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그리스도인의 증거와 특징, 요한일서 5장 설명 박한수 목사 설교
진짜 그리스도인의 증거
리메이크(54) -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1) (2021-09-05 주일예배) - 박한수 목사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요?
명절이 다가오면 친척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요, 자랑할 것부터 아프고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저와 같은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면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예수님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사촌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가끔씩 친척 중에 전도사님이나 집사님이 나오기도 해서 무척 반가운 마음입니다.
예전에는 명절이 되면 어르신들이 살아계셔서 큰집에 모이는 것이 당연했지만, 요즘은 어르신들이 한두 분씩 돌아가시고 바쁘다는 핑계로 큰집에 잘 안 가게 됩니다. 오랜만에 큰집에 가면 사촌 형님들이 저를 보면 꼭 이렇게 묻습니다. "교회가 잘 되나?" 안 믿는 친척들이 보기에는 제가 그저 교회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보일 뿐입니다. 교회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저는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질문이 쏟아집니다. "목회는 힘들지 않아?", "교회 사람들은 좀 착해?" 저는 속으로 '왜 이런 질문들을 할까?' 생각합니다. 또 어떤 형님은 "아이고, 목사님은 정년까지 70세까지 보장되니 좋겠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는 있어서 목사 되기를 잘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마치 안정적인 직장이나 얻은 것처럼 말이죠. 저는 그저 웃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밥만 먹고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저분들 눈에는 내가 그저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는구나. 그리스도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건가?' 여러분 중에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상황과 형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목사이지만, 어떤 분들은 직장에서 수십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책임을 맡고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오랜 기간 묵묵히 회사를 지켜온 직원일 수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넉넉한 형편에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장 내일이 막막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러한 세상적인 것들은 앞으로 수십 년 후면 모두 다 끝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이며,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일까요? 이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0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증거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학생의 '증거'를 드러냅니다. 굳이 '나 학생이야!'라고 외치지 않아도, 학생에게서는 학생의 냄새, 즉 증거가 나는 것입니다. 만약 학생인데 학생의 증거가 없다면,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나이는 분명 학생인데, 행동은 학생 같지 않다면 학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짜 학생은 학생의 '냄새'가 납니다. 첫째, 얼굴이 어둡습니다. 왜냐하면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짜증이 많고, 괜히 기둥을 발로 툭툭 차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학생은 굳이 '나 학생이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학생의 증거를 통해 저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메고 다니는 대학생 가방, 그것이 학생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가 굳이 '나 예수 믿어!'라고 떠벌리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직장이나 가정, 어떤 모임에서든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이 저절로 드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억지로 '나 예수 믿어'라고 외치며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일상생활을 살아가지만, 우리 안에는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마치 몸수색을 하면 감출 수 없는 소지품들이 드러나듯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본질'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위기 상황에 처하면, 그 사람의 중심이 무엇인지,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막상 예수님이 잡히시자 "나는 예수와 상관 없다" 며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위기의 순간, 그의 '중심'이 드러난 것입니다. 평소에는 사장님께 온갖 아첨을 하며 "사장님, 사장님!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 라고 충성을 맹세하던 사람이, 막상 월급날 "당신은 해고야!" 라는 통보를 받자, 다음 날 짐을 싸서 회사를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다른 회사가 나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중심', 즉 돈에 가치를 두는 사람의 실체인 것입니다.
