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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과 고난 속 신앙: 루비 캔드릭 선교사 순교 이야기

요약

## 고난 속의 행복, 루비 캔드릭 선교사의 숭고한 희생: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삶

리메이크 (22) -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2021-01-17 주일예배) - 박한수 목사 상세 내용 정리

오늘 설교는 다소 낯선 질문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면 정말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말해,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번영, 평안을 가져다주는 분이라고 여기십니까? 우리는 성경을 올바르게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행복과 평안만을 주러 오신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종종 이 점을 오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방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방식대로 그분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습관 때문에 2021년 현재, 이 땅의 교회와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해하지 마라.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평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오히려 검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검은 갈등과 싸움을 의미합니다. 저는 처음 이 말씀을 접했을 때 충격과 함께 "아,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모습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기대하는 행복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 약 11번 나오지만, 하나님이 "나를 믿으면 행복해진다"라는 개념으로 언급하신 경우는 신명기에 단 두 번뿐입니다.

신명기 10장에는 "너희의 행복을 위하여 나의 계명을 지켜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신명기 33장에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선포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유랑하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들이 행복한 존재, 특별한 존재로 보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신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 기독교인 순교자가 2,175명에 달했습니다. 2016년에는 교회 테러 등으로 인한 사망까지 포함하여 약 9만 명이 순교했습니다. 이는 1년에 6분당 1명꼴로 순교한 셈입니다. 복음 때문에 죽고 핍박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순교 또한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승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난 해, 25세의 미국 텍사스 처녀 선교사 루비 캔드릭이 6개월의 긴 항해 끝에 조선 땅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10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교회를 세우거나 뚜렷한 선교 사역을 펼치지도 못했습니다. 단지 병마와 싸우다 짧은 생을 마감했을 뿐입니다. 그녀가 고향 부모님께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이웃 조선 사람 서너 명이 끌려와 순교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님과 제임스 선교사님도 이미 순교하셨습니다. 선교 본부에서는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은 여전히 남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순교를 각오하고 있는 듯합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르짖으며 저를 말리셨던 어머니 얼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짚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이 내년에는 온 동네 꽃 향기로 가득 채워지겠죠. 그처럼 조선 땅에 씨앗을 뿌리고 나면, 수많은 꽃들이 피어날 것입니다. 그 조선 땅에 뿌려진 씨앗은 여러 나라에 널리 전해지는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제가 조선을 향해 가지는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해 가지신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향이 그립습니다."

루비 캔드릭 선교사는 죽음을 앞두고 "내게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그 목숨을 조선 땅을 위해 바치겠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또한, 자신의 죽음 이후 텍사스 청년 10명, 20명, 50명이 조선 땅에 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기도대로, 그녀의 순교 후 약 20명의 텍사스 선교사들이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똑같은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거침돌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메시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심장을 울리는 복음으로 들리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짜증 나는 소리로 들립니다. 호세아 14장 9절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하여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하나님의 도는 분명하고 정직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말씀으로 살아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걸려 넘어집니다. 환난 앞에서 믿음으로 더욱 무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그리스도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날 이 땅의 그리스도인, 기독교 신앙, 교회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 안에 진정한 기독교 신앙, 세상의 파도와 환난을 이겨낼 에너지가 있는 것일까요? 수십 년 동안 '복'만 외치다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 방식대로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방식을 버리고, 제 마음대로 믿음을 정하고, 교회를 선택하고, 하나님을 만들어 믿으려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루비 캔드릭 선교사는 이 땅에서 10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헛된 것이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의 의미 없어 보이는 죽음은 20명의 선교사를 조선 땅으로 이끌었고, 그들은 루비 캔드릭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어찌 인간이 감히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니, 없느니, 하나님의 뜻이니, 아니니"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단 하나만 알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셨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우리의 고난과 형통과 상관없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요? 거창한 것을 몰라도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을 잡고, 그 품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천사들이 우리를 보면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합니다. 천사들은 우리보다 깨끗하고 영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하나님을 우러러봅니다. 이사야서에 묘사된 스랍 천사들은 여섯 개의 날개로 얼굴과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두 날개로 날갯짓을 합니다. 얼굴을 가려도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발을 가려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춥니다. 그들은 피조물로서 종의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복을 누리지 못하고,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왜 나는 병에 걸려야 하나?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왜 내 자녀는 저 모양인가?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왜 우리 집안은 이 모양 이 꼴인가?"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괴로워하며, 겨우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에 매달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목회자의 길은 두렵고 영광스러운 길입니다. 하지만 많은 목회자들이 그 영광스러움을 깨닫지 못하고, 교인이 없다고, 목회가 힘들다고 피해의식에 젖어 좌절합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절에서 자신의 신분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복음 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정체성에서 그의 강인함이 나왔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았고,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병이 낫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였지만, 정작 자신은 병에 시달렸고, 다른 사람의 병은 고쳐주면서도 자신의 병은 고침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혀서도 찬송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편안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었기에, 그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중에는 겨우 돈 때문에, 겨우 직장 때문에, 겨우 집안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 사람은 가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과격한가요? 이해가 안 되십니까? 우리는 위로받기 위해 주님 앞에 나오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해를 얻기 위해 주님 앞에 나오는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름받은 존재들입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리십니까? 여러분의 삶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우리의 실체를 바로 알 때, 우리는 세상에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저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능력 있는 목사님들, 성도님들이 세상에는 차고 넘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택하시고, 목사로 세우셨습니다. 알 수 없는 은혜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보다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택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을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단지 은혜입니다. 이 은혜 하나만 깨달아도,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멘.

