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의 의미를 묻다 이춘수 장례지도사의 목회 이야기
죽음의 목회자: 장례지도사 이춘수
나는 오늘도 죽어가는 장례지도사입니다: 이춘수 장례지도사,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다
오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숭고한 가치를 발견하는 이춘수 장례지도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그는 단순히 장례를 ‘업’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슬픔에 잠긴 유족들을 위로하고, 삶의 존엄성을 되새기는 ‘사명’으로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과연,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춘수 장례지도사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삶의 벼랑 끝에서 마주한 죽음,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이춘수 장례지도사는 과거, 제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예기치 못한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2015년, 중등부 교사 시절, 12월 31일 졸업식 후 고등부로 올라간 제자가, 필리핀 비전트립 중 1월 13일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는 안타까운 사고를 겪었다고 회상합니다. 단기 선교를 목적으로 떠난 여행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은, 그에게 큰 충격과 죄책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제자의 장례 절차를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는,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2016년 1월 19일,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치고 퇴근 후 빨래를 개던 중,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을 느꼈습니다. “가슴 위에 코끼리가 올라탄 듯 답답하고, 코와 입은 열려 있는데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고 합니다. 죽음을 직감한 그는, 살려달라는 기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혼미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평안’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순간, 세상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오직 ‘천국’만을 갈망하게 되면서 역설적인 평안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이어 떠오른 것은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들이 겪을 슬픔과 고통을 생각하니, 다시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솟아났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 119에 전화, 응급 이송되었고,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졌습니다.
2. 삶의 이유를 묻다: 예수원에서의 깊은 묵상
죽음에서 돌아온 후, 그는 삶에 대한 강렬한 갈망보다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직면했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였을 때 느꼈던 평안함 때문에, 오히려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고 합니다. 한 달 동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고민하던 그는, 아내와 함께 강원도 태백에 위치한 예수원으로 향했습니다.
깊은 산골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며 기도하던 중, 그는 비로소 삶의 ‘소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만일 그 책임을 다 했다면 죽더라도 미안해하지 않았을 텐데,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안해서 다시 사는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삶의 방향을 재정립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을 넘어, ‘관계’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묵상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선교’라는 명확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죽음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한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 죽음의 목회: 장례지도사의 길을 걷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바꾸는 목사’를 꿈꿨던 이춘수 장례지도사는, 신학대학에 진학했지만, 목회자의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포기했습니다. ‘정치’, ‘법학’, ‘인터넷’ 등 다양한 분야를 전전하며 세상을 바꿀 방법을 모색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경험한 후,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먼저, ‘나’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변화하니, 온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그는 ‘죽음의 목회’라는 새로운 목회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지만, 교회 밖 사람들에게는 ‘죽음’이야말로 더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을 통해 생명을 깨달았기에, 교회 밖 사람들에게 ‘죽음’을 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죽음의 목회’는, 그에게 새로운 ‘소명’이자 ‘사명’이 되었습니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은, ‘죽음의 목회’를 실천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도구였습니다.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에 올라가면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장례지도사’ 목회를 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마침, 친한 동기의 아버지가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소개를 받아 장례지도사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론만으로는 알 수 없는 현장의 생생함을 경험하면서, 그는 장례지도사로서의 길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4. 삶의 마지막 순간을 동행하다: 장례 현장의 생생한 기록
처음 참관했던 장례는, 사고사였습니다. 78세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농수로에 추락사한 사건이었는데, 입관 과정을 지켜보면서 예상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입관은, 고인을 목욕시키고 수의를 입혀 관에 모시는 절차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입관 과정은,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입니다. 차가운 안치실에서 고인을 꺼내 몸을 닦고, 굳어버린 관절을 풀어 드리는 과정에서 다양한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각적으로는 익숙해지지만, 촉각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차가운 고인의 체온, 굳어버린 관절을 풀 때 느껴지는 감각은, 생생하게 기억 속에 각인됩니다. 때로는, 고인의 팔을 잡을 때, 팔뚝 근육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굳게 쥔 주먹을 펴 드릴 때, 강한 힘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1년 동안 46구의 장례를 지도하면서, 다양한 죽음의 모습을 접했습니다. 죽음은 모두 같지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삶의 모습은 모두 달랐습니다. 그는 장례 후, 고인의 삶을 묵상하며 기도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인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유족들과의 대화, 고인의 흔적을 통해 살아 계셨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며, 목회적 의미를 찾고자 노력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례 중 하나는,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의 장례였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취업을 앞둔 청년의 죽음은, 주변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특히, 늦둥이 아들을 애지중지 키워온 노부모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입관 과정에서,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관에 아들의 이름을 쓰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희망을 담아 지었던 이름을, 이제는 부를 수 없게 된 현실은, 비극 그 자체였습니다.
5.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 숭고한 장례 문화
일반적인 장례식장은 슬픔과 눈물로 가득한 공간이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풍경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선교사 가정의 장례식에서, 그는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날, 온 가족이 빈소에 모여 고인의 사진을 펼쳐놓고, 함께 추억을 이야기하며 웃고 울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슬라이드 쇼로 만들어 빈소 벽면에 상영했습니다. 조문객들에게 고인의 삶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모습은, 진정한 추모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습니다.
셋째 날, 화장 후 안치를 마치고, 가족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목격했습니다. 고인의 죽음은, 슬픔과 상실감을 안겨주었지만, 역설적으로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는 새로운 경험과 의미를 선물했습니다. 죽음을 통해 더욱 끈끈해진 가족의 모습은, 장례가 단순한 슬픔의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획일적이고 무의미한 장례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기독교식 장례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장례는, 화려한 장례식장보다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소박하게 치러지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죽음 이후의 모습보다는,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며, 천국에서 고인들과 재회할 날을 기대합니다.
6. 죽음, 삶의 또 다른 이름
다시 시간을 되돌려, 자신이 쓰러졌던 날을 떠올려 봅니다. 제자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 경험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자의 죽음은, 그에게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고, 자신의 죽음 경험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제자의 증언자’로 정의하며, 남은 삶을 그의 몫까지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그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정의합니다. “살아간다”는 표현보다 “죽어간다”는 표현이 더 와닿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죽음은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삶과 함께 죽음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웰다잉’이라고 강조합니다.
기독교인에게 죽음은, 두려움이자 동시에 ‘과정’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한 삶의 일부분이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는 기독교인이 되기를 소망하며, 강의를 마무리합니다. 죽음을 통해 삶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해 준 이춘수 장례지도사.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묵상과 성찰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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