우리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세미나와 회개 기도회를 통해 과거를 청산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아픔입니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 당시 교단의 목사님들은 1938년 신사참배를 결의했습니다. 1938년 9월 10일, 당시 총회장이었던 박관준 목사를 비롯한 목사들은 신사참배를 결의했고, 전국 27개 노회 목사님들은 평양 신사에 올라가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목사님들이 신사참배를 하자 성도들은 항의 한마디 못하고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심지어 예배당에 들어갈 때 일본 천황이 있는 동쪽 방향을 향해 절하고 예배를 드리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습니다. 일부 목사들은 한강 백사장에 모여 일제 신사에서 명령한 대로 세례를 다시 받는 황당한 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례를 받으면서 "하늘 아래 천황 폐하보다 더 높으신 분은 없습니다"라고 맹세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누구나 흉내낼 수 있습니다. 교회 출석, 철야 기도, 헌금 생활 등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증거 ' 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겉으로 드러나는 증거들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진짜 증거"입니다.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순교"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특별히 믿음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천국"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순교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저는 오히려 '고생 덜하고 빨리 천국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순교를 택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마음은 정말로 순교할 수 있다는 마음입니다. 정말로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순교 또한 기꺼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진짜"가 아니라면, 순교는 커녕 하늘이 두쪽 나도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에 가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잘 들으십시오. 우리는 흔히 천국에 가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천국에 가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 믿으면 자동으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마치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은 어렵지만, 금메달 따고 시상식에 올라가는 것은 쉬운 일과 같습니다. 금메달을 따기까지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시상식에 올라가는 것은 그저 몇 걸음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천국에 가는 것은 너무나 쉽지만, 이 땅에서 "진실 되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음악]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이 "당신은 구원받은 것 같아", "목사님 참 훌륭하시네요"라고 칭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칭찬은 우리의 구원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그 누구도 흔들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된 증거"는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5장 말씀을 새벽 기도 시간에 묵상하다가 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음 주까지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증거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두 가지 증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증거: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
먼저 요한일서 5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아멘.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 즉 예수님을 단순한 사람이나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인 의미로 "거듭난다"(born again)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육신으로 한 번 태어났지만, 세상에 대해 "죽고"예수님 안에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아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서 났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한국 혈통을 가진 사람이라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과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30년 후에 만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겉모습은 똑같아도 속 "내면"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만, 다른 사람은 영어를 전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은 김치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은 김치를 입에도 못 댈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혈통은 똑같아도,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만약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또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육체적으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에게서 다시 태어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에게는 어떤 "증거"가 나타날까요? 1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동일하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즉, 우리 자신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성도들 역시 동일하게 하나님에게서 난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성도"(거룩한 무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다시 태어난 "영적인 형제자매"입니다. 마치 7남매 형제들이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것처럼, 우리 역시 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다시 태어난 존재입니다. 만약 "내가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면, 나 예수 믿는다고 떠벌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녀"로서의 "첫 번째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형제와 친구를 비교해 보니,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친구가 형제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고, 실제로 친구를 형제보다 더 자주 만나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 형제는 일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처럼, 형제는 친구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저 역시 형제가 많다 보니, 바람 잘 날 없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형제끼리 돈 빌려 가서 안 갚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형제에게 사기를 쳐서 도망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얼굴 한번 안 비치다가 명절 때 슬그머니 나타나기도 합니다. 콩가루 집안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형제는 친구와는 달리, 아무리 원망하고 미워해도 명절 때 밥 한번 같이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르르"풀어집니다. 이것이 "형제"와 "친구"의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친구는 수십 년을 가깝게 지내도, 한 번의 오해나 사소한 다툼으로 인해 관계가 "영원히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친구"관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영적인 형제자매"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피 보다 진한 영적인 관계"라는 것이 잘 실감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한 "배"(하나님 아버지)에서 나온 "영적인 형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형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형제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간혹 교회 안에서 성도 끼리 서로 흉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허물"은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김 집사님은 성격이 너무 드세"라든지, "박 권사님은 너무 게을러"라는 식으로 "피상적인 흉"은 볼 수 있지만, "박 집사님 딸이 낙태를 세 번이나 했대"라는 "치명적인 흉"은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나간 사람"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제 끼리"는 서로의 "치부"를 "덮어 주기"때문입니다. 실제로 형제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함부로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피 붙이"는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다면, 어떤 "증거"가 나타나야 할까요? 저는 "원수"까지 "사랑"할 자신은 솔직히 없습니다. 죽을 때쯤 되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원수 사랑"은 저에게 너무나 버거운 숙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일단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부터 "사랑"하고 "허물"을 "덮어 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증거일까요?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증거입니다. 성경에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어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입술로만 "하나님 사랑해요!"라고 외치면서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예전에 어떤 권사님이 새로 온 초신자 집에 심방을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권사님은 초신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심방이 무엇인지, 심방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심방"이라는 말만 듣고 덜컥 초신자 집에 심방을 간 것입니다. 초신자 집 안방에는 밤에 사용하는 "요강"이 놓여 있었는데, 권사님은 목사님이 요강을 볼까 봐 얼른 치마로 요강을 덮어 감춰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서로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 공동체"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초신자는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할 수 있듯이, 우리도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보통의 경우는 심방 가서 요강 본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니기 바쁩니다. "OO 집사님 집에 심방 갔더니, 글쎄 안방에 요강이 있더라"하면서 온 동네 방네 소문을 내고 다닙니다. 다음 주 주일 날 그 새신자가 교회에 오면, 모두 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새신자는 수치심을 느끼고 교회 발길을 "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교회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언 10장 1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아멘. 미움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사랑"은 "허물"을 "덮어"준다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지만, 형제의 허물이 아무리 "크고 심각하다"해도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형제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랑의 부족"입니다. 어째서 자식의 허물은 눈감아주고 덮어주면서, 형제의 허물은 그렇게 못 합니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사랑 부족"을 회개해야 합니다.
