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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10년, 송인수 대표 심층 인터뷰

요약

## 사교육 없는 세상 10년, 송인수 대표 심층 인터뷰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과연 가능한가? 송인수 대표 심층 인터뷰 상세 정리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많은 학부모님들의 깊은 고민이자 뜨거운 감자인 ‘사교육’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입시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사교육 시장은 거대하게 팽창하여 많은 가정이 경제적 부담과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인데요. 과연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꿈같은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대표님을 모시고 진솔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송 대표님은 오직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13년간의 교직 생활을 내려놓고 이 문제 해결에 헌신해 오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송 대표님은 어떻게 이토록 어려운 길을 걷게 되셨을까요? 그리고 사교육 문제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해법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1년 전,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

송 대표님, 11년 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설립하시면서 사교육 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뛰어드셨는데요, 당시 사회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2012년 설립 당시, 사교육 문제는 이미 심각했지만, 지금처럼 사회 전반의 뜨거운 관심과 공감대를 얻지는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송 대표님은 오히려 사교육 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단체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 대표님은 “사교육비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나는 추세였고, 사교육 억제 정책의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라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놀랍게도 송 대표님은 단체가 없었다면 상황이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 근거로 2010년 외고 입시 영어 듣기 시험 폐지 사례를 제시했는데요. 과거 외고 입시에서는 초등학생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능 영어 독해 지문 수준의 듣기 평가가 시행되었고, 이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텝스, 토익 등 과도한 사교육에 내몰리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출범 후 교육 당국과 끈질기게 협력하여 외고 입시에서 영어 듣기 시험을 완전히 폐지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송 대표님은 “만약 저희 단체가 없었다면, 지금도 초등학생들이 외고 입시를 위해 듣기 시험 때문에 엄청난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을 것입니다.” 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4년에는 ‘선행교육 규제법’ 제정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협력하여 선행교육 규제법을 만들었고, 그 결과 대학 입시 논술고사에서 고등학교 교육과정 밖의 내용 출제를 금지시키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과거에는 대학 교재에서 논술 문제가 출제되어 고등학생들이 대학 교재까지 공부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었지만, 법 제정 이후 이러한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제도 개선을 통해 사교육 시장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최근에는 기업체의 ‘블라인드 채용’ 도입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송 대표님은 “공기업 블라인드 채용 제도는 저희 단체가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얻어낸 성과입니다. 만약 블라인드 채용이 없었다면, 공기업 입시를 위해 학벌 경쟁이 더욱 심화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강조했습니다. 블라인드 채용은 학벌 중심 사회의 폐해를 극복하고, 능력 중심 사회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눈에 보이는 사교육비 증가 속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다고 송 대표님은 자평합니다.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10년간의 끈질긴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교사, 그 운명적인 부름

교직에 대한 소명감이 어릴 때부터 컸는지 궁금합니다. 교사를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놀랍게도 송 대표님은 어릴 적 교사를 꿈꿔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90년대 당시 교사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지금과는 달랐고, 오히려 낮은 직업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송 대표님은 “교사는 사회경제적 지위 26위, 이발사는 27위였던 시절입니다. 교사는 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었죠.” 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대에 진학하게 된 것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대학 입시 점수에 맞춰 택할 수 있는 전공을 고려했고, 집안 형편 또한 어려워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송 대표님은 “가정 형편 때문에 교직을 선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교대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원래는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여 다른 진로를 탐색하고자 했지만, 여러 상황이 여의치 않아 교사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13년간의 교사 생활은, 예상외로 즐겁고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원치 않았던 교직이었지만, 막상 교단에 서 보니 아이들과의 소통, 가르치는 보람, 그리고 제자들의 사랑 속에서 교사로서의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 대표님은 “아이들이 제 수업에 완전히 집중하고, 아침마다 꽃다발과 선물을 책상 가득 놓아두는 것을 보면서, 교직 생활이 의외로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회상했습니다. 특히 남녀공학이었던 학교에서, 익명의 여학생들로부터 쏟아지는 편지와 선물은, 교사로서 느끼는 특별한 기쁨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송 대표님은 운명처럼 교사가 되었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행복과 보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은, 요즘 시대에는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 되었는데요. 과거와 달리 교사의 사회적 위상과 안정성이 높아지면서, 교대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송 대표님 역시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오히려 교직을 선택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당시 교사 월급은 60만 원 정도로, 가난을 극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교사가 되었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가난, 고통, 그리고 닭 10만 마리

