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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5인 감동 실화: 헌신과 변화, 세계 선교 이야기

요약

선교사 5인: 척박한 땅, 헌신과 변화의 씨앗

[새롭게 몰아보기] 선교사 특집 1부: 문성, 최요나, 최관신, 헬렌 김, 박계흥 선교사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유로운 신앙생활은 과연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예배와 찬양, 그리고 복음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이 모든 것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헌신해 오신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눈물과 땀방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시는 선교사님들이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특별히 동유럽의 작은 나라 불가리아에서, 그것도 마피아조차 두려워하는 우범 지역이라 불리는 랩스키라는 시골 마을에서 묵묵히 사역하시는 박계흥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헌신과 섬김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더욱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오직 복음과 사랑, 그리고 믿음 하나만으로 낯선 땅에서 사역하시는 박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선사해 줄 것입니다.


문성 선교사: 파푸아뉴기니 식인 마을에서 진정한 복음을 만나다

문성 선교사님은 우리에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파푸아뉴기니의 식인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며, 자신의 가짜를 벗고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특별한 경험을 간증해 주셨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물질과 건강까지 내려놓는 헌신 속에서,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파푸아뉴기니는 호주 북쪽에 위치한 섬나라로, 800개가 넘는 부족들이 모여 이루어진 국가입니다. 놀랍게도 각 부족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외부 문명과 접촉하지 않은 부족도 절반이나 된다고 합니다. 문 선교사님이 사역하신 곳은 바로 이러한 오지 중의 오지, 식인 문화가 남아있던 부족 마을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들은 식인을 했던 것일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교적 의식이나 정치적 이유 때문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문 선교사님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들은 배고파서 먹던 사람들입니다. 음식이 없어서, 정말 굶주림 때문에 식인을 했던 것이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식인 문화가 과거의 유물처럼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맛에 대한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인간의 고기 맛을 부위별로 기억하고, 심지어 어느 부위가 맛있는지까지 구별한다는 이야기는 충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추장이 죽거나 가족 구성원이 사망했을 때, 외부 사람에게 시신을 내어주고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끔찍한 이야기는, 당시 그들의 절박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합니다.

문 선교사님이 처음 파푸아뉴기니에 발을 디뎠을 때, 이미 식인 문화는 호주 정부의 강력한 제재로 인해 겉으로는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부족민들은 여전히 사람고기의 맛을 기억하고 있었고, 식인 경험을 마치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 선교사님은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영적 위선을 발견하고, 진정한 복음을 깨닫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사업의 번창 속에서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그는, 파푸아뉴기니에서 겪는 고난과 역경을 통해, 자신의 삶이 얼마나 가짜였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미국 선교사가 파푸아뉴기니의 한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영상을 보면서, 그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의 감격에 춤추며 “이따오!” (진실이다!) 를 외치는 부족민들의 모습, 임신한 몸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말씀을 듣는 여인의 헌신적인 모습은, 그의 심장을 강하게 두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성경 말씀을 그저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진정으로 믿고 경험하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는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죽은 신이 아닌,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통해 신약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로마서를 통해 복음의 핵심을 깨달은 그는, 아내와 함께 파푸아뉴기니 선교를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선교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문화 충격으로 둘째 아들이 정신 질환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며 건강이 악화된 것입니다. 물질적인 어려움과 자녀의 고통 속에서, 문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도 제목들을 적어놓고, 응답되지 않는 기도에 좌절하며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그때 그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라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고백을 떠올리며, 진정한 믿음은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병원에서 정상 판정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아들의 병이, 거짓말처럼 완치된 것입니다.

문 선교사님은 이 경험을 통해, 물질에 대한 욕심과 자기중심적인 신앙을 버리고, 주권자 하나님을 인정하는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두 아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아버지의 헌신적인 삶을 존경하고, 오히려 아버지를 격려한다고 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떠나실 때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 손에 의탁했다고 하셨는데, 우리도 아버지를 어머니를 보내면서 두 분을 하나님 손에 의탁하였다”는 감동적인 편지를 보내왔고, 큰 아들은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이미 좋은 것을 다 받았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라는 말로 아버지를 위로했다고 합니다.

문 선교사님은 27년간 파푸아뉴기니에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세례 교인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한국에 머물고 있지만, 다시 파푸아뉴기니로 돌아가, 남은 생애를 부족민들을 섬기는데 헌신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는 젊은 선교사들에게 “오직 복음이 복음 되게 하라” 며, 세상과 손잡지 않고, 가치관과 인격의 변화를 이루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라고 강조합니다.

문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부인과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임을 우리에게 깊이 각인시켜 줍니다. 또한, 고난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는 믿음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감사를 누릴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최요나 선교사: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은 선교사, 다시 십자가 앞으로

최요나 선교사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은 선교사” 라고 고백하며, 충격적인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까지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았다는 고백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져줍니다.