경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던 박찬석 교수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박 교수님은 "내 고향은 경상남도 산청이다. 그곳은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우리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그 가난한 살림에 대 구로 유학을 보내주셨다. 나는 대구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부가 무척 하기 싫었다. 그 결과 내 새 반에서 석차는 68명 중에 68등,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방학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내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부모님께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은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서 풀고자 했는데 꼴찌를 했으니... 나는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는 길에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등으로 고쳐서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보통 학교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 간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척들이 몰려와서 "전 서기는 공부를 잘 하냐?"고 물었다. 그때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지. 이번엔 어쩌다가 1등을 했다"라고 말씀하셨다. 내 동네 어른들은 난리가 났다. "재 시간 잘도 수 1등을 했다면 잔치를 해야지!"라고 하면서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다음 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단 한 마리 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에게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 목록 1호였다. 정말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겁에 질려서 "아버지, 아버지!"하고 불렀지만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집에서 뛰쳐나와 죽어 버리려고 마음먹고 물속에 들어가 숨을 안 쉬고 버텨보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달라져 있었다. 항상 그 일이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에 나는 대학교 강사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아들 위로가 중학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그 사건을 사과하려고 작정하고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 성적표는 요..."라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가만 있거라. 다 알고 있다. 그만 해라. 미 새끼가 듣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위조한 성적표를 알고도 재산 목록 1호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베푸신 그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대학교 총장이 되었지만 지금도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제가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 이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귀신 쫓는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도 고등학교 때 귀신을 쫓아본 적이 있습니다. 능력 행하는 것이 대단한 일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로 "어려운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는 증거 말고, "우리 안에 있는 진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첫 번째 증거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가?"입니다. 저는 지금 착하게 살자는 윤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모습"을 "점검"해보자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반드시"나타날 것입니다. 그 "증거"가 우리 안에 "있는지"스스로 묻고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증거: 계명을 지키는 삶
두 번째 "증거"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아멘.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녀는 본능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게 됩니다. 아무리 바빠도 부모님 생신 때는 찾아뵙고, 힘없고 돈 없는 부모님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녀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킬 때"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저절로"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두 번째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 즉 계명을 지키는 삶"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처음 발을 딛는 순간부터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성경 대로 사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라는 "잘못된 선입견"입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 수십 년을 해도 말씀 대로 살려고 "실천"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려우니까 아예 포기"해버리는 것입니다. 성경 읽는 것은 읽는 것이고, 설교 듣는 것은 듣는 것이고,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나는 "원래 못 사는 사람"이니까 "대충 살아도 괜찮아, 어차피 천국은 갈 수 있으니까"라는 "이상 야릇한 괴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학교만 다녀도 말투가 달라지고, 결혼만 해도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직장만 다녀도 생활 패턴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어째서 교회 나와서 수없이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도 "말씀 대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일까요? 정말 "있을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게"물어야 합니다. "나는 왜 말씀을 지키지 않는가?"
말씀을 안 지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말씀을 몰라서 못 지키는 경우"입니다. 성경에 그러한 말씀이 있는지 조차 "몰랐기 때문에 못 지킨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구나! 이제 부터라도 제대로 알고 지켜야겠다!"라고 깨닫고 돌이키면 됩니다. 둘째, "자신의 고집 때문에 알면서도 일부러 안 지키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말 자체"가 "일리"가 있어서 무조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말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방송국에 취직해서 아나운서가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아직 신입이라 변변찮은 길거리 리포터 역할만 겨우 맡고 있지만, TV 화면에 잠깐 30초 얼굴이라도 비추면 온 가족이 난리가 날 것입니다. "어머, OO아! 우리 애가 TV에 나왔다!"하면서 2시간 전부터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채널 고정하고 손꼽아 기다릴 것입니다. 온 세상이 떠들썩한 중요한 뉴스가 쏟아져 나와도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올 것입니다. 