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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승리: 다윗의 기도로 배우는 거룩한 삶과 믿음의 비결

요약

죄는 필연인가? 다윗의 기도로 깨닫는 승리의 삶

리메이크 (15) - 죄짓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인가? (2020-11-29 주일예배) - 박한수 목사 상세 내용 정리 및 노하우 소개

우리는 과연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할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우리는 종종 "죄를 짓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이상하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우리는 기도할 때 습관적으로 "주님, 오늘도 넘어졌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를 미워했습니다. 오늘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알고도, 모르고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와 같은 기도를 반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도가 마치 일상처럼 굳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기도를 언제까지 드려야 할까요? 만약 30년, 50년 동안 계속해서 "주님, 넘어졌습니다" 라는 기도만 반복한다면 주님께서는 과연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자녀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엄마,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처음에는 기특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50년 동안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며 용서를 구한다면 부모는 얼마나 괴로울까요?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괴로움을 드리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믿음의 방향을 전환하여, 죄짓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듭나고 말씀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오늘 시편 17편을 통해 다윗의 놀라운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은 흠이 많고 큰 죄를 지었던 사람이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절정에 달했을 때 드린 기도를 보여줍니다. 시편 17편 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시며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1절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와, 아직 해보지 못한 기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울부짖음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라는 기도는 힘들 때, 인생의 고난 속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하지만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라는 기도는 쉽게 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를 드려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러한 기도는 웬만한 믿음으로는 감히 시도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누가 대표 기도 시간에 저렇게 기도한다면 은혜를 받기보다 시험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야, 저 사람 너무 교만하잖아?"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감히 하나님께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의 기도" 를 드리고 있습니다. 다윗이 정말 교만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랬다면 그의 기도가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다윗의 기도는, 그의 진실된 영적 상태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이어서 보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나를 판단해 달라" 고 담대하게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자신을 판단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두려워서 감히 시도조차 못 할 것입니다. 판단해 달라는 기도는 잘못이 드러날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에 쉽게 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3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감찰하시고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밤에 찾아와 마음을 시험하고, 낱낱이 감찰하여 흠을 찾아보라고 간구합니다. 심지어 흠을 찾지 못했다고 단언합니다. 밤은 은밀한 시간이며, 혼자 있을 때는 위선 없이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다윗은 밤에, 은밀한 곳에서 조차 흠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의 마음과 영적 상태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기도에서 은혜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다윗의 기도가 거짓된 자기 자랑이었다면 우리는 거부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기도가 우리에게 도전소망을 주는 이유는,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같이 흠 많고 부족한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정결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이 절정의 영적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이러한 믿음을 잃어버렸을까요? 끊임없이 죄를 고백하는 기도만 반복하며, 죄에서 승리하는 삶은 꿈조차 꾸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계시록 21장 8절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아니하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점술가들,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지옥 불에 던져진다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자들'은 단순히 소심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핍박이 두려워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역사 속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핍박으로 인해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 은 당연히 심판을 받습니다. '흉악한 자들' 의 기준은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악한 자는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살인자들' 은 실제로 사람을 죽인 자들을 포함하며, '음행하는 자들' 역시 심판을 받습니다. '점술가들''우상 숭배자들' 은 명백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죄악들과 함께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이 동일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우리가 너무나 쉽게, 자주 짓는 죄입니다. 아마 오늘 하루 동안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 이라는 변명으로 포장하지만, 성경은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 이 지옥 불에 던져진다고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이 말씀은 율법주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경종입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이러한 메시지가 희미해진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죄에 대한 경각심 없이, '적당히 죄짓고 회개하면 괜찮다' 는 안일한 태도가 만연합니다. 교회 안에서 죄를 짓고도 제대로 된 회개나 징계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가 큰 잘못을 저질러도 다른 교회에서 버젓이 목회를 하는 현실은, 죄에 대한 무감각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풍조 속에서, 교회는 세상과 다를 바 없이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거짓말은 인간이 가장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죄 중 하나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가볍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에누리 없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거룩요구하시는 분입니다. 거짓말하면 지옥 간다는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초대하는 하나님의 절박한 외침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거짓 없는 삶, 흠 없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시편 17편의 놀라운 기도는, 다윗의 특별한 영적 비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그렇게 살았다면, 십자가 은혜를 입은 우리 역시 죄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죄짓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짓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믿음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소망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죄 없이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다윗은 시편 16편 8절에서 그 비결을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라는 고백이 핵심입니다. 주님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갈 때, 죄에서 흔들리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항상 주님을 의식하며 살았기 때문에 흠 없이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역시 다윗의 비결을 배우면,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에 갈 때와, 편안한 옷차림으로 집에서 쉴 때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다릅니까?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운전할 때와, 교인들과 함께 차를 탈 때 운전 습관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사람을 의식할 때 행동이 달라지듯이, 하물며 하나님을 의식할 때는 얼마나 더 큰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항상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고 지키는 길입니다.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중국에서 예수 가족 공동체라는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공산화 이후 지하로 숨어들었지만, 핍박 속에서도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서양 선교사들과 함께 생활했던 한 선교사는, 예수 가족 공동체의 놀라운 간증을 책에 기록했습니다. 중국 관료들이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포도밭을 보고 놀랐습니다. 탐스러운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있었지만, 도둑이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공산 치하에서는 도둑질이 만연했고, 심지어 총살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가족 공동체의 포도밭은 지키는 사람 없이도 안전했습니다.