최 선교사님은 현재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이파는 갈멜산 기슭에 자리 잡은 항구 도시로, 구약성경 엘리야 선지자의 사역 무대였던 갈멜산이 있는 곳입니다. 그는 2011년부터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며,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의 땅, 거룩한 땅으로만 생각하는 이스라엘에도 여전히 복음이 필요한 미전도 종족이 있음을 알립니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을 때, 최 선교사님은 충격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예배 중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를 하자” 는 인도자의 말에, 습관적으로 기도하던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의 영광을 짓밟았다” 라는 비수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통곡하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았습니까?” 라고 항변했습니다. 26년 넘는 세월 동안 선교를 위해 헌신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짧은 순간에, 그가 아내와 자녀들에게 했던 잘못된 말과 행동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셨습니다. 선교사라는 헌신적인 모습 뒤에 가려진, 그의 미성숙한 인격과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최 선교사님은 평소 가족들에게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습니다. 사소한 말다툼에도 언성을 높이고, 특히 아들의 신앙 교육 문제로 아내와 갈등을 겪었습니다. 내성적인 아들을 답답하게 여겨, 억지로 바꾸려 했고, 고집 센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순종을 강요했습니다. 자녀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부족한 모습들을 발견하고 괴로워하며, 오히려 더 강하게 자녀들을 통제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 최 선교사님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진정한 변화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화려한 사역과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예수님은 어떻게 사역하셨는지, 하나님과 어떤 친밀한 관계를 맺으셨는지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 삶을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스캔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회개를 통해 구원의 감격과 첫사랑을 회복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세상을 바꾸고, 민족을 복음화하고, 아내와 자녀를 변화시키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 아내와 자녀들의 삶도 당신의 방법으로 이끌어 가실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최 선교사님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과거 문둥병 환자촌 방문 경험입니다. 피부병 때문에 고통받던 그는, 치료를 기대하며 환자촌을 방문했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삶의 목적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환자들은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러웠지만,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특히, 성경을 암송하고, 하모니카로 찬송가를 연주하며 예배드리는 노부부의 모습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행복은 육체의 건강이나 세상적인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영원한 생명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환자촌 방문 이후, 그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신학을 공부하고,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환자촌에서 만났던 노부부와의 인연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어져, 그들의 기도가 그를 선교사의 길로 인도하는 힘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놀랍게도, 피부병 치료를 기대하며 방문했던 환자촌에서, 육체의 병은 치유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영혼의 눈이 뜨이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피부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오히려 그 질병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고통스러운 질병이 오히려 그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인도하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최 선교사님의 갑작스러운 신앙적 변화에 가족들은 놀랐지만, 그의 진심 어린 회개와 변화된 모습에 감동하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 역시 하나님을 영접하고, 가정이 함께 구원받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과거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아버지를 용서하고 이해하게 되었고, 오히려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삶을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선교 초기, 최 선교사님은 유대인들의 냉담한 반응과 거부감에 지쳐, 2년 만에 탈진 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유대인들의 완강한 태도에 실망하고 좌절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왜 이스라엘에 왔느냐?” 라는 질문을 던지셨고, 그는 “유대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왔다” 고 답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는 유대인들을 바꾸기 전에, 너부터 먼저 바꾸고 싶다” 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선교의 대상이 유대인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환경이나 문화가 아니라, 바로 선교사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이후, 최 선교사님은 선교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결과 중심의 사역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관계, 내면의 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며,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8년간 차 없이 생활했던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오히려 감사와 기쁨을 발견했습니다. 차 없는 불편함 때문에, 버스 안에서, 길거리에서, 시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8년, 기적적으로 중고차를 선물받았을 때, 그는 물질적인 축복보다, 지난 8년간 차 없이 생활하며 경험했던 영적인 풍요함에 더 감사했습니다.

최 선교사님은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선교사 자녀로 겪어야 했던 문화적 충격과 언어 장벽, 낯선 환경 속에서의 어려움, 그리고 아버지의 부족함 때문에 받았을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특히, 아들이 턱 디스크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자녀들에게 큰 죄책감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미래에 하나님 앞에서 “사랑하는 아들, 보고 싶었다” 라는 말씀을 듣고 싶다고 고백하며, 간증을 마무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아들” 이라고 불러주시고, 안아주시는 그 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최요나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진정한 선교는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여정임을,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깊이 깨닫게 해줍니다.