어린 시절은 어떠셨나요? 혹시 가난 때문에 힘든 경험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송 대표님의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가난 극복’과 ‘가정 불화 탈피’ 였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불화가 잦았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머니는 닭장사 등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억척스럽게 생계를 꾸려나가셨습니다. 송 대표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돌보고 밥을 해주는 등 어머니 역할을 대신했으며, 6학년 때부터는 닭장사를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닭장사 경험은, 송 대표님의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어머니는 닭을 잡아 팔았는데, 송 대표님은 살아있는 닭을 직접 죽이는 일을 맡았습니다. 닭을 죽이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처음에는 닭 한 마리 죽이는 것도 너무 힘들어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합니다. “산 닭을 제 손으로 죽여야 했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생명체가 저 때문에 생명을 잃는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라고 당시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6년간 닭장사를 하면서, 무려 10만 마리가 넘는 닭을 죽였다고 합니다. 반복되는 닭 죽이기 작업에 점점 무뎌져 갔고, 심지어 닭을 빨리 죽이지 못하면 짜증이 날 정도로 감정이 메말라갔다고 합니다. “5천 마리 정도 죽였을까, 그때부터 무심코 닭을 죽이고 아무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닭을 빨리 죽이지 못하면 짜증이 날 정도였죠. 반복의 무서움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라고 회상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숙제라는 것을 닭을 잡으면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가난은 송 대표님에게 공부에 매진하게 된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어머니는 닭장사를 하면서도 틈틈이 학교 성적을 확인했고, 성적이 떨어지면 “너 이러다 닭 잡는다, 고아원에 맡길 거야.” 라는 농담 반 진담 반 협박(?)을 하셨다고 합니다. 중학생이었던 송 대표님은 어머니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짜 고아원에 버려질까 봐 두려움에 떨며 공부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가출도 두 번 정도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 말을 농담으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미친 듯이 공부했습니다.” 라고 당시 절박했던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닭장사를 하면서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양계장으로 닭을 실어 나르고, 학교에 가서는 공부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 관리 능력과 집중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졌습니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얼마나 집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고 합니다. “닭장사를 하면서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닭을 실어 나르고,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짧은 시간에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라고 회상했습니다. 과거의 힘든 경험이 오히려 현재 사교육 문제 해결 운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송 대표님은 강조합니다. 끈기, 집중력, 집요함은 닭장사 시절에 배운 소중한 자산이라고 합니다.

가난 속에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송 대표님은, 결국 명문대에 진학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일반 중학교 대신 ‘고등공민학교’ 라는 특이한 학교에 진학할 뻔했지만, 어머니의 현명한 판단으로 중학교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하여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처음에는 반에서 20등 밖이었지만, 점점 성적을 올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전교 1등까지 올라서는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에서 20등 밖이었지만, 끈기 있게 공부한 결과,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전교 1등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집중력은 정말 중요한 힘입니다.” 라고 강조했습니다. 닭장사 소년에서 전교 1등 모범생으로 변신한 송 대표님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하지만 전교 1등을 하던 시절에도, 여전히 닭을 잡아야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수십만 마리의 닭을 잡으면서 ‘왜 이렇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라는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환경을 원망하기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야속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가정 불화의 원인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어머니에 대해서는 무한한 사랑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송 대표님에게 인생의 구원자였고,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야속했지만, 어머니는 저에게 구원자였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어머니는 중학교 3학년 때 두 번이나 가출하기도 했는데, 그 시기에 교회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교회 중등부 학생회장이었던 송 대표님은, 어버이날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낭독을 맡게 되었는데, 편지를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합니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빚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었고, 빚쟁이가 집에 있는 유일한 재산인 돼지 한 마리를 끌고 가는 것을 목격했던 아픈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를 읽다가, 빚 때문에 돼지를 뺏기던 슬픈 기억이 떠올라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때 교회는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라고 회상했습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위로받을 곳 없던 어린 시절, 교회는 송 대표님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송 대표님을 더욱 신앙에 깊이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명문대생의 고뇌, 그리고 신앙적 해답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오히려 신앙에 대한 깊은 갈등과 고민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고민이었나요? 명문대생이 된 송 대표님은, 두 가지 차원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군부독재라는 시대적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신데, 왜 이 땅에 불의와 고통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전두환 군부독재는 극에 달했고, 많은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희생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역사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라고 하는데, 왜 이 땅에 독재와 불의가 존재하는가? 왜 우리 친구들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희생당해야 하는가? 기독교인으로서 시대의 문제에 대해 왜 답을 주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맴돌았습니다.

