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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선교사 허석구·이영숙 목사 부부의 감동 실화와 헌신

요약

척박한 몽골, 복음의 씨앗을

허석구, 이영숙 목사 부부의 선교 이야기: "가든지 보내든지, 선교사의 삶"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여기, 20년간 성공적인 삶을 뒤로하고 몽골 선교사로 헌신한 허석구, 이영숙 목사 부부가 있습니다. 이들은 안정적인 삶을 내려놓고 세계 샤머니즘 국가 몽골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10여 년간 의료 선교와 목회 활동을 펼쳤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하며 몽골인들이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헌신한 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과연 이 부부는 어떻게 몽골 땅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을까요? 함께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허석구 목사 부부는 어린 시절부터 같은 교회에서 만나 50년이라는 긴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며 함께 성장했고, 10년간 교제 끝에 결혼하여 내년이면 40주년을 맞이하는 깊은 부부애를 자랑합니다. 두 분은 마치 오랜 동역자처럼 서로 닮아 보였는데요, 실제로 1층 약국과 2층 치과를 함께 경영하며, 신학 공부와 선교 활동까지 늘 함께 해왔다고 합니다.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두 분이지만, 때로는 경쟁자가 되기도 하고, 서로 의지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만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듯 했습니다.

두 분은 늘 함께 다니는 것이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하며 굳건한 신뢰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랜 시간 신앙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가치관과 인생관이 일치하기에 즐겁게 지내왔다는 설명인데요, 정말이지 찰떡궁합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부부였습니다. 허 목사는 대학 시절 개인적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기쁨을 경험한 후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 뜨거운 첫사랑을 경험하고 청년들과 함께 전도하며 복음 전파의 꿈을 키웠다는 것인데요, 결혼 전부터 "복음의 전방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부산에서 "할렐루야 치과"를 개업하여 병원 전체에 찬송가를 틀고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봉사하는, 교회와 같은 병원을 운영하고자 했습니다. 20년 가까이 치과를 운영하며 교회 장로로도 섬겼지만,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 노숙자들을 위한 새벽 기도 인도를 맡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노숙자 쉼터에서 말씀을 전하며 오히려 자신이 큰 은혜를 받았고, 말씀의 능력을 통해 변화되는 노숙자들을 보면서 "말씀의 종이 되어야겠다" 는 강력한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명을 아내 이영숙 목사에게 이야기했을 때, 이 목사는 오히려 "그럼 나도 같이 신학을 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이 목사 또한 대학 시절 UBF (University Bible Fellowship) 선교회를 통해 훈련받고 선교사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미국 선교사 초청장까지 받았지만 당시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껴 선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결혼했었는데요, 늘 마음속에 선교에 대한 짐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의 신학 결심을 듣고 "인생의 중요한 기회가 왔다" 고 직감하며 선교사의 길에 함께 나설 것을 결심했다고 하는데요, 두 분은 정말 천생연분, 영혼의 단짝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전문직을 내려놓고 선교사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안정적인 직업을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선교사의 삶을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요? 허 목사는 50세 가까운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감사함과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이 두려움보다 컸다고 합니다. "이제는 순종밖에 없다" 는 생각으로 몽골 선교를 결심했다는 것인데요, 몽골로 떠나면서 한국에서의 짐을 컨테이너에 실을 때,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두려움보다는 감사함과 설렘으로 몽골행을 택했다는 허 목사의 이야기는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몽골 선교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시절 선교지를 놓고 기도하던 중 아프리카를 생각했던 이 목사와 달리, 허 목사는 모든 나라가 선교지라고 생각하며 기도하던 중, 두 사람의 입과 후원 교회의 의견이 일치하는 몽골로 선교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의료 봉사 활동으로 몽골을 방문했던 경험도 몽골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몽골 연세친선병원에서 치과 의사를 구하고 있었고, 병원 환경도 좋았다고 합니다. 마침 아내도 몽골을 선교지로 지목하면서, 몽골 선교는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두 분은 선교사가 되기 전부터 보내는 선교사로서의 삶을 실천해왔습니다. 결혼 후 "선교 지향적인 삶을 살자"고 약속하고, 병원과 약국 수입의 일부를 선교 헌금으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교회에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고, 담임 목사의 추천을 받아 동명이인인 허석구 선교사를 9년간 후원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9년 후, 본인들이 직접 몽골 선교사의 부름을 받게 되면서 "보내는 선교사"에서 "가는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동명이인 선교사와의 만남은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선교를 결심했을 때, 모든 사람들의 축복과 지지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고 하는데요, 노령의 어머니는 아들 허 목사에게 의지하며 살았고, 아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선교사가 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당시 김선일 선교사 순교 사건으로 인해 선교지를 위험한 곳으로 인식했던 어머니는 "선교를 가면 인연을 끊겠다" 며 강경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허 목사는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몽골 여행을 제안했고, 몽골의 안전한 환경을 직접 확인한 어머니는 "1년만 몽골에 다녀오는 것" 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역시 자식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몽골 선교 초기, 허 목사 부부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심각한 매연 문제 였습니다. 당시 몽골 울란바토르는 세계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각한 도시 중 하나였는데요, 겨울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연이 심했고, 방독면을 써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영하 35도 이하로 내려가는 혹독한 추위 또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땅" 이라는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갔습니다.

