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만 바라보라 바라봄의 법칙과 작은 예수 삶의 변화
예수님만 바라보라: 바라봄의 법칙
## 예수님만 바라보는 삶: 바라봄의 법칙과 작은 예수
오늘 우리는 박한수 목사님의 설교, "예수님만, 바라보라!"를 통해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깊이 묵상하고, 이를 우리 삶에 적용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여정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설교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핵심 노하우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20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친절하고 자세하게 풀어내어 독자 여러분에게 깊은 영적 통찰과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특히, 딱딱한 요약이나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 설교의 핵심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독자 스스로 예수님을 더욱 깊이 바라보도록 이끄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설교 초반, 박 목사님은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현상을 언급하며 '바라봄의 법칙'을 소개합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서로를 깊이 생각하는 부부는 외모뿐 아니라 성격, 가치관까지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느낌적인 현상이 아니라, 2만 쌍 이상의 부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합니다. (자료 출처 필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면, 무의식적으로 그 대상을 닮아가게 된다는 심오한 원리가 바로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정치인들의 얼굴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치적으로 변해가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권력, 경쟁, 모략 등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정치인들의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내면세계가 반영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인격을 형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얼굴은 영혼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얼굴은 단순히 육체적인 껍데기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 즉 내면세계를 비추는 창과 같습니다. 박 목사님은 '얼굴'이라는 단어가 '얼'과 '굴'의 합성어, 즉 '영혼의 꼴'이라는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우리의 영혼과 얼굴, 더 나아가 인생 전체를 빚어가는 핵심 요소임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묵상한다면, 우리의 영혼과 삶 또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닮아가지 않겠습니까? 이는 마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내면에 심겨진 예수 그리스도라는 씨앗이 '바라봄'이라는 햇빛과 양분을 통해 서서히 자라나, 마침내 우리 삶 속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열매를 맺게 되는 과정과 같습니다.
## 예수님만 바라보기: 삶의 우선순위 재점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성가를 부르고,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지만, 정작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데는 소홀한 경우가 많습니다. 박 목사님은 우리가 예배당에 발걸음 하기까지, 또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과연 얼마나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바라보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혹은 집을 나서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합니까? 오늘 해야 할 일, 인간관계, 재정 문제, 자녀 걱정 등 세상적인 염려와 계획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이러한 세상적인 문제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고, 정작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기도 순서를 맡은 성도가 기도문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다가, 혹은 목회자가 설교 준비에 몰두하다가 정작 기도와 설교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레시피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정작 음식을 먹고 즐거워할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봉사를 한다고 해도, 그 중심에 예수님이 없다면, 그것은 껍데기뿐인 종교 행위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준수나 십일조와 같은 율법 조항에 얽매여, 율법의 근본 정신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것처럼, 우리 또한 신앙생활의 형식에 치우쳐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놓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심지어 소중한 자녀나 행복한 가정도 예수님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자녀를 끔찍이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은 당연하지만, 자녀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면 자녀의 작은 문제에도 일희일비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됩니다. 목회가 아무리 숭고한 사명이라도, 목회 성공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면 목회에 실패했을 때 깊은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소중히 여길 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마음속에 다른 우상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하고, 예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단순히 이삭을 희생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는지 시험하신 사건입니다. (창세기 22장)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아들, 네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로 바쳐라." (창세기 22:2, 새번역)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시험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제단에 바치려 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순종을 인정하시고, 이삭을 대신할 숫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욕심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만을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 바라봄의 법칙의 역설: 닮음과 변화
'바라봄의 법칙'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박 목사님은 야당 시절 여당을 맹렬히 비판하던 정치 세력이 집권 여당이 된 후, 과거에 비판했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현실을 예시로 듭니다. 이는 마치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비판하다가, 어느새 거울 속 모습과 똑 닮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386세대가 군부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외쳤지만, 정작 자신들이 권력을 잡은 후 과거 독재 정권과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을 보이는 것 또한 '바라봄의 법칙'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부정적인 대상을 바라보고 비판하고 싸우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부정적인 대상을 닮아갈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동성애 합법화나 차별금지법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반대 운동을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운동은 분명히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지나치게 이러한 문제에만 매몰되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주장하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반대하는 대상과 닮아갈 수 있습니다. 이단과 싸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단을 지나치게 경계하고 비판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믿음이 경직되고 율법주의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맹수를 잡기 위해 맹수를 쫓던 사냥꾼이, 맹수를 너무 오래 쫓다 보니 자신도 맹수처럼 사나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라!" 세상의 헛된 가치관이나 부정적인 대상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때, 우리는 진정으로 변화되고 성숙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이 마치 좁은 길을 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좁은 길 끝에는 영원한 생명과 참된 기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만 바라볼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 예수님만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 삶의 기준과 방향 설정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말씀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박 목사님은 예수님만 바라본다는 것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나 부활 사건을 묵상하는 것을 넘어, 예수님의 삶 전체, 즉 그분의 생각, 말씀, 행동, 가치관, 삶의 방식 등을 우리의 삶의 기준으로 삼고, 그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치 나침반을 보고 방향을 설정하듯이, 예수님이라는 영원한 기준점을 향해 우리의 삶의 방향을 맞추어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종종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릅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감정적인 반응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를 묵상하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의 방식에 따라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는 마치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손전등을 켜서 앞길을 밝히듯이, 예수님의 말씀과 삶이라는 빛을 비추어 우리의 삶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받는 것과 같습니다.
