년 때 교회 부흥회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시 뜨거운 눈물과 콧물 속에서 하나님께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하셨다고 합니다. 중학생의 어린 나이에 목회자의 길을 결심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인데요, 유교 집안에서 자라 제사를 지내던 소년이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겪고, 교회에서 은혜를 받아 목회자의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은 조 목사님의 목회 여정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전국 팔도를 누빈 목회 여정: 40년 넘는 헌신
조 목사님은 신학교 졸업 전, 1974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가난한 목회자의 길, 사도 바울과 같은 전도자의 삶을 꿈꾸며 김제시 면소재지에 있는 교회로 향했습니다.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 하나로 목회에 헌신하셨다고 합니다.
이후 5년간 김제에서 목회하신 후, 충남 당진, 부여, 김포, 울산, 부천, 그리고 인천 옹진군 장봉도까지 전국 팔도를 누비며 목회 활동을 이어가셨습니다. 각 교회에서 초빙이 올 때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순종하며 옮기셨다고 합니다. 특히 장봉도 혜리원은 지적 장애인 시설이었는데요, 다양한 지역과 환경에서 목회를 경험하며 폭넓은 이해와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현재는 부천 W진병원 원목으로 4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목회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습니다.
사모님 홍순복 님은 목사님의 잦은 이동에도 불평 없이 묵묵히 내조하며 가정을 지켜오셨습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이사를 다니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 이라는 믿음으로 순종하셨다고 합니다. 사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믿음은 조 목사님 목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아들 조충현 강도사님 역시 학창 시절 잦은 전학으로 친구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나 아버지의 헌신적인 목회 모습을 보며 큰 감동과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간이식 수술: 잊을 수 없는 2012년 1월 30일
조충현 강도사님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은 2012년 1월 30일입니다. 평소 B형 간염 보균자였지만, 소화 불량 외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 아침, 세수를 하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노랗게 변한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로 '간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수술 전까지 전조 증상이라고는 소화 불량 정도였기에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역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나 신경성 위염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진단에 가족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당시 장봉도에서 목회 중이셨던 조 목사님과 사모님은 급히 육지로 나와 서울로 향했습니다. 섬에서 육지로, 그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가족들의 마음은 불안과 슬픔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사모님은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간 기능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는다, 간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곁을 떠나지 마라, 간성 혼수가 올 수 있다" 는 위급한 상황 설명을 들었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에 사모님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고 회상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 어머니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수술 과정과 고난: 두 번의 수술, 거부 반응, 그리고 합병증
입원 후 17일 정도 지난 2월 16일, 뇌사자 간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응급 상황이었기에 뇌사자 간이 나타난 것은 기적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수술 전, 조 강도사님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황달로 시작했던 얼굴은 검게 변했고, 2주 동안 온몸이 청색으로 변해갔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기적적으로 뇌사자 간 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면회 시간에 아들의 얼굴을 본 사모님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수술 전 핏기 없던 얼굴이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하루 이틀 지나자 다시 얼굴색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와의 면담 결과, 간 문맥 혈관이 막혀 거부 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간 문맥 재수술이 결정되었고, 주일 저녁 늦은 시간에 두 번째 수술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수술은 더욱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수술실에서 혈관을 확인했지만, 이식된 간이 혈관에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기능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가망이 없다, 준비하십시오" 라는 절망적인 말을 전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가족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병원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놀랍게도 마음속에서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바로 '야곱의 축복' 이라는 찬양이었습니다. 찬양을 부르는 동안 마음이 평안해지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조 강도사님 역시 중환자실에서 홀로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평안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오히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경험했습니다. 혼수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는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오히려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가족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믿음으로 이겨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수술 후에도 합병증이라는 또 다른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2017년 2월까지 5년 동안 합병증 치료를 위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간 문맥 협착, 담도 폐쇄, 폐렴 등 이식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대부분의 합병증을 겪었습니다. 특히 심한 폐렴으로 인해 체온이 40.4도까지 떨어지는 위독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폐렴으로 고통받던 중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꿈속에서 가족들에게 유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다시 평안을 찾고,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고비들을 넘기면서 조 강도사님과 가족들의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고난 속에서 발견한 은혜와 감사: 고난은 축복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조희창 목사님 가족은 하나님에 대한 더욱 깊은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고난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조 목사님은 "고난도 축복이다" 라는 고백을 하셨는데요, 고난이 있었기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갈급함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아픈 후, 조 목사님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아픔과 슬픔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더욱 겸손해지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5~6년간의 투병 생활 동안 끊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도움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축복을 발견했습니다. 조 목사님은 "고난의 날보다 축복과 위로의 날이 훨씬 많았다"고 고백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조충현 강도사님 역시 긴 투병 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통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신뢰하고 목회하도록 훈련시키셨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은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하고 성장시키는 도구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고난은 조희창 목사님 가족에게 깊은 믿음과 감사를 가져다 준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감사의 마음과 앞으로의 계획: 받은 사랑을 갚으며
조희창 목사님 가족은 간이식 수술과 치료 과정에서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님과 성도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며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수술비와 치료비, 그리고 끊임없는 기도와 격려를 보내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조 목사님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목회에 헌신하며,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들 조충현 강도사님은 2018년 상반기부터 사랑의교회 국제제자훈련원에 복귀하여 사역을 재개할 예정입니다. 건강하게 사역에 복귀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하는 것이 첫 번째 기도 제목이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두 번째 기도 제목이라고 합니다.
사모님 역시 아들의 건강 회복과 사역 복귀를 위해 기도하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가정을 지키고 목회를 돕는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조희창 목사님 가족은 앞으로도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와 헌신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갈 것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조희창 목사님 가족의 이야기가 큰 위로와 용기를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조희창 목사님은 영상 편지를 통해 후원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세상에서는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하며, 천국에서라도 갚겠다는 유머 섞인 감사 인사를 전하며 훈훈함을 자아냈습니다. 조충현 강도사님 역시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건강을 회복하고 사역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의 감사는 단순한 인사말을 넘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의 마음이었습니다. 조희창 목사님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