두 번째 고민은, 개인적인 진로 문제였습니다. 교사가 되기 싫었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교대에 진학했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교수가 되는 것을 꿈꿨지만, 지도교수와의 갈등으로 좌절되었습니다.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지도교수와 뜻이 맞지 않아 대학원에 남아있을 수 없었습니다. 교직은 원치 않았지만,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습니다.” 라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이처럼 송 대표님은 시대적 아픔과 개인적인 진로 고민 속에서 방황하며 힘든 대학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신앙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손봉호 교수님을 중심으로 한 개혁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접하면서, ‘기독교인은 전도와 구제뿐 아니라,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뿐 아니라, 고아와 과부를 만드는 불의한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 것 또한 기독교인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손봉호 교수님을 통해, 기독교인이 세상의 불의에 눈감지 않고, 적극적으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만드는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도 기독교인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송 대표님을 사회 참여 운동으로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진로 고민 역시, 신앙 안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교수가 되지 못하고 원치 않던 교사가 되었지만, ‘교사로서 십자가를 지고 헌신하겠다’ 는 마음으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교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교사로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교사가 되기 싫었지만, 교사로서 십자가를 지고 헌신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교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교사로서 살아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신앙적 결단은 송 대표님을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교사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대통령 선거 감시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기독교 청년 학생 2000여 명과 함께 선거 감시 운동을 펼쳤는데, 이는 당시 보수적인 기독교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회 참여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대통령 선거 감시 운동은, 기독교적으로 의미 있는 사회 참여 방식이면서, 불법적이지도 않은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2000여 명의 기독교 청년 학생들과 함께 선거 감시 운동을 펼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라고 회상했습니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기독교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한 것입니다.

크리스천 교사, 촌지와 불의에 맞서다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크리스천 교사로서 겪었던 어려움과 갈등은 무엇이었나요? 교사가 되었지만, 교직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은 송 대표님을 실망하게 했습니다. 특히 촌지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공립학교에서도 촌지 수수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많은 교사들이 촌지 수수에 대해 둔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교직 사회에 만연한 촌지 문화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공립학교에서도 촌지 수수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습니다.” 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송 대표님은 촌지를 받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동료 교사들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촌지를 받는 것은 쉬웠지만,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촌지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촌지를 받는 것은 쉽지만,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만약 촌지를 주시면, 학생을 통해 돌려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가정방문을 통해 학생들의 가정 환경을 직접 파악하고, 상담을 진행하는 등 새로운 교사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놀랍게도 촌지를 안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가정통신문 한 장으로 촌지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들은 가정통신문을 통해 촌지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촌지를 주는 대신 가정방문을 통해 자녀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가정통신문 한 장으로 촌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님들은 촌지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 가정방문을 통해 자녀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촌지를 안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송 대표님은 정의로운 교사의 길을 택했고, 그 결과 많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촌지보다 더 큰 문제는, 집단적인 촌지 강요 시스템, 즉 불법 찬조금 문제였습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영어 교재 채택 과정에서 출판사로부터 촌지를 받는 관행이 있었고, 불법 찬조금을 걷어 야간 자율 학습 강사 수당, 교장 촌지, 학교 운영비 등으로 사용하는 불법적인 시스템이 존재했습니다. “집단적인 촌지 시스템, 불법 찬조금 문제는 촌지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학교 전체가 불법적인 시스템에 연루되어 있었고, 개인의 힘으로는 저항하기 어려웠습니다.” 라고 당시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송 대표님은 불법 찬조금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동료 교사들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혼자 불법 찬조금 징수를 거부하자, 동료 교사들의 비난과 왕따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특히 부장 교사와의 갈등은 심각했습니다. 부장 교사는 불법 찬조금 징수를 강요하며 송 대표님을 압박했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려 했습니다. “부장 교사는 불법 찬조금 징수를 강요하며 저를 압박했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려 했습니다. 동료 교사들의 차가운 시선과 비난 속에서, 학교에서 혼자 고립되는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라고 당시 힘들었던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결국 불법 찬조금 문제로 인해, 교직 생활 첫 담임 생활은 파탄을 맞게 됩니다.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고, 학교에서 더 이상 정상적인 교사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불법 찬조금 문제로 인해, 교직 생활 첫 담임 생활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습니다.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고, 학교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정의를 지키려다 오히려 고립되는 현실은, 송 대표님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송 대표님은 신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전교조 교사 모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전교조의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사 모임 역시, 촌지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에 실망했습니다.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로운 교직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전교조도, 기독교사 모임도, 제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또 교사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외톨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송 대표님은 더욱 신앙에 의지하며 해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신앙적 돌파구, 그리고 교사 선교사의 길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갈등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나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송 대표님은 신앙에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1992년 8월, 선교한국 집회에 참석했다가 강렬한 성령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집회 강사는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선교사로 바치고자 하는 사람은 단상으로 나오라.” 고 외쳤고, 송 대표님은 고민 끝에 단상으로 나아갔습니다. “선교한국 집회에서, 하나님의 강렬한 임재와 영광을 체험했습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야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라고 당시 감동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그 순간, ‘학교가 선교지’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 선교를 외치는 강사의 메시지를 듣고, ‘내가 있는 학교가 바로 선교지다. 교사로서 학교에서 선교사의 삶을 살아야겠다’ 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앙아시아 선교가 아니라, 내가 있는 학교가 바로 선교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사로서 학교에서 선교사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교사로서의 소명을 새롭게 발견하고, 교직을 십자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선교한국 집회에서 4가지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첫째, 클래식 테이프 100개를 버리겠다. 클래식 음악 감상을 좋아했지만,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 우상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둘째, 부장 교사에게 용서를 구하겠다. 갈등 관계에 있던 부장 교사에게 먼저 사과하고 화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교사를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교사 선교사로 헌신하겠다.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넷째, 기독교사 공동체를 만들거나 찾아나서겠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교직 사회의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기독교사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선교한국 집회에서 4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클래식 테이프를 버리고, 부장 교사에게 용서를 구하고, 교사 선교사로 헌신하고, 기독교사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4가지 결심은 송 대표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신앙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집회 후, 즉시 4가지 결심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클래식 테이프를 후배에게 모두 나눠주고, 부장 교사에게 두 장 분량의 편지를 써서 사과하고 화해를 요청했습니다. 놀랍게도 부장 교사는 송 대표님의 진심을 받아들였고, 다시 예전처럼 편안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독교사 공동체를 찾아나서기 시작했고, 마침내 좋은교사운동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습니다. “선교한국 집회 후, 즉시 4가지 결심을 실천했습니다. 클래식 테이프를 버리고, 부장 교사에게 편지를 써서 화해를 요청하고, 기독교사 공동체를 찾아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기적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갔습니다.” 라고 회상했습니다. 신앙의 힘은 놀라웠습니다.