박 목사님은 상담 요청을 했던 성도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의 실제적인 의미를 설명합니다. 상담을 하러 온 성도 옆에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실제로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항상 우리 곁에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모든 생각과 행동, 말과 결정 속에서 예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때로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죄성과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 같아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사랑의 눈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부모님의 따뜻한 시선이 자녀에게는 안전과 사랑의 울타리가 되어주듯이, 예수님의 시선 또한 우리를 죄와 유혹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참된 평안과 기쁨으로 인도하시는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 예수님 바라봄의 깊이: 궁예와 마라도나의 교훈
세상적인 성공이나 명예를 추구하며 특정 대상에 몰입하는 것은 오히려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 인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 목사님은 드라마 '태조왕건'의 궁예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영철 씨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김영철 씨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궁예 역할에 몰입한 나머지,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심지어 시력까지 잃었다고 합니다. 이는 마치 뜨거운 냄비에 손을 너무 오래 담그면 화상을 입듯이, 특정 대상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축구 영웅 마라도나의 삶 또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마라도나는 뛰어난 재능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를 얻었지만, 지나친 인기와 언론의 관심, 사생활 침해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마약에 손을 대고 인생을 망쳤습니다. 이는 마치 빛이 너무 강하면 눈이 멀듯이, 세상적인 성공과 명예가 지나치면 오히려 우리 영혼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르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아무리 지나쳐도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이는 마치 햇빛은 아무리 많이 쬐어도 우리 몸에 비타민 D를 공급해주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에 생명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목표를 위해 집착하고 몰입하면, 결국 상처와 후유증만 남게 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세상적인 성공은 덧없고 불안정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얻는 평안과 기쁨은 영원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치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영원한 가치를 지닌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 작은 예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박 목사님은 "예수와(Jesus化)"라는 다소 파격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즉 '작은 예수'가 되는 꿈을 꿀 것을 도전합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의 흉내를 내거나 겉모습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 성품과 인격을 본받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치 조각가가 돌덩이를 깎아 조각 작품을 만들듯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삶을 다듬고 변화시켜, 예수 그리스도라는 걸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에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이나 현재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우리를 예수님의 형상으로 빚어가실 것입니다. 이는 마치 씨앗이 스스로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햇빛과 물, 흙의 양분 등 외부적인 요소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듯이, 우리 또한 성령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제자왕성교회, 더 나아가 제자교회를 꿈꾸는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말뿐인 제자가 아니라,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기 위해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가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기량을 향상시키듯이, 우리 또한 영적인 훈련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히브리서 12장 2절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개역개정). 우리는 믿음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믿음의 창시자이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시작하고 성장시키는 모든 과정 또한 예수님께서 주도하십니다.
'믿음의 주요'라는 표현은 우리가 오직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세상에는 믿을 대상이 많지만, 진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이나 환경, 물질이나 성공과 같은 덧없는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변치 않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닻을 배에 단단히 고정시키듯이, 우리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굳게 고정시켜, 세상의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완전하게 변화시키시고 성숙하게 하시는 분임을 선언합니다. 세상의 학문이나 철학, 사상으로는 우리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파괴된 인생이라도, 복음을 만나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엉망진창인 삶이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상처를 치유하시고, 새로운 삶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날마다 그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지적인 동의나 감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을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입니다. 박 목사님은 '믿음'을 뜻하는 라틴어 'Credo'가 '심장을 꺼내 바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심장을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입니다. 우리가 심장을 드릴 만큼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풍성한 은혜와 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구를 가장 많이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가장 많이 묵상하고 있습니까? 누구처럼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의 시선을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봅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닮아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의지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바라봄의 법칙'의 놀라운 영적 원리를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상의 헛된 것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묵상하며, 그분을 닮아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눈을 뜰 때나 잠들 때나, 길을 갈 때나 멈춰 설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께 묻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시오니,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고,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는 것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작은 예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