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건너뛰기

내 십자가는 주님의 십자가일까? 예수님과 제자의 삶 본질 강해

요약

주님 십자가인가, 나의 십자가인가?

리메이크 (4) - 내 십자가는 주님의 십자가일까? 강해 설교 상세 정리

오늘, 우리 시대에 던지는 깊고 묵직한 메시지, "내 십자가는 과연 주님의 십자가일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박한수 목사님의 설교, "리메이크 (4) - 내 십자가는 주님의 십자가일까?" (2020-09-13 주일예배)를 통해, 피상적인 신앙을 넘어 본질을 꿰뚫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위기' 경영 철학부터, 500억 원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 그리고 2000년 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질문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따라가며 신앙의 본질을 탐구하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깊이 있는 묵상을 함께 해 보겠습니다.

1. 이건희 회장의 '위기' 경영, 그리고 우리 신앙의 '위기'

대한민국 경제계를 이끌었던 故 이건희 회장. 그는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도 "위기"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잘 나갈 때조차 위기를 언급하며 끊임없이 혁신을 강조했는데요, 이는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미국 시장 시찰 당시, 먼지 쌓인 채 구석에 방치된 삼성 제품들을 보며 그는 "이래 가지고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 며 질책했고, 포항 사업장에서 500억 원 상당의 애니콜 휴대폰을 불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하며 품질 제일주의를 선언했습니다. 이 사건은 삼성의 DNA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애니콜 신화를 넘어 갤럭시라는 세계적인 브랜드 탄생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위기' 경영은, 현재 우리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겉으로는 문제 없어 보이는 듯하지만, 실상은 심각한 영적 위기에 직면해 있을 수 있습니다. 피상적인 믿음, 껍데기뿐인 신앙생활, 세상과 타협하는 변질된 복음 등, 곳곳에서 위기의 징후가 감지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믿음이나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본질, 즉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위기" 라는 말은, 곧 "본질" 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경고이자 기회인 것입니다. 하나의 우물을 깊이 파서 생수를 얻듯,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복음의 본질에 집중할 때, 우리는 영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습니다.

2. 피상적인 앎 vs. 본질적인 앎: 가이사랴 빌립보의 질문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의 하나" 라는 세상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단순한 선지자 정도로 생각했거나,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정답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고백은 입술만의 고백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면, 십자가를 지시려는 예수님을 막아서거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베드로와 같은 '앎'의 함정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 수없이 듣고 말하는 단어들이지만, 과연 그 본질적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 는 말을 쉽게 하지만,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목사가 된다" 는 말을 쉽게 하지만, 헌신과 희생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루마니아의 요셉 톤 목사님 이야기처럼, 진정한 제자의 길핍박과 고난을 각오해야 하는 좁은 길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옛사람은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 진정한 앎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3. 육체로 아는 앎 vs. 영으로 아는 앎: 잘못된 앎의 두 가지 유형

예수님을 '안다'고 하지만, 실상은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잘못된 앎을 "육체대로 아는 것" 이라고 표현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6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육체로 아는 앎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피상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독교 창시자, 4대 성인 중 하나 정도로 여기거나, 십자가를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이 육체로 아는 앎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러한 앎은 진정한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도 못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아는 것은, 베드로의 고백처럼, 그분을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영적인 앎입니다.

또 다른 유형의 잘못된 앎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분리된 앎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온전한 앎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일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따로 노는 모순이 자주 발생합니다. 성경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거나,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지만 으로는 염려와 불신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은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는, 지식만 있고 믿음행동이 없는 죽은 앎은, 우리를 영적 침체모순 속에 가두는 것입니다.

4. 앎에서 믿음으로, 믿음에서 삶으로: 다윗의 믿음

앎이 믿음으로, 믿음이 삶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줄타기 묘기를 보여준 광대의 이야기처럼, 입술로는 '믿습니다' 라고 쉽게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를 맡기라고 했을 때 망설이는 모습은,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설교를 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설교가 아닐 수 있고, 예배를 드리지만 주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아닐 수 있으며, 십자가를 말하지만 주님이 지셨던 십자가와는 거리가 먼 십자가를 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열심히 하지만, 정작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훈련만 받는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앎이 믿음으로, 믿음이 삶으로 전환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하나님을 알았고, 제사도 드렸지만, 골리앗의 조롱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짓밟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나는 네가 모욕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외치며 물맷돌을 던져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 앎이 믿음으로 연결된 산 지식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앎이 믿음으로 옮겨질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앎이 믿음의 삶으로 전환될 때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시작하십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5.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제자의 길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라는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비로소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비밀'을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은 말씀합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 부인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 은, 단순히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자존감을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굽히지 않고, 맹렬하게 반대하는 것" 에 가깝습니다. 세상의 가치관, 욕망, 자아강력하게 부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결단자기 부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신격화되려 했을 때, 옷을 찢으며 강하게 부정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나' 자신, 즉 자아, 욕망, 이기심입니다. 이러한 '나'를 부인할 때, 비로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 는, 단순히 일상의 고난이나 봉사,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2000년 전 십자가가장 끔찍한 사형틀, 죽음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 역시, 죽음을 각오하는 헌신,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김남준 목사님은 신학생들에게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자의 길은, 세상적인 성공과 안락함을 보장하는 길이 아니라, 고난과 희생, 자기 부인의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양보, 희생, 봉사 정도가 아니라, 실제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살기 위해 십자가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역설적인 길이 바로 제자의 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살고 싶었지만, 결국 십자가를 선택했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일지라도, 믿음으로 지는 십자가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허락하신 유일한 특권이자 영광스러운 훈장입니다. 튼튼하고 힘센 말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듯,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십자가, 죽음의 십자가를 맡기십니다.

6. 텅 빈 십자가 vs. 주님의 십자가: 본질로 돌아가라

우리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과연 2000년 전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며 지셨던 그 십자가와 같은 '주님의 십자가'일까요? 혹시 텅 비어버린, 의미 없는 십자가를 지고 혼자 착각하며 십자가, 십자가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지막 순간,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우리의 십자가를 점검하고,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그리고 제자의 삶,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피상적인 앎을 버리고, 본질적인 앎으로 나아가, 앎에서 믿음으로, 믿음에서 삶으로 변화되는 진정한 리메이크를 이루어 갑시다. 주님의 십자가온전히 지고, 제자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내 십자가는 주님의 십자가일까?' 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본질로 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피상적인 앎을 넘어 본질적인 앎으로, 입술만의 고백을 넘어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으로 나아가, 진정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는 십자가가, 텅 빈 십자가가 아닌, 주님께서 지셨던 그 십자가본질적으로 연결된 십자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1. 한 고대 문서 이야기

2.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4.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ChatGPT,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구독료 80% 할인 받는 법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