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극복한 월가 애널리스트 신순규의 감동 성공 스토리
## # 절망을 넘어 월가 신화: 시각 장애를 이겨낸 신순규 애널리스트의 감동 스토리
# 시각 장애를 넘어 월스트리트까지: 신순규 월가 애널리스트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
오늘,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30년간 활약한 신순규 월가 애널리스트를 모시고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랑의 빚을 졌다, 그리고 사랑의 빚을 갚았다"라고 표현하는데요, 과연 그에게는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요?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신순규 집사님을 모시고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신순규 집사님은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오래된 증권 회사인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의 한국인 임원으로서, 의료 분야 채권 분석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3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굴리는 VHNW(Very High Net Worth) 고객들을 상대하는 베테랑 애널리스트인데요, 과연 그는 어떻게 시각 장애를 딛고 월가의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갈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그의 놀라운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어린 시절의 시련: 선천성 녹내장과 시력 상실
신순규 집사님은 선천성 녹내장을 안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생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왼쪽 눈은 실명했고, 오른쪽 눈으로 세상을 보며 성장했는데요. 하지만 일곱 살 때 망막 박리가 찾아와 시력을 잃게 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1975년, 만 8세의 나이에 시력을 잃기 시작하여, 9살 무렵에는 완전히 시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시각 장애는 그에게 큰 시련이었을 텐데요, 그는 어떻게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 미국으로의 새로운 시작: 따뜻한 가족과의 만남
시력을 잃은 후 미국으로 건너간 신순규 집사님. 낯선 땅에서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상태로 모든 것을 소리에 의존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는 선교회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운명적인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선교사님의 지인의 소개로 뉴저지에 사는 미국인 가정에서 6주 동안 홈스테이를 하며 영어와 미국 문화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들은 신 집사님을 위해 집 안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카펫으로 덮고, 점자 타자기를 빌려오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매일 저녁 식사 후에는 미국인 어머니와 대화하며 영어를 배우고 발음을 교정받았다고 합니다. 이 6주간의 특별한 경험은 그에게 큰 힘이 되었을 텐데요, 과연 이 가족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 헌신적인 양부모와 학교 선생님들의 도움
6주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미국 학교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헬렌 켈러처럼 2~3개월 동안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점차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그의 미국인 부모님은 불치병에 걸린 쌍둥이 딸들을 유기농 주스로 살려낸 헌신적인 분들이었습니다. 딸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빈집에 신 집사님을 초대하여 4년간 친아들처럼 돌봐주셨다고 합니다. 홈스테이 비용도 받지 않고, 무료로 사랑을 베풀어주신 건데요. 학교 선생님들 또한 시각 장애 학생을 가르쳐본 경험이 없었지만, 열정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며 그를 도왔습니다. 기하학 시간에는 도형을 만져서 이해할 수 있도록 했고, 양궁 시간에는 표적을 눈앞에 배치하여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그는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는데요, 특히 양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월가 애널리스트를 꿈꾸다: 장애인 차별 금지법의 등장
90년대 초, 미국에서는 장애인 차별 금지법(ADA)이 통과되면서 장애인 고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법의 애매모호함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는데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신순규 집사님은 대학원에서 장애인 고용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투자 세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 애널리스트 케이스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도 교수님은 그에게 "스스로 길을 개척해보라"고 격려하며 실제 월가 취업을 제안했습니다. JP모건을 비롯한 여러 투자은행에 취업 의사를 밝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 JP모건에서 단 하나의 연락이 왔습니다. 그에게 기회를 준 사람은 JP모건 인사부의 숨겨진 시각 장애인 임원이었는데요. 그 임원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 집사님에게 인턴 기회를 제공했고, 인턴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정직원으로 채용됩니다. 교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사 학위를 포기하고 월가에 남기로 결심한 것인데요, 과연 그는 월가에서 어떤 성공을 거두게 될까요?
## 사랑의 빚을 갚다: 야나(YANA) 설립과 나눔의 삶
월가에서 성공을 거둔 신순규 집사님은 과거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갚기 위해 야나(YANA, Youth Abroad Nurturing Association)라는 프로그램을 설립합니다. 야나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미국에서 유학할 기회를 제공하고, 가정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2014년, 첫 번째 야나 학생으로 예진이가 미국에 오게 되었는데요. 예진이는 신 집사님 가정에서 딸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입양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신 집사님은 과거 자신이 미국 양부모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예진이에게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유기농 주스를 만들어주고, 학교 생활을 지원하며, 엄마 아빠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예진이 또한 처음에는 문화 차이와 사춘기 반항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양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무조건적인 스킨십(안아주기) 덕분에 점차 가족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3~4년의 시간이 흐른 후, 예진이는 진정으로 신 집사님 가정의 딸이 되었고, 현재는 대학생으로 성장했습니다. 신 집사님은 예진이 스토리를 통해 시설 아이들도 가정 환경에서 충분히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 나눔의 가치와 미래를 향한 꿈: 허쉬 스쿨 모델
야나 프로그램을 통해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신순규 집사님은 더 큰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에도 미국의 허쉬 스쿨과 같은 시설을 설립하는 것입니다. 허쉬 스쿨은 초콜릿 회사 허쉬의 창립자 밀튼 허쉬 부부가 설립한 학교로, 소외된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가정적인 환경에서 양육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입니다. 각 가정에는 하우스 페어런츠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랑과 보살핌을 제공합니다. 신 집사님은 허쉬 스쿨과 같은 모델이 한국에도 마련된다면, 입양이나 위탁 가정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개인의 힘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 곁으로 가기 전에 한국에 허쉬 스쿨과 같은 학교가 설립될 수 있는 환경이라도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야나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달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 맺음말: 사랑과 나눔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밝히다
오늘 신순규 집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각 장애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특히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잊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하는 그의 헌신적인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네가 너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로 소중하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그는 사랑과 나눔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살아갈 때, 더 밝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신순규 집사님의 앞으로의 삶을 응원하며, 우리 또한 그의 삶을 본받아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