최관신 선교사: 아프리카 잡놈, 피그미족을 만나다

최관신 선교사님은 자신을 “잡놈” 이라고 칭하며, 유쾌하면서도 솔직한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룩한 선교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자유분방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내며, 아프리카 피그미족을 섬기게 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최 선교사님은 현재 르완다와 콩고 국경 지역에서 피그미족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홍민주 공학과 르완다 국경에서 피그미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왜왜 아자하 말” 이라고 소개하며, 독특한 유머 감각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숭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K 자동차 지점장, 대학교 시간 강사 및 겸임 교수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잡놈” 이라고 칭하며, 과거 방탕했던 젊은 시절을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술과 담배, 공놀이를 좋아하고,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교회 집사였지만, 진정한 믿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읽었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였습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쓰러지는 어린 왕자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그는, 막연하게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독서 클럽에서 “뿌리” 를 읽고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고, 1992년,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 땅을 밟았지만, 사하라 사막 횡단은 포기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 이민 생활 중 우연히 아프리카 단기 선교팀 모집 광고를 보게 됩니다. 선교에는 관심 없었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에 이끌려 단기 선교팀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선교 그런 거 잘 모르고 구경하러, 아프리카 가고 싶어서” 단기 선교에 참여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2009년, 우간다 단기 선교 중, 그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간다 산속의 작은 임시 진료소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 아픈 아기를 안고 기도 요청하는 엄마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임파선염으로 고통받는 아기를 위해, 그는 난생 처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중, 눈물이 쏟아지고, 뜨거운 감동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그때 “아, 이게 내가 평생 기다렸던 예수님인가 보다” 라고 깨달았습니다. 사진 속 멋있는 예수님이 아닌, 죽어가는 흑인 아이의 모습으로 그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잡놈 인생은 끝났고,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곧바로 신학대학원에 진학했고, 아프리카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미국 이민 시절, 친구의 꿈 이야기는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친구는 꿈 속에서 요단강을 건너는 경험을 했는데, 죄가 많은 자신은 강물에 깊이 잠기고, 아내는 가볍게 뛰어 건너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꿈 이야기는 그에게 영혼 구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 선교사님이 특별히 피그미족을 섬기게 된 것은, 2010년, 대표 선교사의 요청으로 피그미 마을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면서부터입니다. 피그미족은 아프리카 콩고 민주 공화국, 르완다, 부룬디, 우간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카메룬, 가봉 등에 흩어져 사는 소수 민족으로, 키가 작고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피그미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피그미족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특히 십자가의 복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과거 한 에반젤리스트가 피그미 마을에서 “예수님이 너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다” 라고 설교했을 때, 피그미족은 “예수가 누군데 우리 보고 죽였다 그러냐” 라며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대속 죽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최 선교사님은 피그미족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맞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피그미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는 르완다와 콩고에 위치한 19개 피그미 마을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학교 설립, 교회 건축, 생계 지원 등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는 피그미 마을에서 기도 요청을 많이 받는데, 놀라운 기도 응답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한번은 간질병을 앓는 아이를 위해 기도했을 때, 병원에 가지 않고도 아이가 완치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그때 “내가 믿지도 못했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셨다” 라는 것을 깨닫고, 기도의 능력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피그미 마을 사람들은 최 선교사를 “무중구 목사” (백인 목사) 라고 부르며, 특별히 존경하고 환영합니다. 하지만 그는 피그미족의 순수한 믿음에 감탄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교만함을 경계합니다. 염소 지원 사업이 실패했을 때, 그는 피그미족에게 화를 냈지만,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는 “배고픈 사람이 염소 잡아먹은 게 무슨 큰 죄라고 네가 이렇게 성질을 내고 그러냐”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교만함을 깨달았습니다.

피그미족과의 문화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많지만,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돼지 젖을 먹여 키우는 문화, 염소를 잡아먹는 행동 등,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 속에서도, 그는 사랑과 긍휼함으로 피그미족을 섬기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갑질하지 않게 해달라” 고 기도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사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최 선교사님은 1992년 르완다 내전 당시, 반투족 유목민들의 침략으로 피그미족 마을이 파괴되고, 수많은 피그미족이 희생되는 아픔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피그미족과 반투족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모자 프로젝트” (우리 하나) 를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를 설립하고, 피그미족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피그미족과 반투족 아이들이 함께 학교에 다니며, 우정을 쌓고, 미래의 평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 오면, 피그미 부족 아이들이 어떻게 놀라운 간증과 인격의 변화를 경험하는지 자주 질문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피그미족이 순수해서 변화가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인간은 순수하지 않다” 고 단언합니다. 다만, 피그미족은 단순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쉽게 받아들이는 반면, 현대인들은 너무 복잡하고 아는 척을 많이 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합니다.

최 선교사님은 20년 넘게 피그미족을 섬기면서, 그들의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고구마 줄기 하나 꺾어 심으면 6개월 후에 고구마가 열리는 것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습니다. 그는 피그미족의 순수한 믿음을 통해, 오히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한국에 머물고 있지만,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 피그미족을 섬길 것을 다짐합니다. 그는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며, 피그미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강조합니다. 수십 년간 헌신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느끼며, 다시 선교지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안겨줍니다.

