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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자기 기만 탈출법: 좁은 길로 영생 얻는 3가지 핵심 진리

요약

영적 자기 기만 경고: 좁은 길만이 영생이다

리메이크(52) - 자기 기만의 함정에서 벗어나십시오: 자신을 속이는 세 가지 방법과 극복 방안

오늘날 우리는 자기 기만이라는 깊고 어두운 함정에 대해 깊이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마치 1955년 출간된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의 주인공 리플리처럼,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기만에 빠져 현실을 부정하고 거짓된 세상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고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의 세상을 진실이라고 굳게 믿으며, 그 거짓된 믿음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입니다. 문제는 리플리 증후군 환자 자신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심각성에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영적인 영역에서도 이러한 자기 기만, 즉 영적 리플리 증후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 상당수도 이미 영적 리플리 증후군에 감염되었는지 모릅니다. 특히 설교자나 가르치는 자는 더욱 위험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야고보서 3:1) 경고했습니다. 가르치는 자가 자기 기만에 빠져 행함이 없는 지식만 전달한다면, 듣는 이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이끄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W. 토저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의 가장 큰 약점은 그리스도를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라 지적했습니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며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 자기 기만의 가장 심각한 형태입니다.

자기 기만의 함정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닙니다. 첫째,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결국 파멸, 즉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넓은 길을 걸으면서도 천국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걷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 또 있을까요? 덫에 걸린 짐승이 당장의 위험을 느끼지 못하듯, 자기 기만에 빠진 사람은 서서히 영적으로 죽어갑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자기 기만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기 기만에 빠지기 쉬울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속이는 세 가지 자기 기만과 그 극복 방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무자비한 자기 기만

첫 번째 자기 기만은 바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무자비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 속의 티끌만 보며 비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3) 라고 질책하셨습니다. 비판은 또 다른 비판을 낳고,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과 같습니다.

우리는 비판의 이면에 숨겨진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비판하는 마음 속에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오만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곧 자신을 높이는 행위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입니다. 큰 아들이 동생을 비난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 (누가복음 15:28-30) 은 바로 우리 안에 숨겨진 교만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예시입니다.

비판은 죄악일 뿐 아니라, 비판받을 빌미를 제공하는 것 또한 죄악입니다. 골로새서 2장 16절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판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판하는 세상의 잘못도 있지만, 비판받을 빌미를 제공한 우리 자신의 책임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비판자가 아닌 책망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책망은 반드시 자기 성찰, 즉 "내 눈 속의 들보를 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5) 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왕의 잘못을 서슴없이 책망했지만, 그의 삶은 그 누구보다 깨끗하고 정결했습니다. 책망에는 반드시 책망하는 자의 의로움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눈에는 들보가 가득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을 지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음란, 거짓, 탐욕 등 세상의 죄악을 책망하기 전에, 우리 안에 있는 동일한 죄악부터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자기 기만에서 벗어나, 먼저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정결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2. 영원한 가치를 포기하고 이 땅에 집착하는 자기 기만

두 번째 자기 기만은 "영원하고 가치 있는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썩어질 이 땅의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마태복음 7:6) 경고하셨습니다. 개에게 값비싼 음식을 주고, 돼지에게 진주를 준다고 해서 그 가치를 알 수 있을까요? 개는 귀한 음식을 밟고 짖어댈 것이고, 돼지는 진주 대신 구정물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

영원한 가치, 즉 천국과 영생을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듯 함부로 대하는 어리석은 자가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경홀히 여기는 자기 기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짐 엘리어트는 순교 직전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짓이 아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순간의 안락과 안전을 포기하고 영원한 천국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머리로는 천국과 영생의 가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어떻습니까? 십자가의 도를 입으로만 외치고, 십자가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십자가와 아무 상관없는 자와 같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는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넓고 편안한 길을 선택하면서, 좁은 길을 걷고 있다고 착각하는 자기 기만에 빠져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모진 고문과 옥고를 겪으면서도 믿음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도 있었지만, 그는 더 나은 본향, 즉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모든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영원한 도성, 천국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땅의 썩어질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개와 돼지처럼 눈앞의 썩어질 것만 쫓지 말고, 영원한 가치를 분별하여 그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달려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는 약속을 굳게 믿고, 천국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양평 찰떡 장인은 40년 동안 하루 18시간씩 찰떡 만들기에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찰떡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찰떡을 통해 얻는 보람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다면, 찰떡 장인처럼 천국을 향해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삶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천국을 1순위에 두고, 예수님을 1순위에 두고, 기도를 1순위에 두는 삶, 그것이 바로 자기 기만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비결입니다.

3. 넓은 문으로 가면서 좁은 문으로 착각하는 자기 기만

세 번째 자기 기만은 "넓은 문으로 가면서 스스로 좁은 문으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걸으면서도, 스스로 구원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걷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14) 경고하셨습니다. 넓은 길은 가기 편하고 쉽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멸망입니다. 좁은 길은 가기 힘들고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영생입니다.

주님께서는 왜 천국 가는 길을 좁은 문으로 설정하셨을까요? 넓은 문으로 가도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넓은 문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마치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처럼, 넓은 문은 세상의 욕심과 쾌락으로 가득 차 있어 천국으로 향하는 길과는 거리가 멉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돈 자체가 죄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넓은 길과 좁은 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두 길을 동시에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듯이, 넓은 길과 좁은 길을 겸하여 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말씀처럼, 우리는 오직 좁은 문, 좁은 길을 택해야 합니다.

넓은 길을 걷는 자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며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갑니다. 좁은 길을 걷는 자는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넓은 길을 걸으면서 좁은 길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질문하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냉철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떠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완전히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선악과를 쳐다보지도 않고,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넓은 문, 넓은 길을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좁은 문, 좁은 길, 즉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넓은 길에는 멸망이 기다리고 있고, 좁은 길에는 영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요한일서 2장 15절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경고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결론: 자기 기만의 함정에서 벗어나 십자가의 좁은 길로 나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자기 기만에 속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미 우리 중 상당수가 자기 기만의 함정에 빠져 헤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자기 기만의 함정에서 벗어나 십자가의 좁은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세 가지 자기 기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무자비한 자기 기만. 둘째, 영원한 가치를 포기하고 이 땅에 집착하는 자기 기만. 셋째, 넓은 문으로 가면서 좁은 문으로 착각하는 자기 기만. 이러한 자기 기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는 교만에서 벗어나,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욕심과 쾌락을 좇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넓고 편안한 길을 택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십자가의 좁은 길,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생사가 달린 문제, 영원한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자기 기만의 함정에서 탈출하십시오. 세상에서 탈출하십시오. 자기 자신으로부터 탈출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든 것에서 도망하십시오. 그리고 십자가를 향해, 천국을 향해, 영생을 향해 힘차게 달려나가십시오.

이제 우리 모두 십자가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너무나 어리석고 연약하여 자기 기만에 속기 쉽습니다. 부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시어 자기 기만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이 아닌, 영생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택하게 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며 주님을 따라가는 참된 제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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