저녁 집회 후, 특이한 순서가 진행되었습니다. 노인들이 파리채로 잡은 파리를 세어, 가장 많이 잡은 사람에게 상을 주는 시상이었습니다. 관료는 파리 숫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의아해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사람들은 서로를 믿고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관료는 이러한 정직함신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죄 없는 삶이 가능할까요? 예수 가족 공동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항상 앞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풍요로움정직함, 신뢰가 넘치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법과 감시 없이도 서로를 속이거나 다투는 일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문제가 많은 집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 성추문, 돈 문제 등 부정적인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정말 그래야 할까요? 성도는 죄를 짓고 사는 것이 당연할까요? 목사도 사람이니까 범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날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죄악 된 삶을 청산하고, 죄짓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를 가까이하면 점점 더 죄에 물들게 됩니다. 모래사장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모래가 몸에 묻어나듯이, 죄를 가까이하면 자신도 모르게 죄인이 되어버립니다. 악한 생각, 악한 말, 악한 행동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음담패설을 즐기고 농담처럼 내뱉는 행위는, 결국 자신을 더럽히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성경의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극도로 혐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죄를 미워하셨다는 사실이 증명합니다. 잠언 6장 16절에서 19절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곱 가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입니다.

첫째, 교만한 눈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며, 자신을 높입니다. 눈빛으로 교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결코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꺾으시고 겸손하게 만드신 후에야 사용하십니다. 둘째, 거짓된 혀 역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거짓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사람들과의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셋째,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은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해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손가락으로 사람을 죽이는 시대에, 우리는 악플비방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함부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행위를 삼가야 합니다.

넷째,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계교는 술수속임수를 의미하며, 하나님께서는 악한 동기로 시작된 일을 결코 축복하지 않으십니다. 악한 계획은 결국 재앙을 불러올 뿐입니다. 우리는 악한 꾀 대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섯째,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은 죄를 짓는 데 민첩한 모습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죄는 매우 빠르고 유혹적이지만, 우리는 죄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여섯째,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은 거짓 증거로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일곱째,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는 공동체를 파괴하고 불화를 일으키는 자입니다. 이간질은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서로를 불신하게 만듭니다. 의심은 마음속에 지옥을 만드는 씨앗입니다. 우리는 이간질 대신 화평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문제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결코 정상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성도는 죄를 안 짓고 살아야 하며, 목사 역시 범죄하지 않도록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핑계 삼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짓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는 죄에서 승리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죄와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삶을 살아가도록 결단합시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짓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안에서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성령님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능력 주시어 죄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게 하소서. 코로나보다 죄가 더 무섭고, 이 땅에서 망하는 것보다 지옥이 더 무서움을 깨닫게 하소서.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운 줄 알게 하소서. 이 믿음을 굳건하게 붙잡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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