옥한흠 목사님께서 CBS 초청 프로그램에 출연하셨을 때, 진행자가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오랫동안 목회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성도가 있으십니까?" 옥 목사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한 분을 이야기했습니다. 강남 서초동 상가에서 개척 교회를 시작하여 50명 규모로 성장했을 때, 어느 날 하얀 한복을 입은 한 할머니가 예배당 맨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설교가 시작되면 조용히 앉아 듣다가, 축도가 끝나면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 두 달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할머니가 궁금해진 옥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오늘도 그 할머니가 오시면 뒤를 밟아 보세요.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축도가 끝나자 할머니는 사라졌고, 성도들은 할머니를 따라가 그녀가 사는 집을 알아냈습니다. 할머니는 강남의 큰 저택에 살고 있었습니다. 옥 목사님은 용기를 내어 그 집 초인종을 눌렀고,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큰 저택의 주인이 아니라, 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가엾은 여인이었습니다. 옥 목사님은 할머니의 허락을 받아 허름한 방에 들어가 심방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할머니의 인생은 기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고생을 하며 살다가, 남편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과부가 되었습니다.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 있었지만, 딸에게마저 버림받고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무식하고 못나고, 자식도 없이 외롭게 살아가던 할머니는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에 농약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식도와 위장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그 후 식물처럼 살아가다, 우연히 십자가를 보고 사랑의교회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 외출 허락을 받아 주일 예배에 참석했던 것입니다.

옥 목사님은 할머니를 심방하고 교회를 꾸준히 나오도록 격려했습니다. 할머니는 점점 삶의 의욕을 되찾고, 교회 봉사에도 열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강남 개발 붐을 타고 부유한 사모님들이 교회에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초창기 개척 멤버들은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하나둘 교회를 떠나갔지만, 할머니는 꿋꿋이 교회를 지켰습니다. 할머니는 헌금 위원이 되어 헌금 주머니를 들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할머니에게서 천사의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낡은 옷을 입었지만,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영광의 광채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몸이 아파 옥 목사님 사택을 찾았습니다. 사모님은 할머니를 방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는데, 잠시 후 할머니의 맥박이 끊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옥 목사님은 급히 달려와 할머니를 품에 안고 기도했고, 할머니는 옥 목사님 품에서 평안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도 친척도 없는 할머니의 장례는 교회장으로 치러졌고, 수천 명의 성도들이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습니다. 성도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 중직자도 저렇게 큰 복을 받지 못했는데, 누가 목사님 품에서 죽고, 누가 목사님 성도 자격으로 수천 명의 성도들에게 둘러싸여 장례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를 제대로 믿는 자의 삶의 실상입니다.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하시겠습니까? 얼마나 더 높아져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영광을 받으십니다.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은 절대로 피해망상 환자가 되지 마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하십시오. 왜 전도가 안 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얼굴이 예수 믿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집에 가서 바가지를 긁습니까? 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직장에서 죽을상을 하고 다닙니까? 승진이 안 된다고, 남 탓만 하고 불평불만만 쏟아냅니까? 그런 정신 상태로 천국을 믿는다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제발 속 가면을 벗어 던지십시오.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내일 죽을 수도 있고, 오늘 죽을 수도 있습니다. 10년 후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망할 수도 있고, 내일 망할 수도 있습니다. 1년 안에 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주님 앞에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는 때때로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마귀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십자가 고난이 기쁨이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피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네가 이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의 육신의 뜻과 충돌했을 때,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며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지막 순간에 주님 앞에 서기 전에 "주님, 주님께서 저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주신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뜻을 다 이루고 갑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승리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은 결코 인간이 막을 수 없습니다.

