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라 오병이어와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
헛되이 마라, 구원의 은혜
리메이크(58) - 남은 떡 조각을 거두라: 은혜의 깊이를 깨닫고 낭비하지 않는 삶
교회에 다니면서 '믿음'과 '은혜'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하는데요, 마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교회와 대한민국처럼 소중한 것들의 진정한 가치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입만 열면 믿음, 은혜를 외치지만,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믿음을 말하면서 믿음대로 살지 못하고, 은혜를 이야기하면서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며, 고린도후서 6장 1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구절에는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능력을 중요시하지만, 우리는 은혜를 더욱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은혜가 능력을 능가하며, 능력은 우리에게서 나오지만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보다 더 강한 것은 없으며, 바울은 은혜 안에서 강해진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은혜입니다. 저 역시 은혜를 구하며 이 강단에 서는데요, 이 강단에 은혜가 없다면 교회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은혜가 없다면, 그 일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은 받은 은혜를 헛되이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인데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이었으며, 여기서 남은 떡 조각은 철저한 은혜의 덩어리를 상징합니다. 오천 명의 군중들은 이 기적에 아무런 노력도 기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한 것은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를 받아 먹는 것뿐이었죠.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한 것이 없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덧입는 것" 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윗 역시 은혜를 강조했으며,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다윗의 고백을 인용하여 은혜를 설명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았는데 받는 보상은 은혜이며, 은혜를 입은 자는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격 없고 능력 없고 조건 안 되는 자에게 베푸시는 혜택,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에서도 은혜의 개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아서, 밭을 갈던 사람이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는 비유인데요, 이 비유 속 밭을 간 사람은 보화를 캐기 위해 밭을 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생계를 위해, 혹은 가난 때문에 남의 밭을 빌려 밭일을 했을 뿐입니다. 보화를 기대하지 않았던 그에게 뜻밖의 은혜가 찾아온 것이죠. 이처럼 구원을 얻기 위해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처음부터 구원을 목적으로 교회를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를 만나거나, 시간이 남아서, 혹은 귀찮아서 왔지만,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배우고 찬송을 하면서 천국을 얻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요. 우리가 받은 은혜 중 최고의 가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세상에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흙수저로 태어나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삼국지의 유비 아들 유선처럼, 아버지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녀도 있습니다. 반면 제갈량처럼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잘못 만나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적인 가치관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흙수저로 태어났든, 금수저로 태어났든, 목사 자녀로 태어났든, 무당 자녀로 태어났든,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예배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구원을 받았거나, 구원받을 수 있는 자로 하나님께 택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불평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자유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말씀인데요, 당시 성도들 중에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내세울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지혜 없고, 능력 없고, 가문도 변변치 않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것이 중요하다" 고 강조합니다. 저 역시 스스로를 영적인 흙수저, 0점짜리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저를 예수님께서 믿게 하시고, 구원해주시고, 목사까지 되게 하셨습니다. 저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실력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심지어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도 저보다 지혜롭고,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영적으로 뛰어난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목회자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세상적인 조건이나 환경,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왕자와 공주가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성명의 시인의 간증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그는 일곱 살까지 뇌성마비로 누워 있었고, 어머니는 그를 업고 은사 집회에 가서 수없이 안수기도를 받았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16살 때는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죄인임을 고백했고,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몽당연필을 쥐고 쓴 시에는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을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이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시구를 쓰라는 감동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결국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명의 시인은 원망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천국과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처럼, 우리는 세상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천국을 소유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무엇을 더 원하십니까? 아직도 불평이 많으십니까? 성명의 시인에게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었다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경까지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지혜로운 자도, 능력 있는 자도, 하나님께 은혜받을 만한 조건도 없는 우리를, 주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 후 남은 떡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떡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왜 예수님은 남은 떡을 거두라고 하셨을까요? 제자들에게 주시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다시 가져가시기 위해서였을까요? 돌을 떡으로 만드신 예수님께서는 떡이 부족해서 거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남은 떡을 거두라는 명령에는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낭비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떡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며, 이 은혜를 헛되이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은혜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 구원의 은혜를 입에 달고 살지만,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우주 만물보다 큰 사건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날마다 받는 은혜에 무감각해지고, 그 귀함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를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수가 성에 가셨는데,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동네에 들어간 사이 예수님은 혼자 남아 우물가에 앉아 계셨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른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은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 오라고 하신 이유는 은혜에도 때가 있고,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에서 하나님은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실 자를 선택하시고, 긍휼을 베푸실 자를 정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방황하며 마지막에는 지옥 불에 던져질 존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은혜 베푸실 자로 택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우리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 앞에서 불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와 선물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이 은혜를 망각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경고합니다. 에서는 한 그릇 음식을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장자권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입니다. 야곱은 장자권의 축복을 알았기에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바꾸는 거래를 했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고, 나중에 축복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렸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성경은 에서의 행동을 망령된 행위라고 규정합니다. 망령되다는 것은 단순히 어리석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을 업신여겼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서를 장자로 태어나게 하셨지만, 에서는 그 귀한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과 바꿔버린 것입니다.
사울 왕 역시 자격 없는 자였지만 은혜로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된 후 은혜를 잊고 교만해지면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베푸신 구원의 은혜, 예배의 은혜, 응답의 은혜, 봉사와 사역의 은혜를 멸시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소모임 하고, 교제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모든 활동이 막혀버린 지금, 우리는 더욱 은혜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껏 예배하고, 성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이 기회를 허락하신다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말입니다. 누가 이 시대에 여호와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팥죽 한 그릇만 못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음란, 거짓말, 탐욕, 게으름 등 많은 죄악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어리석음이 이 시대의 타락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는 더 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맛본 자들처럼, 남은 인생을 주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처럼,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대충대충 하나님의 일을 하면 촛대를 옮겨버리시겠다는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50%, 60%만 힘을 쏟는다면, 그 일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 광인에게 귀신을 쫓아내 주신 후, 그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고 간청했지만, 예수님은 "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 말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사람에게 맡겨진 사명이었습니다. 잠언 14장 4절은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으면 깨끗하지만 얻는 것이 적고, 소가 있으면 일은 많지만 얻는 것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일이 많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사명이 크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은혜로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며, 금세 지나갑니다. 은혜는 거저 받았지만, 그 은혜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얻어진 고귀한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대상도 귀하고, 가치는 우주 만물보다 큽니다. 이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명심하고, 게으름과 불평,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며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위해, 심지어 죄를 짓기 위해 시간을 아끼는데, 하물며 천국 복음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더욱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어린 석유처럼 어리석게 낭비하지 않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생명을 다해 주님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남은 떡 조각을 거두라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낭비하지 말라는 귀한 교훈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천둥과 같이 무겁게 받아들이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생명 다하는 날까지, 받은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이 시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고, 없는 것에 불평하기보다,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시간 이후로 불평이 떠나가고, 어리석음이 떠나가고, 비교하는 마음이 떠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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