부장 교사에게 용서를 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었나요? 송 대표님은 편지를 통해 진심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편지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과 함께, 부장 교사가 좋아하는 포도주를 선물로 준비하여 진심을 전하려 노력했습니다. “직접 만나서 용서를 구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편지를 통해 진심을 전달하려 노력했습니다. 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과 함께, 부장 교사가 좋아하는 포도주를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입니다. 송 대표님의 진심은 부장 교사의 마음을 움직였고, 놀라운 화해로 이어졌습니다.

선교한국 집회를 통해 교사에 대한 소명을 다시 확인하고, 교사로서 행복을 찾았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선교한국 집회 이후, 송 대표님은 진정한 교사로 거듭났습니다. 과거에는 교사가 되기 싫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교사로 부르셨다’ 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선교한국 집회 이후, 교사에 대한 소명을 다시 확인하고, 진정한 교사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교사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억지로 하는 교사가 아니라, 기쁨으로 헌신하는 교사가 된 것입니다.

수업 방식에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과거에는 아이들의 행복에는 관심 없이, 오직 자신의 수업만 잘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행복한 수업’ 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영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쉽고 재미있는 영어 수업을 개발했고, 문법 용어 대신 ‘살덩어리’ ‘뼈다귀’ 와 같은 쉬운 용어를 사용하여 아이들이 영어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교사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수업을 만들기 위해, 수업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영어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쉽고 재미있는 영어 수업을 개발했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이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진정한 스승의 모습입니다.

가정방문을 통해 학생들의 어려움을 직접 확인하면서, 학생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정방문을 통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깨어진 가정에서 고통받는 학생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가정방문을 통해, 학생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직접 느끼고, 학생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학생들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참된 교사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교육 운동가로, 그리고 사교육 없는 세상

교사로서 행복했지만, 결국 교육 운동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교사로서 보람과 행복을 느꼈지만, 학교 시스템 안에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고 합니다. 좋은교사운동을 통해 촌지 안 받기 운동, 가정방문 운동 등 다양한 캠페인을 펼쳤지만, 근본적인 입시 경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학교 안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사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입시 경쟁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라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결국 2003년, 13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교사로서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가시밭길을 자처한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만류했지만,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는 절박한 심정으로 교육 운동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모두 만류했습니다. 안정적인 교사직을 왜 그만두려 하느냐,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제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정의감이 송 대표님을 교육 운동가의 길로 이끈 것입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설립하고, 입시 경쟁과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입시 제도 개선 운동, 사교육 시장 감시 운동, 학벌 사회 타파 운동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0년간 정말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입시 제도 개선, 사교육 시장 감시, 학벌 사회 타파 등 다양한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지난 10년을 회고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열정으로, 사교육 없는 세상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입시 경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없는 세상, 사교육비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희 단체의 목표는, 입시 경쟁 때문에 죽어가는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없는 세상, 사교육비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부모님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라고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꿈은 원대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송 대표님은 “만약 사교육 없는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면, 이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단언했습니다. 확고한 믿음과 긍정적인 태도는, 사교육 문제 해결 운동을 지속하는 힘입니다.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 제도 개선과 함께 기업 채용 문화 개선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입시 경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학벌 중심 사회에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학벌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시 경쟁의 근본 원인은 학벌 중심 사회에 있습니다.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학벌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사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교육계와 기업계의 협력이 사교육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사교육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담은 소책자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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