고흥에 길두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목회하시는 박성수 목사님은 환경 목사님 생전에 "사람들이 한경직 목사님을 성자라고 부르지만, 진짜 성자는 따로 있습니다. 호남에 가면 박성수 목사님이 계십니다"라고 칭찬할 정도로 존경받는 분입니다. 박 목사님은 이북에서 홀로 내려와 평생 독신으로 목회하셨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12개나 되는 교회를 개척하고, 가난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쳐 인재를 키워냈습니다. 많을 때는 1년에 800명씩 졸업시켰다고 합니다. 그 졸업생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우리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세운 학교 아이들이 저수지에서 물놀이하다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불행히도 죽은 아이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집 아이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일에는 침묵하지만, 나쁜 일이 생기면 비난합니다. 교회에서 세운 학교에서 사고가 났으니, 책임은 교회에 있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심지어 목사가 아이들을 죽였다는 악성 소문까지 퍼졌습니다. 박 목사님은 장례를 교회에서 치러주고, 유족들에게 보상까지 했지만, 죄인 취급을 받으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목사님은 슬픔에 잠긴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심방을 갔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잠겨 예배드릴 마음조차 없는 유족들에게 박 목사님은 예배를 드리자고 권면했습니다. 예배가 끝날 무렵, 박 목사님은 유족들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르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자녀들은 천국에 갔습니다." 당시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박 목사님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박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위로하는 대신, 이 아이들을 천국으로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곳에 예배당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격분했습니다. "사람이 죽은 것도 모자라, 그 집에 예배당을 세우겠다고 하다니!" 동네 사람들은 괭이와 몽둥이를 들고 박 목사님과 전도사님을 쫓아냈습니다. 쫓겨난 박 목사님은 언덕에 올라가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박 목사님은 전도사님에게 "옆 동네로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길에서 만난 아무 집이나 불쑥 들어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습니다. 그 집에는 죽어가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박 목사님은 할머니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첫 번째 기도에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고, 두 번째 기도에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세 번째 기도에 밥을 지어 박 목사님께 대접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할머니는 동네방네 다니며 "길두교회 박 목사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야!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어!"라고 외쳤습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병든 사람들이 기도를 받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박 목사님은 찾아오는 환자들을 위해 기도했고, 많은 사람들이 병에서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놀랍게도 아들 둘을 잃은 슬픔에 잠겼던 유족들의 집에 예배당이 세워졌습니다. 자식이 죽은 슬픔의 자리에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물론 예배당을 세웠다고 해서 죽은 자식이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상묵 목사님은 중국에서 북한 선교를 하던 중, 20명의 북한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캄캄한 밤중에 두만강을 건너 이상묵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이상묵 목사님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들이 진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북한 성도들을 위해 이상묵 목사님은 한국으로 데려올 계획을 세웠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떠나기 직전, 한 할아버지가 간절히 기도하더니 갑자기 "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신들을 살리려고 여기까지 온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이상묵 목사님은 할아버지의 찢어진 슬리퍼에 입을 맞추며 눈물로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결국 20명의 북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고, 그 후 모두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얄팍한 지혜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당연한 본능이지만, 남의 자식이 선교사로 헌신한다고 하면 박수를 보내지만, 내 자식이 선교사로 가겠다고 하면 왠지 말리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얼마나 가짜인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몽골 선교를 하시는 한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는데, 이름조차 희미하게 기억납니다. 그분은 한국에서 평범하게 목회하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몽골 선교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몽골 선교를 준비하던 중,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교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교사님은 아들의 장례를 마치고, 아들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 몽골로 떠났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오묘한 것입니다. 시험에 들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습니다. 내 눈앞에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병들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비참하게 순교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를 벌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가면 모든 의문이 풀릴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지만, 그날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이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0절과 21절에서 담대한 외침을 토해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모릅니다. 부족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아직 제 믿음의 그릇이 이 말씀을 담아낼 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부족하나마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통해 영광 받으실 수만 있다면, 어떤 존재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나라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열정이 솟아나, 하나님을 바로 아는 눈이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그 기쁘신 뜻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시고, 주님의 살아계심을 이 연약한 존재들이 어떻게 다 증거하오리까? 주여, 저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그 독생자의 죽음을 통하여 저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주여, 저희가 아는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랑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힘으로 넉넉히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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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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