마지막으로, 최 선교사님은 “굶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솔직한 기도 제목을 나누며, 간증을 마무리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피그미족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고,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는 “방법이 없다” 면서도, “기도해 달라” 고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최관신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척박한 땅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선교사의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헬렌 김 선교사: 순종, 그 십자가의 길을 걷다

헬렌 김 선교사님은 “순종” 이라는 주제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를 간증해 주셨습니다. 그녀는 한국에서 여성 정치인, UN 직원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티 선교사가 된 특별한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헬렌 김 선교사님은 20대 젊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하여, 정책 전문위원,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국장, 한나라당 여성위원회 위원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UN에서도 여성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국제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의 가정생활은 불행했습니다. 결혼 3개월 만에 이혼하고, 친권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되자,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로 건강까지 악화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녀는, 한국을 떠나 캐나다 퀘벡으로 향했습니다. 퀘벡의 추운 날씨와 외로움 속에서, 매일 자살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환청까지 들리며, 극심한 고통 속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죽음의 유혹을 간신히 이겨냈다고 합니다.

카톨릭 신자였던 헬렌 김 선교사님은, 아이티 선교사들과 교류하면서 개신교 예배에 참석하고, 2010년, 아이티에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례 후, 그녀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기쁨이 넘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열정이 불타올랐습니다. 뉴욕에서 택시 운전사에게까지 전도할 정도로, 열정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세례 후 환상 속에서 죄에 갇힌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너는 안 돼, 너는 나빠, 너는 죄인이야” 라는 거짓된 자아상을 깨뜨려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부정적인 메시지, 이혼과 친권 상실로 인한 죄책감 등, 그녀를 짓눌렀던 모든 거짓된 자아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무너지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UN 직원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 갑자기 아이티 선교사라는 예상치 못한 부르심이 찾아왔습니다. 세례 받던 날, 한 선교사는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아이티에 남아 고아와 과부 사역을 하기를 원하신다” 는 예언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퀘벡에서 뉴욕으로 돌아가던 중, 국경에서 추방당하는 황당한 사건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됩니다.

국경 추방 사건은 그녀를 절망과 좌절에 빠뜨렸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어 설교를 듣던 중,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라” 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습니다. 그 순간, 아이티에 남아 고아와 과부 사역을 하라는 예언이 떠올랐고,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UN에 사표를 내고, 아이티로 향하는 순종의 길을 선택합니다. UN 동료들은 그녀를 “미쳤다” 고 비난했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이티로 돌아온 그녀는,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고, 기숙 학교를 설립하여, 길거리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티에서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풍토병, 질병, 경제적 어려움, 문화 차이 등,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그녀를 덮쳤습니다. 댕기열, 치쿤구니야열, 안면 마비, 녹내장, 코로나19 등, 각종 질병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습니다. 특히, 녹내장으로 실명 위기에 처했을 때는, 절망과 고통 속에 하나님께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 그녀는 더욱 깊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환상 속에서 썩은 나무 보호대로 비유된 자신의 눈을 보며, 겸손과 순종의 중요성을 깨닫고, 내적 치유를 통해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상처, 이혼의 아픔 등을 치유받았습니다. 영혼에 대한 긍휼함을 경험한 후, 그녀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엄격하게 훈육했지만, 어느 날 집단 성폭행 사건을 겪으면서, 아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게 됩니다. 가해 학생을 용서하지 못했지만, “내가 너 같은 죄인도 용서했다”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용서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그 후, 그녀는 아이들을 더욱 따뜻하게 품어주고, 사랑으로 양육합니다.

2020년,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그녀는 구원의 확신과 천국의 소망을 붙잡고, 죽음의 공포를 이겨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구원의 소중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기적적으로 회복된 후, 그녀는 찬양의 능력을 경험하고,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코로나19를 통해, 자신의 견고한 진, 즉 자기 우상화와 교만함을 발견하고 회개했습니다. 아이티에 있는 자신이 아깝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교만함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가덕도 기도원에서 기도하던 중, 아이티의 심각한 상황을 듣고, 다시 아이티로 돌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최근, 그녀는 놀라운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아이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을 때, 한 부부를 통해 땅값을 후원받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앞으로 아이티의 미래 지도자를 양성하고, 여성 센터를 통해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사역을 펼쳐나갈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헬렌 김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순종의 여정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 끝에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순종은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며,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또한, 고난 속에서 더욱 빛나는 믿음,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찬양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태도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선사합니다.

헬렌 김 선교사님의 간증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사랑을 되새기며, 우리 또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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