이영숙 목사는 매연과 추위 외에도 언어 장벽과 낯선 문화, 안전 문제 등 여성으로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밤에는 마스크를 쓰고 자야 할 정도로 매연은 심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적응해나갔다고 합니다. 외국인으로서 겪는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비자 문제, 행정적인 불이익, 도난 사고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에서 물건을 도난당하거나, 사택에 도둑이 들기도 하고, 교회 건물이 파손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단기 선교팀이 방문했을 때 휴대폰이나 가방을 도난당하는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 목사는 합창단 공연을 위해 공연복을 입고 운전하던 중 불량 학생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이유 없이 차를 두드리고, 이 목사가 자신들의 발을 밟고 지나갔다고 억지를 부리며 병원에 데려가 사진을 찍고, 방송국에 연락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과 불안함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비자 문제였는데요, 비자 연장을 위해 매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고, 비자 목적 외 활동 (예: 병원 비자로 설교) 은 강제 출국 사유가 될 수 있었기에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몽골에서 "을"로 살아가는 고통과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몽골 선교 초기, 허 목사 부부는 자신들의 전문성을 살려 의료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치과 의사 비자로 몽골에 간 허 목사는 병원 환자와 직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무료 진료를 통해 의료 봉사를 펼쳤습니다. 특히 한글 교육은 효과적인 선교 도구가 되었습니다. 한글을 배우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한국어 성경을 교재로 사용하여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요한복음을 함께 읽고 공부하며 예수님을 소개하고, 교회로 인도하여 세례를 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전문 의료 선교를 통해 몽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허 목사 부부는 교회 개척의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몽골에 온 지 1년쯤 되었을 때, 가정에서부터 개척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부와 몇몇 지인들로 시작했지만, 점차 간호사, 통역사 등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25명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아파트에서 더 이상 예배를 드리기 어려워지자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했고, 후원 교회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예배당 건물을 구입하여 헌당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교회는 100여 명 규모로 빠르게 성장했고, 몽골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교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허 목사는 교회 개척 초기부터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 라는 믿음을 갖고,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했습니다. 특히 다른 선교사들과 협력하는 목회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했습니다. 음악, 청년, 양육 등 각 분야별로 전문성을 가진 선교사들이 파트를 나누어 사역하면서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이영숙 목사의 헌신적인 봉사 또한 교회 성장에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 매주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고, 말씀을 전하고, 제자 양육에 힘쓰는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몽골 교회는 빠르게 성장하여 현지 국회의원 후보를 배출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비록 국회의원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교회가 몽골 사회 지도자 그룹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2015년, 허 목사 부부는 몽골 선교 사역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해야 했습니다. 한국 집회 강사로 초청되어 한국에 왔을 때, 건강 검진에서 간암이 발견된 것입니다. 2.5cm 크기의 악성 종양이었고, 수술이 불가피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허 목사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신호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부모님도 천국에 가시고, 자녀들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니, 이제 천국에 가도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하니, 그의 헌신적인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아내 이영숙 목사는 남편의 암 투병 소식에 절망하며 "안 된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여보, 내 간은 싱싱하니까 내 간이라도 이식해서 우리 더 살아야 한다" 며 남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간 이식까지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 목사의 간절한 기도와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허 목사는 다시 힘을 내어 암을 극복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깊은 사랑과 헌신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몽골에서의 10년 헌신, 그리고 암 투병이라는 고난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사랑으로 이겨낸 부부의 이야기는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겼습니다.

방송 말미에 허 목사 부부는 몽골 베다니 마을 교회 성도들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 뭉클함을 자아냈습니다. 허 목사는 떠나올 때 자신을 잊고 새로운 목회자를 따르라고 했지만, 한국에 와 보니 몽골 성도들이 너무나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목사는 교회가 비 때문에 새는 것을 보고 성도들이 명이나물을 팔아 교회 수리비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자립적인 믿음으로 성장하는 성도들의 모습에 감사하며, 몽골 교회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고 몽골의 모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했습니다. 두 분의 영상 편지는 몽골 성도들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허 목사 부부의 선교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몽골인들을 보면서 그들을 섬겨야겠다는 소명을 느꼈다고 합니다. 몽골에서는 "얼"로 살았지만, 한국에서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몽골인들을 위해 새로운 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2024년 1월, 서대문에서 몽골인들을 위한 가정 교회를 개척하고, 말씀과 사랑으로 몽골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한 영혼이라도 깊이 있는 믿음으로 양육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허 목사 부부는 몽골인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공동 숙소 마련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높은 집값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 공동 숙소를 통해 몽골인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습니다. 몽골을 떠나올 때 몽골 성도들이 선물한 액자 (여러 색깔 열매가 맺힌 나무 그림) 를 보면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또 다른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역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나그네 목회자로서, 숫자와 상관없이 한 영혼을 깊이 사랑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몽골 성도들이 성숙한 믿음으로 본국에 돌아가 교회를 섬기는 리더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학중 목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하는 허 목사 부부의 삶을 통해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꿈과 비전을 갖고 도전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시다" 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한 주가 되기를 축복했습니다. 허석구, 이영숙 목사 부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헌신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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