오직 자녀가 언제 TV에 나오는지 온통 "신경"이 쏠려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마지막 순서에 리포터로 나온 자녀의 모습을 본 부모님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일 것입니다. "아이고, 내 새끼! 장하다! 장해!"하면서 사진 "팡팡"찍고, 동영상 "녹화 버튼 누르고, 온 친척 들에게 전화 "돌리고"자랑 하기 바쁠 것입니다. 자녀가 무슨 내용으로 리포팅을 했는지, 날씨 예보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 자녀가 TV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콤하게"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힘들지 않습니다."골프 광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새벽 3시에도 "기꺼이"일어나서 골프 "라운딩"을 간다고 합니다. 만약 새벽 3시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라면, 아마 한 달도 못 버티고 " 사표"를 낼 것입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골프 치는 일이라면 새벽 2시, 3시에도 "기쁜 마음"으로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일은 힘들어도 "힘든 줄 모릅니다."제가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묻겠습니다. "여러분, 말씀 지키는 것이 정말로 그렇게 힘드십니까?"왜 말씀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생각하십니까? 혹시 말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 하는 것이 힘듭니까? 어렵습니까? 오히려 "주일 성수"는 "가장 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꾸로"살고 있기 때문에, 주일 성수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만약 주일 날 교회에 못 오게 된다면, 온 몸이 "근질근질"하고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30년, 50년 동안 성가대 봉사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힘들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정작 성가대 봉사를 " 단 한 번"도 " 그만두지 않았습니다."왜 그럴까요? 성가대 봉사가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 50년 동안 성가대 봉사하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성가대 봉사를 할 수 있을까요? 그만큼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왜 가치 있는 일일까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목회 생활이 어렵습니까? 세상 일이 더 어렵습니까? 흔히들 목회 생활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저는 솔직히 "세상 일"에 비하면 목회는 "너무나 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중 단 한 분이라도 저 대신 목회 " 딱 하루"만 해보시면 곧바로 "두 손 두 발"다 들고 " 항복"할 것입니다. 제가 교회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 끽해야"설교 준비하고, 예배 인도하고, 심방 가는 것 뿐입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주일 예배 한 번 드리러 교회에 올 때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나는 주일 예배 드리러 올 때 단 한 가지도 포기하는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분은 안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목회"입니다. 저에게 "설교"는 "전혀 힘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설교 준비하는 것은 "무척 즐겁고 신나는 일"입니다. 물론 설교 준비 때문에 "밤잠"을 설칠 때도 있고, " 기억력"이 점점 나빠져서 예전에 했던 예화를 또 다시 하게 될까 봐 "노심초사"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교인들의 "눈치"도 많이 보고, "혹시 실수라도 할까 봐"전전긍긍했지만, 요즘은 "배 짱"이 두둑해져서 "하던지 말던지"신경 안 씁니다. 하지만 제가 설교가 힘들다고 " 엄살"을 피우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설교를 "못 하게 된다면"그때가 "진짜 힘든 날"이 될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말씀"을 "안 지키고 사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든 일"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억지"가 아니라, "기쁨"이고 "즐거움"이고 "신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모습이고, 진짜 "증거"입니다. 김 교신 목사님은 이 시대의 "예수님을 가장 닮은 분"이라고 불립니다. 우리는 평생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일을, 김 목사님은 "숨 쉬듯이 날마다"하고 살아갑니다. 간증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나 "쉽게"이야기해서 "정말 저게 가능한 일일까?"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김 목사님은 "말씀 대로 사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김 목사님의 삶은 너무나 "힘들고 고난 투성이"처럼 보입니다. 김 목사님은 중국 오지 마을에서 2번이나 "강도"만나 알거지가 되기도 하고,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살았습니다. 어느 지역에 가서는 교회 "간판"도 내걸지 못하고, "목사"라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예배 조차 마음대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놀랍게도 교회가 "저절로"세워지고, 제자들이 "저절로"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사람들까지 생겨났습니다. 왜냐하면 김 목사님 "자신"이 "그리스도인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또 다른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날 김 목사님이 사역하는 마을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가지고 40리 길 떨어진 시장에 가면 "갑절"의 값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돈 벌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트럭을 빌려 농산물을 "가득"싣고 힘겹게 시장에 가서 농산물을 팔고 "짭짤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기분 좋게 돌아오는 길에 " 도적떼"를 만났습니다. 도적떼는 칼을 들이대며 농산물과 돈을 "모두"내놓으라고 협박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순순히 농산물과 돈을 "다"내주었습니다. 심지어 트럭 속에 "숨겨 놓았던 돈"까지 다 꺼내서 주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 목사님! 하나님은 목사님을 "안 지켜주십니까?"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김 목사님은 "오히려 화"를 내면서 "바보 같은 짓"하지 말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때 김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 말씀에 강도 만나면 어떻게 하라고 했느냐? 네 겉옷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벗어주라고 하지 않았느냐?"아무도 "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목사님의 행동"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다음 날 놀랍게도 어제 그 도적떼들이 돈 " 자루"를 짊어지고 마을을 찾아왔습니다. 도적떼 두목은 두려움에 떨며 김 목사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사죄했습니다. "선생님, 저희를 용서해주십시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도적떼 두목은 자신이 30년 동안 도둑질을 했지만, 김 목사님처럼 "숨겨놓은 돈"까지 "다"내어주는 사람은 "처음"봤다고 고백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강도를 만나면 "한 푼"이라도 "덜 뺏기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